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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
오 상 원
좁은 골목길이 비좁은 듯이 절름거리며 걸어 들어가는 ‘짜리’ 의 넓은 어깻머리는 비에 함빡 젖어 있었다. 골목길은 흙탕으로 발을 옮길 때마다 절버덕거린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 묵묵히 짜리의 뒤를 따라 걸었다. 좀처럼 불쾌한 기분은 내리는 비와 함께 가라앉지가 않았다.
골목 양쪽에는 판자나 보르바꼬¹ 쪼각으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집들이 툭 치면 나가자빠질 듯이 우중충하게 꽉 차 있었다. 이윽고 짜리는 메뉴통으로 둘러친 조그만 집으로 들어갔다. 안은 몹시 비좁았다. 한쪽 귀퉁이에서는 시커멓게 때가 오른 가마 속에서 싯누런 가마부꾸²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천장에서 처지는 빗방울이 특특 그 가마부꾸가 끓는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빗물은 사방에서 이렇게 처지고 있었다. 그는 자기 손등에 떨어진 빗방울을 쳐다보았다. 그 빗방울은 먼지 낀 메뉴 껍질을 통하여 오느라고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옷깃에다 손등을 쓱쓱 문질렀다.
그는 몹시 불쾌하였다. 이 불쾌한 감정은 좀처럼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는 조금 전에 받은 수모를 삭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짜리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술이나 먹고 그러한 감정을 잊어보고자 나를 이 선술집으로 끌고 왔는지도 모른다.
그는 분했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참으로 분한 노릇이었다. 밖에는 철 늦은 비가 아직껏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옷은 비에 함빡 젖어 있었다. 그는 커다란 대접에 가득 넘치는 막걸리를 그대로. 죽 들이켰다. 텁텁한 누룩내가 확 내장으로 스미자 그는 역겨움을 느꼈으나 울컥 올라오는 술을 다시 꿀꺽 삼켰다. 그리고 손등에 떨어진 빗방울을 멋쩍게 옷깃에 문질렀다.
그가 짜리를 알게 된 것은 약 일주일 전 어느 철도 굴다리 밑에서였다. 그날도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는 허기에 지쳐 거리를 배회하다 그 굴다리 밑으로 비를 피해 들어갔었다. 거기에는 어린 거지 떼와 막벌이꾼들이 여남은 모여 모닥불을 피워놓고 쭈그리고들 있었다. 거기에 짜리가 있었던 것이다.
짜리는 그를 보자 엄지손가락을 세위 자기 쪽을 가리키며 오라는 시늉을 했다. 그는 그에게로 가지 않고 입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자 절름거리며 가까이 오더니 손가락으로 그의 배를 꾹 찌르며
“어디서 온 치야?”
하고 한쪽 눈을 약간 지켜올려 보았다. 육중한 몸집에 터분한 모습이 걸걸해 보였다. 잠시 후 짜리는 다시 그의 배를 손가락으로 꾹꾹 찔렀다. 대답을 하라는 뜻이었다. 위협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친근미를 띠고 있었다. 그는 다만 입맛을 한 번 멋쩍게 다셔 보였다.
“제대 군인이야?”
짜리가 그의 군복 차림을 위아래로 힐긋 훑어가며 또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하였다. 짜리는 알았다는 듯이 자기 혼자 고개를 끄떡하고 눈을 깜작거리며 씩 웃고 자기를 따라오라는 몸짓과 함께 모닥불 쪽으로 절름거리며 돌아갔다. 지금도 그는 그때의 짜리의 뒷모습, 타오르는 모닥불에 육중한 어두운 그림자를 들먹이던 그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짜리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 굴다리 밑에 서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다만 그가 제대 군인이라는 것과 무릎 위에 부상을 당한 흉한 총탄 자국이 커다랗게 있다는 것을 아는 정도이었다.
