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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2824184&SRS_CD=0000012199
정우택 의원의 부친은 친일파였을까?
[김종성의 히,스토리] 정운갑의 이력
2022.4.6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이
선친을 친일파로 비판한 독립운동가 후손단체 대표를 고소했다.
5일자 보도들에 따르면,
대한민국건국회 동제사 대표를 상대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제기했다.
촛불혁명 당시인 2016년 11월 16일 원내대표로 선출돼
새누리당을 이끌었던 정우택 의원은
2020년 제20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이번 3·9 재보선에서 5선을 이뤘다.
더불어민주당 정정순 의원이
당선무효형을 받은 뒤 치러진 청주시 상당구 재선거에서 당선됐다.
그가 재선거 예비후보자였던 지난 2월 2일, 동제사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극악무도한 일제를 위해 앞장서왔던 친일파들의 위세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며
"이런 부류의 친일파 정운갑의 혈손이
민족의 얼이 서린 청주시 상당구에 정치지도자로서
국회의원을 한다고 하는 것"이라는 문장이 나오는 자료다.
동제사는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보수를 표방해 오고 있다지만
최소한 충북의 정치 1번지라고 하는
대표적인 보수 지역인 청주시 상당구에서만큼은
친일파 혈손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사람을 내세우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 이런 동제사의 행위로 인해 명예훼손을 입었다며
정우택 의원이 법적 대응에 나섰다.
정우택 부친 정운갑
정우택 의원의 부친인 정운갑(鄭雲甲, 1913~1985) 전 농림부장관은
일제 강점 3년 뒤에 충북 진천에서 출생했다.
만 25세 때인 1938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중일전쟁 발발 이듬해인 이 해부터 일본제국주의의 한국 지배에 참여했다.
<조선총독부 및 소속 관서 직원록(朝鮮總督府及所屬官署職員錄)>에 따르면,
그는 1938년 당시 충청남도 논산군 권업과에서 근무했다.
그의 신분은 속(屬)으로 표기돼 있다.
장관급이 임면하는 판임관(判任官)의 일종인 속관(屬官)이었던 것이다.
▲ 본문에 인용된 총독부 기록. ⓒ 조선총독부
1939년과 이듬해 기록에도 그는 논산군 속관으로 등장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1940년 기록에는 권업과 직원으로 표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해의 기록에서는 내무과장 다음다음에 거명됐을 뿐
구체적인 소속 부서가 명기돼 있지 않다.
그 뒤 일제강점기판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 1953년 11월 12일자 <경향신문> 기사 '정 총무처장 약력'은
정운갑이 지금의 행정자치부에 상응하는 총무처의 책임자가 된 사실을 보도하면서
"4276년 일본 고문(高文) 행정과 합격"이라고 서술했다.
1943년에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정운갑에 관한 기록에는 공백들이 있다.
고등문관시험 합격 이전과 이후의 기록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1941년·1942년 행적과, 1943년 합격 이후 행적이 뚜렷하지 않다.
1941년·1942년 행적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은 고시 공부 때문일 수도 있다.
1939년과 1940년에는 논산군 권업과에 근무했다는 기록이 있는 반면
1941년에는 구체적인 실무 부서에서 일했다는 기록이 없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군청 상급자들이 경성제국대학 출신인 그의
고시 공부를 돕고자 편의를 제공해줬을 수도 있다.
한편, 1943년 합격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생길 여지가 있다.
합격 이후의 2년간에 관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
위 <경향신문> 기사에도 언급됐듯이
1945년부터 1948년 사이에 경기도 지방과장을 지낸 일이 있다.
해방 당시에도 관직에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친일파 기준
2005년에 서울대학교 일제잔재청산위원회는
역사학자 이병도와 함께 정운갑을 '서울대 친일 인물 12인'으로 발표했다.
그해 4월 7일자 <오마이뉴스>
'서울대 일제청산위, 1차 친일인물 12명 발표'에도 보도됐듯이,
서울대 공대학생회·자연대학생회·미대학생회·사범대학생회·동아리연합회·
수행불교회·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밀알선교단·증산도학생회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정운갑·이병도와 더불어
정인섭·김성태·현제명·노수현·장발·장우성·
백한성·한태연·민복기·한동석를 친일인물로 규정했다.
이때 근거로 제시된 것은 정운갑의 고등문관시험 합격이다.
친일 엘리트 관료의 등용문을 통과한 사실이 제시됐다.
