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해삼 문병
“예, 그런데 그 고딩이들이 전부 헬멧을 쓰고 있었고, 몇 놈은 쇠파이프도 들고 있었습니다.”
파사석탑 도둑질 책임자가 변명을 늘어놓았다.
“쇠파이프요? 오토바이 배달하는 놈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다닌단 말이요?”
행동대장 쌍칼이 무슨 같지도 않은 소릴 하느냐는 듯 따져 물었다.
“아마 어방배달 깃발 꽂이를 뽑아 들고 온 것 같습니다. 그러고, 그 도망쳤다 다시 온 놈은 잭나이프를 꺼내 들고 설쳤고요.”
“뭐? 잭나이프를 꺼내 들었어? 삼방파 자식들이 이젠 잭나이프까지 갖고 다니나 보네요?”
쌍칼이 자기 주머니 속의 잭나이프 두 개를 의식하며 보스를 돌아보고 말했다.
쌍칼은 잭나이프 다루는 솜씨 하나로 싸움꾼 소리 들으며 장유파 행동대장까지 오른 사람이다.
“한 놈은 혁대 끝에 면도칼을 달았다며? 삼방파 자식들이 이제는 아예 칼로 중무장을 했구먼! 야, 쌍칼! 우리 애들도 이제부터 잭나이프 다루는 법 좀 가르쳐야 되겠다.”
이무계가 놀란 눈으로 쌍칼에게 지시했다.
“예, 보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파사석탑을 확보 못해서 어떡하죠?”
쌍칼이 수하들을 더 다그쳐 봤자, 나이 들어 막 대하기 불편한 책임자를 문책하기는 어렵겠다 싶은지, 자기들과 장물을 거래하기로 한 상대편 걱정을 하며 보스의 눈치를 살폈다.
만약 그 거래의 무산으로 장유파가 큰 손해를 본다면, 그 책임을 물어 책임자의 권한을 축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파사석탑 도둑질도 자기 대신에 보스가 신임하는 노땅 책임자를 내보내서 잔뜩 불만에 싸여있던 쌍칼이다.
조직 내에 이런 불편한 관계에 있는 중간 간부들이 있으면, 그 아래 딸린 수하들만 고달프기 마련이다. 언젠가는 중요한 시점에 그 불합리한 구조가 곪아 터져, 조직에 큰 손실을 끼치게 될 것이다.
“음… 오늘 나하고 진주에 가서 직접 만나보고 양해를 구하자!”
이무계가 잠시 고민하더니 쌍칼에게 지시했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는 똘똘하고 젊은 행동대장밖에 없는 모양이다.
“예, 알겠습니다. 제가 진주에 전화 걸어서 시간약속 잡겠습니다.”
쌍칼이 대답하고 뒤로 물러서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책임자 옆에 꿇어앉아 있던 수하 한 놈이 책임자를 힐끔거리며 뭔가를 얘기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수로왕비릉 정문 뒤에서 해삼을 둘러싸고 입씨름하던 네 놈들 중에 한 놈이다.
그때 해삼이 자기는 이글스파라고 말해서 들어보지도 못한 조직 이름이라 또라이라고 놀렸는데, 혁대 끝에 달린 면도날에 손이 베이고서야 만만한 놈이 아니고 어느 조직원이 분명하다 싶어서 나중에 자기 책임자에게 그 내용을 얘기했던 것이다.
지금 덩치와 떡대가 그 두 놈이 김해 삼방파 소속이라고 보고하는 소리를 듣자, 자기 책임자에게 그 놈들이 삼방파가 아니고 이글스파라는 사실을 보고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노땅 책임자는 무슨 이유인지 수하에게 도리질로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눈짓을 보내며 인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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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김해 수로왕비릉에서 서남쪽으로 2km 거리에 있는 김해중앙병원의 해삼이 입원한 병실.
이 병원은 의사가 55명인데 그중에 전문의만 52명이나 되는 매우 큰 종합병원이다.
“얼굴이 엉망이네! 몸은 크게 다친 데 없나?”
문도가 4인용 병실의 창문 쪽 침상에 기대앉은 해삼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들여다보고 물었다.
“예, 몸은 크게 다친 데 없습니다. 그 자식들 발길질이 영 신통치 않던데요. 흐흐.”
얼굴을 주로 맞아서 반창고 투성이인 해삼이 퉁퉁 부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그래도 웃었다.
“해삼 씨 맷집이 대단한 모양입니다. 하하.”
삼봉이 해삼의 용맹함을 추켜세워주며 격려했다.
“그만하기 다행이다. 그런데 멍게 너는 어째 말짱하냐?”
문도가 다친 데 하나 없어 보이는 멍게를 수상한 눈으로 훑어봤다.
