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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믿나이다] (47)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 확립
379년 1월 19일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1세가 제50대 로마 제국 황제로 즉위합니다. ‘하느님께서 내린 사람’(Θεοδοσιοξ-테오도시오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는 즉위 1년 만인 380년 2월 28일 칙령 ‘모든 백성에게’(Cunctos Populos)를 반포,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합니다. 이로써 그리스도교는 박해받는 교회에서 잘된 것이든 못된 것이든 명실상부한 제국 교회로 거듭납니다.
그리스도교 제국의 황제가 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 논쟁을 종식하기 위해 대담하게 381년 5월 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공의회를 소집합니다. 그는 첫 번째 보편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성부와 성자가 한 본체(동일 본질)로서 같은 신성을 지닌다고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자의 신성을 부정해 피조물로 성부께 종속돼 있다는 아리우스주의를 단죄하고자 했습니다. 또 동일 본질이 아닌 유사 본질을 주장한 반(半)아리우스주의, 성령 역시 피조물이라는 마케도니우스파 등이 여전히 교회 안에서 분열을 조장해 교회 일치를 위해서라도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 고백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테오도시우스 1세의 입장은 이미 ‘모든 백성에게’ 칙령에 잘 드러납니다.
“우리의 관대하고 신중한 통치를 받는 모든 백성이 하느님의 사도 베드로가 로마인들에게 전해 준 신앙이 지금까지 알려진 그 자체로 선언하였고, 로마의 대사제(교황) 다마소와 사도적 성성(聖性)을 가진 알렉산드리아의 페트루스 주교가 그것을 따르도록 밝혀준 그 신앙에 머물러 있기를 우리는 원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사도적인 가르침과 복음적인 교리에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하나의 신성이 같은 영광과 거룩한 삼위일체 안에 있음을 믿는다. 우리는 이 법령을 따르는 이들이 보편적인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반겨 맞이하도록 명한다. 그러나 우리가 미쳤으며 정신 나간 사람이라 생각하는 다른 이들은 이단적인 가르침을 따른다는 모욕을 당해야 한다. 그들의 집회 장소는 교회라 불릴 수 없다. 그들은 먼저 하느님의 벌을 받아야 하며, 그 다음에는 하늘의 뜻에 따라 처벌받아야 할 복수로 생각한 우리의 징벌을 받아야 한다.”(「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233쪽, 황치헌 신부 옮김)
두 번째 보편 공의회이자 첫 번째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는 381년 5월부터 7월 30일까지 두 달간 진행됐습니다. 참가 교부도 150명에 불과하고 모두 동방의 주교들이었습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니사의 그레고리오·예루살렘의 치릴로 주교가 대표 인물이었습니다.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가장 큰 업적은 성자가 성부와 한 본체로서 동일한 신적 본질(또는 본성)을 지닌다는 니케아 신경을 재확인하고, 성령의 신성을 명시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정통 신앙 고백을 확립했다는 것입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채택했고,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는 이를 믿을 교리로 공포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한 아리우스주의, 반아리우스주의, 마케도니우스파, 성부 수난설을 주장한 사벨리우스주의 모두를 이단으로 단죄했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헬라어 본문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저희는 믿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곧 성부의 본질에서 나셨으며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본질이 같으시며, 그분을 통하여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이 생겨났으며, 저희 인간 때문에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성령과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으며,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수난하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시어,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라 믿나이다.
또한, 주님이시고 생명을 주시는 성령, 성부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분을 믿나이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저희는 죄의 용서를 위한 유일한 세례를 고백하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아멘.”(「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256~257쪽, 덴칭거 –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 150 참조)
이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17세기 후반부터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 신경은 동방 교회의 기본 신경으로 승인돼 6세기 동방 교회 대부분에서 ‘세례 고백’으로 사용됐습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589년 제3차 스페인 톨레도 지역 공의회(교회회의)에서 처음으로 미사 때 사용했다는 내용이 언급됩니다. 그리고 이 제3차 톨레도 지역 공의회에서 ‘성부에게서 발하시고’에 ‘성자에게서’(Filioque)를 첨부해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오늘날 서방 가톨릭교회가 고백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내용이지요. ‘성자에게서’라는 이 한 단어는 동·서방 교회가 갈라지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주일 학교 교리 교사 양성 지침」무엇을 담았나?