짜리는 필요시에는 상대에 대하여 그 부상당한 흉터를 시위하곤 하였다. 특히 불량패와 감정이 어긋쳤을 때는 낡은 군복 바지를 탁 걷어 올려붙이고 그 흉한 상처를 손바닥으로 한 번 보란 듯이 탁 치고는 올 테면 오란 듯이 위엄 있게 상대를 한 번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느 전투에서 어떻게 부상을 입었는지는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짜리는 다 낡아빠진 군복을 걸치고 있었다. 짜리는 결코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자연 짜리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가 절름거린다는 데서 어느덧 서로 간에 짜리라고 불리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가 제대 군인이라고 알려진 것도 결코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태도에 의하여 추측된 것뿐이었다.
짜리를 알게 된 순간부터 그는 속으로부터 자기도 모르게 끌리는 인력(引力)을 느꼈다. 비단 자기와 같은 제대 군인이란 데서만이 아니었다. 그는 짜리와 무엇이건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꼈으나 짜리는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술만 마셨다. 그는 처음에는 무엇인가가 속에서부터 자꾸 터져 나오는 것만 같았으나 술기운이 적이 풀리기 시작하자 조금 속이 가라앉았다. 침울한 감정은 훅 얼굴로 퍼져올라오는 술기와 함께 휴― 하고 밖으로 터져 나오기도 하였다.
잠시 후 그는 어깨 위에 짜리의 손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아까는 불쾌했었지?”
“……”
그는 대답 대신 술기에 불그레 타오르는 짜리의 시선을 다시 한번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짜리는 한 눈을 찔끔해 보이고 비죽이 웃었다.
“그깟 것 가지고 신경을 써 뭐 해. 세상이란 힘들게 생각하면 살기가 더욱 힘들어 뵈고 그깟 것 하고 쉽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야.”
그러고 나서 짜리는 또 꿀꺽꿀꺽 목젖을 울리며 술을 들이켜고 손가락으로 깍두기를 하나 집어 입에다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그러나 그는 짜리의 이러한 태도에 그냥 수긍할 수가 없었다. 수긍하기에는 아직도 자기 감정이 너무도 벅찼다. 침울하게 술기에 젖어가던 그의 눈앞에 다시금 어두운 그늘이 마주 섰다. 그는 짜리를 다시 한 번 마주 보았다. 그처럼 치욕을 당하고도 어쩌면 이처럼 짜리는 태연할 수 있는 것일까. 그의 얼굴 위에 감정의 어두운 동요가 잠시 물결쳐 지나갔다. 그러나 짜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어깨를 뚜드리며 술을 독촉하는 것이었다.
그는 술을 또 꿀꺽 삼켰다. 마시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삼키는 것이었다.
밖에는 비 내리는 소리가 더욱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사방에서 처지는 빗물도 더 심하여갔다. 이들 낡은 군복 위에 빗물이 처질 때마다 누렇게 빛깔이 번지어갔다.
술기가 두 마음을 어느 정도 흥건히 풀어갈 즈음
“여봐.”
하고 짜리가 입을 열었다.
“응―.”
그는 무겁게 입속에서 대답하였다.
“계집을 좀 사봤어?”
“……”
그는 대답 대신 쿡 속으로 웃음을 그냥 죽였다. 짜리는 비죽이 웃으며 한 눈을 깜작거렸다.
“사람 죽여 봤나?”
“일선엔 육 년 복무야.”
“멀리서 아니고 말이야. 바로 눈앞에 놓고 상대의 두 눈을 마주보면서 콱 이렇게 죽여봤나 말이야.”
하면서 짜리는 지금 바로 눈앞에 사람을 놓고 그자의 두 눈을 마주 보면서 찌르는 것처럼 콱 손가락을 앞으로 세워 보였다. 그리고 긴장이 지나간 한순간 쑥 빼는 시늉을 해 보였다.
“이렇게 말이야.”
