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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는 철학이 담겨 있다
박윤찬
이번 여행은 건축을 테마로 한 여행이었다. ‘공간이 만든 공간’ 이라는 책으로 사전 공부를 한 후 안도 타다오와 이타미 준 같은 거장들의 건축물들을 직접 보고 느끼며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많은 것들을 느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설명을 듣는 것과 실제로 가서 보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이 글 또한 직접 가서 보는 것보다는 많이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필자가 보고 느낀 것들이 조금이나마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건축을 비롯한 대부분의 현대미술의 특성상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나의 주관적인 해석에 대해서만 서술하도록 하겠다.
들어가는 말
처음에 이번 여행의 테마가 건축이라고 발표되었을 때는 굉장히 의외였다. 항상 역사,천문학 같은 거창하고 심오한 주제로 여행을 갔던 책숲이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점점 공부를 하고 건축의 세계를 알아가게 되면서 나의 고정관념은 완전히 부서졌다.
‘공간이 만든 공간’ 이 품고 있는 내용은 비단 건축뿐만이 아니었다. 강수량에 따른 문화의 발전 과정 같은 것부터, 건축과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열역학까지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말하는 중요한 내용은 이것이다. 건축은 시대적, 지리적, 문화적, 가치관적, 생활적 배경들이 융합되며 만들어진 문화의 집약체이다. 그렇기에 이 글은 내가 보았던 건축물들이 무엇을 담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날-제주 역사 여행(삼성혈,관덕정)
제주에 도착하고 처음 간 여행지는 제주의 시작점이라고 불리는 삼성혈이었다. 제주도의 초대 지배자들인 고을나,양을나,부을나 3명이 굴 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고씨,양씨,부씨 이 3가지 성씨가 시작된 구덩이라 하여 삼성혈이라고 한다.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는데,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라는 말이 제주 방언 혹은 이두로 고운이,어진이,밝은이라는 해석이 있다. 또, 제주도에서는 족장을 을나라고 불렀는데, 이 고을나,양을나,부을나가 각각 고씨,양씨,부씨 씨족의 족장이라는 설이 있다. 마지막으로, 오래전에 있었던 민족 대이동 때 고구려인과 양맥족, 부여인들이 제주로 내려왔는데, 고구려인들을 고을나, 양맥족들을 양을나, 부여인들을 부을나에 빗대어 풀어냈다는 설 또한 존재한다.
잘 관리된 삼성혈을 볼 때마다 작년 이맘때쯤 갔었던 경주 나정이 생각났다. 나정 또한 삼국 중 하나인 신라가 시작된 곳인데, 석조 건축물과 비석들은 공사장 자재처럼 내팽개져 있었으며, 나정 표지판도 엉뚱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도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었는데, 이번에 삼성혈에 가면서 다시 그 감정을 복기하게 되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각인하는 시간이었다.
관덕정에서는 관덕정 건물을 구경하러 갔는데 우연히 10.29 참사(이태원 참사) 추모 음악회를 하고 있었다. 마침 선생님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그 참사를 접하고 마음이 아팠던 터라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취지에서 조용히 음악회를 관람했다. 관덕정에 대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것만큼은 확실히 기억난다. 하루빨리 10.29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고 희생자들의 영혼이 편하게 안식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첫째 날-제주 역사 여행(4.3기념관)
다음으로 간 곳은 4.3 기념관이었다. 4.3, 항쟁,사건,사태,폭동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7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제대로 정의되지 않는 우리나라 최대의 비극이다. 기념관을 둘러보며 4.3에 대한 내막을 알 수 있었다. (4.3의 진행 과정을 전부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니 이 글에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은 4.3의 시작 또한 독립 직후의 미,소에 의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충돌로 만들어진 정치투쟁이었다는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들과 비교해도 오히려 앞설 정도로 정치에 대해 깨어 있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남북의 통일 정부 수립을 바랐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그들에게 투표를 강요했고, 제주 사람들이 이를 거부하자 이승만 정부는 군인들과 극우 청년단체인 서북청년단(극우파계의 홍위병 같은 이들)을 보내 이들을 학살해버린다. 정치 사상의 대립이 낳은 있어서는 안 될 동족 상잔의 비극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4.3의 발단은 6.25전쟁과도 굉장히 유사하다.
두 번째 사실은 이 사건의 배후이자 총책임자는 이승만이 아닌 미군이라는 것이다. 4.3을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승만만을 비난한다. 물론 이승만이 저지른 잘못도 매우 크다. 하지만 이 사건을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누구보다 잔혹하게 실행에 옮긴 것은 다름아닌 미군들이었다. 그들은 4.3의 효과적인 진행을 위해 일제 강점기에 복무했던 친일 경찰들까지 등용한다.
