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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복음주의운동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대외적으로 추구해왔던 가치들을 실현하는 일에서의 성과는 지극히 미진하고, 대내적인 운동의 기반은 급속히 축소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 상황은 단지 운동의 일시적인 침체나 한시적인 지체라기보다는 한국 복음주의운동의 기본 패러다임 자체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차원의 문제이다.1
누군가는 불편하게 읽거나, 어떤 이는 끄덕이며 읽거나, 심지어 ‘기시감’이 돈다고 느꼈을 이 문장은 나의 것이 아니다. 2012년 〈복음과상황〉에서 연재한 연중기획의 포문을 연 정정훈 당시 〈복음과상황〉 편집위원이 쓴 글 일부다. 무려 8년이나 돌고 돌아 다시 내 앞에 온 이 문장을 읽고 이 글을 쓰겠다고 한 걸 후회했다. 당시의 한국 복음주의운동을 향한 뼈아픈 상황 인식과 현재 상황은 얼마나 다르고, 무엇이 나아졌는가에 관해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2012년의 ‘복음주의’와 2020년의 ‘복음주의’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정정훈이 명명한 ‘87년형 복음주의’가 최근 회자되고 있는 ‘아저씨 복음주의’라는 수식어로 대체된 것이 다른 점일까? 같은 주제를 다루는 특집에 그때와는 다르게 여성 필자가 포함된 게 진보라면 진보일까? 이 자조적 질문은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 복음주의운동 영역에 관여하고 있는 내가 몇 년째 풀지 못하고 있는 지긋지긋한 질문이기도 하다.
2021년에 창간 30주년을 맞는 〈복음과상황〉 편집부에서 ‘한국교회와 복음주의의 미래’에 관한 특집을 준비한다며 원고를 청탁했을 때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한국교회와 복음주의에 미래가 있을까?” 비관적이지만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87년형 복음주의’가 ‘아저씨 복음주의’로 대체된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에 관한 원초적 문제의식 때문이다. 굳이 정정훈의 문제 제기를 앞세우지 않더라도 복음주의운동은 ‘심각한 위기’를 넘어 ‘사망’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오해하지 마시라. 감히 사망 선고를 하려는 게 아니다. 복음주의운동이 ‘아직’ 사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 모색하고, ‘이미’ 사망했다면 사인(死因)은 무엇인지 규명해야 비로소 ‘미래’를 전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복음주의’는 무엇인가?
보수적인 교회에서 성장하여 캠퍼스 선교단체 학생과 간사, 복음주의 지성 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는 아카데미 단체 간사로 살아온 나의 20-30대를 형성한 건 명백하게 ‘복음주의’다. 물론 ‘복음주의’는 그 용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구현된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 그룹이 복음주의이고, 몇 년 전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좌파(evangelical left)인 〈소저너스(Sojourners)〉의 짐 월리스가 명성교회의 초청을 받아 내한하기도 했다. 이렇듯 ‘복음주의’라는 용어는 현재까지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논쟁적 개념이다. 그렇기에 자신을 ‘어떤’ 복음주의자로 인식하느냐의 문제는 중요하다. IVF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 이강일 소장은 복음주의의 복잡한 개념을 설명하며 한국 개신교에서 복음주의가 ‘운동’의 차원으로 시작된 맥락을 1960년대 이후 대학생선교단체와 복음주의 성향 교회를 중심으로 한 복음전도와 교회성장 중심의 ‘전통적’ 복음주의운동과 1980년대 이후 사회참여적 경향을 띤 ‘참여적’ 복음주의운동으로 정리한 바 있다.2 이 글에서는 그중 내가 속한 후자의 영역 중심으로 한국 복음주의운동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내가 복음주의운동을 통해 배운 것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나는 