짜리는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하고 그를 보았다. 그 표정은 태연하게 아무런 동요의 빛도 없었다. 그는 이러한 짜리의 태도에 위압된 듯 훔칠하고 몸을 떨었다. 은근히 체내로 스며가던 술기가 그 순간 어디론지 다 날아가버리고 싸늘한 바람이 가슴을 확 스치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이러한 그의 감정을 눈치 챈 듯 짜리는 벌쭉 웃고
“자, 술.”
하고 잔을 가리켰다. 그는 술을 같이 쭉 들었다.
“지금 몇 살이야?”
“스물다섯.”
“아직 멀었군. 서른이 댓 넘어야 알 때가 되지. 아직 세상 살아가려면 멀었어. 고향이 어디지?”
“고향?”
그 순간 그의 얼굴 위에 한 줄기 어둠이 스치고 지나갔다.
“고향 이야긴 묻지 말아줘.”
“왜?”
의문에 찬 짜리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로 쏟아졌다.
“하고 싶지 않아.”
“불우 했군.”
“응.”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다 죽었어. 어머니도 아버지도 형도 다 맞아 죽었어. 고향엔 가고 싶지도 않아. 또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흐응.”
짜리는 다만 그랬느냐는 표정뿐 아무런 동정의 빛도 없었다.
“전쟁이 지나간 뒷맛은 다 그런 거지.”
그러고 나서 짜리는 부상당한 무릎이 저린 듯 잡시 주물렀다.
“왜?”
“제철이 되면 좋지 않아. 더욱이 비나 오는 날이면.”
“주물러 주까.”
“괜찮아 술이나 마셔.”
“어디서 부상당했어?”
“부상?”
“어느 전투에서 그랬나 말이 야?”
“……”
짜리는 그냥 멋쩍게 웃고 술잔을 기울였다.
“어느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면 제일 좋을까. 피의 능선? 백마고지? 철의 삼각 정도로 해둘까…… 그쯤하면 좀 영웅적이지. 그러나 얼떨결에 아무 데서나 한 방 얻어맞았다고 생각해도 괜찮아. 그러면 바보가 되나? 응?”
그리고 짜리는 술 트림을 꺽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별 흥이 없네. 그런데 언제 제대했어?”
“약 보름 되지.”
이렇게 대답은 하면서도 짜리의 그러한 태도에 그는 약간 마음이 좋지 않았다.
“흐음.”
짜리는 또 다만 그랬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부상당한 곳은 없어?”
“왜 없어. 여섯 번이나 당했어. 그러나 정통을 안 당한 거지. 아직도 내 허리엔 파편이 이만한 게 들어백혀 있어.”
하고 그는 새끼손가락 중간쯤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수술 안 했어?”
“수술했지만 빼내지 못한 걸 어떡해. 그러니 생각하면 아까 그런 자식을 그냥 둔 게 분해 죽겠어. 사실 억울해. 억울하지 않아. 그런 자식들한테 이용을 당했으니 말이야. 굶어 죽으면 죽었지 제기 랄!”
그는 이렇게 말하는 순간 불쾌한 생각이 다시 치밀어 올라 주먹을 비벼 쥐었다.
“사실 나는 네가 아니었다면 그 자식을 그 자리에서 그냥 한주먹에 때려눕혔을 거야. 사실 그때 나는 네가 원망스러웠어.”
짜리는 이렇게 말하는 그의 시선과 마주치자 고개를 떨구며 그냥 술잔을 들이켰다.
오후가 훨씬 지나서 철 늦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저녁이 가까운 무렵이 되어서도 그칠 줄 모르고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흙탕물이 발을 옮길 때마다 저벅거리는 한길에는 이미 인적마저 끊어진 지 오래였다. 어둠침침한 굴다리 밑에는 어수룩한 그림자들이 이미 웅긋중긋 모여 쭈그리고들 있었다.
짜리와 그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어린 거지 놈들이 시시덕거리는 잡담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담벽에는 빗물이 줄을 잇고 줄줄 흘러내리고 금이 간 천장에서는 빗물이 뚝뚝 처지고 있었다.