“예, 해삼 형님이 혁대 풀어서 쫓아오는 놈들 막는 동안에 저는 담장을 넘어와서 그렇습니다.”
멍게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 맞아. 네가 밖에서 어방배달 직원 만나서 에스오에스 치게 했지? 잘했다, 그냥 안에 있었으면 둘 다 붙잡혀서 뒈지게 터졌을 거야.”
문도가 잘했다며 멍게의 어깨를 토닥거려 줬다.
문도와 삼봉은 어제저녁 기장 대변항 북쪽 임랑해수욕장 바닷가 방갈로에서 친구인 이정훈과 만나 즐겁게 식사하다가 어방배달 사장 박강철에게서 긴급한 전화를 받았었다.
멍게가 수로왕비릉 앞에서 파사석탑 도굴꾼들과 싸우는데, 마침 오토바이 배달하던 자기 직원이 만나서 동생이 맞느냐는 전화가 왔고, 어방배달 직원들에게 긴급출동 지시를 내렸다는 내용이었다.
대충 통화를 마친 문도가 급히 해삼과 멍게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싸우는 중인지 받지 않아서, 식사를 중단하고 부랴부랴 김해로 돌아왔다.
그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되어 해삼은 병원응급실에 실려간 뒤였고, 야간이라 면회가 되지 않아 오늘 아침에 삼봉과 함께 문병하러 온 것이다.
“어방배달 직원들은 몇 명이나 왔어요?”
삼봉은 그것이 더 궁금한지 멍게에게 물었다.
“전부 열여섯 명이나 몰려왔어요. 밖에 도둑놈 두 명이 있었는데 야구방망이는 들었지만 어방배달 직원들이 오토바이 탄 채로 들이받으니까, 한 놈은 피하다가 제풀에 고꾸라지고 다른 놈은 트럭으로 도망쳤어요. 히히.”
“하하, 볼만했겠는데요? 그럼 왕비릉 안으로는 몇 명이 쳐들어간 거예요?”
“짱구까지 열한 명이 나를 따라왔는데, 전부 다 헬멧 썼고 오토바이 뒤에 깃발 꽂는 쇠파이프 빼든 애들도 있었어요. 나도 잭나이프 꺼내 들고 설치니까, 그 도둑놈들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해삼 형님 풀어주고 도망쳤어요.”
“그 놈들은 몇 명이나 되는데?”
문도가 도굴꾼 숫자를 물어봤다.
“처음에 우리를 쫓아와서 해삼 형님 구타한 놈들이 네 놈이었고, 제가 다시 담장 넘어가니까 세 놈이 더 오고 있었어요. 뒤쪽에 두어 놈 더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방망이 말고 다른 연장은 안 쓰더냐?”
문도가 그 놈들이 혹시 조폭은 아닐까 싶어서 맞은편 침상에 들리지 않을 만큼 나지막한 소리로 물어봤다.
“예, 제가 잭나이프 꺼내 든 거 보고 많이 당황하는 것 같았습니다.”
멍게가 눈치채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으쓱거리고 히죽이 웃었다.
“그렇다면 그 놈들이 조직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지부장님.”
삼봉이 그 정도 수준이면 단순한 도굴 범죄집단이지 조직폭력배는 아니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말했다.
“글쎄. 여기는 김해라 조직원들이 아직 칼 같은 연장을 함부로 휴대하지 않는지도 모르지.”
문도 생각에는 아무래도 어느 조직폭력배 소행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주변 침상에 다른 입원환자들이 세 명이나 있어서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해삼의 팔다리만 조금 주물러줬다.
“여~ 배달 부산 지부장님께서 먼저 오셨네?”
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문도의 죽마고우인 어방배달 박강철 사장이 들어왔다. 뒤에는 어젯밤 멍게를 만나서 강철에게 전화 걸었던 짱구도 꾸러미를 들고 들어섰다.
“아, 박 사장! 어서 와라.”
문도가 강철을 반갑게 맞으며 뒤따라온 고등학생 짱구에게도 눈길을 주었다.
“안녕하셨어요?”
삼봉과 멍게가 동시에 강철에게 허리 꺾어 인사를 올렸다.
“이런! 해삼 아우님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이는데?”
강철이 해삼의 손을 잡으며 싱긋 웃었다.
“아이구! 형님, 사장님께 이런 모습 보여서 죄송합니다.”
해삼이 부르튼 입술을 씰룩이며 미안하고 감사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어방배달 직원들을 보내 자기를 위험한 상태에서 구해준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다.
“중상은 아닌가 보네? 일반입원실에 있는 거 보니까.”
강철이 해삼의 손을 잡은 채 문도와 삼봉, 멍게를 둘러보며 물었다.
“응, 얼굴만 집중적으로 맞은 모양이야. 다른 데는 타박상 정도이고.”
