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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아미타불 원문보기 글쓴이: 悳羽悟性
<<< 대승불법의 개창은 세계적 우주적 사건이다.>>>
-悳羽 悟性-
1. 대승불법(大乘佛法) 개창(開倉)의 시대적 의의
우리사회에 범람해 있는 서양 종교사적 주류인 기독교,이슬람교등 유일신(唯一神)관에 기반을 둔 종교들은 과학문명의 발달로 우주창조와 진화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이 발견됨에 따라 신에 의한 창조론에 모순이 드러나면서 사상적 존립기반이 위협을 받고 있는 반면
무(無),공(空),무위(無爲),자연(自然),무극(無極),태극(太極)으로 이어지는 동양사상속에 깃든 유불선(孺佛仙)의 우주관(宇宙觀)은 과학적 발견과 더불어 오히려 그 진리적 실체가 천체 물리학의 발달과 더불어 구체적으로 입증되어 가고 있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사례를 보더라도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미국의 물리학자 겸 베스트셀러 작가인 레너드 믈로디노프와의 공저로 출간한 ‘위대한 설계(Grand Design)’에서 지금까지 과학적 연구 결과, 우주는 창조주의 뜻이 아니라 무(無)의 상태에서 중력의 법칙과 양자역학이론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밝혀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이같은 주장은 호킹 박사가 1988년 펴낸 세계적 베스트셀러 ‘시간의 역사’에서 “만약 우리가 완전한 이론(Theory)을 발견하게 된다면, 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인간 이성의 궁극적 승리가 될 것”이라며 어느 정도 신의 역할을 인정했던 입장에서 벗어나 신의 창조론을 부인하게 된 것이다.
이와같이 과학적 발견은 기존 유일신에 의한 창조론을 주장하던 서양종교적 이념으로는 극복할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게 된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기존 동양사상의 주류인 유교, 불교, 도교등 기존 동양적 종교사상은 물질만능에 따른 정신문명의 쇠퇴로 과거부터 전승되던 수행법등 종교적 전통이 단절 되었거나,일부는 그 명맥이 변절되거나 사라져 각 종교마다 지닌 고유의 종교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진리 탐구와 수행의 전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고 볼수 있다.
불교(佛敎)의 예를 보더라도 그동안 전파과정이나 교리적 해석의 차별로 인하여 수많은 종파를 낳게 되었는데 원시불교,부파불교시대를 거쳐 남방불교, 중국선불교,등으로 수많은 교파로 분화 되면서 오늘날 각 종파(宗派)불교에서는 부처님 당시의 원시불교에서 행해졌던 수행법이나 교법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며, 일부 종파에서는 현세적 종파적 권위를 앞세워 출가사문이 세간(世俗)의 이해타산에 빠지는등 불교의 세속화로 출세간의 불법이 세간법으로 변절되어 수행(修行)과 해탈(解脫)이라는 불교 본질을 벗어난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또한 이러한 소승적 종파에서 오히려 대승을 표방하며 전혀 대승불교와는 거리가 먼 종교적 권위를 내세워 승속을 구분하고, 출가사문은 부처의 대리인처럼 존경을 받으며, 속인인 재가자는 그져 “선남자 선여인”으로 출가승에 대한 보시를 통해 그들로부터 법문을 듣는다든가, 현세의 기복적(祈福) 복락을 구(求)하는등 대중불교로서 일반 대중이 불법을 통해 수행과 해탈을 추구할수 있는 종교적 성취의 길이 열려있지 않으며 오직 소수 출가자를 위한 소승적 불교를 표방하고 있어 오늘날과 같이 인권이 성장된 평등화된 민주사회에서 영성이 밝고 의식이 깨어있는 재가자인 일반 시민대중들이 과거 대승불법의 올바른 전승을 찾아가며 그 수행법을 통해 불교의 이상인 해탈의 깨달음을 열어갈수 있는 진정한 대승불교의 출현을 기대하게 된 것은 시대적 요구에 부합된 것이라 사료된다.
