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쁨과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5-11)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동두천에서 목회할 때, 동해 바다쪽에서 청년수련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한탄강이 범람하여, 동두천 시내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사택은 2층인데, 1층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청년들과 함께 집에도 못들어가고, 권사님 댁에서 뜬눈으로 밤을 보내야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물이 빠진 후, 반바지에, 장화 신고, 삽 들고 다니면서, 진흙으로 가득찬 성도들의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그리고, 피해 입은 성도들의 가정에 구호품을 나르던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되기도 합니다.
이번 장마철에는 비가 오지 않아, 장마 아닌 장마가 끝난 것으로 여겼는데, 갑작스럽게,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며칠 전, 천둥이 치는데,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무너지는 것 같은 그런 어마어마한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경남 합천군에서는 집중호우로 온 마을이 물로 잠길 것을 예상하여, 전군민에게 대피령을 내렸습니다. 폭염과 무더위, 그리고 집중적인 폭우라고 하는 변화무쌍한 날씨 앞에, 인간이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속수무책인 존재라고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집중호우가 멈추면, 폭염이 몰려올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서늘한 가을이 빨리 오기를 기다려봅니다. 이번 폭우로 인하여, 엄청나게 큰 피해가 발생했는데,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고, 무너진 삶의 터전이 하루빨리 복구되어, 평범한 일상생활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얼굴에서 근심과 슬픔이 사라지고, 얼굴을 활짝 펴고, 환하게 웃을 날이 속히 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16편은 다윗이 썼는데, 다윗은 그 어느 누구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시편 16편을 쓸 당시의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 관하여, 어떤 학자들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도망치던 시기이거나, 혹은 황무지에서의 커다란 위협에 직면했을 때로 추측하기도 하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시편 16편을 깊이 있게 읽어 볼 때, 다윗이 생명의 위협을 심각하게 느끼는 상황에서 저술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시편에는 절망 속에 빠져있는 자의 고통스러운 비탄과 한숨섞인 호소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믿음과 영생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이 처한 위기 상황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굳센 믿음으로,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 속에서도 공포와 불안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신앙은 육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과 관계가 유지됨에 대하여, 무한한 행복감을 느끼고, 찬송하며, 이러한 관계가 결코 죽음으로 인하여 단절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본 시편을 읽으면 읽을수록, 다윗은 죽음의 위기 중에서도,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였고, 주변 사람들의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신앙을 고백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의 믿음은 그가 처한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바라보고, 근심과 두려움의 자리를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서는 믿음이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위기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집중폭우로 인하여, 집이 침수될 위험에 처하면, 모든 것들을 다 뒤로 하고, 안전한 대피소로 당장 피해야함이 마땅한 일인 것처럼, 인생의 위기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모든 형편을 내려놓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다윗은 자기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 34:6)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고백처럼, 그는 곤고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릴 적, 들판에서 양을 칠 때에는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내 부모는 나를 버렸다”(시 27:10)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그의 집을 찾아왔을 때, 아버지 이새는 막내인 다윗으로 하여금 형들의 양들까지 돌보도록 했습니다. 형들은 고운 옷을 입고, 잘 차려진 상 앞에 앉아 있을 때, 막내인 다윗은 들판에서 형들의 양들까지 돌보면서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된 다윗은 사울 왕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화려한 궁궐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왕의 식탁에서 푸짐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지만, 그를 죽이고자 기회만 노리는 사울 왕 앞에서, 그의 마음은 결코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 미갈의 도움으로 장인 사울 왕으로부터 도망칠 때도 있었고, 왕자 요나단의 도움으로 몰래 도망칠 때도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의 사위였지만, 많은 권세를 가지고 누릴 수 있는 자리였지만,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을 피해, 광야와 황무지로, 이러저리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생명의 위협을 느꼈지만, 다윗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음에는 평안했습니까? 안전했습니까? 결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아들들의 권력 다툼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을 때,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뼈가 부스러지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고자 하는 사울 왕을 피해 다닐 때,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차마 장인인 사울 왕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준비할 때, 왕인 다윗은 전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다 알고 있었지만, 아마도 중도에 멈춰주기를 간절히 바랬을 것입니다.
반역은 곧 죽음이었습니다. 장인인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들이 아니라 사위인 다윗이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역모”라는 굴레로,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지만, 자기를 그렇게 죽이려고 했던 장인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던 다윗이, “역모”라는 이름으로, 아들 압살롬을 어찌 죽일 수가 있단 말입니까?