1948년 9월 22일 제정돼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반민특위)의 활동 근거가 된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은
'행위' 아니면 '지위'를 근거로 반민족행위자 여부를 판단했다.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한 사람이나,
친일행위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을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정운갑이 적극적 친일행위를 했다는 자료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경우에는 고위직에 들어가는 관문을 통과한 경력이 있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행위'보다는 '지위'를 근거로 친일파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반민법 규정 중에서 지위와 관련된 것은 제2조·제4조·제5조다
. 제2조는 귀족 작위를 받거나
제국의회 의원이 된 것 자체를 친일행위로 규정했다.
제4조는 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간부가 된 것과
칙임관 이상의 관리로 임용된 것 자체를 친일로 규정했다.
제5조는 고등관 3등급 이상에 임명된 것 자체를 친일로 판단했다.
칙임관은 일왕이 직접 임명하는 관직이었다.
칙임관 아래에 주임관이 있었고
그 아래에 판임관이 있었다.
반민법 제4조 제3호는 칙임관 이상은 친일파로 규정했지만
판임관에 대해서는 그런 규정을 두지 않았다.
정운갑이 고등관이 되는 관문을 통과한 시점은 해방 2년 전이다.
그 뒤 2년 동안에 관직에 취임했다면,
이 법에서 말하는 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할 여지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3월 22일 제정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6호는
"고등문관 이상의 관리
또는 군경의 헌병분대장 이상
또는 경찰간부로서 주로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의 감금·고문·학대 등
탄압에 앞장선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했다.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인명사전 부록인 <금단의 역사를 쓰다, 18년간의 대장정>에서
행정직 관료의 친일파 판단 기준을
'고등관 이상의 관료로 재직한 자',
'친일행위가 뚜렷한 일반 관공리'로 제시했다.
정운갑은 식민지배기구에 참여했다.
식민지배구조의 상층부에 진입하는 관문도 통과했다.
헌금을 하거나 기고나 강연을 하는 방식으로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과 달리,
일제 지배에 직접 '참여'했고
그 속에서 더 높은 역할을 얻고자 했다.
그는 해방 직전에 고등문관시험을 패스한 게 아니라 2년 전에 그렇게 했다.
그 기간에 아무것도 안 했다고 말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서울대 일제청산위가
그를 친일인물로 규정한 데는 그런 판단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2009년 9월 27일자 <충북인in뉴스>
'정우택 지사 선친, 친일 누명 벗었나'에 등장하는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정운갑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제외됐다고 해서
친일행위자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행적이 불확실해서 수록이 보류된 384여 명에 대해서는
향후 사전을 개정·보완할 때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정운갑이 반민법, 2004년 특별법,
<친일인명사전>이 규정하는 친일파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그가 친일 행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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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정진석 후보 조부 '정인각' 친일행적 드러나....파장 예상
한광수 기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 입력 : 2014/05/31
▲ 정진석 후보의 조부 정인각(좌)과 부친 정석모(중앙) 및 정 후보(우) © 뉴스파고 |
이번 6.4 지방선거 새누리당 충남도지사 후보로 나선
정진석 후보의 조부인 정인각이
일제 강점기 당시 계룡면장을 지내며,
친일행적을 한 문건이 드러나면서,
정 후보 본인이 자민련 의원 당시
친일청산법 발의에 반대했던 일과 부합되면서 큰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진석 후보의 부친은 1961년 내무부 치안국 경무과장으로 시작돼,
내무부 차관, 충남도지사, 10~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내무부장관을 지낸 정석모다.
▲ 조선총독부관보 4010호 1940년 6월 6일자 . 우측 적색 표시안에 정인각의 창씨명이 大谷正雄(오오타니 마사오)으로 기록돼 있다. © 뉴스파고 |
또 정석모의 부친은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부터 1928년까지 계룡면 서기,
1929년부터 1942년까지 계룡면장을 지내며
(조선총독부관보 1939.2.13, 동아일보 1938.5.22 석간 4면)
친일행적을 했던 인물인 정인각(鄭寅玨. 창시명 大谷正雄-오오타니 마사오,
조선총독부 관보 1940.6.5. 위 적색 네모)이다.
뉴스파고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정인각은 충남 공주군 계룡면장으로 재직시,
군용물자 조달 및 공출업무, 군사원호업무,
여론환기 및 국방사상보급 선전업무,
국방헌금 및 애국기 헌납자금 모집업무,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지나사변공로자공적조서(支那事變功勞者功績調書)에
이름이 올랐던 인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나사변은 1939년 7월 7일을 계기로 벌어진
중국과 일본간의 전면 전쟁을 일본에서 일컫는 단어로,
이는 1937년 7월 7일 북경 교외 노구교에서
일본군이 군사행동을 도발함으로써 시작됐다.
