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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선지자란 누구인가?(김요셉)
열왕기상 17장 17절-24절
17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9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선지자란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 말이 구약성경에 70번이나 나와요.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이야기는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엘리야가 이 3년 6개월 동안 가뭄이 들었을 때 사렙다에 있는 과부의 집으로 보내셨죠.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집에 가게 됩니다. 두 분에게 있어서 아주 공통된 현상이 일어나요. 사렙다 과부의 집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갑자기 죽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해 살려냈더니 사렙다 과부가 엘리야에게 와서 고백하는 말이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이 수넴여인에게도 나타나죠. 엘리사가 <이 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주시옵소서> 그랬더니, 진짜로 하나님께서 이 여인에게 아들을 주셨어요. 그래서 이 아기가 한동안 잘 자라다가 갑자기 죽어버렸어요. 이 아들을 엘리사가 다시 살려내는 거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말은 부활과 아주 중요하게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란 대관절 무슨 뜻이냐?
첫째 하나님의 사람이란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다> 이렇게 인정해 주시는 그런 사람이다 하는 것이죠.
엘리야나 엘리사에게나 똑같이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기적 가운데 하나가 이 죽은 아들을 살려내는 부활의 표적을 두 사람에게 다 이루어 주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당신이 부활하실 것을 예표로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미리 나타내 주시고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시는 큰 표적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하는 뜻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것을 다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얼만큼 사랑합니까? 사랑하는 척하는 게 아닙니다. 입술로만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첫째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하고, 그리고 목숨을 다해서 사랑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하고, 뜻을 다해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 뜻에 충성한다는 말이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주님을 위해서 내 목숨도 드리겠습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거죠. 첫째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된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되죠.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무엇을 제일 기뻐하시느냐, 하나님은 의인을 찾으세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을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이렇게 집중적으로 사용했단 말은 이 두 분이 하나님을 얼마나 뜨겁게 사랑한 사람들이었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무얼 보고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느냐.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거를 즐거워합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교통해요.
첫째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된다. 너희가 쉬지 말고 기도해라. 그래서 눈을 뜨나 감으나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어디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항상 주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 마음으로부터 주님께 은혜를 간구하고 주님께 무엇인가를 물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시편 1편 2절에 있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
말씀이 무슨 뜻인가, 성경에 나오는 말씀 하나하나가 이게 대관절 무슨 뜻인가 해서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 사람 그래서 말씀 더 깊은 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셋째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실제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7장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씀을 마치시기 전에 그 말씀을 하셨어요.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엄청난 선포를 하신 것입니다. 깜짝 놀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에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긴다고 하는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을 향해서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그러고 무섭게 책망을 하셨어요.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오히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이렇게 무섭게 경고를 하시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로 이렇게 비추어 볼 때에 오늘날 예수님을 제일 잘 섬긴다고 하는 믿음이 좋다고 하고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하는 우리들 자신을 돌아볼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하고 책망하시지나 않을까? 인간들이 예수님을 잘 섬긴다고 칭찬해준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칭찬해 주시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떠받들어 준다고 예수님도 우리를 그렇게 떠받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르게 보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우리가 겉으로도 물론 예수님 잘 믿는 흉내를 내고 다 해야 되겠지만,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사랑하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잘 섬기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돼야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주님만을 제일로 사랑하고 살아가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뭐가 있습니까? 마귀란 놈이 그냥 안 두죠. 온갖 것을 다 동원해 가지고 우리를 박해하고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 충성을 바치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런 것에 절대로 구애받지 아니하고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갑니다. 아무리 큰 박해가 있고 위험이 있고 협박 공갈이 있다고 할지라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주님께 충성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는 성령 충만함을 받지 않으면 이건 절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또 이것은 순간순간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지 않으면 될 수가 없습니다. 엘리야는 완전히 신비의 인물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대관절 어려서 어떻게 자랐고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고 이런 게 성경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아요. 갑자기 불쑥 솟아난 사람입니다. 이렇게 뭐 엘리사도 비슷하죠.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가서 갑절의 영감 갑절의 능력을 받았다. 그저 그거 하나지 이 사람이 어려서 어떤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고 하는 거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불러내십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떻게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이렇게 주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래서 엘리야가 받았던 성령의 능력의 갑절을 내가 받아야 되겠다, 엘리사가 받았던 은혜의 갑절을 내가 받아야 되겠다, 이렇게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늘도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달려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런 큰 은혜를 여러분들 모두에게 주셔서 이 마지막 때 이제 남북통일이 곧 우리에게 찾아올 것이고 눈앞에 이렇게 닥쳐서 우리가 북한 땅에 올라가서 교회를 새롭게 세우고 우리 불쌍한 동포들 저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다 구원시키고 세계에 선교사로 파송하고 하는 이 엄청난 사역을 위해 하나님 앞에 가장 존귀하게 쓰임받는 그런 사람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말의 본질
누가복음 9장 33절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우리는 말씀으로 지은 바 되었기 때문에 우리도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창세기 3장 사탄 마귀가 뱀 속에 들어가서 뱀이란 놈이 하와를 찾아와서 물어보죠. <하나님께서 정말 이 동산나무의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 뱀의 유혹은 얼마나 간교합니까? 뱀이 왜 모르겠어요. 다 알고 물어보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안 하셨는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 하고 하와를 유혹하니까 하와가 이 유혹에 꼴깍 속아 넘어가는 거야.