과거 이와같은 오탁악세(주1)(五濁惡世)때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올바른 수행과 신앙의 길을 제시해 주었던 우주적 정법인 대승불법을 다시 이땅에 구현해야할 절대적 당위성에 이르게 된것이다.
대승불법은 새로운 불교운동이 아니라 과거부터 이미 존재하여 왔으나 세상 인연에 따라 은몰(隱沒) 되었다가 인도 본토에서 고타마 부처님의 불법이 쇠퇴할 즈음인 기원전후 1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인도본토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광범위하게 약 700년 동안 찬란히 그 빛을 발하였으며,그 이후 다시 은몰되어 아직까지 세계 그 어디에서도 대승보살들의 올바른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출현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발언일까?
*주1:오탁악세는 다섯 가지 더러움(不淨) 즉 겁탁(劫濁), 견탁(見濁), 번뇌탁(煩惱濁), 중생탁(衆生濁), 명탁(命濁)으로 가득 차 있는 악한 세상이라는 뜻이다.
2. 대승불교 발현의 역사
그렇다면 과거 한차례 이 지구상에서 꽃피웠던 대승불법이 출현하게 된 시대적 상황은 어떠했는가?
과거 부처님 입멸후 500년경 고타마부처님 당시의 불법이 쇠퇴할 즈음 이 지구상에 다시 출현한 진정한 해탈의 불법인 대승불교가 출현하게 된 연유를 알아보자.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불법은 부처님 입멸후 부처님 가르침의 결집(結集)을 통해 경전이 편찬되었는데 이 시대 불교를 원시불교시대라 한다.그러나 그이후 여러차례 경전에 대한 결집이 행해지는 과정속에서 여러갈래로 전승되 계보들마다 상이한 경전들을 전해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참으로 부처님 진의 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고 마침내 여러 부파로 나뉘는 부파불교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으며 (기원전 250년경부터 기원전 100년경) 약 20개의 부파로 분열되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불교사에 일대사 큰 변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기원전후에 시작된 대승불교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승불교운동을 통해 수백년간에 걸쳐 시방세계 여러부처님들의 새로운 정법이 계시로 출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대승불법인 것이다.
따라서 당시 대승불교에서는 그때까지의 불교는 부처님의 참뜻이 아니며 부처님께서 깨달은 진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진정한 부처님의 진리를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 석가모니 부처님 교리를 재검토하고 정리한 경전들을 다시 편찬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출현한 경전들이 바로 오늘날 전하는 <<법화경>>,<<화엄경>>,<<유마경>>,<<반야부 경전>>,<<무량수경>>등 주요 대승경전들 이다.
그렇다면 왜 부처님 당시 원시불교에서는 이러한 대승불법의 경전들이 설해지지 않았는가? 그것은 그당시 부처님 제자로 태어난 소승의 성자들은 대승법을 받들 수 없었기 때문이며, 대승불법을 받들 수 있는 상근기의 수행자가 없었기 때문이라 전해진다.
고타마 부처님께서 전해주신 정법이 500년 정법기간을 끝으로 쇠퇴할 즈음, 시방세계의 부처님들의 자비광명으로 이땅에 다시 대승불법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대승보살 수행자들이 명상중 시방세계(十方世界)의 부처님으로 부터 직접 전해진 불설이라고 한다.
이렇게 전해진 대승경전들은 제불의 '불설 Buddha-vacana'로 간주되어야 마땅하다. 대승경전에는 본래 언어를 초월한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를 잘 표현 되었다고 볼수 있는데 ,우주적인 웅장한 무대에 출현하는 시방세계 일체 제불 보살의 설법 장면들을 보더라도 진정한 불세계의 표현이라 믿을수 있으며, 오늘날 천체 물리학적 발견과 더불어 그 진리의 세계가 더욱 확실히 입증되고 있다고 할수 있다. 고타마 부처님 입멸 후에 저 우주에서 무량광아미타바 부처님의 <<아미타경>>이라든가, 대일여래 바이로짜나부처님의 <<대일경>>이라든가,또는 부동심 아촉부처님의 <<유마경>> 같은 대승경전들이 재가 세간에 계시로 내려와서 이루어진 불교가 바로 대승불교인 것이다.이는 참으로 진실이다.
