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건국大는 새 대학병원을 건립, 지난 9월1일에 개원했다. 캠퍼스 남측,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교차되는 지점에 자리 잡은 건국대병원은 연면적 2만5000여 평에 870병상 규모다. 병원 측은 『신촌 세브란스병원이나 강남 삼성서울병원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시설이나 서비스 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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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圭完 의료원장 |
지상 13층, 지하 4층의 병원은 초현대식이다. 지하철 7호선 3번 출구로 나가면 병원 지하 현관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현관을 들어서면 넓은 홀이 나타난다. 이 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피아노와 드럼이다. 환자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수시로 열기 위해 설치해 놓았다.
김종학·정창섭·프랭크 스텔라나 등 국내외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병원 곳곳을 밝고 화사하게 만들고 있다.
실내 인테리어는 그림에 조예가 깊은 金敬姬(김경희·57) 재단이사장의 아이디어와 기획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金이사장은 한양工大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오티스 파슨스와 LA 시립大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金이사장은 아홉 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200여 회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한 중견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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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大 새천년기념관에서 내려다본 一鑑湖 전경. 오른쪽 멀리 스타시티 개발 전 야구장 부지가 보인다. |
건국대병원에는 환자 차트가 없다. 진단 필름도 없다. 환자 기록은 물론 혈액과 방사선 진단 시스템이 전산화되어 있는 까닭이다. 이 병원에서는 환자 고유번호를 대고 인증만 되면 누구든 전자 차트를 열람할 수 있다.
의료진은 70% 이상이 서울大 의대 출신의 교수들로 채워졌다. 崔圭完(최규완·68) 의료원장 역시 서울大 의대 출신이다. 그는 盧泰愚(노태우) 대통령 주치의로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오랫동안 서울大 의대 소화기내과 교수로 재직했고, 삼성서울병원 소화기센터 초대 소장 및 삼성의료원 제2대 의료원 원장을 지냈다.
건국大 의료원 초대 원장을 맡게 된 그는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삼성의료원, 현대 아산중앙병원 등 큰 병원에서 제대로 훈련받은 의사를 뽑기 위해 2002년 20명의 젊은 의사들을 선발해, 각자 본인들이 희망하는 해외 대학에 연수를 보냈다』고 했다. 연수 후 건국대병원에 근무한다는 조건하에 해외 체류비는 모두 건국大 재단에서 지원했다고 한다.
개원 한 달 만에 찾아가 본 건국대병원은 환자들로 북적였다. 崔원장은 『1차로 450개 침상만 개방했는데 만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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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국제초소형 비행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항공우주공학과 학부생과 대학원생. |
『건국대병원이 국내 4大 의료원으로 불리는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현대 아산중앙병원, 삼성의료원 등을 짧은 시간 안에 따라잡기는 어렵습니다. 이들 병원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특성화 전략이 불가피하죠. 그래서 노령화 시대에 대비한 실버 전문 의료 시스템을 강화했습니다. 소화기센터, 순환기센터, 호흡기센터, 뇌신경센터, 심혈관센터 등을 중점적으로 키워 5년 안에 빅5 대열에 들겠다는 게 저희 목표예요』
이 병원은 입원 일수를 7일 이내로 제한하는 전문 병동을 만들어 급한 환자가 병실이 모자라 발을 동동거리는 일이 없도록 했다.
병원이 이처럼 빠른 시간 안에 자리를 잡아 가는 데는 任東一(임동일·63·당시 병원건립본부장) 상임고문의 힘이 컸다고 한다. 任고문은 서울大 토목공학과 출신으로 삼성의료원 건립추진본부장 겸 부사장을 지낸 병원 건립 전문가다. 1999년 퇴임 후 쉬고 있던 그는 金敬姬 이사장의 부탁으로 병원 건물 설계부터 직원 채용까지 전체 기틀을 잡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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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敬姬 재단이사장 |
任고문이 병원 설계도를 수정하고 기초공사부터 다시 시작할 그즈음 광진구는 도시개발계획을 발표했다. 건국大 소유 3만 평의 부지가 핵심지역에 포함됐다. 서울 강북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불려 온 그곳은 건국大 야구부가 연습장으로 쓰던 곳이었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가다 보면 高架(고가) 철도 아래로 보이던 넓은 잔디구장이 바로 그곳이다.
