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에 앞서 동포에게 드립니다. 함석헌
이글은 한일협정비준을 반대 1일부터 단식에 들어가기에 앞서 집필하여 동아일보에 기고한 것입니다. (동아일보 편집자주)
남한 북한에 있는 4천만 겨레 여러분! 우리나라는 지금 아주 어려운 고비를 당했습니다. 본래 파란 많은 고난의 역사인 우리나라지만 이번은 그전 어느 때보다도 더 심한 위기입니다. 까딱하다가는 아주 망해 버리고 맙니다. 전에도 부끄러움과 쓰라림의 그 경험이 없는 것 아니지만, 그랬다가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지만 재발하는 병이 죽음을 의미하는 모양으로 이번에 또 나라를 지키지 못하면 우리 민족의 그림자는 역사의 무대에서 영 사라지고 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그 대적은 우리의 약점을 잘 알고 우리를 어떻게 속일 줄을 잘 아는 옛날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이 정부가 끝끝내 고집하고 있는 매국적인 한일국교문제입니다. 본래 이 정권이 사실상에 있어서 그것의 연장인 군사정권과 일본제국주의배(日本帝國主義輩)들과의 사이에는 무슨 본질적인 관련이 있는 듯, 그들은 어수선한 정변 초부터 한일회담을 서둘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염려했기 때문에, 국민은 처음부터 그것을 반대했습니다. 아마 국민의 반대가 없었다면 나라는 벌써 그때에 망해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이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권은 자기네 생명이 거기 달렸으니만큼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 국민을 억누르고 그것을 고집하여 드디어 조인까지를 하는데 이르렀습니다. 4천년 넘는 역사를 가지는 문화민족에 4천만이나 되는 국민을 가지면서, 이 민주주의 시대에, 민족의 생존과 정신을 위협하는 굴욕적이요, 망국적인 조약인줄 알면서, 그것을 못 막고 조인을 하게끔 두었다는 것은 어디가 변명할 수 없는 잘못이요 부끄러움입니다.
그러나 일은 아직 아주 절망적이 아닙니다. 다행히 아직도 막으려면 막아낼 수 있는 한 단계가 남았습니다. 국회의 비준입니다. 이것이 이제 우리에게 남아있는 단 하나의 기회입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그러나 의무는 어렵다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병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는데 더 큰 기쁨이 있고, 씨름은 갈렸던 밑에서 다시 뒤집고 일어나는 때 더 칭찬을 받는 재주가 있는 법입니다.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어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싸워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이 있어서 말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무슨 방법으로 싸우느냐고, 그들은 돈을 가졌는데 우리는 돈이 없지, 그들은 치밀한 조직망을 가졌는데 우리는 헤어진 씨알들이지, 그들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선전과 간계를 쓰는데 우리는 소박 솔직한 양심뿐이지, 그들은 만(萬)으로 헤는 무장한 군대가 있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없지, 무엇으로 싸우며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도 한동안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생각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즉 거기 절대 이김의 길이 훤하게 도리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서울과 지방 여러 곳에서 일어난 수만 「데모」학생들이 보여 준 길입니다. 그들은 몽치와 돌과 구둣발과 최루탄으로 때리고 짓밟고 쏘는데도 겁내지 않고 평화 「데모」를 했고, 단식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어째서 하늘의 계시라는 것입니까? 누가 가르쳐 준 것 없이 바다의 물결처럼 하늘의 회오리바람처럼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대세입니다. 어리석은 압박자들은 학생들이 야심 정치인들의 선동에 넘어갔다. 난동이라 하지만, 모르는 말입니다. 그것은 자기네의 어두운 속을 자증(自證)하는 것뿐입니다. 그 일을 누가 명한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이 명한 것 아닙니다. 역사가 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르고 나선 것입니다. 그것은 막아낼 수 없습니다. 압박자들은 그것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 줄 알기 때문에 중학생까지에 겁을 집어먹고 질러 방학을 하도록 하는 비겁한 조치까지를 한 것입니다. 나는 이 역사의 명령에 복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문제의 해결이 나는 때 까지 단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여 얻은 뜻을 여러분 앞에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첫째, 내 죄를 회개함으로써 나 혼을 맑히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다시 한번 진정 겸손한 마음으로 정부당국에 대하여 정성껏 반성을 독촉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씨알의 꿈틀거림을 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근본문제는 내 죄에 있습니다. 국민여러분, 나는 여러분 앞에 솔직히 고백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기독교 교리로 하면 십계명을 다 범한 사람이요, 불교식으로 말하면 삼악을 다 행한 만번 죽어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이날껏 나 자신을 속였고 여러분을 속였고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미안한 말입니다마는 그동안 여러분은 제게 유언(有言)과에 무언(無言)과에 민중을 대표한 발언권을 허(許)해주었습니다. 스스로도 바른말을 하느라고 자신(自信)하려했고, 불의와 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말은 힘이 없었습니다. 옳은 듯하면서 악(惡)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조인이 된다는 정말 중요한 대목에는 아무 말을 못했습니다.