이렇게 출현한 대승불교는 인도 본토에서 1세기에서 부터 7세기에 걸쳐 발현하여 찬란히 꽃피우다 사라진 이후 일부 소승종파에서 출가 수행승에 의해 대승경전을 소의 경전으로 삼으며 대승불교을 표방하고 있지만 , 이것은 있을수도 없는 일이라 할수 있다. 임밀히 말하면 대승불법은 소승 출가 수행승들에게는 이해될 수도 행해질 수도 없는 것이며, 대승경전들은 그들에 의해 설해져서도 설해질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날에 대승불교을 표방하는 기존 출가수행승의 종파가 있다면 진정한 대승불법으로 볼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진정한 대승불법은 기원전후 1세기부터 7세기에 이르는 700년 동안 인도본토에서 출현하여 실크로드를 타고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찬란한 산스크리트 대승 불교 문화를 꽃피우다 7세기 이후에는 은몰하였다고 볼수 있다.그러나 확실한 은몰의 이유에 대해서는 밝혀진바 없으나 이슬람의 침입에 의한 것일수도 , 실크로드의 자연적 및 역사적 환경변화에 따른 몰락일수도 있을것이나, 어찌됐건 대승 정법의 단절이라 볼수 있다. 그 이후로는 단 한차례도 이 지구상에 진정한 대승 불법이 출현하지 않았으며, 어찌보면 세계적으로 단 한번도 진정한 대승보살들의 대승불교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3.대승불교에 대하여.
그렇다면 대승불교란 무엇인가? 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대승(大乘), Mahayana'이란 말은 '큰 수레'라는 말로서 대승불교의 가르침은 모든 중생을 피안의 세계로 날라다 주는 큰 수레와 같다는 뜻이다.
대승불교의 이상은 바로 일체 중생을 제도할 것을 목표로 삼는 대승보살의 도를 실천하는것이며 개인아의 열반을 구하지 않고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속에서 영원(永遠)을 바라보고 가는 보살행을 통해 부처를 이루는 일불승(一佛乘)의 길이다.
보살(菩薩)은 bodhisattva의 약어이며 bodhi, 즉 깨달음을 추구하는 유정 sattva, 혹은 '깨달음을 본질로 하는 자'라는 뜻이다. 보살은 대승불교에서 지향하는 새로운 이상적인 수행상으로서 그러나 보살은 원래 대승 경전들에 자주 나오는 '선남자'와 선여인'들과 같은 재가자들로 오해되었지만, 그러나 진정한 대승보살은 그런 선남자,선여인이 아니다.
대승보살(大乘菩薩)은 비구(比丘)일수도 재가자(在家者)일수도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직업적 종교인이 아니며, 흔히 행해지는 수계(授戒)를 받지도 주지도 않는다. 바로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받는 것이다.이는 참으로 중요한 진실이다.
대승보살이란 곧 대승불교 형성기에 인도에서 백의(白衣)를 입은 재가불자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고타마부처님의 원시경전에서는 주홍색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재가자들에게 절을 받고 법을 설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대승경전,이를테면 <<유마경>>에서는 백의 재가자인 장사꾼 유마거사가 부처님 십대제자 들에게 법을 설할 적에 십대제자들이 다시는 사문의 소승법을 남들에게 설하고 존경받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만들고,부루나 존자에게 법을 설하는 대목에 가서는 법을 설하고 거꾸로 비구들에게 절을 받는 장면이 묘사 되는 것이다.