건국大 내부에서는 전부터 『이 부지를 팔면 병원 건립에 필요한 財源 확보는 물론 장기적인 학교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교육용 토지를 수익용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관문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金이사장이 그 일을 맡았다. 서울市와 구청 직원들을 무수히 만났고, 투서로 검찰청과 국회 청문회에 불려 다니기도 했다. 1년여 동안 고생한 끝에 2003년 초 마침내 인허가를 받아 냈다.
金이사장은 야구장 부지 3만 평 가운데 1만8000평을 주상복합빌딩 부지로 포스코 건설에 3182억원을 받고 팔았다. 이 중 1600억원은 병원 건립에 투입했고, 나머지 1500억원은 잔여 부지 1만2000평을 상업 지구로 개발하는 데 투자했다. 일명 「스타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지상 58층, 50층, 45층, 35층의 주상복합 4개 棟(동)에 대한 분양은 2003년 6월 100% 완료되었고, 현재 50%의 공정률을 보이며 순조롭게 건설되고 있다. 준공 예정일은 2006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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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시티 완공 조감도. 주상복합 4개 동과 백화점, 극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
건국大 재단이 직접 투자 개발하기로 한 상업지구에는 백화점·영화관·할인점 등 2만7000여 평의 임대 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또한 이들 상업지구 임대료가 매년 300억원 이상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 본관에 있는 재단 사무실에서 金이사장을 만났다.
─스타시티를 개발하게 된 동기는 뭡니까.
『제가 이사로 있을 때 의과대학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는 더 이상 공부할 수 없다며 1년 동안 시위를 했습니다. 의과대학 신설 당시 약속했던 병원을 지어 달라는 것이었지요. 학생들로서는 시위할 만했어요.
충추에 있는 의대 병원에 가봤더니 시설이 말이 아니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 의대를 가려면 대학 순위와 상관없이 고등학교 성적이 거의 1등급인 학생들 아닙니까. 그렇게 뛰어난 아이들을 데려다 전부 꼴찌로 만들고 있으니 너무 했죠. 마음이 아팠습니다. 뭐라도 팔아서 당장 병원을 지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스타시티 개발은 병원 건립이 시급해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추진력이 대단하십니다.
『솔직히 저는 인허가 내는 문제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울지 몰랐어요. 중간에 여러 번 포기해 버릴까도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면 건국大의 미래는 없다 싶어 죽기 살기로 뛰었습니다.
이사장이 직접 가면 마음이 더 쉽게 움직일 것 같아서요. 그랬더니 불쌍해 보였던지 여기저기서 격려해 주신 분들이 많았고, 광진구에서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년 동안 그림 전시를 하면서 좋은 분들을 알게 된 것이 큰 힘이 됐어요』

─부동산학과가 있어서 그런지 건국大는 부동산 투자를 잘한 것 같습니다.
『행정대학원에 부동산학 전공이 생긴 것이 1972년이니까 덕을 좀 봤다고 해야 하나요? 농담이고, 그보다는 건국大의 출발이 의대나 공대가 아니고 농대와 축산대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실습농장이며 목장이 필요해 일찌감치 서울 근교에 땅을 많이 사 놓은 것이 자산이 된 경우니까요. 경기도 파주에 60만 평, 충북 충주에 30만 평 등 우리 대학 소유 부동산 총 평수는 180만 평 가량 됩니다. 이 중 아직 묶여 있는 것도 있지만 130만 평 정도는 언제든 개발이 가능한 땅이죠』
─스타시티 개발로 없어진 건국大 야구장은 어떻게 합니까.
