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만화가 고우영
○ 강포한 도적 임꺽정(林巨正)은 양주 백정으로서 성격이 교활한데다가 날쌔고 용맹스러웠다. 그 도당 몇 명도 모두 지극히 날래고 민첩했는데, 그들과 함께 일어나 적단이 되어 민가를 불사르고 마소를 닥치는 대로 약탈하되 만약 항거하는 사람이 있으면 살을 발라내고 사지를 찢어 죽여 잔인하기가 그지없었다.
경기와 황해도 일대의 아전과 백성들이 그와 비밀리 결탁되어 관에서 조치하여 잡으려고 하면 언젠가 내통되었다. 이 때문에 거리낌없이 날뛰었으나 관에서 금할 수가 없었다. 조정에서 선전관으로 하여금 정탐하게 하였는데, 도적들은 미투리를 거꾸로 신고 다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들어간 것은 나갔다 하게 하고 나간 것은 들어왔다 하게 하여 그들의 발자취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선전관이 구월산에 갔다가 그들의 발자국을 보고 이미 나간 줄 알고 바로 돌아오는데 도적이 뒤에 있다가 쏘아 죽였다.
조정에서 또 장연(長淵)ㆍ옹진(瓮津)ㆍ풍천(豐川) 등 4~5 고을의 무관ㆍ수령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잡게 하므로 서흥(瑞興)에 모였었는데, 아전과 백성들이 벌써 내통하여 밤에 60여 명이 말을 타고 높은데 올라가 내려다 보며 활을 비오듯 쏘아대니, 다섯 군사가 지탱하지 못하고 분산되자 더욱 거리낌없이 날뛰었다. 우리 큰아버지(박응천(朴應川))가 마침 봉산 군수(鳳山郡守)로 있었는데 일처리가 두서가 있었으므로 도적들이 꺼려하였다.
젊은 아족(衙族) 한 사람이 봉산에서 서울로 돌아가는데 안성참(安城站) 고개 아래 도달하자 길가에 잠복하고 있던 도적이 침범하려 하는데 말탄 사람 하나가 뒤에 있다가 외치기를,
“그 사람은 봉산에서 오는 사람이니 조심하여 범하지 말라.”
하였다. 그런데 그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것을 고통스럽게 여겨 자기들의 도당으로 하여금 금부도사와 같이 가장하고 역마를 타고 급히 군청에 달려와,
“군수는 빨리 나와서 명을 받으라.”
고 외쳤다. 큰아버지가 벌써 알아차리고 몰래 군인을 집결시키니, 도적들이 또한 눈치채고 달아나므로 곧 무신 윤지숙(尹之淑)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윤이 임진강에 이르러 배를 타는데 6~7명의 장사치가 물건을 싣고 몰려와 부딪치고도 돌아보지도 않고 배에 오르므로 윤이 노하여 잡아다가 다스리려고 하자 그 사람들이 드디어 짐을 풀어 보였는데 모두 활ㆍ살ㆍ칼ㆍ창이었다. 윤이 비로소 그들이 도적들임을 알고 말을 채찍질하였는데 배에서 내려 여러 도적들이 뒤쫓았으나 겨우 위기를 모면하였다.
종실 단천령(端川令)은 피리를 잘 불었다. 개성 청석령(靑石嶺)에까지 갔다가 도적들에게 붙잡혔는데 도적이 묻기를,
“네가 누구냐. 피리를 잘 부는 단천령이 아니냐?”
고 하자, ‘그렇다’고 했더니, 금시에 피리 불라고 권하였다. 그때 달이 마침 밝았는데, 도적들 수십 명이 빙 둘러 앉아 들었다. 피리는 학경(鶴脛)이었는데 길이가 짧으나 소리가 맑고 가락이 높았다. 소매 속에서 꺼내어 흥겹게 우조(羽調)로 부니, 도적들이 듣다가 모두 이리뛰고 저리뛰며 나놀아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이자 서서히 가락을 바꾸어 계면조를 불어대니, 가락이 끝나기도 전에 모두 한숨을 내어쉬며 탄식하여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 있었다.
꺽정이 여러 도적들의 동정을 보더니, 급히 손을 저어 피리를 멈추게 하면서,
“종실 사람은 여기에 머물러 두어도 소용이 없으니 돌려 보내야 한다.”
하고는 이어 그가 차고 있던 작은 칼을 풀어 주면서,
“길을 가다가 만일 막는 자가 있거든 이것을 보이라.”
하였다. 이튿날 장단(長湍)에 오니, 과연 말탄 자 수명이 범하려 하다가 그 칼을 보고는,
“이것을 어디서 얻었을까?”
하여 떠들어대면서 흩어져 버렸다.