그때 레인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깊숙이 내려 쓴 한 어두운 그림자가 이 굴다리 밑에 나타났다. 이 굴다리 밑으로서는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는 행인이었다. 짜리는 그 어두운 그림자를 보자 허리를 일으켰다. 그리고 곁에 앉아 있던 그에게 한 눈을 찔끔해 보이고 그 그림자 쪽으로 절름거리며 천천히 다가갔다. 어두운 그림자는 짜리를 보자 입구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 뭐라고 잠시 서로 말을 주고받은 다음 짜리가 그에게 향하여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자기 쪽으로 오라는 눈짓을 했다. 그는 성큼성큼 짜리에게로 갔다.
그 어두운 그림자는 곧 어둠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그 그림자가 아주 사라져버린 다음 짜리는 늘 하는 것처럼 그에게로 바짝 다가서며 그의 배를 손가락 끝으로 꾹꾹 찔렀다. 그리고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뜻있게 한 눈을 찔끔하였다. 짜리는 다시 오라는 눈짓을 하고 앞서 걷기 시작하였다.
비는 여태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비를 그대로 맞아가며 한참 철둑길을 걸었다. 짧은 철교 가까이에 이르자 짜리는 잠시 머물러 서서 앞을 지켰다.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 내리는 빗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전방을 지키고 섰던 짜리는 구더러 둑길을 내려서라고 손짓하였다. 그는 비에 축축이 젖은 잔디풀에 미끄러지면서 둑길을 내려섰다. 짜리도 곧 뒤따라 내려왔다. 그들은 잠시 전신주 곁에 서서 비를 맞았다.
멀리서 기적 소리가 울리고 점점 돌진해오는 기차의 고동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커다란 괴물처럼 기관차의 전면이 솟아오르고 세찬 바람과 함께 울리면서 그들 앞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기차가 다 지나가고 난 다음에도 땅을 울리는 고동 소리가 그들 발밑에서 잠시 울리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둑길로 올라갔다. 그리고 또 잠시 걸었다. 벌건 신호등이 멀리 보였다. 역구내(驛區內) 에 가까이 온 모양이었다. 그들은 신호등 앞을 곧 지나갔다. 구내에 들어서자 거기에는 화차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화차 사이로 잠시 걷다가 화차 밑으로 기어서 다음 화차 사이로 빠졌다.
한참 후에야 그들은 플랫폼에 다다랐다. 플랫폼에 있는 여객 대기실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하나 움직였다. 그들은 빈 화차 칸에 올라 잠시 비를 피했다. 짜리는 대기실에 줄곧 눈 주고 있었다. 대기실 안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둬 번 움직이고 이윽고 그 그림자가 밖으로 나오자 짜리는 화차 칸에서 플랫폼으로 내려섰다. 그도 곧 뒤따라 내려섰다. 그들은 그 그림자 가까이로 갔다. 허수룩한 인부였다. 인부는 짜리가 손짓을 하자 여객 대기실에서 무엇을 적재한 조그만 구루마를 하나 끌어내었다. 짜리는 그더러 구루마를 뒤서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는 약 십 미터쯤 앞서 걷기 시작하였다. 짜리가 손짓을 하면 그들은 머물러 섰다. 다시 신호가 오면 걷곤 하였다.
비는 여전히 그대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어디로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화차 사이를 건넜다. 다시 건너고 하며 뒤로 옆으로 방향을 여러 번 바꾸었다. 그는 어디를 어떻게 걷고 있는지마저 몰랐다. 그러나 짜리는 조금도 주저 없이 한결같이 앞에서 걷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이 완전히 화차 사이를 빠져나왔을 때에는 낡은 커다란 창고 곁에 있었다. 짜리는 잠깐 그들을 그곳에 머무르게 한 다음 창고 뒤로 사라졌다. 얼마 후 짜리는 창고 앞으로 나타나서 그들에게 손짓을 하였다. 그들은 곧 구루마를 끌고 나갔다. 몇 걸음 안 가서 그들은 철조망을 발견하였고 이미 뚫어진 쪽으로 구루마를 아무런 지장 없이 끌어내었다.