소승불교에서는 해탈이란 어디까지나 개인아의 해탈을 추구하기 때문에 출가하고, 도를 닦고, 깨달아 해탈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한 생에 도를 닦아 꼭 그 생에 안에 아라한을 이루고 꼭 그 생애에 해탈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법대로만 도를 닦아야 할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임이 거의 확실한 것은 테라바다 불교의 파알리 경전에 전하는 불법이다.그 밖에 다른 길은 없다.그것도,석가모니 부처님 제세시에 태어나 부처님 제자가 되는 기회를 만나는 것이 아라한을 이루기에는 가장 대길하고 복된 일이다.[대승회3호중] 그러니 법에 의지할뿐 부처님이 사부로서 신앙의 대상이 될수 없다. 타력신앙(他力信仰)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그에게 해탈은 오로지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불보살의 공덕지력(功德之力)에 의지하여 열반을 구하기 보다는 스스로 생사(生死)속에서도 자재하기를 추구하며, 개인의 해탈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기 보다는 영원을 바라보며 시방세계 부처님의 대행자로서 보살행을 통한 공덕으로 성불의 업을 이루기 때문에 신앙불교(信仰佛敎)이며, 시방세계(十方世界)의 모든 불보살(佛菩薩)님을 그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
<<화엄경>>등 여러경전(華嚴經등)에서도 밝혔듯이 “모든 부처의 성불은 선근공덕의 업력에 의해 이뤄진다”고 했고,<<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도 “성불(成佛)의 업력(業力)을 이루기 위한 공덕(功德)을 닦아야할 세월을 뛰어넘을 방법은 없고,모든 보살(菩薩)은 다 세 번의 아승기 겁(劫)을 지나도록 도(道를) 닦아 공덕(功德)을 이루어야만 부처님이 될수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대승보살이란 부처의 대행자로 대승불법을 그대로 시방세계에 펼치므로 부처님과 동격(同格)이다는 것이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의 재세시에는 중생을 향한 대자대비심으로 중생제도를 하셨으나, 이전 제불은 무여열반(無如涅槃)에 드셔계시기 때문에,다만 무위(無爲)로 빛을 비춰줄 수밖에 없다. 중생제도를 위해서는 중생마다 필요에 따라 근기에 맞는 유위법(有爲法)을 행해야 하는데, 대승보살을 통해 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보살은 시방세계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며 시방세계의 곳곳에 상주(常主)하며 활동하고 계신다. 그런 대승보살들은 자기연민에 빠져 자기만을 위한 열반을 추구하지 않고, 생사의 세계를 기꺼이 넘나들며,늘 부처님의 공덕지력에 의지하여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세계관으로 살아가며, 고통을 당하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부처님을 대행해서 활동하고 계신 것이다.
4.여러 불교와 대승불교의 관계
불교라 해서 다 같은 불교가 아니다. 원시불교,부파불교,남방불교,티벳불교,중국조사불교,선불교,몽고불교,일본신도불교,원불교 등등.. 다양한 불교가 불교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중국조사불교나 선불교등을 원시불교나 부파불교,남방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 불교와 같다고 말할수 없는 것이다.예를 들어 몽고불교은 보살불교인데 그 몽고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이란 바로 불보살이 신내림으로 내려와 보살행을 한다고 하며 우리의 무당과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그러니 자세히 알고 보면 선불교(禪佛敎)인 중국 조사불교(祖師佛敎)나 몽고불교등은 또하나의 종교인 셈이다. 