복음주의운동을 통해 시민으로서 어떻게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구현할 것인가에 관해 배웠다. 1974년 개최된 로잔대회에서 발표한 ‘로잔언약’은 1980대 이후 형성된 참여적 복음주의운동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후 로잔언약의 핵심인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균형’을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여기며 신학적 근거를 학습하고, 신앙적 실천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운동이 꽃을 피웠다. 198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생기고, 1989년 복음주의학생운동 연합체인 학원복음화협의회(학복협)가 설립되고, 1991년에는 〈복음과상황〉이 창간된다. 나는 이 흐름을 따라 복음주의/운동을 배웠다. 즉, 나에게 사회참여란 복음의 실천이었다. 복음주의는 복음이 단지 개인 구원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참여라는 균형을 가지도록 나를 훈련시켰다. 내가 이해한 복음주의의 특징은 ‘동시대성’이었다. 멀게는 종교개혁과 영미권 복음주의 운동, 가깝게는 1987년 이후 ‘공명선거’ 운동을 필두로 진행된 참여적 복음주의 운동,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부흥한 캠퍼스 복음주의 운동 등은 ‘프로테스탄트’적이며 ‘동시대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즉, 복음주의운동은 그 시대의 모순과 부정의를 뚫고 나온 대항적 신앙 운동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복음주의 운동은 단일한 사건이 아닌 하나의 점이 연결되어 선이 되고, 선이 다시 입체로 연결되는 연속성(역사성)을 가졌다. 그 역동 아래 복음주의 운동이라는 ‘판’이 형성되고, 다양한 운동이 연대하거나 분화해왔다. 즉, 내가 이해한 복음주의는 복음과 사회참여라는 균형성, 동시대성, 연대하며 분화하는 연속성을 가진 신앙 운동이었다.
맥락을 잃어버린 복음주의운동
당연한 이야기겠으나 복음주의운동 영역에서의 경력이 쌓일수록 모순과 한계에 직면하는 날도 차츰 늘어갔다. 이제부터는 반성적 관점에서 복음주의운동을 점검하며 복음주의운동이 어떤 면에서 한계에 직면하고 있으며 무엇에 실패했는지 몇 개의 질문을 통해 돌아보고자 한다.
첫째, 복음과 사회참여의 균형이 제대로 작동했는가?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교수이자 역사학자 최종원은 저서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에서 영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베빙턴이 설명한 복음주의의 4대 강령(성경주의, 회심주의, 십자가중심주의, 행동주의)을 소개한다. 그는 ‘베빙턴 테제’라고 불리는 이 4대 강령이 한국 복음주의운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며 “베빙턴의 맥락에서 복음주의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규범은 행동주의”이며 한국 복음주의는 당시 영국 복음주의가 “복음을 ‘사회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고자 하는 시도”였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3
즉, 복음주의운동이 ‘사회적 맥락’을 어떻게 이해하며 복음과 사회참여의 균형을 이루어왔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복음주의는 동시대적 ‘맥락’ 속에서 ‘움직이는’ 신학이자 신앙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전도 운동과 제자 훈련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복음주의운동을 비롯한 복음주의학생운동이 필요한 시기에는 그 운동에 열심을 냈고, 정치 참여와 사회/교회 개혁 운동에 복음주의적 통찰과 운동력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했다. 그렇기에 복음주의운동이 공명선거, 평화통일, 정치개혁, 세월호 등 ‘복음과 사회참여’의 균형이 필요한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이 필요하다. 그동안 복음주의운동이 관여한 ‘사회참여’의 의제들은 고정불변의 것인가? 그동안 복음주의운동이 추구한 ‘균형’은 무엇에 기여했는가?
