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사람은 돈을 버는 일만 했다. 세상은 그들을 기업가라고 불렀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착한 일만 했다. 세상은 그들을 사회운동가라고 불렀다. 영리 영역과 비영리 영역은 그렇게 엄격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모두 과거의 일이었다.
지금 앞서가는 사람은 벽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벽을 허무는 사람이다. 엄마처럼 자상하고 가정적인 아빠와, 아빠처럼 사회생활에 열심인 엄마가 필요한 세상이다. 돈만 잘 버는 기업보다는 사회적 책임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기업이 존경받는 세상이고, 영리기업처럼 효율적으로 경영되는 자선기관이 더 많은 기부금을 받아 더 많은 자선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되는 세상이다.
자기만의 고치 안에 숨어서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하이브리드 사고, 즉 영역과 영역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세상을 이끄는 사고방식이 된 것이다.
돈 버는 일과 착한 일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일. 일과 놀이의 경계를 없애는 일.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벽을 투명하고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일이 지금 앞서가는 일이다. 이게 마더 테레사와 구글이 만난 이유고, 폴 뉴먼이 샐러드 드레싱 회사 사장이 된 이유다.
마더 테레사가 구글을 만난다면?1998년, 미국 스탠포드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잘 다니던 학교를 갑자기 중단했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엔진 기업을 창업했다. 아직 인터넷의 미래가 안개 속이던 때에, 세계가 알아주는 명문 대학을 뛰쳐나와 확실한 미래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던 세계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것도 스탠포드라는 명문대에서 박사과정을 순탄하게 진행하고 있던 중인데 말이다. 졸업만 하면 대학 교수로든 글로벌 대기업 연구원으로든 안정되고 연봉 높은 쉽게 취직할 수 있었을 텐데, 그저 검색 엔진에 미쳐 그 안정된 길을 뛰쳐 나와 불확실성 속에 몸을 던졌다.
구글은 그렇게 탄생했다. 세르게이와 래리는 세계적 백만장자 대열에 섰다. 세르게이 브린은 세계 9위 부자가 되고 래리 페이지는 23위 부자가 됐다. 구글은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 됐다.
1948년, 인도 콜카타의 성 마리아 학교 교장이던 테레사 수녀는 평생 종사했던 수도회를 뛰쳐온다. 수도복을 벗고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여성들이 입는 흰 사리를 입은 채였다. 석달 동안의 간호학 과정을 마친 뒤, 그는 캘커타의 빈민가를 찾아가 무작정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한다.
명예롭게 적당한 선행을 베풀면서도 평안히 지낼 수 있던 선교 학교의 매력도, 아무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 극빈층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저 가장 밑바닥으로 뛰어드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겼다. 곧 죽어갈 사람들만 받는 ‘임종자의 집’, 고아들을 위한 집, 한센병 환자 자립 센터를 열면서 점점 더 밑바닥으로만 향했다.
마더 테레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세계가 존경하는 성녀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그런 마더 테레사의 가치를 지키면서 구글 같은 기업을 세우겠다는 사람들이 “사회적 벤처기업가”들이다. 그들은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사회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돈도 벌겠다는 사람들이다.
벤처기업은 독창적인 비즈니스모델을 가지고 새롭게 창업하는 기업이다. 사회적 기업도 비슷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사회적 기업은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사회적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이다. 즉, 영리활동을 하면서도 동시에 ‘옳은 일’을 하는 창업이다.
기업 비즈니스모델을 평가할 때는 오로지 그 기업이 미래에 경제적 성과를 얼마나 잘 낼 것인 지만 측정한다. 돈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잘 벌 것인 지만 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을 평가할 때는 다르다. 그 기업이 미래에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성과를 얼마나 균형 있게 달성할 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돈도 벌고 선한 일도 하는 기업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어떤 사업 모델로 이렇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나와 직접 이야기를 나눈 스탠포드 대학 학생들의 사회적 기업 ‘디라이트(d.light)’의 이야기다.