그 뒤 세력이 월등하게 커져 수백리 사이에 길이 거의 끊어졌고, 혹은 도적의 무리가 서울에 가득하다고도 말하였다. 조정에서 5부에서 통(統)을 만들어 순찰하게 하고, 남치근(南致勤)으로 토포사를 삼아 재령군(載寧郡)에 나가 진을 설치하게 하니, 도적은 무리들을 거느리고 구월산으로 들어가, 다만 임꺽정과 절친한 날쌔고 건장한 자만을 데리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분산해 보내어 험악한 곳을 분담하여 차지하여 체포를 방지하는 계책을 하였다.
남치근이 군마를 많이 모아 점점 산 밑으로 좁혀들어가 한놈의 도적도 감히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하니, 도적들의 주모자 서임(徐林)이 결국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드디어 산에서 내려와 투항하여 도적들의 허한 데와 실한 데의 상황을 모두 말하여 주었다. 이에 군사를 전진시켜 숲과 늪을 뒤지며 올라가니, 모든 적들이 모두 항복하였으나 5~6명은 끝내 임꺽정을 따르므로 서임을 시켜 유인해 오게 하고 오자마자 모두 베어 죽였다.
꺽정은 골짜기를 넘어 도망하였는데 치근이 황주(黃州)에서 해주까지의 모든 장정들을 동원하여 사람으로 성을 쌓고, 문화(文化)에서 재령(載寧)까지를 한 호(戶), 한 막(幕) 할 것 없이 샅샅이 뒤지게 하니, 꺽정이 비로소 할 수 없게 되어, 한 촌가에 뛰어 들어갔다. 치근이 전진하여 포위하니, 꺽정이 그 집 주인 노파를 위협하기를,
“네가 급히 외치면서 뛰쳐 나가지 않으면 죽이겠다.”
하므로 드디어 노파가 도적이야 하고 외치며 문 밖으로 뛰쳐 나가자, 꺽정이 활과 살을 차고 군인차림으로 칼을 빼어 들고 그 노파를 쫓아오며,
“도적은 벌써 달아났다.”
고 하니, 군인들이 그가 도적의 괴수임을 알지 못하고 일제히 외치며 뛰어갔다.
그러는 북새통에 한 군사를 끌고 내려가 그가 탄 말을 빼앗아 타고 군중 속으로 달려 들어가니, 역시 누가 빼앗아갔는지 몰랐다. 이윽고 한 사람이 천천히 진중에서 나와 산 뒤를 향하여 가면서,
“갑자기 아프니 좀 누워서 치료해야겠다.”
하자, 다른 한 사람이,
“어찌 한 걸음이라도 진을 떠난단 말인가? 이놈이 의심스럽다.”
하고, 5~6명의 말탄 군사가 그를 추격하였는데, 서임이 멀리서,
“도적이다.”
외치며, 마구 활을 쏘아대니 상처가 심했다. 그제야,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서임의 행위 때문이다. 서임아, 서임아, 끝내 투항할 수가 있느냐.”
하였다. 이것은 그가 먼저 투항하여 죽임을 당하게 한 것을 분하게 여긴 것이다.
도적들이 발동하게 된 3년 동안에 다섯 고을이 피폐해지고 관군이 패하여 분산되었으며, 여러 도(道)의 병력을 동원하여 겨우 한 명의 도적을 잡았는데, 죽은 양민은 한이 없었으니, 그 당시 군정의 해이됨이 참으로 개탄스러울 정도였다. 출전- 기재잡기(寄齋雜記)
☞ 기재잡기(寄齋雜記)는 조선 인조 대의 문신 박동량(朴東亮)이 조선 초기부터 명종 대에 이르는 역대의 야사(野史)를 기술하였으며, 대동야승(大東野乘)에 수록되어 있다. 기재잡기(寄齋雜記) 1권은 조선 초부터 연조 대까지, 2권은 중종, 3권은 중종 대부터 명종 대까지의 구전(口傳)되는 일화와 기타 사실(史實)들을 기록하고, 저술자의 의견도 간간이 삽입하였다. 정사(正史)에 빠진 채 전해지는 기이한 기사(奇事)를 포함하여 명인들의 전기(傳記) 및 시사(時事)와의 관계도 보충하였다.
멋지고 재미있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소설 한페이지를 보고 갑니다.
동일인물을 정반대의 시각으로 평가하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이름으르만 봐서는 의적인데요.
碧泉 위윤기 님
네. 반대로 성호사설에 나온 임꺽정은 도적으로 묘사하기는 하지만 신출귀몰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흥미는 더 있습니다.
야운 위이환 님
우리가 아는 리더
용감한 장수 아래 약한 병사는 없다.
- 손자병법-
리더의 역할.
과연 어떤 리더가 필요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이즈음입니다.
리더가 어떤 길로 움직이는가에 따라
달라질 길들.
우리가 아는 리더는,
늘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