박물관을 둘러보며 오만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왜 죄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했는가.’ ‘왜 4.3은 잊혀졌는가.’ ‘가해자가 떵떵거리고 피해자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세상은 과연 옳은 건가.’ ‘그리고 왜 그런 세상이 70년 동안 지속되는가.’ 와 같은 생각들이었다. 아직도 이 세계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탈을 쓴 제국주의들이 넘쳐난다. 6.25 전쟁,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비극들이 모두 이것들에서 비롯된 참혹한 역사다. 4.3도 그것들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둘째 날-본태박물관
본태박물관은 안도 타다오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로, 노출 콘크리트와 물,빛을 이용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이 특징인 건물이다. 총 5개의 전시가 있으며, 한국 전통 공예품, 현대 미술,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 한국 전통 장례 문화, 기획전시로 구성되어 있다. (분량상의 문제로 3,4전시실에 대해서만 설명하겠습니다)
제3전시실은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 ‘무한 거울방’ 이 있는 전시실이었다. ‘무한 거울방’ 은 바닥을 제외한 모든 면이 거울이고 바닥은 물로 구성된 방으로, 천장에 매달려 있는 조명들이 내는 형형색색의 빛을 다섯 면의 거울과 바닥의 물이 무한으로 반사시켜 마치 내가 무한한 공간에 있게 만드는 듯한 작품이다. 작은 방과 거울, 그리고 조명만으로 ‘무한’ 이라는 거창한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말하라 하면,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 인생 최고의 2분이었다. 나는 열 살 때부터 우주에 관심이 많았고, 이는 자연스레 천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까지 우주에 대한 관심과 학구열은 식지 않고 언제든 불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무한 거울방의 첫인상은 마치 하나의 작은 우주같이 보였다. 이 작품을 통해 우주에 가보고 싶다는 소원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좁은 방과 거울, 조명만으로 무한을 표현한 것을 보며 우리 근처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작은 무한’ 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인간의 뇌, 인간의 마음, 인간의 잠재력 같은 말들이었다. 그 중 인간의 잠재력이라는 말이 무한 거울방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조명이 밝히고 있는 곳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한계이지만, 조명이 비춰지지 않은 곳은 아직 피워내지 못한 잠재력이다. 언젠가 저곳에 조명이 비춰지면 방은 더 화려해지는 것처럼, 언젠가 저 깊이 숨은 잠재력을 끌어낸다면 인생 또한 더욱 화려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조악한 비유를 해보았다.
4전시실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지식을 알게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전통 상례 문화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고 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생각보다 우리나라의 상례 문화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삶의 너머에는 ‘피안’ 이라는 땅이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저승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이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생전에 함께했던 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상여를 타고 피안 땅으로 향한다. 이때 망자들을 수행하고 안내하며 시중을 드는 것이 바로 꼭두이다. 그렇게 피안으로 도착한 망자는 피안의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고인의 기일은 가족들과 지인들의 입장에서는 고인을 떠나보내는 슬픈 날이지만, 고인 본인의 입장에서는 피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또 다른 생일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옛 장례는 마냥 슬픈 분위기로 치러지지만은 않았다.
또한 우리가 치르고 있는 현대식 장례에는 오류가 굉장히 많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첫 번쨰로, 우리가 고인의 송장(송장은 순우리말이기 때문에 사용을 권장한다고 한다.)에 입히는 수의는 삼베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잘못되었다. 삼베는 옷감이 거칠기 때문에 주로 죄수복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삼베를 수의로 쓴다는 것은 죽은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옷을 수의로 사용하면 고인께서도 좋아하실 것이고 비용도 아낄 수 있다. 그리고, 장례식 때 사용하는 화환 또한 잘못되었다. 화환의 동그란 꽃은 태양을, 화환의 잎은 뻗어나가는 태양빛을 상징하는데, 이는 욱일승천기를 본뜬 것이다. 우리는 패망한 일제의 잔재를 장레식과 결혼식 같은 중대사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장례식 때 국화를 놓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죽은 자의 영혼은 장례식 때 피우는 향의 연기로 배를 채우고 저승길로 향하는데, 국화의 향이 너무 강해 향의 향이 묻혀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장례식 때 꽃을 굳이 둬야 한다면 국화보다는 고인이 생전 좋아했던 꽃을 두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장례식에 갈 때 검은 옷 속에 흰 옷을 입고 가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장례식 때 흰 옷을 입었다. 망자의 영혼이 검은 옷을 입고 찾아오는 저승사자와 헷갈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고인께 문상을 드릴 때라도 검은 옷을 벗고 흰 옷으로 고인께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렇게 해설사님의 기가 막히는 설명을 들으며 점점 사라져가고 묻히는 우리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이 내 머리를 맴돌았다. 이상하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처럼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것 같다. 학교에서조차 고대 역사가들에게 왜곡되고 축소된 틀린 역사를 가르치고 있고, 인터넷에서는 우리 문화와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국뽕이라고 하며 매도하고 비난하는 자들도 있다. 우리라도 그날 배웠던 것들을 지켜나가며 우리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우선 알아야 한다. 언젠가는 한번 우리 민족의 사상과 얼에 대해서도 깊게 파헤쳐보고 싶다.