『경기도 이천에 250억원을 투입해 스포츠과학타운을 건립했습니다. 6만2000여 평 부지에 건설된 이곳에는 메인스타디움과 천연잔디 축구장, 야구장, 테니스 코트, 체육관과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 등이 들어섰어요. 지난 9월에 오픈했는데, 저희 학교 출신의 스포츠 스타들이 많이 참석했어요. 축구의 황선홍·유상철, 야구의 이종범, 테니스의 이형택 등이죠』
정문 오른쪽 산학협동관 앞에서 한 무리의 여학생들을 만났다. 생물화학공학부 1학년에 재학 중인 함혜정(21), 지민정(21), 김보애(20), 봉혜인(20) 양이었다. 이들은 스타시티 개발에 대해 『건국大에 지원한 계기 중 하나가 스타시티 개발』이라고 했다. 재단에 돈이 많아지면 학교가 발전하리라는 기대가 컸다는 것이다. 이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학교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에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외관 가꾸기에만 치중하지 말고 실험도구나 기자재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으면 한다』는 불만 어린 바람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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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永勳 차세대혁신기술연구원장 겸 공대 교수 |
신축한 건국대병원 뒤 공터와 민중병원 자리 옆 언덕은 요즘 레미콘과 크레인 등이 동원돼 공사가 한창이다. 학교 측은 『의생명과학연구원과 예술문화대학 건물을 신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7년 3월에 입주할 목표로 건설되고 있는 이 건물의 연건평은 각각 5700여 평과 6300여 평이다. 총 600억원의 공사비용이 투입될 것이라고 한다.
이 밖에 수의과대학과 법과대학, 동물생명과학대학(舊축산대) 등이 증축 또는 신축 중이다. 一鑑湖 오른편 언덕에 기숙사도 신축하고 있다.
金鍾淳(김종순·51) 기획처장은 『400억원을 투입, 기숙사가 완공되면 2100명의 학생이 들어갈 수 있으며, 고급 오피스텔 수준의 시설을 자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金처장에 따르면, 이 기숙사에는 어학실습실과 교양강좌관 등의 시설이 마련되고, 헬스센터를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게 된다고 한다.
건국大는 지난 5월3일 개교 59주년 행사에서 『올해를 건국 르네상스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포했다. 2008년에는 국내 7大 명문, 2011년에는 5大 명문, 2015년에는 4大 명문, 2025년에는 3大 명문 私學으로 발돋움한다는 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들어 건국大는 총장보다 연봉이 많은 교수를 셋이나 초빙했다. 劉永勳(유영훈·63) 차세대혁신기술연구원장 겸 공대 교수, 洪日杓(홍일표·61) 법대 교수, 蔡治範(채치범·65) 의생명과학연구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연봉은 1억50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아파트와 승용차, 별도의 연구비 등을 지원받고 있다. 대학교수로서는 파격적인 대우다. 이 세 교수의 이력은 화려하다.
洪日杓 교수는 서울大 법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나와 청주지법원장, 서울행정법원장, 특허법원장, 사법연수원 원장 등을 거쳤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변호사로 일해 왔다.
건국大 측은 『판사로서 30여 년 동안 쌓은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실무 중심의 강의를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로스쿨 유치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洪교수는 올해 2학기부터 민사소송법과 절차법개론을 강의하고 있다.
서울大 토목공학과 출신의 劉永勳 교수는 미국 유타大(응용역학)와 스탠포드大(항공학)를 나와 1975년부터 무려 30여 년 동안 NASA(美 항공우주국)의 헬리콥터공학센터 원장으로 일했다. NASA의 헬기 개발 프로그램을 총괄해온 그는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통한다. NASA를 떠나 건국大로 자리를 옮긴 것에 대해 劉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오래 전부터 인생의 마지막은 조국에 돌아가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헬리콥터는 최첨단 기술의 집합체입니다. 미래 산업을 주도하려면 헬기 제조 기술과 연구에 국가가 나서서 투자해야 해요. 헬기 분야는 현재 미국이 독주하고 있는데, 유럽의 경우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격차를 많이 줄였어요. 반면 일본은 교류에 게을러 비교 대상에서 제외될 만큼 낙후됐죠.
