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이 매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엄동설한 추위를 이겨내고 꽃을 피운다고 해서 불굴의 선비정신을 표방하며 꽃 자체가 품격이 있고 볼품없는 가지와 대비되어 꽃이 더욱 기품있게 보이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은은한 향기 또한 빼 놓을 수는 없겠지요.
인적없는 길을 지나다 보면 은은한 향기 있어 눈 크게 찾으면 향기는 사라지고 불현듯 기품 뽐내는 꽃 한송이 나타나니 암향(暗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지요!
우리나라에서 빨리 피는 매화로는 거제의 구조라 초등학교 춘당매가 가장 먼저 피어나고, 통도사 자장매가 피고 나면 전국적으로 이 곳 저 곳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생각상으로는 전라도쪽이 경상도쪽 보다 빨리 피어날 것 같은 데 경상도쪽에서 지고 한참 후에 피어나니 기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김용택 시인이 거주하는 섬진강가의 구담마을의 매화는 경상도 지방의 벚꽃이 지고나서야 피기 시작합니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탐매(探梅) 행위를 통해 고귀한 기품을 닮아 가려고 했겠지요. 또한 다른 꽃 보다 먼저 핀다고 화괴(花魁)라는 별명도 갖고 있습니다. 마치 전장에서 앞장 서서 적들을 향해 돌진하는 불의에 맞서는 고결한 선비의 기상과도 닮았다고 그런 별명을 지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복수초같은 꽃은 매화보다 빨리 피지만 풀종류이니 논외로 합니다
춘당매나 자장매 보다 빨리 피는 매화가 있지만 심은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나무들이라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들보다는 품격이 덜합니다. 입춘 전후가 되면 해운대 신시가지를 관통해 흐르는 춘천(春川)가에는 신시가지 조성때 심은 매화가 몇 그루 있어 봄 소식을 알리며, 선비를 닮으려고 하는 멍충이들을 유혹합니다. 유엔공원묘지의 홍매화 두그루가 뒤를 잇습니다.
입춘도 지나고 해서 현대판 멍충이가 되기로 마음 먹고 십여년 살았던 해운대 신시가지 주변을 돌아 봅니다.
매화만 찾아보기는 너무 심심해 신곡산 전망대에서 송정바다 한번 바라보고
해마루에 올라 청사포 바다 구경을 해 봅니다. 해마루 입구에서 계단을 170여개를 오르면 누리마루 조성할 때 지었던 정자를 만나게 되고 청사포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멋진 조망을 만나게 됩니다.
예전에는 주변의 바다경관과 달맞이의 알록달록한 작은 집이 만들어 내는 경관이 외국 휴양지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는 데 고층 아파트 때문에 이질적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예쁜 청사포 등대, 흰등대는 배타고 고기잡으러 가는 남편을 배웅하는 곳이고, 붉은 등대는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등대라고 하는 말이 있다고는 하는 데 말하기 좋아하는 백수들의 얘기겠죠 ^^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바다, 오륙도, 태종대, 이기대 ... 언제나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인 것 같습니다.
점점이 떠 있는 배들은 남아 있는 앞날의 소망 정도나 될까요?
장산역에 있는 가끔씩 가던 냉면집에 들렀더니만 폐업하고 없어져 버렸습니다. 장사가 잘되지는 않았지만 십여년 무던히도 잘 견디더니만 이번 코로나로 결국 폐업한 모양입니다. 이제는 새롭게 알아가는 가게나 주인 보다는 잊혀지는 가게나 주인들이 많아져 섭섭한 마음 금할 수가 없습니다.
춘천가에 도착하니 예년과 같이 꽃망울을 터뜨린 넘들이 보입니다. 올 겨울 한파가 심해 늦을까 걱정했는 데 변함없어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망원렌즈가 있었으면 좀 더 예쁘게 남길 수 있었을텐 데 ...
해운대 신시가지에서 십여년 살 때 이 곳에는 느티나무 한 그루 있어 봄이면 생명의 연초록 잎으로 얼마나 멋진 모습 보여 주던 지 그 모습 바라보며 삶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는 데 ... 무슨 이유로인지 베어져 버렸고, 이제는 베어진 흔적도 풀에 덮혀 그 나무가 피워 올렸던 연초록 삶의 향기나 그 이파리 바라보며 삶의 의미를 알아가던 그 누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사라져 버린 무상한 세월
경계(境界)의 하루
또하루, 매일의 의미가 흐려져만 간다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보냈던 희망과 절망, 그리고 마지막 남아있던 끄적이는 일조차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고희 향하는, 푸른 하늘 텅 비어버린 어느날 허수아비 가슴처럼 푸석하게 변했다 의미와 무의미가 뒤섞여 혼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