일본 불교의 경우도 신또(神道)와 불교가 혼합된 종교이다. 대개 종파에서 성인으로 내세우는 어떤 인물의 유품(遺品)등을 숭배하며, 불교와 신도(神道)를 구분하기 어려운 신불습합(神佛濕合)의 형태이다. 일본 불교학은 학문적 업적은 훌륭하나 학문적으로 연구된 불교 업적일뿐이며 일본불교는 국가적인 큰 범주로 볼 때 신또불교라 할수 있을 것이다. 티벳불교도 대승불교라 칭하고 있지만, 출가승에 의한 직업적 종교집단의 형태로 유지되는 것으로 볼 때, 엄밀한 의미의 대승불교라고 볼수 없을 것이다.대승불교를 표방하며 대승경전들을 소의경전(昭儀經典)으로 삼고 직업적 종교인인 출가 비구승들이 << 법화경(法華經)>>,<<화엄경(華嚴經)>> 반야부(般若部)경전인 <<금강반야바라밀경>>등을 설하고 있는게 현실이나, 대승경전은 소승(小乘)의 비구(比丘)집단에서 설(設)할수도 설해져서도 않되는 경전이다. 대승보살의 경전은 , <<법화경>>에서 설하듯이, 소승 출가 수행자가 설법해서도 안되고 ,할수도 없고, 손에 붙잡을 수도 없는 경전인 것이다. 헌데 대승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해서 ,재가 대승보살들이 만들어 낸 대승경전들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소수 현학자적인 학승들의 전유물이 되어왔기 때문에 , 중국에서 승려들이 만들어낸 천태종, 화엄종 등등의 대승을 표방하는 종파들이 생겨났다. 머리를 깍은 납자들이 대승 운운 했지만은, 역사적 사실로 말하면 올바른 대승불교의 모양새는 아니다. 대승을 말하자면, 대승경전은 대승보살이 탐구하고 설법하고 닦고 이루어 나가는 경전이라는걸 알아야 된다.그러니까 대승불교라는 것은 출가 수행승들의 교단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직업적 종교인들의 교단적 및 세속적 권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대중적 불교 사상 운동이기 때문이다. 중국기원의
종파불교속에 대승불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다 할지라도, 직업적 종교로서의 종파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넓은 의미로 대승불교의 범주 속에 포용될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절대 본질적 대승불교라 할 수는 없다.대승불법에는 승속의 차별이 없다.
5.대승불교의 수행관
대승불교(大乘佛敎)의 가장 큰 수행체계는 믿음이다. 바로 믿음을 통해 영원(永遠)을 바라보며 생사(生死)의 외로움과 고통속에서도 불보살의 공덕지력(功德之力)에 의지하여 자재(自在)하며 일체중생(一切衆生)을 구제(救濟)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대승보살이 추구하는 종교적 미션(Mission) 이며, 세상에 공덕을 행하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가르침을 펼치며 이타(利他) 가 자리(自利)가 되는 이타행(利他行)을 본(本으)로 살아가는 대승보살의 수행관(修行關)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승불교(大乘佛敎)의 근간(根幹)은 업(業)에 있기 때문이다. 대승경전<<화엄경(華嚴經)>>에서도 밝혔듯이 대승불교의 모든 보살은“제불의 선근공덕의 업력으로 성불한다“했다. 그러니 대승불교의 모든 수행자는 바로 보살님,부처님의 무량한 광명(光明)의 힘과 자비심(慈悲心)의 힘에 의지하여 중생(衆生)을 제도하면서 성불의 공덕(功德)을 이뤄가는 것이다.
일상중에는 신,구,의(身業,口業,意業)삼업을 청정히 하며 계율(戒律)을 지키고, 육바라밀(六波羅密多)을 실천 하면서, 불보살님에 대한 예불과 참선을 통해 세상 일체중생을 축복하고 참회하며,수행과 삼매를 추구해 나아가는 것이다.
바로 지구촌 온 인류 창생(蒼生)의 마음을 투쟁적 갈등으로부터 쉬고 ,귀의케 하기 위한 대승의 터전을 만들어 세간(世俗)의 삶속에서 덕(功德) 쌓고 출세간(出世間)의 해탈(解脫)의 도(道)를 추구하는 것이 이시대 이땅의 대승보살(大乘菩薩)이 수행공덕(修行功德)을 이루어 가는 길이다.
