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사론(統辭論)
박상천
주어와 서술어만 있으면 문장은 성립되지만 그것은 위기와 절정이 빠져버린 플롯같다. '그는 우두커니 그녀를 바라보았다.'라는 문장에서 부사어 '우두커니'와 목적어 '그녀를' 제외해버려도 '그는 바라보았다.'는 문장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그는 바라보았다.'는 행위가 뭐 그리 중요한가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나 서술어가 아니라 차라리 부사어가 아닐까 주어와 서술어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에는 눈물도 보이지 않고 가슴 설레임도 없고 한바탕 웃음도 없고 고뇌도 없다. 우리 삶은 그처럼 결말만 있는 플롯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힘없이 밥을 먹었다.'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밥을 먹은 사실이 아니라 '힘없이' 먹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주어와 서술어만으로도 이루어지지만 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 - 시집,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문학아카데미, 1997)
박상천 프로필 전남 여수 출생. 한양대학교 국문과(학사), 동국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람을 찾기까지>(1984), <말없이 보낸 겨울 하루>(1988),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1997), <낮술 한 잔을 권하다>(2013) 등, 1998년 한국시인협회상, 2005년 한국시문학상 등을 수상.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무처장, 학장, 부총장을 역임, 2020년 8월 명예교수
[감상] 박상천 시인의 시, ‘통사론‘을 읽으면 친절하게 문학개론 수업을 했던 목월을 빼닮은 제자의 강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문장이 주어와 서술어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 ’구부정한 어깨’를 가지고 학교 언덕길을 오르시던 스승의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오히려 최고의 문장은 ‘위기와 절정’, 그리고 ‘눈물과 가슴 설레임, 한바탕 웃음, 고뇌’와 같은 ‘삶의 부사어’가 적당히 섞여 있어야 된다는 것을 시인은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대강(大綱)이 완벽한 문장을 완성해 본들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되묻는 시 속의 질문은, 바로 자신에게 하는 자문(自問)입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몇 권되지 않는 시집 중에서 2001에 발간된 그의 <한일대역 박상천 시집>은 큰 의미가 있는 시집입니다. 시인의 어머니께서 아들의 시를 틈틈이 일본어로 번역한 시들을 모아, 정식으로 일본에 있는 시인에게 감수까지 받아 발간된 시집이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어를 배우고 또 평생 교사로 학생을 가르쳤던 어머니(2001년 작고, 故 이환희 여사, 전 전라남도 교육위원, 전 여수 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는 초등학생 때부터 시적인 재능이 있는 아들을 알아보고 그 방면으로 많은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시골집 외따로 떨어져 있는 변소 앞 벽면에 국내외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직접 써 놓고 읽도록 한다든지, 아들의 동시를 모아 초등학생 때 동시집을 발간해준다든지 하는 특별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송홧가루가 흩날리는 때가 되면 ‘역사는 주어와 서술어만으로도 이루어지지만/ 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는 귀한 가르침을 줬던 스승 목월과 함께 어머니가 시인에게는 늘 생각이 나는 분들임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무렵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한 사람 더 늘어났습니다. 안타깝게도 2013년 마지막 시집이 나오기 하루 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인은 이 시집을 끝내 보지 못한 아내의 관 속에 시집을 넣어주면서 눈물을 참 많이도 흘렸습니다. 그가 아내를 생각하면서 쓴 최근의 시를 읽으면 옛 스승에게 끝내 하지 못하고 남겨 두었던 삶의 질문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힌트가 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가끔 함께 장을 보는 날이면 자신은 꽤 괜찮은 남편으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시인, 그러나 막상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후 ‘이제야 알았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시인의 목소리에서 스승에게 질문하고 듣지 못했던 그 답을 대신 아내가 알려주어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듯 들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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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통사론> 새로운 시 새로이 감상합니다.
부사어와 목적어가 빠지면 마치 속 빈 강정 같다는 생각입니다.
새로운 관점에서 새롭게 감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