제가 귀국해서 보니 한국의 제조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해 있더군요. 이 정도의 기술이라면 유럽이나 미국과의 격차는 금방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건국大가 마음에 들었어요. 내 인생의 남은 뜻을 펼 수 있는 좋은 기회의 場(장)이 되겠다 싶었던 거죠』

劉교수는 지난 1학기부터 대학원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학부 수업까지 전부 영어로 진행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다들 힘들어하더니 지금은 잘 따라 줍니다. 레고로 모형 헬기를 만드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창의력이 뛰어나요.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적당히 살지 말고 세계 속에서 경쟁하라」고 충고합니다. 그 덕분인지 취업 공부를 하던 학생 몇 명이 대학원 진학 쪽으로 진로를 수정했어요』
劉永勳 교수를 도와 차세대혁신기술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이는 尹光埈(윤광준·46)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그는 서울大 항공공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퍼듀大에서 항공우주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초소형 비행체 연구 전문가이다. 현재 건국大 인공근육센터 중점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尹교수는 『항공우주공학은 초기 투자비용은 높지만 기술 파급 효과가 커서 국가 장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제 궤도에 올려놓아야 하는 분야』이며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건 중에는 NASA가 항공우주 개발 중 얻은 산물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초소형 비행체 연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좀더 작고 가볍게 한다는 것은 모든 분야에서 최고 기술을 모아야 가능합니다. 비행체에 사용될 특수 신소재와 무게를 최소화한 카메라 송수신 장치를 연구 개발해야 하죠. 엔진이나 배터리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접착제를 몇 방울 떨어뜨려야 할 것인지 정확하게 계산해야 할 정도로 정밀하고 과학적인 고난도 작업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저희 학교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20cm 크기의 엔진형 초소형 비행체 개발에 성공했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서울大·인하大·세종大 등이 이에 도전하고 있지요』
尹교수는 그의 지도로 개발한 세계 최소형 비행체를 보여 줬다. 이 비행체는 직경이 12.8cm에 무게가 달걀 한 개 정도의 50g이며, 1g짜리 촬영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는 영상촬영用 비행체였다.
尹교수 학생 팀은 이 비행체로 제9회 국제초소형 비행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인공 새와 다름없는 비행체가 얼마나 잘 날고 제 기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이 대회에서 그동안은 미국 대학들이 우승을 휩쓸었다. 건국大 팀은 2001년 플로리다 대회 때 처음 출전해 꼴찌를 했고, 2002년 4위, 2003년 2위, 2004년 3위에 이어 올해 드디어 1위를 했다.


의생명과학연구원 원장으로 초빙된 蔡治範 교수는 서울大 화학과 졸업 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大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생명공학자다. 포항工大(現 포스텍) 생명공학과 교수를 거쳐 副총장을 지냈다.
포항工大에서 그는 BK21 분자생명과학부 단장을 지냈고, 포항工大 내에 생명과학연구센터를 설립했다. 蔡교수는 건국大로 자리를 옮긴 데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년 2월이면 정년이라 은퇴 후 뭘 할까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그저 막연하게 생명공학이나 의학 쪽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죠. 때마침 이 학교에서 좋은 제안을 했고, 의학·식물학·동물학·공학 등 생명공학에 필요한 인프라를 이 대학만큼 완벽하게 갖춘 학교가 없다 싶어서 흔쾌히 수락했지요』
건국大는 蔡교수에게 의생명과학연구원에 필요한 교수 3명에 대한 임명권을 주었다. 蔡교수는 미국 콜로라도大 건강과학센터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던 김수현 박사와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의대 산부인과 및 세포생리학과 조교수로 있던 임현정 박사, 포스텍과 스탠포드大 출신의 오순진 박사 등을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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蔡治範 의생명과학연구원장 |
李勳澤(이훈택·49), 林隆虎(임융호·48) 교수가 의생명과학연구원에 합류했다. 건국大 축산과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大에서 축산학 박사학위를 받은 李교수는 가축 번식학 분야 국내 1인자다. 오랫동안 무균돼지 종자 개발과 번식을 연구해 이 분야에서는 서울大 黃禹錫(황우석) 박사에 버금가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장기이식用 무균돼지 연구의 세계 최고 권위자인 金允範(김윤범·76) 前 시카고大 교수와 친분이 두텁다. 金允範 교수는 서울大 黃禹錫 교수팀에 무균돼지를 무상으로 제공하여 2003년 말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장기이식用 복제돼지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李勳澤 교수는 『의생명과학연구원에 100마리 정도의 무균돼지를 사육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품종의 무균돼지를 개발해 임상시험이 필요한 세계 각국의 연구팀에 수출하겠다는 게 李교수의 목표다. 그는 『과거의 축산 산업은 우수한 품종을 개발해 사육하고 가공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동물의 생태와 생리를 산업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연구해서 의학과 접목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연구이다』라고 했다.