6. 맺는말
오늘날과 같은 말법시대가 끝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우주일대사(宇宙一大事)의 중요한 시기에 이땅에 진정한 대승불법의 정법(正法)이 다시 발현되게 됨으로써, 앞으로 21세기 이후 쇠퇴해가는 기존 종교의 한계성을 벗어나, 세계(世界) 일체중생(一切衆生)에게 해탈(解脫)의 등불을 밝혀줄 진정한 우주사적 종교사상으로 꽃피울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으며,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범람하고 꽃피우고 있는 이 땅 바로 이 한반도가 다시 대승불법의 정법을 열어갈 가장 좋은 선인연(善因緣)을 만나게 됨은 우주적(宇宙的) 경사(慶事)가 아닐수 없다.
한때 이 지구상에 대승불법이 출현하여 700여 년간 찬란히 꽃피우다 은몰(隱沒)되었다가, 1300여년이 흘러 지금에야 비로소 이땅에서 진정한 대승불교의 정법(正法)을 다시 구현(具顯)할 터전을 마련하고, 대승불법을 개창할 모든 대승사상의 체계적 정립과 대승보살의 수행체계를 확립하여 진정한 해탈의 진리와 방편으로 세계 일체중생을 위해 대승불법을 펼치게 될 대승회 화엄당(大乘會 華嚴堂)의 출범은 또한 우주적 일대사(一大事)라 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잠깐 대승회에 대한 소개를 드리고져 합니다.
대승회에서는 그동안 대승보살을 양성하고 대승불교 경전들을 다시 정립하고 있으며, 특히 세계최초로 <<대승기신론>>의 완벽한 의미를 되살린 <<한글역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편찬하여 진정한 수행의 지침으로 삼고 있으며. 이외에도 <<금강반야바라밀경>>,<<반야심경해설(般若心經解說>>),<<화엄경(華嚴經)>>,<<법화경(法華經)>>,<<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設經)>>,<<대승성업론(大乘成業論)>>등 불교경전 뿐만 아니라 전진도(全眞道) 남종(南宗) 백옥섬(白玉蟾))진인(眞人)의 <<도덕보장(道德寶章)>>강의,<<청정경(淸淨經)>>,<<태식경(胎息經)>>,<<장자(壯者)>>등 도교적 성명쌍수(性命雙修)의 수행법과 경전을 공부하고,유가(儒家)의 <<주역선해(周易禪解)>>,<<중용직지(中庸直旨)>>등 경전공부를 통해 성(性)을 밝혀갈 유불선(儒彿仙) 삼위일체의 수행체계를 정립하였으며,대승회는 이와 같은 수행체계를 정립한 대승보살의 수행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108식(息)과 소주천공(小周天功)등 치유명상 프로그램을 통한 대중교화활동으로 병마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심신의 치유와 더불어 대승불법에 인연을 맺어 대승불법에 발심케 크게 도움을 줄것으로 기대됩니다.
대승회의 수행체계에 따라 일정기간 108식의 참선명상만을 통해서도 초선정(初禪定)의 깨달음을 성취하는 초지보살(初地菩薩)의 공을 무난히 이룰수 있으며, 보다 진보를 원하면 대승회 수행법을 전수시켜 소주천공(小周天功),대주천공을 스스로 성취할수 있는 길을 열어 2선정, 4선정에 이르는 높은 깨달음의 성취를 통해 대승보살의 길을 갈수도 있으며.무엇보다도 대승회는 건강한 사회인으로써 일상을 영위하면서 함께 수행하며 세간의 공덕으로 출세간의 공을 이뤄가는 대승보살의 수행을 통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중생성취(衆生成就)로 해탈(解脫)과 성불(成佛)의 업(業)을 이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시대 대승불법에 인연있는 많은 중생들이 이 땅에 다시 발현하게 되는 대승불법의 터전인 대승회 화엄당을 통해 대승불법을 접하여 큰 깨달음을 성취하고 성불의 업력을 이어가는 수많은 대승보살이 출현하기를 기대합니다.
일체중생의 안락과 행복을 기원하며, 해탈의 그날까지 대승불법으로 지구촌 곳곳에 크나큰 진리의 횃불을 밝혀나가기를 기원합니다. - 삼세제불 대광명 -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좋은 글 담아갑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