“우리 디라이트는 캄보디아나 미얀마 같은 개발도상국에 발광다이오드 램프를 팔겠습니다. 전등 1개의 경제적 가치, 즉 전등 값은 10달러(약 9500원)이지만, 그 전등이 개발도상국 빈곤층에 주는 사회적 가치는 473달러(약 4만 5천 원)입니다.”
디라이트는 현재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등유램프를 쓰며 수입의 3분의 1을 기름값에 사용하는 캄보디아 가내수공업자의 사례를 들며 청중을 사로잡았다.
“등유 대신 발광다이오드 램프를 쓰면 비용이 한 해 30달러 절약됩니다. 여기에 가내수공업 생산성이 15% 높아집니다. 밤에 그 집 어린이가 공부할 수 있게 되면서, 가난 대물림도 줄어듭니다. 더 밝아진 조명이 화상이나 사고를 방지하면서, 건강과 안전성 측면의 가치도 높아집니다. 물론, 동시에 디라이트는 1년 만에 흑자전환하고 꾸준히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사회적 가치를 빼더라도,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어떤 제품보다도 경쟁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20만 달러(약 1억9천만 원)을 투자해 주십시오.”
그 젊은이들은 구글과 마더 테레사의 만남을 꿈꾸고 있었다. 모두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면서 동시에 이익도 챙기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사람은 두 가지 종류의 꿈을 꾼다. 하나는 구글의 꿈이다. 열정을 바쳐 일한 뒤 충분한 댓가를 받아 부자가 되고 싶은 꿈이다. 다른 하나는 마더 테레사의 꿈이다.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올바른 삶을 살고 그 삶을 인정받고 싶은 꿈이다. 둘 중 하나를 이루면, 나머지 하나는 놓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두 종류의 꿈을 동시에 이루는 기업을 만들어 보겠다며 인생을 걸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하이브리드 사고를 하는 사회적 기업가들이다.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구글이 마더 테레사처럼 고결한 가치를 지니고, 마더 테레사가 구글처럼 빠르고 효율적이라면.
폴 뉴먼은 왜 샐러드 드레싱 회사를 차렸나2008년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폴 뉴먼을 아시는지? 그런데 그가 영화배우였을 뿐 아니라 매우 성공한 기업인이기도 하다는 사실도 아시는지?
폴 뉴먼은 친환경 샐러드 드레싱을 만드는 회사를 크게 성공시킨 기업가였다. 그의 기업 “뉴먼즈 오운”은 특히 매년 결산 뒤 이익 전부를 자선사업에 전액 기부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유명하다.
예일대를 중퇴한 엘리트 영화배우인 폴 뉴먼은 초기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영광의 탈출' '허슬러'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등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1986년에는 '컬러 오브 머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유능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천연재료 샐러드 드레싱을 만드는 뉴먼즈 오운을 세워 성공시키면서 미국 식품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몰고 왔다.
영화배우에서 어떻게 기업가로 변신한 계기는 단순했다. 그저 좋아하는 샐러드를 여러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원래 동네에만 선물하던 것을 아예 슈퍼마켓에 내놓기로 한 게 시작이었다.
요리를 좋아하는 폴 뉴먼은 크리스마스 때 자신이 만든 드레싱을 이웃에게 선물하곤 했다. 80년 크리스마스 때도 뉴먼은 친구인 작가 허츠너와 함께 드레싱을 만들고 있었다.
"혼자 먹기 아까운데 이 드레싱을 상점에 내다 팔면 어떨까?" 폴 뉴먼과 친구 허츠너의 기업 '뉴먼스 오운'은 이렇게 시작됐다.
뉴먼즈 오운은 놀랍게도 첫걸음부터 성공적이었다. 100% 천연 재료로 만든 무방부제 식품은 빅 히트였다. 첫 해부터 '컨슈머리포트' 'USA투데이' '뉴욕 타임스' 등에서 최고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만2000달러로 시작한 회사는 첫 해 수익금만 92만달러였다.
중요한 경쟁력은 인공첨가물 없는 드레싱이었다. 방부제, 색소, 인공조미료 등으로 범벅이 된 드레싱에 신물이 난 사람들이 ‘100% 천연재료’를 고집하는 뉴먼의 드레싱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유기농 열풍이다. 대형할인점 만한 유기농 전문점이 도시마다 있다. 그런 친환경 유기농 코너에 대기업 제품을 제치고 가장 잘 보이게 놓여 있는 것이 보통 뉴먼즈 오운이다.