최근 몇 년간 나는 복음주의운동에서 무기력한 균형감을 경험할 때가 많았다. 사랑과 정의라는, 모호한 신앙의 언어는 ‘지금·여기’의 문제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자주 길을 잃었다. 그 결과 복음주의운동이 전진하기는커녕, 오히려 불의를 제도화하고, 신앙의 이름으로 ‘다름’을 멸절시키려는 극우 기독교 세력이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가지게 되는 현실을 막아내지 못했다. 사랑의교회와 명성교회가 뻔뻔하게 불법을 행하고, 혐오 세력이 동성애와 페미니즘을 ‘악’으로 규정하여 가짜 뉴스와 악의적 콘텐츠를 양산하며 공론장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고, 낡은 가부장 체제를 영속시키는 일에 한국교회가 강력한 지지 기반이 될 때 복음주의는 무엇을 했나? 전광훈식 사회참여가 개신교를 대표하도록 속수무책으로 방치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도 되는가? 이들이 세력화하여 사회적으로 등장한 현실에 복음주의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복음과 사회참여의 양 날개가 여전히 복음주의 운동의 중요한 가치라면, 복음주의가 참여해야 할 ‘현장’은 어디일까?
그동안 복음주의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점점 대형화되고, 보수화하는 한국교회의 대항 운동으로서 역할을 하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개인 구원 중심의 신앙에서 좀 더 사회참여적인 기독교인과 운동을 출현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교회가 보수를 넘어 극우화하고, 불법 세습을 자행하고, 성불평등과 성폭력 범죄를 심화하고, 혐오의 진원지가 되는 걸 막는 데는 실패했다. 이 모든 것이 어디 복음주의운동만의 잘못일까 싶지만, 극우 기독교의 폭주나 사랑의교회와 명성교회의 미친 존재감 앞에서 ‘저들은 우리와 다르다’고 구분하는 일에 운동의 역량을 동원하는 것을 넘어 ‘무엇’이 달라야 하는지에 관해 사회적 ‘맥락’을 놓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복음주의운동이 놓여야 할 ‘맥락’은 무엇일까?
어쩌다 ‘아저씨 복음주의’가 되었나?
그러기 위해서는 두 번째 질문이 필요하다. 동시대적 의제는 누가 설정하며 운동은 누가 하는가? 올해 나는 ‘청어람ARMC’의 대표가 되었다. 물론 단체에 발생한 사고로 인한 예기치 않은 결정이었지만, 한국 복음주의운동 영역에서 여성·비목회·비전문가 대표의 출현은 많은 이가 주목하는 사건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복음주의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30대 여성 공동대표를 선임했다. 이런 흐름이 지극히 당연하고,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특별한 케이스’로 여겨지는 상황은 다소 민망했다.
일반 사회에서는 현재 자의든 타의든 리더십이 이양되고 있다. 사회적 주류인 기성세대의 의식 속에 언제나 ‘다음 세대’라는 미완의 존재로 소환되었던 이들이 ‘현재 세대’가 된 것이다. 조직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 담론 차원에서도 많은 게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다. 복음주의운동 영역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복음주의운동은 새로운 리더십 혹은 세대를 담을 그릇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이 말은, 새로운 운동 의제를 발견하고 갱신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질문이다.
한 세대가 교체되어 전면에 등장한다는 건, 그만큼 역동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미 일반 사회가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퀴어, 페미니즘, 비거니즘 등 다양한 실천, 탈가부장과 탈권위주의,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 국제 분쟁과 평화, 기후위기, 공정과 평등, 인권 등 우리가 학습하고 숙고해야 할 ‘동시대성’이 이렇게 다양하게 형성되고 있으며 사회가 재구성되고 있다. 운동은 이런 변화에 따라 핵심과제와 패러다임을 점검하고 전환해야 할 책임이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다 복음주의운동 영역에서 소화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그러나 복음주의운동이 이런 ‘동시대성’을 논의하기 위한 곳으로서 적절한 영역인지 잘 모르겠다. ‘복음주의운동이 발견하고 참여해야 할 동시대적 의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누가 설정하는가?’ ‘이런 의제를 함께 구현하기 위한 동료 기독시민은 어디에 있는가?’ 등의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즉 ‘판’을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현재의 판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에 관한 비판적 인식이 필요하다.