하나님은 <이것을 따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 하셨지> 그러니까 마귀가 틈을 타고서 (옳다, 너는 나한테 걸렸구나) 그래 가지고 <아니야. 그거 너 잘못 알고 있는 거야. 그거 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아. 네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져 네가 하나님처럼 되는 거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거를 못하도록 만드시느라고 먹지 말라고 하신 거지>
사람의 말이란 근본적으로 어떠한가. 하나님의 말씀은 <먹지 마라. 이거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 마귀의 말은 <아니야. 먹어도 괜찮아. 먹어도 절대 안 죽는다. 그걸 먹으면 더 좋은 일이 생긴다> 이것이 마귀의 거짓말이고, 근데 사람의 말은 어정쩡한 거죠. 이거를 먹으면 하나님 말씀을 확실하게 믿지를 않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령 죽으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사람은 설마 그거 먹는다고 진짜로 죽을까? 아무리 죽을 수가 있을까?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셨는데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사람을 정말로 죽일까? 이렇게 의심을 하고 그래서 나오는 말이 <죽을까 하노라> 그런 말이거든요.
마태복음 우리가 잘 아는 17장 3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런데 오늘날 우리 설교자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요렇게 바꾸는 것도 아니에요. 아예 이 말씀은 싹 빼버려요.
<또 너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나라를 볼 수도 없다>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현대인들은 <거듭나지 않아도 뭐 괜찮아. 거듭나야만 꼭 가는 거 아니야. 예수님만 믿으면 가는 거지> 다 바꾸잖아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줄 알아야 천국에 들어간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아니야. 그런 거는 아니야. 우리가 예수님만 믿으면 다 천국은 가는 거야. 단지 상급이 조금 다를 것 뿐이지. 하나님 뜻대로 행하면 상급을 많이 받는 거고, 하나님 뜻대로 하지 못했으면 상급이 없든지 조금 못 받든지 이제 그러는 거지 구원받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런 식으로 나온단 말이에요.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돌아가서 보십시다. 누가복음 9장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가서 변형되셨던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랬는데 잠시 후에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졌습니다. 예수님만 남았어요. 그러니까 제자들 그중에서도 베드로가 희한한 제안을 하나 하지요. <주여 우리가 여기다가 초막 세 개를 지읍시다. 하나는 주님을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창세기 3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셨지만, 말씀을 확신하고 조심하고 말을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확신이 없어요.
둘째로는 사람은 자기도 깨닫지 못하는 말을 합니다. 자기가 말을 해 놓고도 이게 무슨 거 무슨 말인지를 몰라요. 나도 깨닫지 못하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인간의 말은 하나님을 훼방하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경고하시기를 나를 훼방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이 세상과 어느 세상에도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 그 예수님께서 이렇게 무서운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현대인들은 현대 신자들은 그런 말씀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하려고 하지를 않아요. 성령을 훼방하는 게 대관절 뭘까? 혹시 내가 성령을 훼방하지나 않는가 이렇게 좀 조심하는 마음이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성령을 훼방하는 게 뭔가 좀 알아보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고 그런데 현대인들에게는 그런게 없어요. 그냥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그렇게 하는 말이 하나님을 훼방하는 말을 하고 있는 거다 말이죠.
첫째,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과 깊은 교재를 가져야 되고 예수님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되고 그래서 우리가 이 성경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이나 다 성경 말씀을 많이 공부해야 돼요. 자꾸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성경 말씀을 깊이 공부해야 된다. 이게 첫째, 조건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받는 것이 우리가 첫째로, 고칠 수 있는 방법이다. 둘째는 뭐냐 하나님의 영을 받아야죠.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영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성령으로 받아야 돼요.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가지고 쓴것이 성경이에요.
