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스 데 레이 - 리바디소(아르수아)
30일 차(29.4Km)
잠 잘잠
100킬로 남겨놓은 사리아부터는
사설 알베르게도 많고 시설이 준호텔급.
10유로 정도로 가격도 적당.
재충전 하기에 좋음
과일로 아침 먹고 출발준비 완료.
과일 4개 (복숭아, 큰 자두, 사과, 체리20개)에
2,000원 정도로 싱싱하고 저렴
▲ 까베세이로 (Cabeceiro)
까베세이로는 ‘가난한 이들의 오레오’라고 부르는 전통적인 창고 구조물입니다.
현재에는 레보레이로에 남아있는 것 이외에는 찾아보기 힙듭니다.
기둥 위에 버드나무 가지로 엮은 커다란 광주리를 올리고 짚으로 덮은 형태로
전통적으로 식량을 보관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 푸롤레스 마을과 멜리데 십자가가 있는 산후안 성당
오늘 모처럼 화창한 날씨.
하지만 10시가 지나자 온도가 40도 육박
멜리데 도착하여 멜리데 십자가에 대해 생각하고
찾아보려고 성당 몇 군데 방문했으나 찾지 못함.
푸레로스 산 쥬앙 교회(Igrexa de San Xoán de Furelos) 와 내부에 있는 십자가
순례 떠나기 전부터 꼭 방문하고 싶었던
멜리데 십자가로 알려진 위 십자가가 있는 성당을 찾으려고
순례중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음.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인가 하면서
아쉬움을 가득 안고 결국 찾는 것을 포기할 수 밖에.
한국에 돌아와 순례기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십자가 있는 성당을 발견.
그리고 성당이 있는 곳은 멜리데가기 조금 전에 있는 푸로레스 마을의
푸레로스 산 쥬앙 교회(Igrexa de San Xoán de Furelos)로
엉뚱하게 멜리데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이 지역의 조각가인 마누엘 카이데(Manuel Cajide)의 작품으로
지친 순례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시는 모습이라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 성당은 내가 들어가려고 하다가
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한 성당이었음.
멜리데십자가로 알려진 이 십자가는
옛날에 이 십자가 아래에서 어떤 형제님이 진심으로 뉘우친 뒤,
고해소에 들어가 신부님께 자신의 모든 죄를 눈물 흘리며 고백했지요.
사제는 그에게 사죄경을 외워주면서
다시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 했고 또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철저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완벽하겠습니까?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결심을 하지만
돌아서면 다시 똑같은 죄를 짓고 마는 것이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이겠지요.
이 형제님 역시 결국 죄에 다시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다시 사제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청했지요.
지난번과 똑같은 죄를 고백하는 이 형제님의 죄 고백을 들은 신부님은
순간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하시지요.
바로 그 순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당신 오른손을 못에서 빼내서
이 사람에게 직접 십자가를 그어주시면서
이 신부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은 그대가 아니다.”
멜리데
멜리데는 까미노 프란세스와
까미노 데 오비에도(Camino de Oviedo)가 만나는 곳입니다.
중세의 많은 순례자들은
오비에도의 산 살바도르 대성당(Catedral de San Salvador)에 있는
까마라 산따(Camara Santa)의 유물을 경배하기 위해 이 길을 걸었습니다.
전성기의 까미노 데 오비에도는 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병원이 많이 있었고,
마을들은 수많은 순례자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산띠아고는 가고 살바도르에 안 가는 건
주인은 내버려두고 하인을 섬기는 것이다!” 라고
산띠아고 성인을 모욕하다시피 하는 가사를 담은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고 합니다.
뿔뽀(문어)요리를 먹고 싶어 레스토랑을 찾았지만,
9시 영업으로 30분 기다림.
첫번째 손님으로 먹음
덕분에 재료인 문어 날라오는 모습과 삶는 모습,
가위로 자르는 것등 구경.
다른 곳에서 먹은 것보다 덜 짜고 맛있음
문어 한마리 1만원
문어 요리집 오픈이 9시인데 30분 전 도착
성당 사진 찍고 두리번 거리자 광장 주변에서 노인3분이 대화하다,
나를 보고 까미노는 저쪽이라고 가르쳐줌
속으로 '나도 안다' 하면서 다가가,
문어 요리집 상호 ‘Pulperia’(뿔뻬리아)를 말하자
이 거리가 바로 그곳이라고.
내가 찾던 유명한 집은 결국 문어 거리였음.
먹고 순례를 계속하려고 걷자
아까 그 노인들 나를 발견하고 먹었냐고 제스추어
'무이비엔 베리굳' 하자
두 손으로 걷는 시늉하며 엄지척
나도 스태미너! 하자
부엔까미노하고 웃으며 인사
정말 까미노는 서로 도와주고 축복해 주는
행복하고 즐거운 순례길
리바디소 다 바이쇼
리바디소 숙소도착 12시30분.
내일 35킬로 부담되어 좀더 걸을까 하다 포기.
내일 일은 내일걱정하자
씻고 빨래하고 시원한 맥주
그리고 와인을 곁들인 점저(점심 겸 저녁)
6월 18일 : 리바디소 – 몬테도 고소
31일 차(34.7Km)
새벽 4시에 출발.
