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立冬),
인류가 파괴해버린 사계四季』
수필가ㆍ시인
/ 주현중
어느새
오늘(2006년11월19일)로서 열 아흐레째이다. 겨울의 시작이라는 입동이 지난지도ㆍㆍㆍㆍㆍㆍ, 그러고 보니 참 빠르기도 하다! 산과 들에 봄꽃
피어 꽃나비 춤추던 엊그제 같던 시간들이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느껴진다, ‘나도 이젠 나이테의 굴곡이 짙어지는구나!’라고, 갑자기
‘청산은 나를 보고 물 같이 살라하네.’라는 티 없이 맑게 살라는 의미부여가 전해진다.
티
없이 맑게 살라는 것은 시류時流에 이끌려 오염되지 말며, 욕심내지 말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허나, 인간이기에 모든 욕심을 송두리째 저버릴 수
없어 손이 시려 입김 ‘호호!’ 불던! 발이 시려 언 땅에서 ‘동동!’ 구르던 옛 모습은 이제 더 이상 그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전
세계적으로 동양인은 느린 것을 거부한다, 그래서 낙천적인 사람을 일컬어 착하다고는 하지만 보는 이마다 답답해한다. 동양에서도 작은 땅덩어리
대한민국 즉, 21세기를 걷고 있는 우리 백의민족白衣民族은 느린 것을 너무나 싫어한 나머지 이제는 발발이가 되었다, 그보다 더 빠른 일명
쌕쌕이(가장 높은 고도를 가장 빠르게 날아다니는 비행기)가 되었다.
얼마
전에 접한,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탄생이라는 희소식은 사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민족의 쾌거였다. 불과 25~6년 전만 해도
유지를 제외하고서는 하루 세 끼니 양식이 없어 찐 감자나 옥수수나 고구마를 하얀 입쌀밥 대신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등교를 해야만 했던
시절이었는데, 이제는 이러한 고린내 나는 옛 이야기 전해 듣는 청소년들 중 열에 아홉은 낯선 이국異國이나 외계인들의 이야기로 치부하곤
한다.
그렇다!
열에 아홉의 청소년들이 이해 못하는 게 잘못은 아닌 게다.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으니 콩으로 메주를 빚는다한들 곧이들을까 헤아려본다.
1980년대
수학여행 중에 울산 현대자동차를 견학해보니 당시 ‘포니 투’라는 자가용이 더도 덜도 말고 2분에 한대씩 생산되고 있었다. 비록 당시엔 일일이
수작업으로 하는 공정인데도 그렇게 빨랐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은 사람 대신 산업용 로봇이 작업을 하매 따라 2분도 채 못 되어 한대씩
생산되질 않을까 어렴풋하게 짐작해 본다.
이렇듯
빨라진 세상인데도, 얼마 전 직장(요식업)에서 양파껍질을 벗기던 전라북도 정읍이 고향이라는 한 아주머니가 하시는 말인 즉, “워따 매! 갑갑증
나서 못해먹겠네.”라기에 의중이 궁금하여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거시기 어디 양파 까는 기계는 없쏘이?”라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아주머니의 짜증어린 푸념에 오죽 힘이 들면 저럴까! 심사心思를 넘겨 짚어보긴 하면서도, 내가 응수하기를 “그런 기계가
발명된다면 채산성은 높겠지만, 어느 정도는 사람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노동력이 있어야 사람이 병들지 않을 겁니다.”라고 하였더니, 대뜸
“그래도 그렇지ㆍㆍㆍㆍㆍㆍ,”라시며 또 다시 나를 힐끔거리기에, “물론 수작업이 힘은 들지만, 모든 일이 자동화된다면 그 대신 실업자가 더 늘어
날겁니다, 편한 것만 찾다가 밥숟가락 잃어버리면 그땐 어쩌시려고요?”라며, 옳은 말이면서도 그리 즐겁지 못한 얼굴을 보이며 노동의 실음을
달랬다.