신명기 28장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뛰어난 민족이 되게 해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의 말씀이에요. 이것이 1절부터 14절까지 나오고 다음에 15절부터 68절까지 무려 네 배도 더 되는 이 많은 말씀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거역할 때에 이 많은 저주를 소개하고 있어요. 이런 소개를 한 다음에 29장에 넘어가면 29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너희에게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전할 수 있는 입을 주시지 아니했다> 이렇게 책망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거 주셔야 돼요. 듣는 귀를 주셔야 돼요. 깨닫는 마음을 주셔야 돼요. 볼 수 있는 눈을 주셔야 돼요. 듣는 귀와 보는 눈과 깨닫는 마음은 오늘까지 주시지 않았다. 그런데 이 상태가 언제까지 가느냐 이사야서에도 보면 이사야를 전도하러 내보내시면서 하나님이 <네가 전하긴 전해도 저들은 받지 않을 것이다> 왜 안 받아요? 보는 눈이 없고 듣는 귀가 없고 깨닫는 마음이 없으니까 안 되는 거죠.
예수님도 똑같이 이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잘난 사람들, 성경 박사라고 하는 유대교 랍비들, 제사장들, 장로들, 또 서기관들 이런 사람들이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할지라도 깨달음을 받지 못하니까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는 말씀하시잖아요. <그러나 너희는 복이 있도다. 너희는 보는 눈을 가졌고 듣는 귀를 가졌고 깨닫는 마음을 가졌다. 내가 온 후로 드디어 너희에게 이 놀라운 복을 내려준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복을 꼭 받아야지만 하겠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6절에 그랬어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내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마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어떻게 한다고 그러죠? 너희를 물어뜯으려고 달려들게 된다. 그러니까 개돼지들은 먹을 거 고깃덩어리 하나 주는 게 최고로 복된 거지 진주 같은 거 보물 보석 같은 거는 줘봐야 그놈들은 가치를 모르니까 모른다는 거죠. 이게 무슨 얘기입니까? 이 성경의 보화를 그런 자들에게는 주어 봐도 깨닫지를 못한다는 거예요. 오히려 이것을 준 사람을 물어뜯으려고 달려들고 이렇게 악을 쓰고 괴롭히려고 한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의 깨달음을 갖고 기뻐하고 말씀을 지키려고 하고 바르게 살겠다고 하는 새로운 결심이 일어나고 한다면, 사람은 양이요. 이것이 생기지 않고 마음에서 원망이 일어나고 불평이 일어나고 대적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이렇게 되면 그거는 개돼지요 이리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마지막 때에 정말 하나님의 보물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의 길을 물었어요.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셨고 이 청년이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물을 때에 <가서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너에게 있으리라> 그러셨는데 이 청년은 재산이 많은 거로 그 말씀을 듣고는 근심하며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안 되어 있었어요. 왜? 돈과 많은 재산이 하나님의 말씀이 오는 길을 딱 가로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임하는 불행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다 나누어 주어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내려온다> 이 보화가 뭐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보화죠. 하나님의 말씀이 보화예요. 하늘의 오묘하고 신령한 것 이것을 오늘도 우리에게 내려주십니다.
사자같이 담대한 선지자
선지자란 누구인가? 사자같이 담대한 사람입니다. 사자같이 담대한 사람, 잠언 28장 1절에는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을 가지만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에스겔 3장 9절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에스겔의 이 말을 화석보다 더 굳은 금강석 같이 했다. 금강석은 모든 금속 가운데 그 강도가 제일 높은 거죠.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되게 하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가?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은 단단한 이마를 가져야 되겠다. 화석보다도 강한 금강석같이 만드신다는 거는 사실 이 쇠보다도 철보다도 그 어떤 금속보다도 더 강한 금강석이 되어서 이 박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는 거죠. <누구를 만나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만나도 절대로 겁을 먹지 마라>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니가 나가서 전할 때에 너의 말을 듣는 상대는 이 백성들이다. 근데 이 백성들은 얼마나 강포한지 그들은 너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를 않아 너 옛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때 겪었던 일을 기억하느냐>
하나님은 에스겔에게도 당신의 종 에스겔에게 말씀하실 때에 <내가 너의 이 말을 화석보다 강한 금강석같이 하였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백성들을 대할 때에 절대로 겁을 먹지 말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가서 전하면 저들이 절대로 듣지 않도다> 그건 이사야에게도 말씀하실 때 그랬죠. 이사야 6장에 하나님께서 이 수랍 천사들을 보여주고, 그리고 재단의 숲 빨갛게 달궈진 숯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에 대시고 <내가 너의 입을 찢어서 너희의 죄악을 다 태워 없앴으니 이제는 가서 하나님 부정하다는 소리 하지 말고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은 <네가 가서 전하여도 저들이 듣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아니 듣지도 않을 사람을 왜 찾아가서 전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 속에 다 비밀이 있어요.