‘선교사이자 사도’로서 주일학교 교리 교사 역할 강조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위원장 정신철 주교)가 편찬하고, 돈보스코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소장 윤만근 신부)가 연구·집필한 「한국 천주교회 주일 학교 교리 교사 양성 지침」은 한국 천주교회의 교리 교사 양성 기준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주일 학교 교리 교사 양성 지침」(이하 지침)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살펴본다. 각 교구 청소년국 담당 사제와 직원을 비롯한 한국 교회 모든 본당 사목자와 교리 교사들이 눈여겨봐야 할 지침이다. 대부분 교구는 각 교구 상황이나 환경 변화에 따라 단기적이거나 일회적인 교리 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교리 교사 양성의 이론 및 실천적 기준, 구성과 내용은?
이 지침은 이론과 실천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교리 교육의 정의·목적, 교리 교사의 정체성과 역할, 발달 시기에 따른 신앙 교육, 양성 원리와 공동체 책임을 다뤘다. 실천적 기준을 다룬 제2부에서는 5단계 교리 교사 연수 체계를 제시하며, 신임 교사 연수부터 단계별 프로그램과 영적 성장·안전·성교육 등에 관한 내용을 제시했다.
지침의 목적은 △교리 교사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의 은총을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에게 부여되는 신원과 역할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돕는 것 △각 교구 청소년국이 이 지침을 바탕으로 주일 학교 교리 교사 양성 교육 과정을 구성하고 실행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데 있다.
무엇보다 교리 교사 양성의 목적은 교리 교사가 먼저 세례받은 그리스도임을 확인하고, 복음을 실천하는 그들이 선교사이자 사도임을 인식하게 하는 데 있다. 이에 교리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신앙으로 동반하며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참여한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양성 과정은 다음의 일곱 가지 목표에 따라 구성돼야 한다. △평신도 신원에 대한 인식 △교리 교사의 직무에 대한 식별 △동반하는 교육자와 신앙 전수자로서 역할 인식 △교리 교육 대상에 대한 이해 △교리 교육 내용에 대한 지식 습득 △교리 교재 활용과 교리 교육 전달 방법 △본당 공동체 구성원과 소통이다.(45항 참조)
교리 교사를 양성하는 데 필요한 원리와 기준은?
교리 교사 양성에는 세 가지 원리가 있다. 학생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발견하는 ‘공존적 앎’, 교리 교사의 존재 의미가 역할 수행을 통해 드러나는 ‘지식적 앎’, 교육적 소통 행위를 통해 교리 교육에 적용되는 ‘실천적 앎’이다.(46항 참조)
지침은 교리 교사 양성 교육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양성 △선교와 복음화를 지향하는 양성 △통합적 접근을 지향하는 양성 △어린이와 청소년의 신앙 여정을 동반하는 교리 교사 양성 △지속성과 체계성을 지향하는 양성이다.
즉 교리 교사 양성 교육은 교사가 자신의 신원과 역할을 인식하고 교사 자신이 스스로 신앙적으로도 성장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침은 축소된 양성 교육은 교리 교사에게 사명감을 심어주는 데 한계를 보이며, 교리 교사 활동으로 주일 학교 학생들을 만나는 것을 업무처럼 느끼게 하는 경향을 갖게 한다고도 지적하고 있다. 양성 교육은 단기적으로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교회 문헌·교육학·심리학·사회학·인문학 등)을 바탕으로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침을 집필한 이진옥(페트라, 돈보스코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 연구원) 박사는 “각 교구의 교리 교사 양성 교육을 조사한 결과 다소 부족하게 느껴졌던 것은 교리 교육의 기능적 측면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지속성 보다 단발·일회적인 교육을 추구한다는 것이 아쉬웠다”고 밝혔다. 이어 “교리 교사 양성 교육에서는 ‘교리 교사의 신원 함양’, ‘교리 교육에 관한 지식 전달’, ‘교리 교사의 영성을 통한 신앙 성숙’에 주력해야 한다”며 “결국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리 교사 양성의 5단계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는 교리 교사 양성 교육을 5단계로 제시했다. 교리 교육의 세 가지 원리(공존적 앎·지식적 앎·실천적 앎)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표참조)
교리 교사 양성 교육은 신임 교리 교사와 재임 교리 교사를 대상으로 하며, 교육은 교구를 중심으로 대리구(지구)·지역·본당 차원으로 준비해 실시할 수 있다. 신임 교리 교사 연수는 1단계 필수 과정으로, △교리 교사의 신원과 역할 △교리 교육의 정의와 목적 △성경 입문 △기초 교리(「가톨릭 교회 교리서」 중심) △대상자에 대한 이해(발달 시기별 학생들의 특성) △교리 교안 작성법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총무 이영제(서울대교구) 신부는 “이 지침은 결코 각 교구의 상황을 간과하거나 고유성과 독창성을 획일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다”라며 “각 교구에서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양성 과정과 기준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 교구·본당에 교리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도움을 드리고자 마련한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이어 “현장에서 주일 학교 교리 교사를 양성하는 사제와 교사들이 지침이 제시하는 내용을 성찰하고 발전된 방향을 제언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교리 교육 지침」(Directory for Catechesis)과 「오래된 직무」(Antiquum Ministerium)는 무엇인가?
