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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주께로 한 걸음 더 가까이 가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서 짐승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그 심령과 육체가 연약해집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다가 만나게 되는 시험과 믿음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며 살아가야 합니다. 올 한해가 주님을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주님의 손이 우리를 붙들며, 주의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주의 영광으로 우리의 삶에 채우시는 은총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가지가 담을 넘는 사람
1998년 11월 갑작스러운 수재로 파주시 재해대책본부앞에 주부 10여명이 막 도착한 매일유업 트럭에서 내려진 분유통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평생 이렇게 반가운 선물은 없었어요. 물 난리통에 분유 사러갈 수도 없고...할 수 없이 밥을 먹였더니 애가 밤새 설사를 하는 거예요.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이날 주부들을 감동시킨 '특별 구호품'은 중앙정부나 자치단체가 보낸 것이 아니고 매일 유업의 호의도 아니었습니다. 한 30대 부부가 10년동안 모아온 정성이었습니다.
88년 봄 결혼한 이 부부는 신혼여행조차 다녀오지 못해 결혼 10주년때 해외여행을 가기로 한 뒤 매달 7만원씩 적금을 부었습니다. 10년을 모으니 꽤 큰 액수가 돼서 아파트 중도금으로 쓰고 싶은 유혹도 견디며 98년 천만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집중호우 소식을 듣고 부부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수해지역 어린이들이 분유와 기저귀가 없어 고통받는다는 기사를 접하고, 그들을 돕기로 한 것입니다.
매일유업에 전화로 분유 6백만원어치를 구입하고 나머지 4백만원으로 기저귀를 사서, 경기도 파주와 의정부,서울 노원구 등에 분유를 전달했고, 다음날엔 남편이 친구의 트럭을 빌려 직접 기저귀 2천 개를 파주시 조리면,광탄면 등 오지마을에 나눠 주었습니다.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대책본부와 동사무소에서는 "분유도 나이 단계별로 준비하고, 기저귀도 남녀용을 구분하는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그분들이 누구냐?"고 물었지만 부부는 "이웃을 위해 좋은 일 한 것만으로 충분하다"며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들 부부가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부부의 마음은 주님의 마음입니다. 10년만의 여행을 위해 쓸 돈을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향해 선뜻 내밀수 있는 마음, 이웃사랑의 마음입니다.
요셉의 삶에는 고난이 많았습니다. 아버지의 채색옷은 형들의 미움을 받게 하는 옷이 되었고, 철없는 꿈 이야기는 형들에게 동생을 죽이고 싶도록 밉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17살에 기회가 오자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형들의 마음이 바뀌어 돈을 받고 이집트로 노예로 팔아 생명을 건졌습니다. 종살이를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주인의 인정과 신뢰를 받았는데, 주인 아내의 유혹을 뿌리쳤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종살이, 옥살이 13년동안의 고난이 그의 황금같은 인생의 청춘을 덮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둠도 요셉을 절망과 좌절에 빠지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고, 기근에 죽어가는 당시 세상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아버지 야곱이 죽기전에 12아들을 축복한 내용중 요셉을 축복한 내용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라고 축복했습니다. 담안에 있는 가지는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그 가지가 담을 넘었으니 이웃에게도 그 열매가 나누어진 것입니다.
저는 이 그림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내 축복하셨습니다. 창12:3절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땅의 모든 민족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복은 곧 이웃의 것입니다. 나라는 담장안에 머물러 있으면 안되는 복입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회(총리)를 사용하여 당대에 기근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양식으로 먹여 살리는 일에 쓰임 받았습니다. 자신이 받은 복을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이웃사랑의 표본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받은 복을 우리의 담장 너머로 나누는 축복의 사람입니다. 올 한해 담장을 넘어 이웃에게 받은 복을 나누는 가지가 되어 살아가는 예신 가족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사람
이웃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세상에서의 사명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주신 고난을 통해서 요셉을 독한 사람, 원수를 갚는 사람으로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고통을 받으면 그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분노하고 상처를 받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을 때 에서는 20년만에 만나는 동생을 죽이려고 칼든 사람, 400명을 데리고 동생을 마중나갔었습니다. 20년전의 상처가 분노로 쌓여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17살의 청소년은 자기를 정말 죽이려고 했던 사람 같지도 않은 형들을 보았습니다. 구덩이속에 던져져 울며 살려달라고 하는 자신을 외면하고 내버린 형들의 잔인함을 몸소 겪었습니다. 그리고 은돈 20냥에 잔인하게 동생을 이집트 땅의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을 자기 눈으로 보았습니다. 요셉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낯선 종살이,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습니다. 젊은이이기 때문에 형들에 의해서 겪게 된 13년간의 삶이 얼마나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울 때가 많았을까요? 더구나 어떤 가능성도 없는 땅에서 겪어야 하는 이 괴로운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요? 그런데 형들은 엄청난 일을 벌이고도 일말의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창37:31-32절 “그들은 염소를 죽이고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그 피에 적셔, 그것을 아버지에게 갖다 드리며 '우리가 이것을 주웠는데 요셉의 옷인지 보십시오' 하였다.”자기들이 돈을 받고 이집트의 노예로 팔았으면서도 그들은 늙은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여러분 이 형들에게 어떤 감정이 듭니까? 이런 하늘이 무섭지 않나? 이런 죽일 놈들이 어디에 있나? 그런데 우리에게 이 이야기가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믿음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인 야곱의 아들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앞에 기도하던 사람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인데 그 아들들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잔인한 세상 사람들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당한 당사자인 요셉은 형들의 잔혹한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우리들의 반응과 비교해보면 좋겠습니다.