역구내는 이처럼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철조망 밖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한 그림자가 나타나 그들의 길을 제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뒤미처 나타난 짜리가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한 번 곁눈질을 하자 그림자는 손을 가벼이 흔들어 보이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또 걷기 시작하였다. 한길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불쑥 이번에는 세 그림자가 그들을 에워쌌다. 항시 이 주위에는 날치기 떼나 또는 공갈패들이 날뛰고 있는 것이다.
“뭐요?”
어둠 속에서 그중 한 놈이 물었다. 짜리는 잠시 그들을 하나하나 노려보고 있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하나같이 이상한 모자들을 눌러쓰고 있었다. :
“장사 보따리요.”
짜리가 태연히 대답하였다.
전지가 번쩍하고 켜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걸 모르겠소?”
하는 음성과 함께 짜리는 이미 무릎을 걷어 올리고 있었다. 전짓불 빛에 드러내놓은 짜리의 무릎에는 움푹 패어 들어간 흉악한 총탄 자국 위에 무릎뼈가 괴이하게 툭 도드라져 있었다. 그들은 전지를 껐다. 그리고 슬금시 물러섰다.
잠시 후 그들은 큰길에 이르렀다. 어느 한 지점에 다다랐을 때 아까 그 레인코트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거기에는 이미 지프차가 한 대 불을 끄고 엔진을 건 채 대기하고 있었다. 물건은 곧 지프차에 실리었다. 레인코트의 그림자가 짜리와 마주 섰다. 무엇을 꺼내어 짜리의 손에 쥐여주는 모양이었다.
“얼마야?”
“예상보다 좀 적어졌어.”
“왜?”
“다음번에 더 생각하지.”
“번번이 다음번이군. 오늘은 한 사람 더 늘었단 것도 알아야지.’’
“저치도……?”
“물론.”
짧게 서로 주고받는 음성이었다.
그 순간 그는 이들 대화 속에서 자기가 악용당하고 있는 것을 알았고 동시에 일종의 모욕감에 뒤따르는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이미 지프차는 소리도 없이 어둠 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결국 싸움터에서 받은 이 상처를 지금에 와서는 이처럼 비굴하게 팔아먹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잠시 자기 자신에 대한 저주보다도 이처럼 당해야 했던 모욕감에 대하여 울적 준노가 솟아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비에 젖은 다 낡아빠진 작업복을 걷어 올리고 그 흉한 상처를 드러내 보이던 짜리의 그때의 모양을 그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밖에는 점점 깊어가는 밤과 함께 여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머리 손등 할 것 없이 마구 터지는 빗물도 이제는 다 잊어버린 듯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짜리의 넓은 어깨 위에 마치 옛 전우처럼 손을 얹고 언제부터인가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지껄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직 아까 당한 그 불쾌한 일을 잊을 수가 없는 듯 말끝마다 그 이야기를 섞어가고 있었다.
“그런 새끼! 사실 우리가 싸운 것은 결코 그런 게 아니었거던. 중부 전선에서 겪은 일인데 격전 끝에 전우들이 다 죽고 단 세 놈이 남았을 때 우리는 마구 서로 부둥켜안고 목 놓아 울었어요. 엉엉 울었어. 고지를 끝까지 사수는 했지만 말이지.”
그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내 그때 얘기 더 할까.”
그는 술을 죽 들이켜고 턱으로 흘러내리는 술을 손등으로 쓱 문지르고 말을 이었다.