얼마 전 〈뉴스앤조이〉에서 발행한 글 한 편이 많은 이에게 회자되었다. ‘두크나이트’라는 필명의 필자는 ‘진보적이지 않은 진보적 복음주의’라는 글을 통해 현재 한국 복음주의운동을 ‘진보적 복음주의’(progressive evangelical)로 구분하고, 그런 진보적 복음주의를 ‘민주당 복음주의’ ‘아저씨 복음주의’라고 명명하며 비판했다. 즉, “보수 개신교가 한국 독재정권과 보수·극우 정치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며 지원사격한 것과 같이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며 정치에 종속된 종교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4 이 글은 현재 복음주의운동이 가진 한계를 비교적 날카롭게 비판하여 많은 독자의 호응을 받았다. 이 비판은 한국 복음주의운동이 아직도 손봉호, 이만열, 옥한흠, 하용조로 대표되는 소위 ‘복음주의 4인방’과 그다음 세대인 ‘3세대 복음주의자5’들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동시대적’ 의제를 개발하는 역동을 상실한 채 ‘아저씨 복음주의’로 협소화된 것이다.
문제는 ‘선택적 복음주의’다
이 논의에 덧붙여 나는 현재 한국 복음주의운동을 ‘선택적 복음주의운동’이라 평가하고 싶다. 이런 평가에는 ‘선택’의 헤게모니가 누구에게 있었는가의 문제가 중요하게 작동했다. 그동안 복음주의 운동에 참여하며 나에게 각인된 복음주의운동 이미지는 40-50대 이상·남성·목회자 중심 운동이다. 비교적 최근까지 소위 ‘복음주의 4인방’이라 불리는 ‘아버지들’의 유산을 상속받은 ‘87년 체제’의 ‘아들들’이 운동의 주류를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남성·명망가·엘리트 중심 운동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아저씨 복음주의’의 한계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늙어갔다. 그 한계 속에서 운동 과제도 (그 세대에 익숙한) 거대담론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든 운동은 운명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한계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한계를 극복하여 뚫고 나가려 하기보다는 한계 내에서만 안전하게 운동을 하는 것은 문제다. 나는 이 ‘선택적 복음주의운동’에 동시대를 학습하여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예를 들어 보겠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는 두 이슈를 꼽자면, 검찰개혁과 차별금지법일 것이다. 많은 복음주의운동 단체들이 검찰개혁에 관한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를 발표하고, 시위를 이어갔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이슈인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해 복음주의 운동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나? ‘신학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잘 모른다’는 이유로 침묵하거나 방관하지 않았나? 그러는 사이,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사회적 합의’를 반사회적 행태로 막고 있는 ‘혐오 기독교’가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게 되었다.6 물론 그걸 꼭 복음주의운동이 감당해야 하나 질문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동안 복음주의운동이 힘써 참여했던 통일 운동, 희년 운동은 꼭 복음주의운동이 감당해야 할 일이어서 했나? 검찰개혁이 ‘교회개혁’이나 ‘성서한국’ 운동과 어떤 밀접하고 긴요한 상관이 있기에 단체에서 공식적으로 성명서를 내는가? 이건 되고, 저건 ‘우리의 과제가 아니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운동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누가 결정하는가?