창45:4-5절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요셉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당신들이 한 일에 대해서 근심하거나 한탄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고백하기를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위해 나를 이곳에 먼저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베푸신 여호와이레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형들의 악한 행동이 오히려 그런 형들을 위해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늘 감동을 받는 것 가운데 하나는 그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애굽의 총리가 돼서 당신들을 옥에 가둘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으나 내가 은총을 베풀어 당신들을 용서하겠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악한 행동으로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이웃의 여호와이레의 은총이 되는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요셉이 담장을 넘어 이웃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나타내는 사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덩이속에서 만난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듬으로서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형들에게 나타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고난을 당해도, 악한 일 앞에서도 견고하게 믿음위에 설 수 있는 이유는 의지할 힘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찾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전능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를 통해서 세상 모든 민족이 받아야할 복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복은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의 복을 받는 것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올 한해가 우리를 통해서 이웃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한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첫주부터 제 마음에“하나님 주일예배, 예배자 80명 세워주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올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이웃에게 나타냄으로 주일예배 예배자 80명을 세워주실 것을 믿고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민족의 비전을 만들어주는 사람
나라는 담장을 넘어 이웃에게 나눌 복 가운데 하나는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0:16절입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하나님의 소원은 우리 모두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고 기도하는 한 목자에게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우리의 소원이 되고 그 소원과 비전이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비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복된 선물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비전을 나누는 것입 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교회가 게토같다는 표현을 씁니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게토는 유대인들만 거주하도록 만든 거주지였습니다. 게토라는 의미는 지들끼리 재미있고 행복하고 세상에 대해서 무관심한 교회와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여러분 모두가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리더인데 그 리더의 역할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 한 꿈을 꾸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요셉은 세상을 떠나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창50:24-25절 “요셉은 자기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죽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형님들을 보살펴 주셔서 이 땅에서 인도해 내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서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이 분명히 너희를 인도하여 그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그때 너희가 내 유해를 메고 올라가겠다고 나에게 맹세하여라' 하였다.”
그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먼 훗날 이집트 땅에서 우리를 불러내 다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실 그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을 기다리며 그 약속을 실현하실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소망을 갖고 이 땅에 살아라. 너희는 이집트에서 영원히 살 사람들이 아니다.”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나는 그날까지 이 유언은 이스라엘 모든 민족의 기도제목이 되었고, 모든 민족의 비전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죽어가면서까지 그 백성들을 하나님의 소망으로 이끌어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리더입니다.
유명한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암살당하기 전날인 1968년 4월 3일, 테네시 주 멤피스에 있는 메이슨 성전에서 생애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 우리는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거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나는 산 정상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오래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오래 사는 것은 내 몫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여튼 지금 나는 거기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분은 내가 산을 오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저 멀리 약속의 땅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아마 나는 여러분과 함께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백성으로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임을 여러분이 이 밤에 확신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밤 나는 무척 행복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두렵게 하지 못합니다. 나의 눈이 다시 오시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그의 예언처럼 그는 다음날 암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꿈꾸었던 사람이 피부색으로 평가받지 않는 그 날을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도했고,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행진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 행진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펼친 가지가 그 담을 넘어 이웃에게로, 세상으로 펼쳐지는 것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비전의 사람들을 통해 보게 될 것입니다.
올 한해 이웃을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예신 가족들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을,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리고 그 하나님이 꿈꾸게 하신 비전을 나누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