저 사람이 듣지 않을 걸 알면서도 가서 전합니다. 저 사람은 자기가 듣지 않겠다고 막 반발하고 대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서 전하는 거예요. 이렇게 전하면 누군가 받을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감추어 놓으신 비밀한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도할 때 무려 40년이나 저들을 이끌고 나왔지만, 모세의 말에 순종하고 따라왔던 사람은 몇입니까? 단지 2명 여호수아와 갈렛 이 둘밖에는 없었어요. 12지파에서 뽑혀온 12명 가운데 10명은 다 겁을 집어먹고 부정적인 대답을 했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믿음의 말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우리가 들어가자 하나님께서 저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말로 선지자라고 한다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선지자가 아니고,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강하고 담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명령을 추행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쓰시는 참 선지자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직접 명령을 하셨어요. <강하고 담대해라> 이 말씀이 여호수아 1장에 이렇게 6절, 7절, 9절 이렇게 해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나오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 마지막에 가서는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얘기합니다. <당신은 강하고 담대하소서. 우리가 그리하면 당신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여호수아서는 이렇게 출발을 해요. 그래가지고 가나안 땅 정복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사람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새 땅을 주십니다. 강하고 담대한 사람에게 저 아름다운 천국을 주십니다.
여호수아 이야기가 나왔는데 모세도 여호수아에게 신신당부하는 말이 그거였습니다. <강하고 담대해라. 강하고 담대해라>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 여호수아를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여호수아는 본래도 강하고 담대한 사람 아니었습니까? 가나안 땅 정탐꾼으로 40일 동안 가 있다가 돌아와서 보고하면서도 강하고 담대했으니까 이렇게 바른 보고를 했죠. 12명 가운데 10명 절대다수가 부정적인 보고를 할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 이 두 사람만은 긍정적인 보고를 했던 강하고 담대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강하고 담대한 사람을 더 강하게 하고 더 담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비겁했던 사람, 담대하지 않았던 사람은 베드로 아닙니까? 보잘 것 없는 여자 종한테도 겁이 나가지고서 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이렇게 하면서 발뺌을 하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될 때에 베드로가 얼마나 얼마나 울었습니까? 새벽 닭이 두 번째 울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말씀 그대로 되었기 때문에 그런 예언을 듣고도 자기가 깨닫지 못하고 담대해지지 못했던 것,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예수님은 마귀와 싸우셔서 그에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복종하지 않았어요.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함으로 너희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진리를 외치면 마귀는 죽이려고 달려듭니다. 마귀는 자기와 타협하라고 말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라. 그러면 내가 너를 높이 세워준다>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도 그 셋째가 그거 아닙니까? 예수님이 예수님에게 자기한테 절하라고 했습니다. <절만 한 번 하면 내가 너를 높이 세워주겠다. 이 천하만국의 권세를 다 주겠다> 이렇게 유혹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평생 마귀와 타협하지 아니하고 마귀를 거절하고 이렇게 사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강하고 담대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마지막 때에는 이 세상에 살기가 좋아지니까 이 세상이 돈만 아는 세상이 되고요. 세상 살기가 문화적으로 문명이 발달해서 모든 게 편해지고 좋아지고, 그래서 사람들은 약해집니다. 이렇게 어두울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금 말씀합니다. <강하고 담대해라. 나는 담대한 사람을 쓴다. 너희 이마를 금강석같이 만들어라> <주여! 내 이마를 금강석같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강하고 담대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면은 어떻게 해야지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게 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도 부르시고 모세를 부르시고 다윗을 부르시고 엘리야를 부르시고 이런 일꾼을 불러내실 때 하시는 반드시 하시는 약속이 하나가 있어요. 그게 뭡니까? <내가 너와 함께한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다> 이 말씀입니다. 다윗은 이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신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 누구와 싸운다고 할지라도 골리앗과 싸운다고 해도 골리앗이 나를 이기지 못한다. 내가 사자와 싸울 때에도 사자가 나를 이기지 못한다> 이 다윗은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담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 예수님 약속하셨어요. 그러니까 성령 받으면 권능이 임해요. 성령을 받은 목사가 설교를 해야지 말씀의 능력이 나갑니다.