다윗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피난길을 택했습니다. 전세가 역전되었을 때에도, 신하들에게, 아들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이 죽었을 때, 다윗은 마음이 심히 아파,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삼하 18:33)라면서,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한 마디로, 다윗의 삶은 파란만장한 삶이었습니다. 그는 곤고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어떻게 그 파란만장한 삶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그 곤고한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까?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칼날으로부터, 압살롬의 추격으로부터, 살기 위하여, 가슴 아픈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지만, 그의 마음은 요동하지 않았고, 항상 평안했습니다.
마침내, 그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모든 대적들에게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기업을 상속받게 하셨습니다.
위험이 다가오면,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안전한 곳으로 빨리 피해야 합니다.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대피소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어디로 피해야 하겠습니까?
다윗은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시 12:5)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련한 사람이 짓밟히고, 가난한 사람이 부르짖으니, 이제 내가 일어나서 그들이 갈망하는 구원을 베풀겠다. 그들을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그 사실을 알았고, 하나님 품 안으로 피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시 12:7)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5,7-8)
“주님, 주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재난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옵소서.”
“주님, 주님께서 우리가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옵소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시키고, 홍해를 건너, 광야로 데리고 나온 모세는, 광야 40년 생활이 끝날 무렵, 그 모든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라고 외쳤습니다.
어려운 환란을 당할 때와 죽음 앞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께로 피하겠다는 다윗의 고백과 기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의 믿음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응답받아,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졌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에 대하여,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내게 행복이 없습니다.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행복밖에는 모릅니다. 주님이 없이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있음으로 인하여, 나는 행복합니다. 주님이 있음으로 인하여 나는 살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이 되시고, 참된 복과 행복의 원천이시며, 고난과 어려움에서 구원해 주실 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주님밖에 몰랐습니다.
복음성가 중에 “빛이 없어도”라는 곡이 있습니다.
“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 음성이 없어도 똑똑히 들려주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 주님이 계시므로 나도 있고 주님의 노래가 머물으로 나는 부를 수 있어요 / 주여 꽃처럼 향기나는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주님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그렇습니다. 꽃처럼 향기나는 그런 빛나고 아름다운 생활이 아니어도, 주님만으로 만족하고, 주님으로 인하여 행복을 누리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윗은 곤고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시편 16편을 보면, 그의 삶은 참으로 행복하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요동함이나 두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마음과 정신적인 면에서만 아니라, 그의 육체까지도 안전하게 거하는 복을 누렸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8-9절)
다윗은 현재 자기에게 주어진 극도의 위험 속에서도,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이렇게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생명을 창조하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함으로, 다윗이 누렸던 그 평안, 그 기쁨. 그 즐거움을 우리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다윗은 축복받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한낱 어린 목동이었던 그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왕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의 삶을 살펴보면, 역시 다윗은 오늘의 우리들에게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다윗의 무한한 신뢰, 이러한 모습을 대할 때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아름다운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며, 그런 믿음의 고백이 절로 나올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다윗을 보호하시고, 그를 지켜주셨던 것처럼, 정말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실까요?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걸까요?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습니다. 편애하지도 않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다윗의 기도를 보고 있으면, 나의 마음에도 어느덧 기도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솟아오름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 하나님께 매달리는 간절한 기도, 하나님만이 나를 구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부르짖는, 다윗의 눈물의 간구를 하나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지켜 주셨고, 뿐만 아니라, 그와 그의 자녀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 못가서,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참된 축복은 돈이 많고 적음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명예와 지식, 그리고 권력이 이 있고 없음으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다윗의 기도, 다윗의 눈물과 부르짖음, 그리고 그의 믿음의 고백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의 삶은 다윗과 같이,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으로 풍성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생명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길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 주님 앞에 놓여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시편 16편을 읽어보면, ‘기쁨’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오고,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 4:7)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울도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2-3,11)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는 세상적인 것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으려고 합니다. 재물이나 권력, 향락 등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으려고 합니다. 심지어, 마약과 흉악한 범죄로부터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과감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8-9절)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항상 모시고 살아갈 때, 우리 마음이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육체도 안전하게 살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안전과 평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항상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위험한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우리를 지켜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은 나의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내게 행복이 없습니다.”라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면, 큰 슬픔과 어려움이 닥쳐온다고 해도, 우리 마음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만을 항상 모시고 살아감으로, 하루하루 기쁨과 즐거움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주님,
오직 주님만을 항상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주님 없이는 행복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밖에는 없습니다.
매순간마다,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이 베풀어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