왜요? 탄압하는 힘이 무서워서 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내 양심을 눌렀습니다. 내가 악을 악인 줄 뻔히 알면서 이길 힘이 없는 것은 나 자신도 같은 악에 매여 있어 내 혼이 빛을 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악의 권세는 폭력에 있고, 폭력을 이기는 것은 뚫려 비치는 혼의 힘 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어둠의 근본이 되는 정욕을 이기기 위해 먹기를 끊고 속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혼을 맑혀 그 본래의 빛을 발하게 하도록 해야합니다.
그다음 우리의 싸움은 폭력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목표는 저쪽의 양심에 있어야 합니다. 무기를 저쪽의 손에서 뺏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슴속에 갇히어 잠자고 있는 혼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을 행하여도 역시 사람이요, 우리의 사랑하는 동포요, 나와 하나인 인격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양심에 호소하기 위하여 불의의 값인 고통을 내 몸에 당하면서 간곡한 충고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여러분 민중 자신이 스스로 깨어 일어서는 일입니다. 나 자신의 혼을 맑히는 것도 이 나라를 위해서요, 잘못하는 당국자에게 반성을 간청하는 것도 이 나라를 위해서입니다. 이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하나가 아닙니까? 나라는 나라자신이 세우는 것이요, 민족은 민족 자신이 건지는 것입니다. 누가 밖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도 씨알 스스로의 의요, 죄악도 씨알 스스로의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살아나는 길은 진정한 국민운동에만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나는 씨알 중에서도 가장 작고 알들지 못한 것입니다. 이 부족한 것이 어찌 감히 여러분의 앞장을 서겠습니까? 다만 나라가 또 다시 망하는 것을 차마 눈으로 보고 있을 수 없는 안타까움에서 하는 것뿐입니다. 학생을 통해 보여준 하늘의 명령이라 했습니다마는 학생이 무엇입니까? 민족의 역사운동의 뇌관(雷管) 일뿐입니다. 정의와 자유의 정신에 불타는 그들은 쉽게 아낌없이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뇌관이 아무리 폭발을 거듭해도 전체 화약에 불이 당기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불의를 폭파할 폭탄의 탄신(彈身)인 화약은 누구입니까? 여러분 아닙니까?
여러분이 나를 잘못이라 생각하시거든 아낌없이 비벼버리십시오. 그러나 만일 옳다 생각하시거든 같은 뜻으로 하나 되어 일어나십시오. 그리하여 이민족의 운명이 달린 싸움에서 이기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정말 아무 사심 없는 참으로 일어선다면 악의 세력은 틀림없이 무너질 것입니다. 또 지나간 날의 우리의 잘못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값으로 설혹 우리 눈으로 이김의 결과를 보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역사의 죄인 됨을 면하고 믿음을 가지고 기쁘게 죽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역사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살아서 종이 되는 것보다는 사람답게 국민답게 죽는 것이 훨씬 더 영광입니다.
동아일보 1965.7.1-2
저작집30;4-55
전집20;17-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