“구름이 무겁게 하늘을 덮고 이따금 빗방울마저 툭툭 처지던 음산한 밤이었어. 오늘 밤엔 틀림없이 놈들의 최후적인 발악이 있으리라고 누구나 예감이 갔어. 그렇지 않아도 좌익 전방 일부가 무너졌기 때문에 우리 쪽으로 우회하여 올 줄 알았지. 밤은 점점 깊어갔어. 한 발자국 눈앞도 잘 보이지 않을 만치 어둡고 침울한 밤이었거든. 새벽 두 시쯤 되었을까 할 때야 갑자기 눈앞이 벙긋하더니 총알이 마구 비 오듯 쏟아져오지 않아. 이크 왔구나, 하고 우리 쪽도 막 갈겼지. 자식들은 이 개 대대 병력인데 우리는 불과 일 개 소대란 말이야. 자꾸 옆에서들 쓰러지는 거야. 소대장이 죽었지. 선임 하사도 죽었지. 대대 본부에 응원을 청해도 할 수 없다지 않아. 어쨌든 내일 새벽 동이 틀 때까지 고지를 사수하라는 거지 뭐야. 우리 쪽은 자꾸 전투원이 줄어가는데 자식들의 공격은 점점 더 격화되지 않아. 우리의 화력이 여지없이 약화되는 것을 보자 총성이 좀 잦더니 자식들이 육박해오기 시작했어.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서 마구 들이갈겼지. 새벽까지. 아― 새벽까지라·…… 울고 싶뎌군. 수류탄을 닥치는 대로 산 밑으로 굴렸지. 굴러 내려가던 수류탄이 작렬할 때마다 기어오다가는 그냥 나가떨어지더군. 그야말로 악전고투였어. 우리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 전신에선 땀이 물 흐르듯 좍좍 흐르고 말이야. 그러노라니까 동녘이 훤히 트이기 시작하더군. 그러자 자식들의 공격이 딱 그치지 않아. 그때 남은 놈이라곤 불과 네 놈이었어. 그런데 그들의 공격이 딱 그치고 동녘이 뿌여니 트여오는 것을 보자 트여오는 동쪽을 향하고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서더니 그대로 털썩 쓰러졌어요. 가까이 급히 가보니 전신이 피투성이였어. 기관총수였거던. 그 순간까지 그는 그것을 모르고 악착 같이 기관총을 붙들고 갈겨대고 있었단 말이야. 그 친구는 점점 눈을 부릅떠가면서도 ‘동이 텄어. 동이…….’ 하고 중얼거리고 있지 않아. 얼마 있으니까 제트기들이 쏜살같이 날아오더군. 그 제트기들을 보았을 때 야ㅡ 이젠 됐구나 하고 우리는 셋이서 마구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어. 그 순간의 감격이란 참으로 말할 수 없는 거야. 너도 그런 경우를 많이 당해봤겠지만 말이지. 그런데 아까 일을 생각하면 분하단 말이야. 그까짓 새끼가 그런 걸 알 게 뭐야. 그잖아.”
그리고 그는 마치 감개무량한 듯이 짜리의 어깨 위에 다시 손을 얹으며 그러한 뜻에서 건배를 하자는 듯이 짜리를 향하여 술잔을 들어 보였다.
“너는 나보다 더했을 거야. 어느 전투에서 다리를 다쳤어? 그 흉터의 값어치를 말이 야. 이게 뭐냐 말이야.”
그러나 짜리는 묵묵히 술만 들이켜고 있었다.
“값어치……”
이윽고 천천히 짜리는 입을 열었으나 곧 다물었다.
“그래 바로 그 값어치 말이야.”
그는 뱉듯이 말을 하였다. 그러나 짜리는 쓸쓸히 웃고 같이 술이나 들자는 듯이 그를 향하여 잔을 들었다.
그는 술을 반쯤 들고 나서
“그까짓 새끼들!”
하고 픽 웃고
“술이 점점 취해오니까 또 생각나는 게 있어. 한번은 공은 내가 세웠는데 훈장은 소대장이 타고 그 대신 소대장한테 술을 진탕 얻어먹은 적이 있지. 좋은 소대장이었었는데 말이야. 훈장을 탔으면 뭐 해. 죽었으니…… 아까 말한 그 전투에서 죽었거든.”