그동안 복음주의운동 단체들이 연합하여 정치 개혁 운동에 참여하고,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제주 강정 마을을 가고, ‘세월호 가족’들을 도운 건 정말 필요한 일이었다. 국가 폭력에 저항하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백번 양보하여 ‘검찰개혁’이 복음주의자들이 연대해야 할 일이라 여길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정의와 연대가 신학교와 교단에서 합법적으로 추방되는 성 소수자들이나, 그들과 연대하다 정학당한 신학생들, 모순되고 불의한 구조 안에서 일상적으로 차별받는 여성들이나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 거리에서 투쟁하거나 산업 재해로 사라져가는 노동자들에게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도 물어야 한다. 문제의식이 없는 것인가? ‘운동’ 의제로 삼기에는 두려운 것인가? 복음주의운동은 이런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위의 문제의식은 결국 의제를 어떻게 설정하고 연대할 것인가, 라는 세 번째 질문으로 이어진다. 과연 ‘선택적 복음주의운동’ 판에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 수평적이고 유기적인 연대가 가능할까? 전망은 어둡다. 현재 복음주의운동 단체의 조직 구성을 보라. 여전히 1-3세대 복음주의의 세례를 받은 50-60대 목회자와 전문가가 대표와 각종 위원장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심지어 한 명의 이름이 여러 단체의 조직도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성비는 또 어떤가? 여성이 단체를 책임지는 리더십이 되거나, 전문 위원으로 참여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일반 사회 영역에서 20-30대 여성·청년들이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는 주체로 성장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종 ‘담론’의 장에서도 40-60대 남성·목회자의 목소리만 들린다. 이 상태로는 앞서 언급한 새롭게 형성되는 동시대적 담론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 운동의 헤게모니를 가진 이들의 인식론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 속에서 여성, 청년, 퀴어 등 운동의 확장 및 ‘당사자’ 운동은 더더욱 존재하기 힘들다. 그러니 평신도 리더십 세미나에 목회자가 발제하고, 청년은 언제나 ‘다음 세대’ 담론에 갇히고, 여성 리더십은커녕 젊은 여성 실무자는 ‘하청업자’ 역할에 머물다가 소진되어 떠나는 현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미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선택적 복음주의에서 ‘선을 넘는 복음주의’로!
역설적이게도 한국교회와 복음주의운동 실패를 인정하고 해체해야 복음주의운동의 다음을 도모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현재까지의 복음주의운동은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극우 기독교(혐오 기독교)가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가지게 되고, 그들이 사회적 공론장 자체를 무력화하고, 신학교와 총회가 ‘합법적’으로 불의를 행하고, 다양한 존재를 부정하여 제도 바깥으로 추방하는 현실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이 단지 한국교회 ‘내전’ 양상으로 흘러간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사회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혐오 기독교는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하도록 다양한 영역에서 ‘영적 전쟁’을 펼치고 있다. 이렇게 종교 영역을 넘어 사회적 변화를 막아서는 걸림돌의 실체인 극우 기독교가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면, 한국교회는 차라리 속히 망함으로써 세상에 속죄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복음주의운동의 한계와 실패를 인정해야 새로운 운동이 생겨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까지의 복음주의운동이 사회의 모순과 부정의에 대항하는 운동이었다면, 앞으로의 복음주의운동은 대항과 동시에 대안을 창출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공론장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존재를 환대하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등 균형감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운동이 필요하다. 즉, ‘안전한 복음주의’가 아니라 ‘선을 넘는 복음주의’ 혹은 ‘위험한 복음주의’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래’를 만드는 운동이 필요하다. 역사학자 최종원은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대표되는 제도가 가망이 없을 때 ‘아래로부터의 개혁’ 운동이 일어난다고 진단했다.7 그렇다면 현재 복음주의운동 영역에서 ‘아래’는 제대로 존재하고 있나? 20년 가까이 복음주의운동 영역에 있는 나의 위기의식은 여기에 있다. 현재 복음주의운동은 머리는 많지만, 허리는 약하고, 손발이 없는 기형적 구조다. 즉, ‘위’는 차고 넘치는데 ‘아래’가 없다. 열심히 몸은 굴리지만, 소수의 기성세대에 머물러 있는 책임과 권한이 아래로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 구조에서는 사람이 성장하지 못한다. 한국교회에 여성·청년 성도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복음주의운동도 마찬가지다. 이런 판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모든 것이 주변화되고 무력화된다. 일할 사람이 없는데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비관적으로 표현하자면, 복음주의운동 영역에서 한 세대가 절멸하고 있다. 실무자 출신 ‘여성 대표’로서 나는 내가 예외적 존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판에서 꾸준하게 성장하여 리더가 되는 동료를 나도 만나고 싶다. 그러기 위해 기반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현실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즉,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필요하면 ‘아래’를 만드는 일을 해야지 ‘아래’가 없다고 ‘위’가 버티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복음주의운동의 미래를 묻는다면
복음주의운동에 없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미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열심히 복음주의운동에 매진하셨던 선배들께는 민망하고 죄송한 일이겠으나, 그동안 복음주의운동은 복음주의가 가진 자산을 낭비하며 ‘미래’를 만드는 일에 소홀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미래가 아예 소멸되었는가? 말장난 같겠지만, 복음주의운동에 없는 것이 미래이지만, 있는 것도 미래다.