한국형 주일 학교 교리 교사 양성 지침은 이 두 문헌을 토대로 마련됐다는 것이 핵심이다. 「교리 교육 지침」은 2020년 6월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가 반포했다. 「교리 교육 지침」은 교황청 성직자성(현 성직자부)이 1997년 8월 15일에 반포한 「교리 교육 총지침」(General Directory for Catechesis)을 보완해 23년 만에 발표했다.
보편 교회는 이 교리 교육에 관한 새 지침에서 새로운 복음화와 신앙의 토착화를 위해 교리 교육의 필요성과 교회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시대 변화에 따라 보편 교회도 세상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달하는 데에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새 지침은 복음화 사명을 위해 교리 교육을 수행하는 교리 교사의 역할을 세부적으로 제시한다.
「오래된 직무」는 2021년 5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신도 교리 교사를 교회의 직무로 제정한 자의교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 복음화를 위해 지역 교회가 세례받은 평신도 교리 교사의 존재를 인정하고, 교리 교사가 신앙의 진리를 전달하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성경, 신학, 사목, 교육학에 관한 지식을 갖추도록 양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에 교황은 자의교서에서 주교회의가 이 직무의 허용을 위한 필수 양성 과정과 규범의 기준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다.
[생활교리] “인간이 무엇이기에…”
가톨릭교회는 인간을 “창조 업적의 절정”(『교리서』 343)이라 고백하며, 세상 창조는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향하여 이루어진 것”(299)이고,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셨다.”(358)라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시편 저자처럼 되묻게 되지 않을까?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5).
1. 인간인가, 천사인가? 신학원 수업에서 천사의 특징을 배우던 중이었다. “천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피조물로서, 눈에 보이는 피조물보다 더 완전하게 창조되었고, 무엇보다 죽음이 없습니다.” 그때 한쪽에서 이런 외침이 들려왔다. “천사가 부러워요!” 과연 정말 그럴까? ‘천사’라는 말은 본래 하느님께서 맡기신 ‘직무’를 뜻한다. 곧 천사의 존재 이유와 사명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핵심인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봉사하는 데 있다(히브 1,14; 『교리서』 329-331).
그렇다면 창조 과정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가 말하듯,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모든 피조물을 마련해 주셨다(창세 1장). 또 인간이 이미 태어날 때부터 당신과 대화하도록 초대하셨으며(『사목헌장』 19), 무엇보다 “당신의 모든 것, 곧 외아들까지 주시기 위해”(성 레미지오) 인간을 창조하셨다. 인간의 존재가 이러하다면, 과연 누가 누구를 부러워해야 하는 것일까?
2. 하느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 성경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증언한다(창세 1,26-27; 5,1-2; 9,6). 이는 곧 인간이 모든 피조물 가운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인간 고유의 특징은 무엇일까?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렇게 답한다. “인간은 하느님을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자,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는 존재”(『창조론』 85)이다. 곧 오직 인간만이 보이는 피조물 가운데서 “창조주를 알아 사랑할 수 있[는]”(『사목헌장』 12) 유일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모든 인간은 누구나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 존엄의 근거는 피조물인 인간 자신이 아니라, 오직 창조주 하느님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 왜냐면 인간은 ‘흙’으로 빚어진 시공간의 한계를 지닌 유한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숨’을 받아 창조주의 모습대로 지어진 ‘하느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것’(이사 43,1 참조)인 인간에 대한 위협은 곧 그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향한 도전이 된다. 이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창세 9,5) 책임을 물으시며, 인간의 삶을 특별한 돌봄과 보호 안에 지켜주신다. 그래서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 모습대로 창조된 우리 모두를 향해 이렇게 외친다. “하느님께 여러분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중요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손으로 빚어진 작품이기 때문입니다”(『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115).