글의
내용이 표제와 다소 빗나가는 뜻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은, 입동立冬이 지난 지 열아흐레 째인 오늘 지난날의 우리네 정신질서를 돌이켜 보니,
하루하루 끼니꺼리가 없어 적어도 한 끼씩 건너뛰기를 밥 먹듯이 하던 때가 불과 25~6년 전의 역사인데, 그동안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에
달려도 너무 빠르게 너무 멀리도 달려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도 소수의 변두리 저소득층은 값싸고 배불리 먹을 식당을 찾곤 하지만, 대다수 중 다수의 현시대 우리는 좀 비싸도 맛깔스러운 음식점이 없을까
싶어, 지금 이 시간에도 이 거리, 저 거리! 이 골목, 저 골목을 오가며 미각味覺을 즐기려 할 것이라는 그림을 그려본다.
또한,
돈 만원 더 벌려고 단 한 시간조차 수면愁眠도 못 취하고 하루 24시간 동안 힘든 노동을 마다 않던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 과거는 추억에 한
장면을 장식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제 이미 오래되었고, 오늘날에는 한 달 급여야 조금 적게 받더라도 매주 마다 휴식을 취하며, 국경일마다
휴무를 찾아가며 내 시간을 가지고 여가활동을 즐기고자 시대가 낳은 웰빙문화가 뿌리 내리고 있다. 그 뿌리는 이미 깊게 박혀 뽑을 수 없게
되었다.
25년
전, 초가지붕이 함석이나 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고, 일명 두꺼비집이라고 불렀던 계량기가 집집마다 달리고, 동절기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돌아앉기만 하면 이내 식어버리는 온돌방천장마다 최초의 전등이었던 백열등이 불을 밝히면 너나 할 것 없이 ‘아! 놀라워라, 신기하다!’라며 불을
밝힌 백열등을 보는 시선은 평생 못 볼 것을 보는 것처럼 경탄해마지 않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지금 오늘날에 회상해보면, 분명 우리
백의민족白衣民族이 본시부터 급한 성격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요즘
각 방송채널마다 경쟁하는 대하드라마 사극들을 접하다 보면, 잰걸음을 걷는 이들은 천민들일 뿐, 글줄이라도 읽고 쓸 줄 알았던 양반들은 아무리
다급하여도 어디 불이라도 낳느냐하는 것처럼 팔자걸음을 걷는 모습을 연상해보면, 오늘 우리가 시시각각 더욱 더 다급해지고 조급해지는 것은 우리의
천성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킬레스건에 걸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이다. 봄엔 포근해야 하고, 여름은 적당히 더워야 하고, 가을은 넉넉하여야 하고,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하지만, 현시대의 봄ㆍ가을은 있는 듯 없는 듯 느끼기도 전에 사라지고, 여름은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온난화에 따라 더워도 너무
더워 마치 가보지 못한 사하라사막을 그려보게 하고, 밤새 눈이 내리고 나면 다음 날 아침에 방문조차 열수 없었던 지난 시절의 계절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지난날
겨울만 되면 내의를 입고도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 몇 겹의 옷을 껴입었었는데, 수족을 움직여 하는 노동력이 싫어 자동화만 꿈꾸는 21세기의「인류가
파괴해버린 사계四季」 속에 사는 나 자신의 출퇴근하는 모습을 스스로 돌아보니 겨울이 겨울 같지 않아! 내의는 고사하고 덜렁 삼각팬티 한 장에
계절을 잃어버린 바지 하나에, 윗도리는 얇은 티 한 장에 오리털 잠바가 전부이다. 껴입어봐야 두벌뿐인데도 조금만 움직이면 덥다! 열이 많아
한겨울에도 냉수마찰을 하는 나는 정말이지 짜증나는 계절을 만나고 있다.
우리
인류가 파괴해버린 21세기 속의 사계四季는 짜증 그 자체다. 따뜻하고 편안한 안식처만 갈구하다 이제는 땅덩이도, 계절도, 인간도, 모두 모두
건들기만 하면 톡 터져버리는 밴댕이가 되어버렸다. 삼일만 지나면 소설小雪이다. 그런데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서울 도심가의 가로수는 여전히 누른
뜻 푸르기만 하다.
첫댓글 삼한 사온이라는 말 언제 들어본건지 생각이 안나지요..환경의 변화가 피부로 느낄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 되어 갑니다 이 변화에 적응 하지 못하는 자연 자체가 파괴 되어 가는가 합니다...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