혼자서 3시간 헤드램프에 의존 싸인을 찾아가며
내 발자국 소리만 듣고 걸음
항상 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걸어서 몰랐는데,
새도 날이 어슴프레 밝아야 운다는 사실 깨달음
또한 어제 밤새 스페인 음악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면서
무슨 축제가 있나 했는데
4시 30분쯤 아르수아를 지나는데 바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옴.
밤새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놀고 귀가하는 모습도 봄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4시 출발해보니 새로이 알 수 있었음
4시간 걷고 잠시 쉬면서 아침 겸 맥주 한잔.
생각보다 발걸음이 가벼움.
어제 뿔뽀 덕택인지?
라바꼬야는,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국제공항 근처의 작은 마을입니다.
칼릭스티누스 사본은 라바꼬야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산띠아고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숲이 우거진 마을에 시내가 흐르는데,
프랑스에서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향하는 순례자들은 모두 이곳에서
사도 야고보를 만나기 위해 옷을 벗고 손발과 더러워진 몸을 모두 씻습니다.”
옛 순례자들이 산티아고 입성(당)을 앞둔 라바코야에서
땀에 젖은 몸을 씻고 빨래하고 정결하게 한 곳에서,
나도 잠시 세수하고 마음으로 정화로운 예식을 함
까미노를 걷다보면 마을 소개할 때
칼릭 스티누스 사본 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123년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 프랑스 사제 에임리 피코 덕분에
오늘날의 순례자들은 중세의 샤를마뉴 대제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
좀더 가까이로는
교황 요한 23세가 따라갔던 여정과 같은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피코는 자신의 경험을 다섯 권의 책으로 써냈는데,
이는 사도 야고보의 신봉자인 교황 갈리스토 2세의 업적으로 기록되었고,
훗날 '칼릭 스티누스 사본' 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학자들은 콤포스텔라에 보관된 필사 원고가
1138년부터 1173년 사이에 엮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관련된 기록 가운데서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완벽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 책은 교황 칼릭스티누스 2세의 이름을 따서
‘칼릭스티누스 고사본’(Codex Calixtinus),
또는 이 고사본이 보관된 지역의 이름을 따서
‘콤포스텔라누스’(Compostellanus)라고도 한다.
칼리스티누스 코덱스
중세 산티아고 순례기, 순례모습 기록. 5권의 책으로 구성
1권: 성인과 관련된 전례 – 기도문, 성가, 전례문 등 수록’
2권: 스페인과 그외 나라에서 발생한 성인과 관련된 22가지 기적이 담겨있는 내용
3권: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신 야고보의 시신이
어떻게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모셔왔는지의 내용
4권: 롤랑의 연대기에 관련된 기록
5권: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길을 13 stage로 구분, 구체적으로 수록.
12세기에 어떻게 순례가 이루어졌는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등을 기록.
순례길을 따라 걸어가며 알아볼 수 있는 자연의 표지들과
도중에 있는 샘, 숙박을 할 수 있는 수도원,
피신처와 도시들을 열거해놓았다.
피코의 주해에 기반을 둔 성 야고보의 친구들 수도회에서는
오늘날까지 이 자연 지표들을 보존하여 순례자들을 이끌어주고 있다.
몬떼 도 고소
갈리시아 주정부는 몬떼 도 고소를 다국적 순례자들의 숙박 시설로 제공하고,
여러 가지 이벤트를 열 수 있는 장소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즐거움과 환희의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언덕의 정상에서
순례자들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마침내 바라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됩니다.
이곳은 몬쇼이(Monxoy)라고도 부르는데
아마도 이 언덕 위에 도착한 프랑스 순례자들이
언덕의 정상에서 대성당의 탑을 내려다보며 기쁨에 겨워서 프랑스어로
“몬 쇼이!”(Mon Joie; 나의 기쁨이여)라고 외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곳까지 말을 타고 온 순례자들은 존경을 표하는 의미로
여기부터 산띠아고까지는 말을 끌고 걸어서 갔습니다.
언덕 위에는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다는 기념비와
조각가 아꾸냐의 작품인 두 순례자 조각상이 있습니다.
몬테 도 고소 알베르게: 5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내일 우아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 도착을 위해,
즉 내일 붐비지 않을 때,
오전 성당 방문하고 정오미사를 참례키 위해
오늘 무리해서 38킬로 여정으로 잡아 걱정이 되었으나,
오후 1시에 무사히 도착
이제 숙소에서 마음정리하고 내일 4.6키로 걸은 후 입성예정
알베르게 어마어마하게 큼
단 레스토랑 등을 현재 운영하지 않아
많이 걸어 나와 먹어야 하는 불편함 있음
너무멀어 밥먹기 힘들어 피자 한판과 맥주 1500마시고 낮잠 자야지
너무 더워(40도), 숙소를 나와 또 생맥주
1시간 후 미사.
날짜 가는 것 착각.
오늘이 주일이네
어제가 주일인줄 알고 그저께 특전미사 봉헌한 것 무효.
오늘 주일미사 참례해야지
아주 작은 예배당 미사.
특별한 느낌
오늘 한국어로 순례자 기도함
오늘 알베르게
어마어마한 규모 총 30개 동 중에서 28~30동,
3개 동만 알베르게 사용
한 동에176개 침대. 총 침대 528개
오늘 면도하고 손발톱 깎고 입성준비완료
첫댓글
소를 곱삐 없이 걷게 하는 것도
저렇게 평화로울 수 가요
인도 인가요
감사합니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