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작전의 지휘자 박선호 의전과장은 작전 배치를 끝내고는 7시 20분쯤 경호원 대기실로 들어갔다. 대통령이 식사하고 있는 안방과는 마루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두 해병대 친구는 자신이 맡겠다고 결심 한 터였다.
사살하지 않고 무장해제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해병대 간부후보 동기생 정인형 처장과 후배인 안재송 부처장은 땅콩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미 8군 방송. 박선호는 문쪽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같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7시38분쯤 문밖으로 나왔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식당관리인 남효주를 시켜 부장에게 전화가 왔다고 전하라고 했다.
안방 앞에 있는 부속실로 나온 김재규는 박선호에게 "준비 다 되 었지"하고 물었다. 준비 완료를 확인한 김 부장이 곧장 안방으로 돌 아가는 바로 그때 세계사격대회 한국 대표선수이기도 했던 안재송이 대기실에서 나와 복도를 건너 화장실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박선호 가 질려서 마루에 서있는데 안재송은 이내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대기 실로 다시 들어갔다. 박선호는 안재송을 따라 대기실로 들어가 입구 쪽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손은 허리에 가 있었다.
저녁 7시40분쯤 김재규가 슬그머니 바깥으로 나간 사이에 차지철 경호실장의 지명으로 신재순이 노래를 부를 차례가 되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까지 부르는데 기타가 멎었다. 음치에 가까운 신양의 노래를 심수봉의 기타 반주가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심수봉이 신양의 음정에 맞추려고 기타를 퉁겨 보고 있는 사이에 대통령이 말했다.
"이 노래는 나도 아는 노래인 것 같은데. 우리 아이들이 가끔씩 부르거든.".
김재규가 안방으로 돌아오니 신재순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작곡을 할 정도로 노래에 소양이 있는 대통령은 나지막하게 따라불렀다.
"각하도 그 노래 아십니까?" 차지철이 말했다. 신양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김재규가 소리 없이 들어와서 맞은 편 자리에 앉는 것을 눈여겨 볼 수 있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박정희가 신재순과 함께 이렇게 콧노래로 흥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노래는 후렴으로 들어와서 "예 예 예..."로 넘어가고 있었다.
김재규가 행동을 개시했다. 오른 손으로 옆에 앉은 김계원의 허벅지를 툭 치고는 "각하를 똑 바로 모십시오"라면서 권총을 오른쪽 바지 호주머니에서 뽑았다.
"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자식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똑바로 되겠습니까?".
"탕!"과 거의 동시에 "김 부장, 왜 이래"하는 차지철. 그는 "피, 피, 피" 하면서 피가 솟는 오른 팔목을 붙잡고 일어나 실내 화장실로 뛰어갔다. 차 실장은 "경호원 경호원 어디 있어"라고 소리쳤다. 제 1탄은 차지철이 엉겁결에 내민 오른 손목을 관통했던 것이다.
이 순간 김계원은 일어서면서 "각하 앞에서 무슨 짓이야"라고 소리치고 바로 왼쪽에 있던 김재규를 밀었다고 주장한다.
"뭣들 하는 거야.".
노래를 흥얼거리던 대통령은 이 한 마디를 벽력같이 지른 뒤에는 정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최후의 대통령을 옆자리에서 가장 냉정하게 또 가장 정확하게 관찰한 신재순은 '대통령은 그 모양을 보지 않으려는 듯 눈을 감고 정좌를 하고 있었다. 위기일발의 상황에서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김재규는 달아나는 차지철을 따라갈 듯 일어나서 다소 엉거주춤 한 자세에서 박정희를 내려다보면서 발사했다. 오른쪽 가슴 상부에서 들어간 총알은 허파를 지나 오른쪽 등 아래쪽을 관통하고 나왔다. 차 지철을 쏜 제1탄과 박정희를 쏜 제2탄 사이에는 몇 초의 간극이 있었다. 김재규가 말했듯이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기 위한' 결심에 필요한 시간이었는지, 자신을 친동생처럼 아껴주면서 능력에 비해 과분한 배려를 해주었던 동향의 선배에 대한 순간적인 주저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김재규는 법정에서 "차 실장에게 꽝 하고 각하에게 꽝 했으니까 1초도 안걸렸습니다"라고 진술했다.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김재규의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그는 차실장을 쏜 뒤에 4-5초 정 도 머뭇거렸다.]
김계원은 박정희가 총을 맞고 왼쪽으로 스르르 쓰러 지는 것까지 보고 마루로 뛰어나갔다. 김계원은 '김재규와 차지철이 싸우는데 각하가 옆으로 피하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1심법정 진술).
대통령 바로 오른쪽 옆자리에 있었던 신재순(현재 미국 로스앤젤 레스 거주)은 "박 대통령은 총탄을 맞은 뒤 고개를 떨구고 기울어졌는데 이마가 식탁 위에 닿았다"고 기억한다.
"김계원씨가 김재규를 말리는 행동을 본 적은 없고 일어서는 것 을 본 적도 없습니다. 김실장은 아마 전깃불이 나가 제가 볼 수 없었을 때 일어나 마루로 나간 것 같습니다. 거무튀튀한 권총을 손에 든 제 정면의 김재규 표정은 무서웠습니다. 저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차 지철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한 발을 쏜 뒤에 다시 연발사격을 하려고 방아쇠를 당겼다. 방아쇠를 당겼는데 발사가 되지 않았다. 약실로 새 총탄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그는 차지철의 반격이 있을까 당황하여 연거푸 노리쇠를 후퇴시켜 보았지만 장전이 되지 않자 마루로 뛰어나갔다. 김재규는 차지철이 권총을 차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전깃불이 일제히 나갔다. 옆방인 대기실과 주방에서는 탕, 탕, 탕하는 권총 소리와 "움직이지 마"하는 고함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아수라장을 연출하고 있었다. 안방에서 마루로 뛰어나간 김계원 은 "불 켜, 불 켜"라고 소리쳤다.
[10·26사건 수사에서 풀리지 않고 있는 부분이 김재규의 권총 고장이다.고장이유에 대해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 자가 이 독일제 월터PPK 권총을 작동시켜보고 내린 결론은 김재규가 말한대로 '박정희를 쏜 제2탄의 탄피가 방출되지 않아서 장전이 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합수부의 현 장검증조서를 보면이 권총에서 발사된 두 발의 탄피가 다 발견되었으므로 김재규의 진술은 사실오인이다.
이 권총은 007영화에서 제임스 본드가 즐겨 쓰던 것이다. 32구경에 손잡이가 짧고 얇아 손아귀에 잡 혔을 때 안정감이 있다. 이 권총은 손잡이를 잡은 손의 엄지손가락을 위로 펴서 안전장치, 즉 자물쇠를 열고 사격을 하도록 되어 있다. 어떤 충격이나 손가락의 작용으로 해서 이 자물쇠가 내려오면 실탄장전이 되지 않는데 그런 고장이 잦다는 것이 이 권총의 약점이다. 김재규는 자물쇠가 내려와서 잠겨진 것을 모르고 노리쇠만 후퇴시키려 했 으나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