셋째로 의로운 사람이라야 담대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죄가 없는 사람은 담대해요. 우리가 담대한 사람들이 되려면 첫째, 죄를 짓지 말아야 된다, 죄를 멀리하고 죄를 책망하고, 그리고 악에 대해서 이것을 거절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행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다 되어야지만 하겠습니다.
넷째로 우리가 한 가지 더 해야 될 것은 우리가 진리 위에 서야 합니다. 거짓에게 점령당하면 담대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된 사상에 빠지지 말고 진리로 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5장 1절 하나님께서 예레미아에게 말씀하시잖아요. <너는 저 예루살렘 시내에 가봐서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아라. 그 가운데서 공의를 행하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성을 사해준다> 그런데 한마디 더 붙였어요.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한 사람만 찾아도 내가 이 성을 사해준다> 진리를 구하는 사람조차도 없다고 하는 거.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 진리를 가진 사람이 없는 거는 말할 것도 없고,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 하나도 찾아보기가 너무나 어려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진리를 더욱 사모하는 사람 돼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은 오직 성경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이 말씀을 사모하고, 날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이것을 깨닫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이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진리의 영을 불어넣어주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을 당당하게 이겨나갈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 거룩한 사람, 복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선지자란 귀하게 쓰이는 사람
[딤후 2:21-22]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디모데후서 2장 20절과 21절 말씀 큰 집에는 여러 가지 금 그릇도 있고 은 그릇도 있고 나무 그릇도 있고 질 그릇도 있고 이렇게 그릇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손님이 왔을 때 그 손님의 등급을 매기죠. 높은 손님 귀한 손님이 오면 금 그릇을 내놓을 것이고, 그보다 조금 못하지만 높은 분이 오시면 은 그릇을 내놓을 것이고, 그 외에 평범한 사람들이 오면은 질그릇이나 나무 그릇이나 이런 거를 내놓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그 방법이 달라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은 <이 모든 그릇들 중에서 깨끗한 것을 쓰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그릇을 쓸 때는 금 그릇이 됐거나 은그릇이 됐거나 손님이 오시면 깨끗하게 씻어가지고 내놓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런 면에서는 우리의 상식을 조금 벗어나는 거죠. 조금 이상하다. 깨끗한 것을 쓰신다. 21절 말씀 <너희가 이 모든 것 가운데에서 너희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써주시는 그릇이 된다>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그 준비 중에서도 어떤 준비냐? 자기를 깨끗하게 한 사람이면 하나님이 써주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나타나는 위대한 선지자들은 때가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자기를 깨끗하게 준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기를 깨끗하게 먼저 준비해 놓고 주님께 쓰임 받기를 사모하고 주님께 은혜를 간구해야 하나님께서 써주시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무엇을 깨끗하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자기의 몸을 깨끗하게 해야 되겠죠. 그다음에는 행실을 깨끗하게 해야 된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할 수 있사오리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지이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71편 9절에 19편 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실을 깨끗하게 해야 된다. 그다음에는 또 무엇이 깨끗해져야 되느냐.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져야죠.
그러면 우리가 깨끗하게 하면 어떤 복을 받고, 깨끗하지 않으면 어떤 화를 잊게 될 것인가? 이거를 또 생각을 해봐야죠. 우리가 깨끗하게 하면 어떤 복을 받게 될 것인가 그 복 받는 거 보세요.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욥기 8장 7절입니다. <너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거 우리 성도님들 가정 심방 가보면 이 액자를 벽에다가 붙여놓은 가정들이 많이 있어요. 천만의 말씀이죠. 이것이 욥기 8장 7절 말씀인데 그 앞에 5절과 6절 이 두절 말씀의 말씀이 이 조건입니다. 이렇게 복을 받게 되는 조건 5절과 6절을 먼저 우리가 행해서 이루어야지 이 7절이 저절로 따라오게 되는데 5절과 6절은 떼고 7절만 붙여놓고 아무리 그런 복을 받게 되는 날이 오기를 사모하고 기다려 봐도 그런 날은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5절과 6절에서는 뭐라고 말씀합니까? <네가 만일 네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고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네 의로운 집으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을 받게 해주신다> 하고 약속을 하십니다.
