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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한 원로에게 물었다. “겸손이란 대체 뭡니까?” 그는 대답했다. “자네를 대적하여 죄지은 한 형제가 자네 앞에 엎드리기 전에 자네가 먼저 그를 용서하는 것일세.” (N304) [15,60]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네게 닥쳐오는 모든 시련을 겪을 때, 네 자신 외에는 아무도 비난하지 말고 이렇게 말하여라. ‘내 죄 때문에 이런 일이 닥쳐왔구나.’” (N305) [15,61]
어느 원로는 말하였다. “나는 보다 높은 것을 겨냥하기 위해 내 위치를 벗어나 본 적도 없고, 어둠 속으로 버려졌다고 해서 얼굴을 붉힌 적도 전연 없다. 내 유일한 생각은 이것이니, 나의 옛 사람을 벗어던지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는 일일 뿐이다.” (N660) [15,62]
어느 수도자가 한 어른에게 물었다. “나그네에게 알맞은 일은 무엇입니까?” 원로는 대답했다. “나는 한 행려 수도자를 알고 있네. 그는 사람들이 애찬(愛餐)을 베풀 때 성당에 있다가 수도자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려 했지. 그런데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어. ‘이 형제를 누구 초대했나요? 일어나서 여기서 나가시오!’ 그 수도자는 떠나갔어. 그가 쫓겨남을 마음 아파한 다른 수도자들이 나가서 그를 다시 불렀지. 그리고 곧이어 그에게 물었어. ”쫓겨났다가 다시 불림을 받았을 때 당신은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나요?‘ ’마음속으로 내가 개와 같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개는 사람이 쫓아내면 쫓겨가고 다시 부르면 돌아오니까요‘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N306) [15, 64]
원로들이 말했다. “유혹을 받을 때면 더 겸손해지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보시고 그때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높아지면 그분은 당신의 보호를 우리에게서 거두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멸망하고 말지요.” (N309) [15,67]
악마가 빛의 천사로 변해 어느 수도자에게 나타났다. “나는 가브리엘 천사이다. 그리고 너에게 보냄을 받았다”라고 그가 말하자, 수도자는 대답했다. “다른 어떤 사람에게 보냄을 받지 않았나요? 나로 말하면 천사의 방문을 받을만한 인간이 못되니까요.” 악마는 즉각 사라져 버렸다. (N310) [15,68]
원로들이 말하였다. “천사가 그대에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수월히 받아들이지 말게. 차라리 겸손하게 이렇게 말하게. ‘죄 중에 살고 있는 나는 천사를 볼 자격이 없는 인간입니다.’”
(N311) [15,69]
원로들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원로가 자기의 독방에서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악마들이 나타나 그를 조롱하곤 했지요. 한 악마가 그 수도자에게 패했음을 느끼고 그에게 나타나 ‘나는 그리스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본 수도자는 눈을 감아 버렸어요. 악마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너는 어째서 눈을 감느냐?’했지요. ‘내가 그리스도를 뵙고 싶은 건 이 이승에서가 아니라 저 세상 삶을 살 때입니다’라고 수도자가 대답하는 말을 듣고, 악마는 사라져 버렸답니다. (N312) [15,70]
악마들이 어느 원로를 속이려고 이렇게 말했다. “너는 그리스도를 뵙고 싶지?” 그러자 원로는 “고약한 놈들 같으니! 그분에 대해 그따위로 말하다니! 나는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가 저기에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더라도 너희는 그 말을 믿지 말아라’고 경고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악마들은 사라졌다. (N313) [15,71]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누군가가 만일 하느님을 경배하며 겸손되게 형제에게 하나의 명령을 한다면,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발설된 그 말은 그 형제를 순종하게 만들고 받은 명령을 실행하게 한다. 그러나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고 자기의 권위를 느끼게 하기 위한 지배욕으로 어느 형제에게 명령한다면, 마음속의 비밀을 보시는 하느님께서 그 형제로 하여금 명령을 듣고 실천할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신다. … 하느님을 따른 명령은 기도의 방식을 통한 겸손된 것이지만, 지배욕이나 분노, 급작스러움으로 행해지는 명령은 악함에서 오는 것이다.” (N315) [15,73]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나는 교만과 함께 얻어지는 승리보다는 겸손한 인내가 요구되는 실패를 더욱 좋아한다.” (N316) [15,74]