문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게 다 네 덕분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짱구 말로는 해삼한테 네 놈이나 붙어있더라 던데, 역시 해삼 아우 맷집이 대단한 모양이다. 흐흐.”
강철이 해삼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읔, 으으. 예, 그렇습니다, 형님! 흐흐.”
하필 다친 부위를 건드려서 통증에 울상을 지으면서도 해삼이 빙긋 웃었다.
그 사이 멍게는 짱구의 손을 잡고 반가워 죽겠다는 듯 싱글벙글 웃고 있다. 마침 그때 짱구가 오토바이 타고 나타나지 않았다면, 멍게는 물론이고 해삼도 지금 어찌 되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한마디로 짱구는 하늘이 보낸 구원의 천사다.
“아, 이 친구가 바로 그 짱구라는 학생인가 보네?”
문도가 웃으며 짱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예, 짱구 왕재수라 합니다.”
짱구가 얼른 문도의 손을 잡고 팔목을 감싸며 허리 굽혀 예의 있게 인사를 올렸다. 강철에게서 대충 문도의 얘기를 들은 모양이다.
“그래, 나는 고문도라 해. 용감하게 나서서 우리 아우들을 도와줘서 너무 고맙다.”
문도가 한 손으로 짱구의 어깨를 툭툭 치며 기특하다는 눈짓으로 감사를 표시했다.
“코모도,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할래?”
강철이 병실 안의 다른 환자들을 의식하며 문도에게 눈짓을 했다. 뭔가 비밀스러운 얘기를 조용히 하자는 눈치다.
“응, 그래. 너희들 여기서 얘기 나누고 있어라.”
문도가 아우들에게 말하고 강철을 따라 병실 밖으로 나왔다.
병원 휴게실 한적한 곳으로 온 강철이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도둑놈들이 아무래도 장유파인 것 같아!”
“뭐? 장유파라고?”
장유파는 부산 유태파와 손을 잡고 문도와 강철이 초등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있던 고아원 선배 최성덕의 삼방파를 치려고 벼르고 있는 조폭이다.
“응. 우리 애들 중에 장유면에서 살던 녀석이 있는데, 트럭 타고 도망친 놈이 틀림없이 자기 동네 출신인 것 같대.”
“아, 그래? 장유파 자식들이 문화재 도둑질까지 해서 돈을 버는 모양이구나. 정말 치사한 새끼들이네!”
“마약 사려면 큰돈이 필요하니까 이것저것 안 가리고 긁어모으는 거겠지. 하여튼 이번에 파사석탑 도둑질을 막아서 다행이다. 해삼과 멍게가 거기 안 갔으면 장유파 자식들 수억 원은 챙겼을 거야.”
강철이 오히려 문도에게 고마워하는 눈치다.
“아, 참. 엊저녁에 내가 대학 때 친구를 만났거든. 정훈이라고, 너도 알지? 나하고 해경 의경 동기인 녀석 말이야.”
“아, 그래. 기장인가 어디서 해경에 근무한다고 전에 네가 말했던 친구 말이지? 그런데?”
“응, 요즘은 해경이 마약도 단속하는 모양이야. 그 친구 말로, 장유파가 진주에 있는 이병율파 하고 긴밀한 관계에 있다더라.”
“그래? 진주 이병율파는 마약도 취급하는 것 같던데! 그러면 장유파 자식들이 유태파 외에 이병율파에서도 마약을 구입하려는 모양이구나!”
강철이 놀란 눈으로 문도를 빤히 쳐다봤다.
“그런 가봐. 그러다 보면 나중에 성덕 형 삼방파 공격할 때 함께 힘을 합칠 수도 있지 않겠냐? 진주라도 차 타고 오면 한 시간 거리라며?”
“그렇지! 이병율파는 진주에서도 알아주는 조폭이야. 조직원도 한 30명은 된다는 것 같더라. 만약 그 놈들이 장유파와 손잡으면 골치 아파진다. 이거 정말 큰일이네!”
강철의 얼굴 표정이 걱정으로 가득 찼다.
“혹시 이번에 파사석탑을 도둑질해서 장물아비한테 판 거금으로 이병율파로부터 마약을 사려던 게 아닐까?”
문도 생각에 틀림없다 싶다.
“그럴지도 모르지. 여기 김해는 가야국이 있던 데라 예전부터 무덤에서 도굴한 문화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장물아비들이 많았어. 그 장물아비만 알아내면, 이 참에 장유파 새끼들 폭삭 내려 앉힐 수 있겠는데 말이야. 그지?”
강철이 희망 어린 얼굴로 문도를 쳐다보고 웃었다.
“그래, 그렇지. 그런데 그 장물아비들이 꼭 김해에 살고 있는 놈들이 아닐지도 모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