[매주 읽는 단편 교리] 묵주 기도의 역사
10월 중 자주 바치는 묵주 기도는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기도입니다. 3세기 아일랜드의 수도자들은 150개의 시편을 성무일과(聖務日課)로 바치곤 하였는데, 시편 150편 전체를 노래하거나 50편씩 세 묶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글을 배우지 못한 수도자들은 이 긴 시편을 바칠 수 없었고, 주님의 기도를 150번 암송하는 걸로 대체하였습니다. 이때, 반복하는 기도의 횟수를 헤아리기 위해 가죽 주머니에 작은 자갈을 넣거나, 150개의 매듭을 엮은 끈이나 50개의 나무 조각을 줄에 꿰인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묵주의 기원입니다.
그러다가 12세기 중엽 주님의 기도 대신 성모송을 외우는 기도 형식이 등장해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성 도미니코(1170~1221년)가 성모님에게 묵주를 받으며 이 기도를 배우고 사람들에게 전파했다고 하나, 정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묵주 기도가 정립된 건 도미니코회의 복자 알라노 드 뤼프(1428~1478년)에 의해서입니다. 그는 단마다 짧은 묵상 구절과 함께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성모송을 10번 반복하였습니다. “비파로 주님을 찬송하여, 열 줄 수금으로 그분께 찬미 노래 불러라.”(시편 33,2)는 시편을 생각하면, 한 단을 이루는 성모송 10번은 주님께 올리는 찬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의 일생 15개의 신비를 5개씩 묶어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로 정리하였습니다. 한편, 도미니코회 출신으로 ‘묵주 기도의 교황’이라 불리는 성 비오 5세(1566~1572년 재위)는 1569년 9월 17일, 「로마 교황들은 주로」라는 칙서를 반포하였습니다. 이 문헌을 통해 묵주 기도를 바치는 형식을 처음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는데, 이때 복자 알라노가 정리한 묵주 기도의 방법이 그 기본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78~2005년 재위)은 2002년 10월 16일에 발표한 교황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 기도」에서 묵주 기도에 ‘빛의 신비’를 추가한다고 밝혔습니다. 환희의 신비와 고통의 신비 사이에 위치하는 빛의 신비로 묵주 기도를 바치는 신자들은 예수님의 공생활을 포함한 그분 생애의 신비 전체를 더 풍요롭게 묵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일 배분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예전 관습대로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를 바치고, 이어서 목요일에는 빛의 신비, 금요일에는 고통의 신비, 토요일에는 환희의 신비, 주일에는 영광의 신비를 바칩니다. 목요일은 빛의 신비 5단에서 묵상하는 성체성사가 제정된 날이고, 토요일은 전통적으로 마리아께 봉헌된 날로 환희의 신비에 등장하는 성모님과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하느님 백성의 친교] (33) 주교직의 성사성, 「교회헌장」 제21항
「교회헌장」 제21항은 봉사 직무로서의 주교직이 갖는 ‘성사성’에 대해서 다룹니다. 다만 개별 주교직이 아닌 복수 형태의 “주교들”이란 표현이 21항 전체에 나타나는 것이 관심을 끕니다. 공의회는 주교들의 행위 안에 영적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교직의 성사성을 설명합니다. 이로써 공의회는 주교직이 성사적이지 않고 단지 품위에 해당한다는 중세의 사제 중심적 직무 이해를 극복하고, 트렌토 공의회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숙제를 해결합니다.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교들을 통하여 하느님 백성 가운데에 계십니다. 그리고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계신 그리스도께서는 주교들의 모임에도 계십니다. 특히 그리스도께서는 “주교들의 탁월한 봉사를 통하여”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시고 신자들에게 신앙의 성사들을 집전하십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주교들의 부성을 통하여” 새 신자들을 교회에 합체시키고, “주교들의 지혜와 슬기로” 나그넷길에 있는 새 계약의 하느님 백성을 영원한 나라로 이끌고 다스리십니다. 주님의 양 떼를 치는 목자인 주교들은 그리스도의 종들이며 하느님 신비의 관리인들입니다. 따라서 주교들에게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전하는 증언의 직무와 성령에 의해 의로움으로 이끄는 영광스러운 봉사 직무가 맡겨져 있습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이러한 임무를 완수하였고, 협조자들에게 안수를 통하여 영적인 선물(은사)을 전달하였으며, 그것이 주교 축성 안에서 전해 내려옵니다. 이렇게 공의회는 직무 형성의 방식으로 교회 안에서 은사의 전달을 이해하며, 전통에 따라서 안수가 그 성사의 표지임을 언급합니다. 따라서 21항은 “거룩한 공의회는 주교 축성으로 충만한 성품성사가 수여된다고 가르친다.”라고 확언합니다. 여기서 ‘공의회는 … 가르친다.’라는 형식의 문장은 이 명제가 교의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교 축성은 “대사제직, 거룩한 봉사 직무의 정점”입니다.
