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7 살림교회 주일공동예배(부활절 둘째 주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행4:32-35; 요일1:1-10; 요20:19-29
지난주부터 저희 교회에서 집단 상담이 시작되었습니다. 집단상담은 감정을 통해 나와 너를 만나고, 내 안의 감춰진 능력을 일깨워 자기실현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그 어디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최고의 강사진과 함께 하는 고퀄의 자기성장과정 프로그램입니다. 자기를 만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고, 자기를 깊이 만나는 경험을 하길 원한다면, 저희 교회에서 하는 집단 상담에 꼭 참여하시길 강추합니다.
이번 집단 상담에서는 각자 운동, 독서, 기도, 일기쓰기 같은 과제를 하나 정해서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수련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는 산책을 하기로 해서 지난주에는 호수공원을 계속 걸었습니다. 올 봄은 작년에 비해 꽃이 늦게 피었습니다. 덕분에 지난주 호수공원을 찾아올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꽃이 활짝 피어가는 변화를 보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이제는 호수공원에 온갖 꽃들이 만개했습니다. 개나리, 벚꽃, 진달래, 목련, 산수유, 매화 등 봄에 피는 모든 꽃들이 다채롭게 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한 송이, 한 송이씩 따로 보아도 예쁘고, 멀리서 한 폭의 그림처럼 전체로 보아도 예쁩니다. 봄꽃들이 지닌 생기와 에너지를 받으며 걷다보면, 꽃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제 안에 잠들어있는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일깨웁니다.
꽃들을 바라보며 걷다가 문득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내 삶에 끌탕하느라 놓쳤던 아름다운 내 삶의 모든 순간들과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물지 못했던 나를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나의 아름다움이 봄꽃처럼 피어나지 못하게 억누르고, 꽃처럼 아름다운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했던 나를 보았습니다. 스스로 만들어놓은 돌무덤 속에 들어가 생생하게 살아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닌 모호함 속에 숨죽이던 나를 봄바람에 자유롭게 흩날려 보내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거닐다보면 자신이 만들어놓은 돌무덤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경비병들이 무장해제 되는 경험을 합니다. 저는 이것을 부활의 신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창조된 목적대로 존재하는 대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 안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참나(Self)가 일깨워집니다. “나무는 나무로 존재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것이 됨으로써 나무는 하나님께 순명한다.”고 말한 토마스 머튼 신부님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은 그 사랑이 발현된 피조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안에 있는 깊은 열망을 일깨웁니다.
한곳에 고착되어 있던 시선을 돌려 바라보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눈에 들어오는 꽃들과 새싹, 연둣빛 이파리들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은총입니다. 이 사랑에 마음을 열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눈길과 발길, 몸짓과 손짓을 하는 것이 부활 생명의 신비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성인들처럼 온전해지고 거룩해진 다음에야 비로소 경험할 수 있는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따사로운 햇살을 내 몸 구석구석에 가닿도록 받아들이고,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따라 경직되고 움츠러들었던 몸을 털어내고, 닫혀있던 마음을 열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표현하는 것이 부활의 능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체험입니다. 부활은 죽음에서 생명을 경험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한가운데서 만나는 실존적 경험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말씀은 부활의 신비를 경험한 제자들 중에서도 특별히 의심 많았던, 우리와 너무나 닮은 도마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즉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들은 부활절 저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유대인들이 무서워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굳게 닫힌 문과 저녁이라는 시간은 엄혹한 어둔 밤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모든 문을 닫아걸고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시며 평화의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토마스 키팅 신부님은 <성령의 열매> 중에서 평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평화는 하나님 안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우러나서 스며드는 만족감입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완전한 자각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굴곡과 기쁨과 슬픔의 정서를 넘어선 상태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가장 깊은 수준에서 모든 것이 온전하고 옳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수많은 문제들이 일어날지라도, 그것들에 방해받지 않는 초연한 마음상태가 바로 평화입니다. 하나님께 그라운딩 되어서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평화입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닫힘에서 열림을, 불안과 두려움에서 평화와 기쁨을 경험할 때,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도마는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주님을 보았다는 말을 해도 그는 믿지 못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도마의 완고함이 잘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한편으로 도마는 예수님에 대해 듣기만하고 직접 본적도 없고 만져 본적도 없는 우리의 믿음 없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직접 만나 경험하고 싶은 우리의 깊은 갈망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며 빛이 되어주신다는 것을 그저 머리로만 알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도 도마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 부활 생명을 경험하길 정말로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도마의 반응에 응답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고 예상하는 방식대로 만남이 즉시 이루어지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한지 팔 일째 되는 날, 즉 한 주가 지나고 다음 주일이 되어서야 주님을 만났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도마는 여전히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어둔 밤의 시기를 견뎌야 했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어둔 밤의 시기가 예고 없이 찾아오곤 합니다. 절망스런 일들이 눈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일어날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이 어둠의 시기를 그저 견디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일들이 원하는 대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는 힘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은 상황과 문제를 나에게 유리하게 바꾸어주는 마법 같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 어떤 상황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에 내가 이 문제를 잘 만나면서 뚫고 나갈 수 있다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입니다. 결국,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문제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도마가 어둔 밤의 시기를 통과하도록 기다리셨습니다. 마침내 어둔 밤을 인내한 도마의 때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있는 도마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잠겨 있는 문을 통과해 들어오셔서 다시 한 번 평화의 인사를 제자들에게 전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도마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난 도마는 대답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은 도마의 주님이며, 도마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비로소 도마와 예수님은 나와 너로 마주함으로써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머리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예수님과 자기가 내밀하게 접촉될 때에 부활은 우리 안에서 생명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저 멀리 하늘나라에 계신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현존하시면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분으로 경험합니다. 눈앞에 큰 파도가 출렁일지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둔 밤을 지날지라도, 내면의 구겨지고 보잘 것 없는 자리로 내몰릴지라도, 자기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면서 현실에 두발 딛고 서서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게 됩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가장 깊은 수준에서 모든 것이 온전하고 옳다는 것을 아는 평화를 갖게 됩니다.
도마가 못자국과 상처를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경험했듯이, 부활의 신비는 우리의 상처 한가운데에서 일어납니다. 부활은 우리가 완전하고 거룩한 상태일 때 일어나는 기적이 아닙니다. 부활은 우리의 연약하고, 구겨지고, 상처 난 자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부활은 심장에서 열이 나도록 열심히 살아가는데서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지금 여기를 온전히 살아내는 충만한 삶에서 동력을 얻습니다. 나의 평범한 일상을 주님과 함께 마음 모아 정성껏 살아내는 것, 이것이 부활의 능력이고 신비입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봄에 부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의 생각에 고착될 때마다, 고개를 들어 온 존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꽃과 나무, 자연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깊이 뿌리내림으로 모든 것이 깊은 수준에서 옳고 온전하다는 것을 아는 평화를 누리십시오.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에 동의하는 우리의 자발적 움직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충만한 삶을 살도록 우리가 부름 받았음을 알게 할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생명을 얻어 이 땅에서 당신의 자녀로서 충만한 삶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