하고 적이 섭섭한 듯 숨을 무겁게 죽였다.
“너는?”
짜리가 물었다.
“나? 나는 살았지.”
“아니 훈장 말이야.”
“응? 훈장? 나도 탔어.”
그는 생각이 난 듯이 급히 가슴팍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종이에 싼 것을 끄집어내었다. 그것은 비에 축축이 젖어 있었다. 그는 멋찍은 듯이 잠시 비에 젖은 그 종이에 싼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싱긋이 웃으며 그것을 풀었다.
“아까 내가 말하지 않았어. 바로 그때 탄 거야.”
그러나 종이 속에서 풀려 나온 그 훈장은 말이 아니었다. 비에 젖어 천이 다 우글쭈글 쪼그라들었고 더군다나 종이 색깔이 번지어서 거무스레하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그것은 비에 흠뻑 젖은 낡은 군복을 걸치고 있는 그와 흡사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소중하게 고이 폈다. 편다고 하지만 주굴주굴해진 그 훈장은 여전하였다.
그는 짜리를 힐끗 쳐다보며
“다 젖었어.”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술김에서인지 홧김에서인지 훈장을 마구 꾸겨 쥐었다. 잠시 후에 또 펴 보았다. 다시 또 꾸겨쥐었다. 한동안 멍청히 서 있던 그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술집 노파에게 중얼거렸다.
“할마이 이게 뭔지 알어? 이게 바로 훈장이란 거야. 이거 하나 받기가 쉬운 줄 알어. 그러나 이 꼴이 됐어. 다 젖었어. 할마이한테 이거 드리께 대포 한잔 주겠어? 할마이는 싫을 거야. 그렇지? 이게 할마이에겐 대포 한잔 값도 못 되지 훗홋훗후.”
그는 마구 웃어대다 갑자기 머리를 푹 숙이며 침울해졌다. 그리고 짜리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실은 내가 이것을 탈 때는 어마어마했었는데. 장성들과 장교 및 사병들이 엄숙하게 정렬하고 있는 가운데서 이것을 받았거던. 내가 이것을 가슴에 달고 돌아섰을 때 수많은 시선이 일제히 나를 우러러봤었어.”
그러고는 웃는지 우는지 모르게 입속에서 웃음도 쿡쿡 축였다.
그때 짜리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자 술을 들어. 그만하면 됐어.”
하고 그의 손에 술잔을 쥐여주었다. 그는 받았던 잔을 놓고 그 훈장을 다시 젖은 종이쪽지에 싸서 포켓에 넣었다. 짜리의 눈에도 어느덧 눈물 같은 게 글썽 이고 있었다.
선술집을 나올 때 그의 다리는 몹시 휘청거리고 있었다. 짜리보다도 더 휘청거렸다. 비는 그대로 퍼붓고 있었다. 그들은 비를 맞으며 비좁은 골목길을 절버덕거리며 결어갔다. 큰길가에 나왔을 때 짜리가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그도 짜리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여봐.”
짜리가 입을 열었다.
“더없이 즐거운 밤이야. 네 밤이자 내 밤이지. 그러나 너도 인제 내 마음처럼 모든 게 식어버릴 게다.”
그는 짜리를 술 취한 눈으로 치어다보았다. 짜리의 얼굴에는 빗물이 수없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자.”
짜리가 또 입을 열었다.
“계집을 사러 말이야. 그들도 다만 우리같이 ‘팔리는 몸’ 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따뜻한 살결이다.”
그 순간 그는 짜리를 얼싸안고 짜리의 가슴 위에 머리를 묻고 매달리며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비는 그저 내리퍼붓고 있었다. 인적 하나 없는 뒷길 어둠 속으로 엉엉 우는 울음소리와 함께 비칠거리는 두 그림자가 점점 머어가고 있었다.
-끝-
2016년 6월 22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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