일본정부는 선전포고도 없이 총공격을 개시,
북경·천진에 이어 국민정부의 수도 남경(南京)을 점령하고
30만이 넘는 무고한 시민을 살육했으며(남경대학살사건),
무한(武漢)·광동(廣東)·산서(山西)에 이르는 주요도시 대부분을 점령했다.
이 때 중국은 장개석이 공산당의 항일 민족통일전선 결성 호소를 받아들임으로써
제2차 국공합작을 이루어 일본에 맞섰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 이른바
삼광작전(三光作戰, 살광(殺光)·소광(燒光)·창광(傖光))이라는 잔학행위로
1천 2백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을 학살했으며,
왕조명(汪兆銘) 등 친일정치인을 내세워
남경에 괴뢰정부를 수립했다.
(네이버 지식백과중·일전쟁 [中日戰爭] (한국근현대사사전, 2005.9.10, 가람기획)
또한 정인각은 1941년에는 총력운동 전개 및 일본정신 함양과
대정익찬운동 시찰 등을 목적으로 매일신보사 주최로
일본에 파견한 성지참배단의 일원으로 도일한 행적도 나타났다.
▲ 정인각은 1941년에는 총력운동 전개 및 일본정신 함양과 대정익찬운동 시찰 등을 목적으로 매일신보사가 주최하여 일본에 파견한 성지참배단의 일원으로 도일한 행적도 나타났다. 출처 네이버 라이브러리뉴스 캡쳐 (이하 동일) © 뉴스파고 |
매일신보 1941년 5월 17일자
2면에 실린 [총력전의 수훈부대 각 도서 20여명 선발] 제하의 기사(위)에는
'본사주관 성지참배단원들 결정'이란 부제와 함께
"실천운동의 제 이 단계로 힘찬 비약을 하게된 조선의 총력운동을 좀 더 활발히 하여
나가는데 도움이 될가하고 본사에서 계획한 전선각면 연맹 이사장 대표들의
성지참배단은 각 도 연맹에서 신중히 인선한 결과
드디여 매 도 이명식 이십명의 도 다음과 가치 결정되엿슴으로
오월 이십일일 오전 십일시에는 경성역을 떠나 장도에 오르게 되엿다.
일행은 강원신궁을 비롯하야 내지의 승지에 참배하야
일본정신을 기르는 동시에 내지의 각 도 시와 농촌을
차저 대정익찬운동도 시찰한 다음
육월삼일에 경성으로 도라올 터인데
이들은 일선에서 활약하는 사람뿐임으로
장내조선의 총력운동에 만흔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터이다
.(이하 이십명 명단 속에 정인각의 창씨명인 大谷正雄이 포함돼 있다)"와 같이 실려 있다.
위 기사 제목의 '총력전'이란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 일으키면서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등을 명분으로 한국인을 전쟁으로 끌어내기 위해
국민총력연맹이 펼친 국민 총력 운동으로
, 1940년 10월 제 이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본 내에서 전시 총동원 준비를 위해 대정익찬회(大政翼贊會)가 벌인 대정익찬운동에 발맞춰
조선에서 전개한 황국신민화 및 전쟁정책에 협력하기 위한 운동이다.
▲ 동아일보 1938년 5월 22일자 기사 © 뉴스파고 |
동아일보 1938년 5월 22일자
[신망과 수완겸지 계룡면장 정인각씨]제하의 기사에는
"정씨는 천성이 인후원만하고 두뇌가 명민하며, 임사에 지약이 풍부한 수완가이다.
대정팔년에 동면서기로 임명되어
면민에 대하야 지도가 민활하고 처무에 능률이 증진됨에 따라
씨의 사무성적과 면민의 신망이 독후한 면정 최적임자가 되었다.
대정십오년에 일본강산현 각촌역장에 삼개월간 사무견학을 마치고 돌아와 인하야
동면장에 취임되어 면정의 쇄신과 농촌진흥에 진력하며
각 사회단체에 중임을 겸하야 수완을 발휘하고 잇어
군내면장 중 모범적 인물로 당국의 신임과 면민의 신망은 날로 높아간다 하며,
씨의 장래는 다욱 만흔 촉망이 되고 잇다."고 기록돼 있어
당시 면장으로서 일제를 위한 활발한 활동으로 일본의 큰 신임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 동아일보 1939년 2월 12일자 기사 © 뉴스파고 |
또 동아일보 1939년 2월 12일자
[지방공적자의 포창에 대하야 대죽내무국장 담] 제하의 기사에서
"본년기원가절에 당하야 조선지방행정의 공적자로서
조선총독으로부터 충청남도공주군계룡면장 정인각, 경상남도진주군정촌면장 오순근
, 평안북도창성군신창면장 이경주 ,강원도도회의원 김기옥 사씨가 표창되었다.