어느 수도자가 한 원로에게 물었다. “나는 다른 수도자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비난받을 짓을 하는 걸 받을 때, 내가 그들에게 주의를 줘도 괜찮겠습니까?… ” 그걸 참을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딱 한 번만 아주 겸손하게 그들을 경고하십시오. 그들이 만일 당신 말을 듣지 않는다면 당신의 고통을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을 위로해 주실 겁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그분 앞에 엎드려 그분께 자신의 의지를 맡겨야 합니다. 당신의 열성이 하느님을 따른 것이 되도록 조심하십시오. 내 생각으로는 침묵을 지키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만, 당신에게 있어서의 겸손은 바로 침묵이거든요.“ (N318) [15,76]
어느 수도자가 한 원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사람에 있어서 진보는 무엇으로 구성됩니까?” 원로가 대답했다. “겸손이지. 사람이 겸손을 향해 자신을 낮출수록 그만큼 더 완덕을 향해 높아지는 거라네.” (N381) [15,77]
어느 원로가 말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낮추면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면, 그는 유혹자인 악마들을 불로 태우는 것이 됩니다.” (Guy p90 n2) [15,78]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만일 방앗간 주인이 맷돌을 돌리는 짐승의 눈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 짐승은 몸을 돌려 제가 빻은 곡식을 먹어치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안배로 우리는 우리의 선행을 보지 못하게 가려 주는 베일을 받은 것입니다. 스스로 행복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받을 상급을 잃지 않도록 하는 베일 말입니다.(N322) [15,80]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나는 교훈을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는 또 말하였다. “때가 되기 전에는 사람을 가르치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평생토록 설익은 지성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N668-669) [15, 81]
어떤 사람이 한 원로에게 물었다. “겸손은 대체 무엇입니까?” 원로는 대답했다. “그건 위대한 일, 신적인 일입니다. 겸손의 길은 육체의 고행에 전념하며, 자신을 죄인들의 반열에 넣고, 다른 모든 사람 밑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N323) [15,82]
그는 다시 물었다. “다른 모든 사람 밑에 자신을 위치시킨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인지요?” 원로는 대답했다. “그건 다른 사람의 죄가 아니라 항상 자신의 죄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고, 하느님께 항구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N323) [15,82]
한 수도자가 어느 원로에게 청했다. “제가 지키며 살 수 있는 단 한 가지 일만 말씀해 주십시오.” 원로는 그에게 말했다. “자네가 모욕을 받고 참아낼 수 있다면, 그건 모든 덕행을 능가하는 훌륭한 일이라네.” (N324) [15,83]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경멸 · 모욕 · 피해를 참을성 있게 견디어내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N325) [15,84]
이웃을 참아 견딤
마카리오 교부가 이집트에 있었을 때, 짐바리 짐승을 몰고 다니던 한 남자가 어느 날 교부의 물건을 훔치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지나가던 순례자처럼 그 도적에게 가서 도적이 짐승에게 물건 싣는 일을 거들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마음의 평온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자기의 물건을 싣고 가는 도적을 배웅해 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1디모 6,7) 야훼의 이름을 찬양할지니라(욥기 1,21 참조) (Macaire 18) [16,6]
빠스똘 교부의 형제인 빠이시오가 외부의 어느 수도자와 각별한 친분 관계에 있었다. 빠스똘 교부는 그 사실을 용납할 수 없어 일어나 암모나스 교부에게 달려갔다. “내 동생 빠이시오가 어떤 사람과 각별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데, 그래서 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빠스똘 사부, 자네가 아직 살아 있구먼! 독방으로 돌아가세. 그리고 자네가 일 년 전부터 이미 무덤에 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라고 암모나스 교부는 대답하였다. (Poemen 2) [16,8]
빠스똘 교부가 말하였다. “자네의 고통이 그 무엇이든간에, 그 고통에 대한 승리는 침묵을 지키는 데 있네.” (Poemen 37) [16,9]