처음에는 유통업자나 생산업자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첨가물 없이는 드레싱이 팔리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폴 뉴먼은 그 부분에서는 끝까지 고집을 피웠다. 타협하지 않고 완전 천연재료를 밀어부쳤다. 결국 유통업자보다 고객이 먼저 알아줬다.
뉴먼즈 오운이 유명세를 타자, 경쟁자도 나타났다.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사람도 비슷한 사업모델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시나트라의 사업은 실패했다. 드레싱을 자기가 만들지도 않았을뿐더러, 유명세에 기대어 장사를 하겠다는 속셈만 있을 뿐 진정성이 없었다. 폴 뉴먼처럼 “천연재료”라거나 하는 차별화 포인트가 명확하지 않았다.
게다가 뉴먼즈 오운은 번 돈 전체를 사회에 기부하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그들은 해마다 12월이면 수익금 전액을 사회에 기부하고 새해 첫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빈손으로 다시 시작한다.
기업으로 보자면 매년 문을 닫고 매년 새로 시작하는 셈이다.
뉴먼스 오운이 기부한 총액은 2억6500만달러에 이른다. 또 뉴먼은 전세계 28개국에 난치병 어린이를 위한 캠프를 만들었다. 캠프 이름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따온 '갱단 캠프'다.
폴 뉴먼 역시 하이브리드 사고를 가진 사회적 기업가였다. 영리 기업을 경영했지만, 그 목적은 자기 주머니에 더 많은 돈을 챙기겠다는 게 아니었다. 명확한 사회적 목적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 폴 뉴먼의 ‘프로젝트’는 환영받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누가 ‘돈 벌지 않는 회사’를 곱게 보겠는가. 친구들 사이에서 ‘얼간이’, ‘고집쟁이’로 통하던 폴 뉴먼이었기에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순수함에 세상은 홀린 듯이 동참했다. 기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폴 뉴먼의 하이브리드 사고가 성공의 초석이 된 것이다.
하이브리드가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과거 영리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은 영리만 생각했다. 사회적 목적은 사치스런 얘기라며 코웃음치기 일쑤였다. 반대로 비영리활동을 펼치는 사람은 영리를 경원시했다. 돈벌이는 천한 것이라며 손가락질했다.
영리와 비영리를 잇는 다리, 불가능할 것 같았던 연결지점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사회적 기업가다. 하이브리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마더 테레사처럼 고결한 뜻을 지키면서도, 구글처럼 모험적이고 영리하게 움직이겠다는 사람들이다. 공동체를 존중하고 명예를 추구하지만, 경제적 이익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다.
창고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도 미래를 한 손에 움켜쥔 듯 자신감 넘쳤던 빌 게이츠의 1975년, 그리고 인터넷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지도 모른 채 검색 기술에 홀려 구글을 창업하던 래리 페이지의 1998년도 사회적 기업가들의 올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사회적기업가가 되고 싶다면, 길은 많이 열려 있다.
사회적기업가 학교에서는
경영전문 MBA과정,
청년 전문과정,
기초과정 등을 마련해 두고 사회적 기업가를 양성한다. 사회혁신기업 인큐베이터인
sopoong에서는 사회혁신기업 메타블로그를 만들어 두고 인터넷에 있는 다양한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정부 인증
사회적기업 홈페이지에서는 사회적기업과 관련된 법제도 및 지원정책을 소개한다.
“이익을 창출하는 이상을 지원합니다.”(Supporting profitable ideals)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열렸던 사회적 기업 대회 자원봉사자의 새하얀 유니폼에 새파란 글씨로 적혀 있던, 그야말로 하이브리드 자체였던 그 문구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고치를 깨뜨리고, 영역을 침범하라. 하이브리드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온다. 세상은 여러 가지 꿈을 동시에 꾸는, 사회적기업가를 기다린다.
by 이원재(
트위터 wonjae_lee, 한겨레경제연구소 홈페이지 www.heri.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