주교 축성은 거룩하게 하는 임무와 더불어 가르치는 임무와 다스리는 임무도 부여합니다. 하지만 이 임무는 교황과 주교단이 이루는 교계적 친교 안에서만 행사될 수 있습니다. 이는 주교직 자체가 다른 주교들과 이루는 친교이며, 이 친교 안에서 주교직이 수행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끝으로, 공의회는 성사론적으로 주교들이 안수와 축성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은총”과 “거룩한 인호”를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주교들은 그러한 성품성사의 은총으로 직무 안에서 스승이요 목자이며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합니다. 이러한 성품성사의 집전자는 주교 개인이 아닌 주교들이고, 이 성사를 통해서 새로 서품된 주교는 주교단 안에 받아들여집니다.
[사회교리에서 희년을 보다] 도구와 인간
SNS(Social Network Service, 사회 관계망 서비스)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것을 누군가 말한 것처럼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왜 내 사생활을 누군가에게 공개해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를 더 빛내주는 듯한 비싼 옷을 입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멋있는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것 등을 그저 자랑하기 위한 도구로서 SNS라는 것이 있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저의 이러한 생각이 편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최근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된 한 아이의 삶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살던 아이의 이름은 ‘카를로’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믿음이 강해서 영성체에 너무도 기쁘게 참여하는 그런 아이였다고 합니다. 컴퓨터를 잘 다루었는데 특별히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기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해요. 믿음이 강하고 컴퓨터를 잘 다루었던 아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쳐보기로 결심을 합니다. 자원봉사자를 위한 새로운 웹사이트를 디자인하고, 본당과 지역 사회의 웹사이트를 관리하는 데 힘쓰죠. 무엇보다 SNS를 활용하여 복음의 빛과 기쁨을 전하고자 힘써요. 또래 친구들이 SNS를 통해 새 옷이나 새 신발을 자랑하기 바쁠 때, 아이는 SNS를 활용하여 한 친구라도 더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죠. 하지만 그 활동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되거든요.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요? 그러나 그러한 순간에도 곧 하느님을 만나게 되리라는 확신에 가득 찬 아이는 오히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위로해 주었다고 해요. 그렇게 카를로는 15년이라는 짧은 삶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한’ 영향력은 세상에 여전히 남았습니다. 성체를 향한 순수한 열망과 선교를 위한 혁신적인 노력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죠. 그리고 지난 9월 7일, 교황 레오 14세는 카를로를 성인품에 올리십니다. 인터넷을 통해 복음을 전하던 그 아이는 이제 ‘성(理) 카를로 아쿠티스(St. Carlo Acutis, 1997-2006)’로 불립니다.
성인의 삶을 바라보며, 결국 ‘도구’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NS가 문제가 아니라 SNS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한 것이죠. 최근 화제의 중심에 있는 ‘AI 기술’도 그러합니다. 칼이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것처럼, 새로운 기술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는 결국 우리 손에 달린 것이죠. 희년에 하느님께서는 땅을 쉬게 하심으로써 당신 백성이 새로운 도약을 하게끔 인도하십니다. 희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러므로 우리의 새로운 도약과 그를 위해 필요한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성인의 삶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