회고컨댄 대정십오년 이래 본부에서 기원절가일을 복하야
지방행정의 공적자를 선장함이
이미 육회본년은 칠회에 상당한데
본부가 지방행정의 공적을 표창한 소이는 말할 것도 없이
특히 지방행정의 중요성에 감하야 공직자의 사명을 존중하고
기활동에 의하야 일반민중을 지도유액하야
지방행정의 원만한 발전을 서기하려 함에 불외한 바이다.
금회선장의 영예를 담한 사씨는
누구나 지방행정의 요람시대부터 공직에 취하야서
다년제일선에 입하야 사무의 정리쇄신, 교육, 산업, 토목,교통,위생의 보급개선,
미풍양속작흥, 민심융화 등에 지성으로 일향의 흥륭에 진췌햇음과 동시에
지방행정을 금일의 정비된 상태에 이르도록 공헌함이 만흔 은인으로서
그 발군의 공적은 참으로 모범함에 족할 것으로 밑 는바이다.
생각하면 시정 이래 이미 이십유구년 지방행정은 현저히 진전되어
면목을 일신함에 지한 것은 동경에 불감하는 바로 어성덕이 그러케한 바이니
금회 선정된 사씨와 같음은 공직을 바뜬 사람의 지성노력의 결정임이 틀림없는 것으로
이에 깊이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라고
조선총독부의 두터운 신임을 받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와 관련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문제는 단순한 옛날 일이 아니다
. 해방 이후 지금까지 친일문제는 금기에 속하는 영역으로 처리가 미뤄져 왔다.
연구소가 탄압받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며
, "친일문제를 건드리면 국립대 교수도 해직되는 현재진행형 상황이다.
성역 없는 역사 그것이 균형 잡힌 역사이고
균형잡힌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럽 여러 나라들이 지금까지도 나치 협력자들을 추적하여
공소시효도 없이 처벌하고 있는 이유는
다시는 그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의를
후세대에게 보여주는 미래지향의 선택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여러 문건을 통해 정인각의 친일행적이 나타나긴 했지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것은
직위가 면장으로 고등관료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뉴스1 22일자 기사에 따르면
정진석 새누리당 충남지사 후보는
6·4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 첫 날 야우리 광장 유세에서
경쟁자인 안희정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국가관에 대해 공세를 퍼부으며,
"대한민국은 윤봉길 의사의 순국으로 지금의 평화와 자유를 누리고 있다.
윤 의사 뿐만 아니라 유관순 열사
, 김좌진 장군 등 우리 충남이 가는 길은 ‘애국의 길’, ‘건국의 길’이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어 “그런데 이런 우리 역사를 잘못된 성공신화라고 부정하는 후보가 있다”며
“그 후보는 가시밭길을 걸으며 목숨 바쳐 대한민국을 만든 애국선열을
기회주의, 출세주의의 역사라고 비난하고 있다”고 안 후보의 국가관을 지적하며,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왜곡된 국가관을 가진 후보가
애국과 충절의 고장인 충남의 도지사가 될 수 있겠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진석 후보측에 전화와 문자를 통해 해명을 요구했지만
정 후보측에서는 아무런 해명이 없이 묵묵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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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https://cafe.daum.net/freemicro/QnxH/667
지방분권 개헌 지방정부로 개헌하면 어떻게 될까?
미일 졸개고,
골수 친일파 후손 재벌과 조종둥 똥개들을 핵심에 배치해서
삼성과 조중동,미국 똥개 국회의장과 민주당과 합작으로 지방분권 개헌 진행중??
왜 나향욱이 99%는 개돼지라고 했는지 아직도 모르면
평생 개돼지 취급당하며 살아야 하고,
개헌후에는 자녀들도 중국인 머슴으로 살아야 함??
왜 미혼남녀 90%가
오래전부터 결혼포기해서 저출산이 지속되서
10년내 초중고대 80% 폐교로
중소도시가 소멸 되는지도 모르고,
친일파 후예 언론들에 세뇌당해
아직도 한쪽을 자기편이라고 지지하는 멍청한 99% 국민들은 정신 차례야 함?
재벌과 대통,여야의원.언론들 ,
이들에게 국민은 없다 라는 사실을 깨닫고
부정선거로 당선된 가짜 왕과 의원들.가짜 시장.도지사를 끌어내리고
전자개표 없애고 사전투표 없애고
현장 수개표해서
정상적인 대통과 의원을 뽑이야 개돼지에서 벗어날수잇고,
자녀들도 희망을 가질거라고 봄.
나라에 돈이없어 복지를 못하는게 아니라,
도둑이 많아 못한다 ㅡ 누가 한말??
https://cafe.daum.net/freemicro/QnxH/586
허경영 탑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