2018년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에 무지개색 옷을 입고 채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정학과 근신 처분을 받은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생들은 학교 바깥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쫓겨난 사람들을 위한 배움터’를 표방한 ‘무지개 신학교’에서는 기존의 복음주의운동이 생산하지 못한 생태, 페미니즘, 퀴어, 가족 담론 등 ‘동시대성’을 가진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 감신대, 장신대, 협성대, 한신대를 비롯한 여러 신학교 동아리와 사회선교단체가 연대하는 ‘옥바라지 선교센터’나 페미니스트 그리스도인들의 활동 단체 ‘믿는 페미’ 등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세대가 만든 새로운 운동이 척박한 땅에서 스스로 미래를 만들고 있다. 물론 이들의 활동을 ‘복음주의운동’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을 것인가에 관해서는 낯설어하거나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복음주의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복음주의’란 무엇인가부터 다시 배우기를 권한다. 적어도 내가 이해한 복음주의는 동시대적 과제를 외면하지 않고 힘써 참여함으로써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고자 했다. 이것이 왜 복음주의가 아니란 말인가. 지금 우리에게는 ‘복음주의’라는 선명한 틀보다는 그 틀을 넘어서는 ‘복음주의들’이 등장하도록 한때의 복음주의운동에 ‘안녕’을 고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즉, 복음주의가 죽어야 복음주의가 산다. 복음주의의 ‘미래’란 복음주의의 해체를 통해 도적 같이 임할 것이다.
1 정정훈, ‘한국 복음주의, 혁신 없이 미래는 없다’, 〈복음과상황〉(2012년 1월호)
2 이강일, 〈한국개신교 복음주의운동 연구〉(한국학중앙연구원, 2015)
3 최종원,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비아토르, 2019)
4 두크나이트, ‘진보적이지 않은 진보적 복음주의’, [2030이 한국교회에게] 중년 남성들의 ‘민주당·아저씨 복음주의’ (2020.11.10.)
5 ‘3세대 복음주의자’라는 용어는 앞서 소개한 정정훈의 글(〈복음과상황〉 2012년 1월호)에서 언급된 것으로 “복음주의운동을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으로 시작했고, 80년대 변혁적 학생운동의 영향권 아래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사회참여와 교회 갱신을 고민했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 나라 운동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세대”라는 특 징이 있다. 최근까지 복음주의운동의 단체장이거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6 이에 관해서는 퀴어 그리스도인이며 문화연구자인 시우가 쓴 책 《퀴어 아포칼립스》(현실문화, 2018)를 참고하길 권한다. 시우는 이 책에서 보수 개신교회의 반퀴어 운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피며 사회참여적 복음주의권 의 침묵을 비판한다.
7 이에 관해서는 최종원 교수가 청어람ARMC에서 강의한 ‘교단 총회가 남긴 것과 아래로부터 개혁의 가능성’을 참고하기를 권한다.
오수경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로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함께 쓴 책으로 《을들의 당나귀 귀》 《불편할 준비》 등이 있다.
출처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첫댓글 사회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시 배우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