어떤 수도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를 더 모욕하여 화를 돋우는 사람을 그만큼 더 찾아다니곤 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은 진지하게 완덕을 구하는 사람들을 고쳐 주기 위해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실 완덕을 구하는 사람들을 좋게 말해 주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영혼을 괴롭히는 일이 됩니다. 성서에도 ‘너희를 칭찬하는 사람들은 너희를 나쁜 길로 인도한다’ (이사 9,16 참조)고 적혀 있지 않습니까?” (N336) [16,12]
강도들이 하루는 어느 원로의 은거처에 들어왔다. “네 방에 있는 건 뭐든 다 내놓아!” “너희 좋을 대로 다 가져 가려무나, 애들아”라고 원로는 대답했다. 그리하여 강도들은 모든 걸 다 찾아 들고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방 안에 숨겨져 있던 지갑은 빠뜨리고 갔으므로 원로는 그것을 들고 그들을 따라가며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이것도 가져가! 너희가 방에 빠뜨렸단 말야!” 강도들은 원로의 그 참을성을 감탄하며, 가지고 갔던 물건을 모조리 도로 가져와 원로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서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분은 정말로 하느님의 사람이야!” (N337) [16,13]
어느 원로는 시련을 잘 참아받는 덕행을 가진 한 제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루는 기분이 나빠져서 그 제자를 문밖으로 쫓아내었다. 제자는 밖에 앉아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원로가 문을 열었을 때 제자는 여전히 거기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원로는 제자 앞에 엎드렸다. “그대가 나의 사제입니다. 그대의 겸손과 인내로 내 고약한 성질을 이겼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들어오시오. 이제부터 그대가 사제요 어른이며, 나는 연소한 제자입니다. 그대의 행동이 나의 나이 많음을 능가했습니다.” (Un Romain 2) [16,17]
사랑
안또니오 교부가 말하였다. “이제 나는 하느님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사랑합니다. 사랑은 공포를 몰아내니까요(1요한 4,18 참조).” (Antoine 32) [17,1]
안또니오 교부는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삶과 죽음이 이웃사람에게서 옵니다. 우리의 형제를 얻게 되면 하느님을 얻을 것이며, 우리의 형제를 분노하게 만들면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항하여 죄를 짓는 것입니다.” (Antoine 9) [17,2]
니트리아의 아모운 교부가 안또니오 교부에게 와서 말했다. “내가 보기엔 나의 실천이 당신의 실천보다 더 엄격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당신이 나보다 더 유명하지요?” “그건 내가 당신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겠지요”라고 안또니오 교부는 대답하였다. (Amoun de Nitrie 1) [17,3]
빠스똘 교부가 말했다. “이웃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과연 누군가에게서 욕설을 들은 사람은 자신도 똑같이 보복해 줄 수 있다 하더라도, 자신과 싸우며 잘 견뎌내어 상대방을 슬프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은 누구에게서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자신을 화나게 하고 괴롭힌 사람에게 보복하지 않고 참을성있게 견딘다면,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목숨을 이웃을 위해 내놓는 것입니다. (Poemen 116) [17,10]
어느 원로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뭔가를 달라고 청할 때 당신이 마지못해 그걸 준다면, 그런 식의 증여에 어울리는 성의 밖에 없습니다. 성서에는 ‘어떤 사람이 네게 십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너는 그와 함께 이십리를 가거라’라고 적혀있지 않습니까? 그건 이런 뜻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뭔가를 청하면 진정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주십시오.” (N345) [17,15]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내게 유용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만약 형제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나는 결코 탐낸 적이 없습니다. 형제를 얻으려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 내게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N353) [17,24]
어느 수사가 한 원로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하루는 원로에게 종기가 생겨 고름이 숱하게 흐르는 데다 냄새가 아주 고약하였다. 수사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서 떠나라구. 그 썩은 악취를 너는 못 견딜 거야.” 그 유혹을 이기기 위해 수사는 대야를 가져와 원로의 헌 데를 씻었다. 그러고는 그 씻은 물을 단지에 모아 목이 마를 때마다 그것을 마셨다. 그래도 그 생각이 줄곧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네가 떠나고 싶지 않다면 적어도 그 썩은 물은 마시지 말아.” 그럼에도 수사는 용감하게 그 일을 잘 참아내었다. 헌 데를 씻은 물을 계속 마시며 원로의 시중을 든 것이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그 일에 바치는 그의 사랑을 보시고 고름 섞인 물을 아주 맑은 물로 바꾸어 주셨으며, 원로도 보이지 않는 치료책으로 완쾌시켜 주시는 것이었다. (N356) [17,25]
