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올라가는 길 아스팔트 틈새를 비집고 이름 모를 풀이 삐죽 나와 있었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 작은 틈새에서도 살아내려는 생명력이 당당해 보였다. 천천히 여유를 부리며 걸어서 아파트옆 작은 공원으로 들어섰다. 지자체에서 잘 하는 일은 여유 공간이나 자투리 공간만 있어도 공원을 만들거나 주민들이 쉴 수 있는 장소를 예쁘게 만든다는 것이다. 도심속에서 숲을 보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알만한 나무에는 이름표가 붙여져 있었다. 그래 이 나무였지. 이름을 보면서 나무나 꽃들을 다시 자세히 쳐다 보았다. 깔끔하던 공원이 여름이 지나는 자락에서 이름 모를 풀들이 무성해져 있어 스산해 보였다. 잡초들이 주인인 양 공원의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보란 듯이 뽐내고 있었다. 잡초들이라 하였지만 이름이 모두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필요에 의해서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잡초라고 하지 않았는가.
부모님이 일찍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와 살게 되어 나에게는 고향의 추억이라고는 거의 없다. 시간을 되돌려 보면 유년 시절 엄마 손을 꼭 잡고 고향에 다녀왔던 짧은 희미한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사랑받은 기억도 없다. 고향이나 자연이 주는 감성을 가지지 못한 나는 “내가 좀 촌스럽지” 하면서 고향 얘기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왠지 부러웠다. 고향에서 보내온 사랑과 정성이 담긴 손끝에서 그들만이 가져있는 깊고 풍성한 보물 같은 감성들이 부러웠다. 도시의 메마른 감성으로 자란 나는 나무나 풀이름도 잘 몰라 괜시리 기웃거리기도 했다. 이름을 모르는 것은 나에게는 모두 잡초였고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다.
휴대폰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는 지금 이름 모르는 풀이나 꽃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면 즉시 답이 온다.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신비롭기만 하다. 잡초들에게도 멋지고 이쁜 이름이 있다는 것, 이름을 가진 이상 자신만의 주체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조금씩 나는 자연과 친해지기 위해 애썼다. 자연은 쉼과 편안함, 건강과 자유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시누이가 있는 산장에 가면 온갖 풀과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피어있다. 쑥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이제는 봄이 되면 쭈구리고 앉아 쑥을 캐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한다. 가끔 여름이 되어 올라가면 대책없이 무성해진 잡초들 때문에 노동을 해야 했다. 쑥대밭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쑥은 정말 잘 자랐고 뿌리가 깊고 질겨서 힘들었다. 가을이 되면 1년생 잡초들은 스스로 말라 죽지만 다년생들은 모두 숨어서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봄이 되면 다시 살아서 땅을 뚫고 나온다. 씨를 뿌리지 않아도 스스로 자생하는 끈질김이 대단하였다.
잡초나 잡풀은 인간에 의해 재배되지 않고 저절로 나서 자라는 잡다한 풀로서 때와 장소에 적절하지 않는 식물이라고 했다. 또한 잡초는 농작물과 비교했을 때 그 가치가 조금 모자란 식물이라고 평가한다라는 설명이 있다. 많은 종류와 다양한 잡초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변신하고 있었다. 우리가 몰랐던 놀라운 가능성 녹색의 꿈 잡초의 반전이라며 TV에서도 방영한 것을 보고 나 또한 새로운 시각으로 잡초를 보게 되었다. 잡초를 통해서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과 크고 작은 벌레들과 함께 잡초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자연들은 인간과 공존하면서 살아야 하는 공생을 꿈꾼다는 말이 와 닿으며 아는 만큼 이해된다는 것처럼 이제는 잡초에 대해 애정과 연민을 가지고 대화를 하며 다가가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생각의 전환으로 버려두고 베어내고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릴 것인가로 바꾸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있었다. 인간이 주는 비료만 먹고 재배되는 필요에 의한 식물이 아니라 자연에서 나고 스스로 살아남은 강한 생명력에서 영양과 약성이 강한 잡초의 특성들을 잘 이해하고 생활속에서 필요한 존재로 바꾸고 있었다. 스스로 양분을 가진 잡초들이 무질서해 보이지만 자기들끼리 잘 섞여서 자라고 또 같이 어울려서 자라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잡초들이 땅을 부드럽게 만들기도 하고 영양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영양분의 일부를 작물에게 주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잡초로 비빔밥, 셀러드, 빙수등 많은 잡초 레시피가 나오고 정원가꾸기에서도 새로운 한몫을 하고 있으며 액비화를 하여 건강에 도움을 주는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 잡초가 억세고 맛이 없거나 몸에 좋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편견이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천에 늘려 있어 언제 어디서나 구할 수 있고 전혀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잡초라고 하면 끈질김과 생명력이란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삶을 살면서 어려운 일들이 다가올 때마다 우리들은 절망하기도 하고 힘들어했다. 잡초 같은 인생이라 하며 비하하거나 하찮은 것으로 표현되었던 의미가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되어 진 지금 정말 소중하고 귀한 대접을 받을 만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네 삶도 사람도 어떤 상황이 되던 소중하고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끈질김으로 버텨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잡초가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여러 가지 멋지게 쓰임이 되며 귀한 존재로 새롭게 부각되듯이 우리들도 자신에게 맞는 특성을 찾아가며 삶의 꽃피우며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오늘 문득 공원에 피어있는 잡초를 보면서 삶에 대해 긍정의 전환을 해 본다.
첫댓글 하찮아 보이는 잡초에게도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있지요.
하물며 인간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구요
느낍니다. 강인한 생명력,
감사합니다
잡초- 제게는 싫은 대상이기도 해요
마당이며 농장이며 잡초란 잡초는 다 모여사는 듯 합니다
찌는 듯한 더위. 빼빼 말라가면서도 살아있는 모습은
가히 원망의 대상이기도 하지요.
잘 읽었습니다.
어머니 구천에 빌어/ 나 용 되어도/ 나 다시 구천에 빌어/ 풀 되리라//
흙 가까이 살다/ 죽음을 만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풀 되리라
--이생진 시인--
글을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이 납니다.
문득 올려다보고 살기보다 내려다 보고 살라던 엄마 말씀도 생각나고요....
감사드립니다.
'잡초의 전략'이라는 책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