林隆虎 교수는 서울大 농화학과 졸업 후 미국 조지아大에서 이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국내 플라보노이드 연구의 1인자로 현재까지 약 6000종의 플라보노이드를 발견했다. 플라보노이드는 지구상의 모든 식물에 분포하는 색소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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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勳澤 교수 |
이 색소에는 항암·항바이러스·항알레르기 및 항염증 활성물질이 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컴퓨터공학·생물학·화학 전공의 학부생과 대학원생 등 150명의 연구진과 함께 밤낮으로 플라보노이드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林교수는 『몇몇 교수들이 암 정복 연구를 하지 왜 플라보노이드 하나에만 그렇게 매달리느냐며 비웃는데, 우리는 플라보노이드 연구 하나로 세계 1위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蔡治範 교수가 진두지휘하는 의생명과학연구원에는 이들 외에 여러 명의 전공별 교수들이 바이오장기 센터와 분자의학센터에 골고루 포진해 있다.
蔡교수는 『건국大는 병원을 중심으로 바이오산업 연구에 필요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며 의생명과학연구원의 미래를 이렇게 그렸다.
『우리 대학 연구교수들의 열정은 대단합니다. 젊은 교수 중에는 연구실에 간이침대를 갖다 놓고 숙식을 해결하며 연구에 몰두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그런 모습에 감동하곤 합니다. 요즘 건국大에서는 해외 출신의 중진급 교수들이 분위기를 주도했던 포항工大 설립 초기의 열정과 의욕이 느껴져요. 이런 분위기를 살려 의생명과학연구원이 국내 바이오산업의 후진성을 떨칠 수 있는 좋은 성공 모델이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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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吉生 총장 |
건국大는 2003년 102명, 2004년 110명 등 최근 3년 사이 200여 명의 새 교수를 임용했다. 학교 측은 『2006년이 되면 교수 확보율이 국내 대학 최고 수준인 80%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鄭吉生(정길생·64) 총장이 人材영입 작업을 맡고 있다. 鄭총장은 축산대 1기 출신으로 일본 교토(京都)大에서 가축번식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大 교수, 대한불임학회 회장, 한국가축번식학회 회장, 한국축산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3년 축산대 학장, 1996년 부총장에 오른 데 이어 2002년 총장에 선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의생명과학연구동, 예술문화대학관, 법학관 등의 신축·증축 착공식이 한꺼번에 있던 날 鄭 총장을 만났다.
─캠퍼스가 요란합니다.
『제가 총장에 오른 후 13개의 건물을 짓는 것이죠. 총 면적이 건국大 역사 56년에 걸쳐 지은 건물의 50%가 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건축과도 안 나온 총장이 대학을 공사판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해요. 이 공사만 끝나면 우리 학생들이 공간이나 시설 문제에 구애 없이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을 겁니다』
─건국大는 전통적으로 축산대 이미지가 강한데, 이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탈피」라는 표현보다는 「변화」라고 해야 좀더 정확하겠네요. 59년 전 상허 선생께서 축산입국이 조국의 근대화에 이바지하는 길이라 여겨 건국大를 설립하셨습니다. 당시 국민의 95%가 농민이었고, 국가 생산의 90%가 농업 쪽에 의존하고 있어서 덴마크나 네덜란드처럼 유축 중심의 농촌 선진국을 꿈꾼 것이지요. 그래서 설립 초기 축산학과 학생 전원에게 장학금뿐만 아니라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옷까지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제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IT(지식산업)나 BT(생명과학) 산업이 주목받는 시대, 축산산업에 머무르면 퇴보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한 군데 모여 있는 의과대·수의과대·농과대·축산대를 하나로 묶어 생명과학의 메카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총장님보다 연봉이 많은 교수들이 있더군요.
