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숙
매미소리 가득한 여름, 편안함이 느껴지는 한옥 작은 식당에서 삼십 년 전약혼식을 했다. 장마가 끝날 무렵이지만 비가 오려고 후텁지근한 날씨에 기온까지 높다. 게다가 에어컨까지 없어 선풍기 두 대만이 양쪽 벽에서 필사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훈훈한 바람에 더위를 식히기에는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검은 피부를 가리려고 파운데이션까지 두껍게 발라놓은 얼굴에 속옷이 들어간 한복까지 입었으니 ‘땀으로 화장이 흘러내리면 어떡하나’ 염려가 되기도 했다.
새 양복을 입어 멋있어 보이는 예비신랑, 보기만 해도 좋다. 환한 세상이 내 앞에 다가오는 듯 핑크빛 마음에 가슴이 설렌다. 음식솜씨가 좋은 어머니와 작은어머니가 정성껏 준비해온 다양한 만찬이 발휘하는날 같기도 하다. 정갈하게 차려진 떡과 과일은 먹기도 아까울 정도로 예쁘고, 색깔마다 특색을 살려 꼬치에 꽂혀있는 방울토마토가 아기 눈동자같이 반짝반짝 빛난다. 날씨가 덥다보니 음료로 만든 수박화채가 먼저 입맛을 당기게도 한다. 정장을 차려입은 양가친척들은 ‘이 많은 걸 어떻게 시골집에서 만들어 가지고 왔나.’ 놀란 기색이다.
약혼예식을 시작할 때였다.
“선풍기를 끄세요. 가스불이 꺼져요.” 불판에 불고기를 익혀야 된다며 그나마 돌아가는 선풍기를 멈추게 했다. 땀에 젖어가는 속옷에 체면상 부채질도 할 수없는 시댁어른들은 겉옷도 벗지 못하니 더위에 약혼식을 하는 주인공으로써 참으로 죄송스럽기만 하다.
식순에 따라 시계와 반지를 주고받았다. 예비신랑은 그새 더위를 먹었나. 하여간 여자 손을 안 잡아 본게 표가난다. 반지를 끼워주려고 잡은 손이 덜덜덜 떤다. 시계 밥주는 것을 반대쪽으로 채워 주었음에도 은근히 믿음이 간다.
결혼 후 “자네 약혼식 날이 내 평생 제일 더웠어! 시원한 물냉면이 나올 줄 알았는데... 어짼 불고기야? ” 큰형님께서 가끔 하시는 말씀하시지만 어머니는 면에 자주 다니시는 구장님과 의논해서 고급스럽게 불고기로 대접한 것이라 하신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속으로 ‘맛있어서 더시키면 돈이 많이 나올 텐데...’ 약간 고민이 되시기도 하셨단다.
무더위 때문에 에피소드가 있었던 나의 약혼식, 요즘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문화 때문인가. 바쁘고 분주한 시대다보니 번거로움으로 여겨서일까. 약혼식 했다는 이야기도 전설로 여겨진다.
특히 가정의 달 5월만 되면 결혼식으로 많은 부부가 탄생을 한다. 약혼절차 없이 결혼해서일까. 이혼율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래서인가 정부에서는 5월21일은 둘이하나 되는 부부의 날로 정했다. 그럼에도 부부가 쉽게 헤어지는 까닭은 현실만 보고 이해 못하는 성격 탓도 있겠지만, 책임감이 부족함 가운데 영글지 않은 결혼이랄까. 그래서 요즘은 든든한 반려자로 거듭나기 위한 행복한 부부학교가 곳곳에 (교회) 많이 생겨나고 있다.
몸에 입는 옷도, 속옷을 입은 후에 겉옷을 걸치고, 둥근달도 초승달로부터 떠오르는데 백년해로를 함께하는 결혼이야말로 금방 만들어버리는 빵처럼 할 수 없다고 본다.
팥이 밀가루와 만났다. 맛있는 찐빵으로 거듭나기 위해 혼인을 하기로 약속했다. 부재료인 소다와 설탕이 끈끈한 사랑을 이어주는 반지와 시계가 아니던가. 인내로 숙성시킨 반죽이 성장한 남성이라면 달콤하게 변한 단팥의 고물은 시집을 가기위한 준비된 여성이다. 맛을 내기위해 고난을 견뎌낸 두 재료가 만나 찐빵이란 결혼으로 탄생했다. 성장한 남녀의 결혼도 이와 같으리라.
약혼을 하고 결혼을 위한 준비된 마음에 나는 항상 들떠있었다. 온 세상이 다 내것같고 기분이 좋아 버럭 화를 낸 기억도 없다. 들에 널려있는 풀까지도 한들한들 좋아서 춤추는 것 같다. 왜 그리도 모든 것이 좋게만 보이는지... 변하지 않는 금처럼 사랑하겠노라고 서약했던 7월 17일은 국가가 헌법을 제정했던 제헌절 국경일이기도해 해마다 애국가를 부르며 약혼한날을 생각해본다.
첫댓글 부부의 인연 많이도 더우셨 겠 습니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올것 같네요.
선생님 잘지내시죠.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소서
맛있는 찐빵으로 거듭나기 위해 혼인을 하기로 약속했다. 부재료인 소다와 설탕이 끈끈한 사랑을 이어주는 반지와 시계가 아니던가. 인내로 숙성시킨 반죽이 성장한 남성이라면 달콤하게 변한 단팥의 고물은 시집을 가기위한 준비된 여성이다. 맛을 내기위해 고난을 견뎌낸 두 재료가 만나 찐빵이란 결혼으로 탄생했다.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네, 선생님 그렇습니다. 결혼을 금방 만들어버리는 찐빵 처럼 할수는 없는 일이지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기에 잘 성숙되어서 가장 좋은 맛을 내시며 알콩달콩 행복을 빗어내시는 선생님댁은 주변의 분들에게 아름다운 가정의 표본이시지요. 오랫만에 올리신 귀한글 감상 잘 하고 갑니다선생님.
제헌절날이 약혼식 날이었던가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오늘이 약혼한날이네요. 애국가 부르며 축하하고 계신가요?
"속옷을 입고 겉옷을 걸치고, 둥근달도 초승달 부터......."^.^ .....약혼식 했다는 얘기도 전설로~~~!! 고맙습니다.
선생님 잘계시지요. 웃음주는 모습 그립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세상살이를 웃음으로 풀어내시는 선생님의 재치를 사랑합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고 건필하소서.
재미있는 실화군요, 선생님의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잘 감상하고 갑니다.
" 몸에 입는 옷도, 속옷을 입은 후에 겉옷을 걸치고, 둥근달도 초승달로부터 떠오르는데 백년해로를 함께하는 결혼이야말로 금방 만들어버리는 빵처럼 할 수 없다고 본다. "
누구나 겪었고 겪을 사건(?) 알만 한 일입니다.
선생님 좋은 계절 다 놔두고 더운 때에 약혼식을 하셨군요 ㅎㅎㅎ 그래서 그 추억에 미소 지을수 있으니 행복 아닐까요 . 잼있게 감상 잘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