초자연적 통찰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생살을 먹고 살 수 없음을 아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성체를 빵으로, 성혈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그분을 받아모시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Daniel 7) [18,3]
돌은 단단하지만 물은 본디 단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이 가득 든 통을 바위 위에 매달아 한 방울 씩 한 방울 씩 떨어지게 하면 바위에 구멍이 납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그렇게 물처럼 유연한데, 우리의 마음은 완고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주 그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열려 하느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Poemen 183) [18,16]
어느 교부가 말하였다. “돼지의 눈은 그 본성상 어차피 땅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을 쳐다볼 수 없거든요.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이 달콤한 쾌락에 이끌려 그 진창에 일단 굴러 떨어지게 되면, 더 이상은 하느님을 쳐다볼 수 없어지고 신적 사물에 대한 흥미도 잃고마는 것입니다.” (N364) [18,28]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볼 줄 아는 은혜를 받은 한 원로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어느 수도원의 수사가 자기의 독방에서 묵상에 잠겨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악마가 와서 문 뒤에 서 있더군요. 그 수사가 묵상을 하고 있는 동안은 문 안으로 침입할 수 없던 그 놈이, 수사가 묵상을 그만두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N366) [18,30]
완덕에 관한 요약된 금언들
“어떻게 하면 참된 수도자가 됩니까?”라고 묻는 이에게, 어느 원로는 대답하였다. “내 말 듣고, 홀로이신 분 앞에 홀로 있게.” [21,1]
“당시은 어떻게 하시기에 절망에 빠지시는 법이 없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원로는 “나는 매일 죽음을 기다린다네.” 했다. [21,4]
“저는 왜 계속 절망하곤 할까요?” “자네가 아직 목표를 못 보고 있기 때문이라네.” 질문받은 원로의 대답이었다. [21,5]
☕ 목표는 하느님이다. 하느님을 보지 못하면 절망하게 된다
“수도자의 일은 무엇입니까?” 원로는 대답했다. “분별이야” [21,6]
“수도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질문받은 원로가 대답했다. “선은 무엇이나 실천하고 악은 깡그리 끊어야 하네.” [21,8]
원로들이 말하였다. “기도는 수도자의 거울이다.” [21,9]
원로들이 말하였다. “판단하는 것보다 더 나쁜 건 달리 없다.” [21,10]
원로들이 말하였다. “마음속에 문득 무슨 생각이 날 때마다 이렇게 말해 보아라. ‘네가 우리 편이냐, 아니면 원수에게서 오는 것이냐?’ 그러면 틀림없이 그 점을 자백할 것이다.” [21,13]
어느 원로가 말하였다. “모든 일에 있어서 애써 자제함이 하느님의 길입니다.” [21,16]
어느 원로가 말했다. “먼저 양심 성찰을 곰곰이 해 보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꾀하지 말게. 그렇게 해야 자네가 하고자 하는 일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건지 아닌지 그 여부를 알 수 있는 거라네.” [21,17]
어느 원로가 말했다. “어떤 수도자가 기도하기 위해 서 있을 때만 기도한다면, 그는 결코 기도하는 사람이 못되네.” [21,18]
“어떻게 하면 영혼이 겸손해지나요?”라고 누가 묻자, 원로는 대답했다. “다만 자신의 잘못에만 각별히 유의해야 하네.” [21,21]
어느 수도자가 말했다. “주님을 위해 재산을 버리고 고국을 떠나고서도 결국 지옥에 가는 것은 수도자에게 있어서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21,24]
어느 원로가 말했다. “이 세대는 오늘 걱정은 하지 않고 내일 걱정을 하는구나.” [21,25]
어느 원로가 말했다. “행한 일보다 명성이 더 큰 사람은 조만간 변을 당할 것입니다.” [21,30]
어느 원로가 말했다. “항상 죽음을 보며 사는 사람은 용기의 부족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21,34]
그는 또 말하였다. “사람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것이니,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함, 죄를 미워하고 덕을 좋아함 및 하느님께 부단히 기도함입니다.” [21,36]
첫댓글 하느님을 보지 못하면 절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