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유럽 대륙보다 더 광범위하게 누빈 곳은 문학의 세계였다. 그는 성서는 물론 코란을 심독했고, 역사, 지리, 여행기, 시집, 소설, 희곡, 미술, 과학 분야까지 그의 독서 편력은 동서고금으로 뻗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폴레옹은 반생을 싸움터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는 전쟁광만이 아니라 독서광이었다. 그는 달리는 말 위에서도 책을 들고 있었고, 격전지에서도 독서를 했다. 그는 무예나 기개, 호기만으로는 영웅이 될 수 없음을 터득하고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것을 숙지하여 독서에서 무사의 지혜를 배웠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꿰뚫어 보는 깊은 통찰력, 부하를 아끼는 인간애, 끝없는 인내와 각고의 의지력이 독서의 힘에서 나왔다.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명언을 남긴 나폴레옹은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과의 싸움에서 참패하기 전까지 지휘봉을 놓아 본 일은 있으나 손에서 책을 놓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정배를 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오! 갈릴리 사람이여, 그대가 이겼소! 나는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했으나 패하고 말았지만 그대는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했소!”라는 고백이었다. 이스라엘 3대 랍비는 첫째 에스라요, 둘째 힐렐이요, 셋째 가말리엘이다. 성경에는 나폴레옹보다 위대한 학사 에스라가 나온다. 그러면 에스라는 어떤 결심을 했는가? 첫째,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에스라는 사독 가계의 제사장이었다. 그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 1세 밑에서 봉직한 학사로 모세의 율법에 능통했다. 사람에게는 결심이 있어야 한다. 이 결심이 인생의 목표와 꿈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에스라는 말씀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는 율법에 정통한 학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둘째, 에스라는 율법을 준행하기로 결심했다. 유대 경전에는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말로 행위를 변명한다”라는 말이 있다. 에스라는 율법을 실행하는 지혜로운 지도자였다. 에스라는 경건한 애국지사였으며(스 7:6), 위대한 성경 연구가였고(스 7:11), 율법의 회복자요, 기도의 사람으로 백성들의 죄를 슬퍼하며 회개한 하나님의 사람이었고(9:5, 6), 유능한 행정관으로 유대인 포로들을 안전하게 이끌고 돌아온 충성스러운 지도자였다. 셋째,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백성들에게 사랑의 율법과 안식일을 가르치고,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도록 했다. 그 결과 민족적 회개 운동이 일어나 모든 백성이 율법을 순종하게 되었다(스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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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꽃인 좀꽃마리를 관찰하러 아이들과 숲으로 산책을 갔어요. 그런데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도 좀꽃마리는 보이지 않고 활짝 핀 냉이와 꽃다지들만 가득했지요. 여러분은 왜 꽃들이 각기 다른 시기에 피는지 의아하게 생각한 적 있나요? 예를 들어 국화는 가을이 돼서야 꽃봉오리가 생겨요. 옥수수나 봉선화 같은 식물은 한여름 중에서 일조 시간이 14시간 이상일 때에만 꽃이 피어요. 틀림없이 모든 식물이 같은 양의 햇빛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 거예요. 매일 식물이 필요로 하는 태양 광선의 양을 그 식물의 “포토-피리오드”라고 말해요. 튤립은 일조 기간이 짧을 때 꽃이 피어요. 또 여름 꽃들은 매일 긴 시간의 일조 시간을 필요로 하지요. 과학자들은 식물 내에 있는 꽃을 만드는 호르몬이 일조 시간의 길이에 따라 꽃 피는 때에 영향을 준다고 말해요. “꽃이 태양을 향함으로 밝은 햇빛이 꽃의 균형미를 이루게 하는 것처럼 우리도 의로운 해이신 예수께로 향할 때에 하늘의 광선이 우리에게 비치게 되고 우리의 품성은 계발되어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정로의 계단, 165). 초봄에 피는 꽃처럼 어떤 어린이는 예수님의 빛을 받아 빠르게 꽃을 피우지만 다른 어린이들은 그 마음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품성으로 변하기까지 예수님의 빛을 더 많이 받아야 하기도 하지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의 빛을 받으며 살기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분명 그리스도를 통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사람으로 성장할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우리의 꽃이 사랑스럽기를 원하세요? 그럼 오늘도 그분을 따르는 하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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