『교수가 대학의 주역이고, 총장이나 행정하는 사람들은 그분들이 연구와 교육을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조역이지요. 그분들 연봉이 나보다 5000만~6000만원 더 많습니다. 총장은 관사도 없는데 그분들에게는 아파트도 얻어 드리고, 교통편의도 제공하고 했습니다. 세 분 모두 그만한 대접을 받고도 남을 만큼 훌륭한 분들이지요』
─기존 교수들이 반발하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자부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연구만 잘하면 나도 저렇게 대우받을 수 있구나, 하는 실증이니까요. 덕분에 그분들이 학교에 더 빨리 정착했습니다. 대학은 그분들 연봉의 수백 배를 거둬들이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분들이 앞으로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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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炳晙 수의과대학장 |
─「선택과 집중」이라는 대학 성장 전략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는 학과도 있을 것 같은데요.
『기존에 있던 학과를 폐쇄시키거나 차별해서 지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대신 기본 운영 시스템은 바꿨습니다. 교수업적평가제를 대폭 강화했고, 직원들의 행정조직을 팀제로 전환했지요. 저희 학교는 매년 학과별 실적을 평가해서 서열을 매긴 후 신입생 증감원과 연계시키고 있습니다. 너희는 능력이 없으니까 정원을 내놓으라는 식이죠. 요즘 대학마다 비전 없는 학과 없애느라 분쟁이 많은데,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 그럴 염려가 없습니다』
鄭총장은 『건국大에는 기존 교수들 중에도 새로 영입한 교수들 못지않게 훌륭한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鄭총장이 거명한 이들은 曺周鉉(조주현·52) 부동산학대학원장, 張炳晙(장병준·46) 수의과대학장, 孟亨在(맹형재·49) 예술문화대학장, 金文會(김문회·50) 컴퓨터공학부 교수 등이다.
曺周鉉 교수는 서울大 건축과 출신으로 미국 매사추세츠工大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국내 대학 최초로 개설된 부동산학과를 이끌어 왔다. 건국大에 부동산학과가 생긴 것은 1972년 행정대학원 야간부에 부동산 전공이 개설되면서다. 학부에 개설된 것은 1983년이다. 건국大는 미래를 일찍 읽은 덕분에 이 분야에 관한 한 국내 1위 대학이 됐다.
현재 전국에 부동산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곳은 무려 82개 대학(4년제 26개, 전문대 41개, 사이버대 15개)이다.
曺교수는 『주·야간 합해 석·박사 과정에 있는 대학원생이 1000명에 이른다』며 『갈수록 경쟁률은 치열해지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이들이 늘고 있어서 정작 공인중개사들은 입학하기 어렵다』고 했다.
현재 부동산대학원 석·박사 과정에는 변호사·회계사·법무사·금융전문가 등이 즐비하다. 변호사의 경우 30명이 재학 중이며, 최근에는 의사들이 많이 지원한다고 한다. 曺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분야에 진출하려면 건국大 人脈(인맥)은 필수』라고 말했다.
張炳晙 교수는 건국大 졸업 후 同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껏 모교를 떠나본 적이 없다. 그는 『지금까지 수의학과는 건국大 지원생 중 성적이 가장 우수한 집단이었다』며 『수능성적이 전국 1.5% 안에 들어야 합격할 수 있었다』고 했다.
새로 단장한 의과대학과의 비교에 그는 『우리는 의대를 경쟁관계가 아닌 동맹관계로 본다』고 했다. 서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없는지 틈날 때마다 살필 정도로 왕래가 잦다는 것이다.
교수들의 이런 열린 思考(사고)가 디지털 컨버전스(융복합) 시대를 선도할 건국大의 잠재력이 아닐까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