그 조건이 4개가 있어요. 첫째 하나님께 빌고, 하나님께 구하고, 그리고 정직하고 청결해야지 한다. 그래서 우리가 청결해야 될 가장 중요한 조건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또 시편 23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우리가 다 잘 아는 시편이지만, 그다음 편 24편 3절에 보면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에서 계속해서 설명하죠.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까? 이렇게 하는 사람은 마음이 정직하고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고,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이렇게 4가지로 설명하고 있어요.
그래서 첫째 우선 손부터 깨끗해야 된다 하는 거죠. 손 깨끗하다는 말은 손을 자꾸 세수를 자주 해가지고 깨끗하려는 그런 문자적인 뜻만 있는 건 아니죠. 상징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 거죠. 행실이 깨끗해야 된다. 그런 말씀 아닙니까? 우리가 이렇게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된다.
우리가 더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8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팔복을 말씀하시는 가운데 8절은 여섯째 복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오> 요한복음 15장 말씀 포도나무 비유장인데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그리고 내 아버지가 농부시다. 누구든지 나에게 꼭 붙어 있어서 열매를 맺는 가지는 열매를 더 많이 맺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깨끗하게 해준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버린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주신대요. 깨끗해지면 하나님은 우리를 더 풍성한 열매 맺는 자리로 이끌어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청결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깨끗한 사람, 하나님이 쓰실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를 씻는 재료를 5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5가지가 무엇이냐. 에베소서 5장 26절에 보면 <우리가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첫째 재료는 물입니다. 물은 곧 세례를 뜻하죠. 베드로전서 3장 19절 물은 곧 우리를 깨끗하게 씻는 그런 세례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례를 통해서 깨끗해지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서 하게 된다, 하나님을 향해 호소하게 된다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물로써 양심을 씻으면 우리 양심이 깨끗해져서 하나님을 찾아가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말씀으로 깨끗하게 씻는다 그랬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는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셋째는 불입니다. 세례 요한도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게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불과 성령으로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시리라> 말씀합니다. 또 불이 오시면 불이 임하면 우리를 연단시키죠. 찌꺼기 더러운 것들 다 불태워 없애고 우리를 순수하게 만들고 거룩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일꾼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넷째로 예수님께 쓰임받을 사람이 되려면 성령 충만함은 필수 과정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 말씀하셨어요. 이 권능을 받아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만 전하는 사람이 되지, 또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를 깨끗하게 만드시고 깨끗해진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성령의 선물을 부어주시니까 여기에서 지혜의 말씀, 믿음 그리고 능력 행하는 거, 병 고치는 거, 방언하는 거, 예언하는 거, 영분별하는 거예요. 방언 통변하는 것 등등 모든 은사들이 충만하게 임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이렇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다섯째로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주님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만듭니다.
마음으로 죄가 자꾸 들어옵니다. 나쁜 생각을 자꾸 합니다. 유혹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쁜 생각이 들어올 때마다 마음에서도 물이 나와 싹 씻어버리고 이렇게 하면 마음은 항상 깨끗함을 유지해 나갈 수가 있는데, 우리 마음에 이런 자정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물이 나오는 이 능력이 없으면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가 도둑질도 하죠. 살인도 하죠. 온갖 못된 짓을 하죠. 이 마음에서부터 못된 말을 하죠. 남을 저주하고 악한 말을 하죠. 그러면서도 사람이 뻔뻔해지죠. 이거는 결국은 지옥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그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시잖아요. 네 마음을 지켜라. 그래서 우리 마음을 잘 지켜야 되는데 마음에서 물이 흘러나와야 돼요.
이 물이 무엇일까요? 이것이 회개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면 이 말씀에서 물이 나와서 우리 마음을 씻죠. 또 불로 태우죠. 그리고 성령으로 이렇게 우리 마음을 정결하게 거룩하게 만들죠. 그런데 마지막에 말한 이 보혈 보혈이 내 마음속에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찬송가에 그랬어요. 그 피가 마음속에 큰 증거 됩니다. 내 기도 소리 들으사 다 허락하소서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당신의 보혈을 흘러가게 하십니다. 여러분 마음을 살펴보세요. 그리스도의 보혈이 흘러가게 하세요. 그러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기쁨과 감격이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써주시는 사람으로 변화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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