오늘의 묵상
보좌 신부일 때 청년들과 함께 구유를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함께 아이디어를 짜고 구유 안에
어떤 의미를 담을까 고민도 많이 하였습니다.
한 번은 구유를 가장 가난하게 만들어 보자고 의견을 모았는데,
가장 가난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쓰고 버린
폐기물들이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버려진 물건들로 구유를 만들어 보려고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폐자재도 주워 오고, 플라스틱 페트병도 모았던 기억이 납니다.
버려지고 쓸모없는 것, 가장 더럽고 냄새나는 것, 그래서
우리가 거들떠보지 않는 것으로 예수님의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구유가 그런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누우신 자리가
그러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우리의 기다림 또한 우리 자신의
가장 쓸모없고 버려진 마음, 너무 추악해서
들추어 보고 싶지 않은 자리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곳으로 예수님께서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런 곳을 바라보고, 거기에 자리를
마련해 두어야지만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과 처음으로 만난 제자들도 그러한 자리를 마련합니다.
어부에게 그물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물에 집착하였고 크고 좋은
그물을 얻고자 사람들과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였습니다.
제배대오의 두 아들은 배와 아버지를 버렸다고 합니다.
같은 어부였지만,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호수로 나갈 수 있는 배를 가졌고 그런 배와 그물,
그리고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아버지는 권력이었고 힘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그분을 만나 버렸던 것은 다름 아닌 욕심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 사람에 대한 욕심, 권력과 힘에 대한
욕심이 바로 우리를 가장 추악하고 더럽게 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지금, 우리는
의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탐욕을 마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의 자리를 비워 두어야 합니다.
바로 그곳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실 것입니다.
- 최종훈 토마스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