둘째 날-수풍석박물관
수풍석박물관은 일본 건축계의 또 다른 거장 이타미 준(본명 유동룡) 선생님의 작품으로, 물,바람,돌을 테마로 한 설치미술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른 변화를 중요시한 이타미 준은 풍 박물관, 석 박물관에도 이런 기믹을 넣었다. 그래서 풍,석 박물관의 현재 외관은 준공 당시의 외관과 색이 많이 다르다고 한다.
우선 석 박물관은 돌을 테마로 한 건축물이다. 녹슬고 부식된 철로 만들어진 네모난 건축물이다. 내부에는 일본의 돌 세공 예술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천장 모서리 쪽에 하트를 연상시키는 구멍이 나 있다. 그 구멍 안으로 태양빛이 들어오는데, 빛이 비치는 위치는 시간마다 달라진다. 감상평을 짧게 남기자면, 문 벽면에 있는 통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무언가 신비감을 주는 것 같았다. 창이 생각보다 넓었는데도 빛이 퍼져나가지 않고 어두운 공간과 밝은 공간이 확실히 구분되는 것이 인상 깊었다. 또한 구멍을 천장 바로 위도,벽면도 아닌 모서리에 낼 생각을 했다는 것이 대단하다 느껴졌다. 작은 발상의 전환만으로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풍 박물관은 바람을 테마로 한 건축물로, 벽면에 줄무늬같은 틈새로 빛이 들어와 그림자로 줄무늬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도한 설치미술이다. 자세히 보면 한쪽 벽면이 휘어있는데,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굴곡도가 다르게 보인다. 마찬가지로 감상평을 짧게 남기자면, 처음 들어갈 때는 벽면이 휘어진 것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설명을 듣고 다시 보니 벽면이 휘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는 각도와 위치에 따라 굴곡도가 달라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풍 박물관의 외부를 관람할 때 유난히 억새들이 눈에 띄었는데, 이 억새들 또한 풍 박물관의 일부처럼 보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풍 박물관의 휘어진 벽면이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수 박물관은 물을 테마로 한 건축물로, 상암 월드컵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형태의 건물이다. 천장에 뚫린 동그란 구멍으로 들어오는 태양빛과 하늘 풍경을 바닥에 있는 물에 반사시켜 대칭을 이루게 하는, 수풍석 박물관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전시이다. 감상평을 남기자면, 수 박물관에서는 고요한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사진을 찍느라 제대로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압도되고, 물에 비치는 태양빛에 동화되어 풍경에 녹아드는 기분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한 번 더 가볼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가만히 앉아서 온전하게 수 박물관의 풍경을 느껴보고 싶다.
수풍석 박물관은 3개의 건축물이 전부 빛을 테마로 한 건축물이었다. 또한 시간을 테마로 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빛이 다른 각도에서 비치고, 빛의 위치가 점점 이동하는 것과, 시간이 지나 녹슬고 부식된 석 박물관, 계절마다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되는 풍 박물관에서 이타미 준의 건축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이타미 준은 불변의 건축이 아닌, 마치 생명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하는, 살아있는 건축을 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날-유민 미술관
유민미술관은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로, 안도 타다오 특유의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과 빛을 가지고 노는 구조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내부에는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아르누보 유리공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민미술관은 본태박물관처럼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특히 유민미술관은 주변에 있는 섭지코지 바다와 어우려져 하나의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인공 폭포(?) 와 벽면에 뚫린 직사각형 모양의 구멍, 그리고 구멍이라는 프레임 너머로 보이는 성산일출봉이 인상적이었다. 전시실로 내려가는 통로도 기억에 남았는데, 하늘을 천장 삼은 듯한 지붕 뚫린 천장에서 기하학적 도형을 자연과 대조시켜 조화를 이루게 하는 안도식 조화가 느껴졌다.
내부에 있는 아르누보 유리공예 또한 인상 깊게 보았다. 전시관을 둘러보며 아르누보 유리공예는 유리로 그린 그림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어떤 작품은 동양화 같기도 했고, 어떤 작품은 정물화 같기도 했고, 어떤 작품은 추상화 같았다. 우리가 떠올리는 유리는 창문과 컵에 쓰이는 투명한 소재인데, 그런 예술로 쓰이기엔 색다른 소재로 <버섯 등>,<바다의 심연>(사진 참조) 같은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글을 마치며
이번 여행을 통해 건축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건축은 단순히 공간과 물체를 만드는 행위가 아닌,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진 문화의 집약체이다. 건축에는 당시 사람들의 시대상이 녹아 있다. 건축물에는 만든 사람들의 철학이 녹아 있다.
이번 여행에서 안도 타다오와 이타미 준의 건축물을 보면서 그들만의 건축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안도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들이 자연 풍경과 대조되어 그것대로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이타미 준은 건축물도 시간이 지나며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이 변하는 소재를 사용하거나 자연 풍경을 이용해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살아있는 건축’ 을 했다.
이처럼 건축물에는 만든 이의 생각이 묻어난다. 그것은 건축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들도 마찬가지이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작품 속에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작품 속에 교묘하게 숨긴다. 그것들은 작품의 웅장함, 아름다움, 혹은 난해함 속에 숨어 누군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 속에 숨긴 의미, 그것을 찾아나가는 것이 예술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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