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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형통하리라! / 박조준 목사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나서 광야생활을 40년간이나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들의 삶
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가야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예비해 두신 땅이었습니다. 그
들은 그 땅에 들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했습니다. 이처
럼 약속의 땅 가나안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야할 땅이며, 그들이 싸워서 정복해야 할 땅이며,
땀 흘려 개척해야 할 땅이며, 풍요한 삶을 누려야 할 땅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애
굽에서 자유를 얻었지만 그들의 목표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었
습니다. 이것은 민족적인 비극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이런 비극이 일어
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죄사함의 감격
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
해서 예비하신 놀랍고 감격스럽고 역동적인 삶 속에 들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
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아직도 방황하는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흔들리고, 주저하고, 후
회하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 우리는
새천년을 맞아 방황하던 자리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시선을 돌려야겠습니다. 이
땅은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의 땅이 된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2∼4
절에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
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족속의 온 땅과 또는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했습니
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습니
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없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데 이 약속의 땅은 포장이 되어 있는 선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 5∼6절을 보세요.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미 포장이 다 되어 준비된 것이라면 그래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면 용기와 담력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가운데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이 세 번씩이나 반복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한 땅은 피와 땀과 눈물의 수고를 통해서 얻어야 할 땅임
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허락하신 땅은 수고하지 아니
하고 얻을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성공하는 데 요행이란 것이 있을 수 없습니
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 풍성한 삶을 약속하는데, 수고
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는 노력과 도전을 통해서만 우리의 신앙이 풍성한 삶의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보세요. 피 흘리지 않고 위업이 이루어진 예가 없습니다.
눈물 없이 값있는 일이 성취된 적이 없습니다. 땀 흘리지 않고 대업이 실현된 적이 없습니
다. 피는 용기의 상징이요, 눈물은 정성의 심벌이요, 땀은 노력의 표상입니다. 피와 눈물과
땀, 이것이 우리에게 번영과 행복을 약속합니다. 약속의 땅은 전력투구의 정신을 가지고 용
기와 정성과 노력으로 얻어야 합니다. 여러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길이 있는 곳
에 빛이 있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옛 글에 "정신일도하사불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뜻이 간절하면 그 뜻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이 생깁니다. 성공에는 끈기가
필요하고 승리에는 인내가 요구됩니다. 훌륭한 일이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7전 8기의 눈물나는 노력 끝에 승리의 면류관을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에는 기적이
따로 없습니다. 요행도 없습니다. 우연도 없습니다.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하는 민족은 반드
시 흥하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라"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도전하십니다. 이 도전을 통해 메마른 삶을 풍성한 삶으로 바꾸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도전
이 있을 때 우리는 의욕이 넘칩니다. 최고봉을 정복하려는 등반대의 의욕을 생각해 보세요.
기록을 깨려는 경기자의 집념을 상상해 보세요. 아무 일에도 애정을 느끼지 않는 것, 사랑의
대상이 없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런 사람은 삶의 의미를 잃게 됩니다. 허무주의가 무엇입
니까? 사랑의 대상이 없는 것이 허무주의요, 사랑의 대상을 갖지 못할 때 허무주의가 생깁
니다. 사랑의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 대상에 나의 의지, 나의 감정, 나의 정열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집중하면 무서운 힘이 생깁니다. 돋보기로 태양열을 집중시키면 나무가 탑니다. 목
마른 사람이 물을 간절히 찾는 것처럼 우리는 인생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식욕이 왕성한 사람은 식사가 언제나 즐겁고 맛이 있습니다. 밥맛의 정도는 식욕에 따라 다
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식욕이 왕성한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체념이니, 단념이니, 낙망이
니, 권태니 하는 것은 모두 열의가 없이 사는 사람의 병입니다. 이런 병에 걸리면 인생은 빛
을 잃고, 생활은 활기를 상실하고, 행동은 박력이 없어집니다. 무엇이든 다 따분하고, 권태롭
고, 흥미도 없고, 기대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살기는 살지만 송장처럼 살아갑니다. 낙엽처
럼 살아갑니다. 생활에는 생기가 없고 정열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일에 열의를 가
지고 살아야 합니다. 열의가 있는 사람이 성의를 가질 수 있고 새로운 창의력을 발휘할 수
가 있습니다. 열의와 성의 그리고 창의가 위대한 것을 창조하는 원동력입니다. 우리가 정복
해야 하는 약속의 땅, 2000년은 열의와 성의 그리고 창의를 가지고 싸워서 정복해야 하는
땅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전쟁을 예상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 들어가자마
자 그들은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속의 땅은 전쟁과 피땀 흘리는 수고를 통해서
아름답게 가꾸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을 건설하고 하나님께 영광
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을 떠나온 이
스라엘 민족 가운데 주저 앉아버리거나 자빠진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여기서 끝났다면 우리는 절망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약한데 원수는 너
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오늘 주
신 말씀 5절 이하를 보세요.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
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
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했
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이 어렵고 힘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에게만 하신 약속은 아닙니다.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
주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이
스라엘 민족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라고 하실 때, 모세는 사양했습니다. "저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
씀을 기억하십니까? "모세야, 가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을 부르실
때도 "큰 용사여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열한 제자들을 모아 놓으시고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고 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팔레스틴 밖에는 한번도 나가 본 적이 없는 촌부들
이었습니다. 세계라는 것은 생각할 엄두도 못낼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에게 세계
를 맡기셨습니다. 이 명령이 그들에게 얼마나 막막하고 암담했겠습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인류를 제자가 되게 하라."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우
리가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들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분
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렇습니
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바울의 고백처럼 "내게 능력 주
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선교의 사명을 맡기
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직도 마음속에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
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도 어려움을 당합니다. 문자 그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걸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
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기억하세요. "두
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
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
님이 약속하신 땅, 새천년을 출발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님이 함께하시는 축복이 임하시
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실 뿐 아니라 그의 백성인 우리를 말씀으로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야 할 땅이 어디인지 알고, 지혜를 얻고, 올
바른 판단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행진해야 할지, 어떻게
적에게 대처해야 할지, 어떻게 절망을 극복해야 할지, 어떻게 시련을 이길지를 말씀해 주시
겠다고 하셨습니다. 놀라운 축복의 땅을 승리적으로 차지할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구체적인 말씀이 성경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지금도 공중에서 우리에게 말씀
하실 수 있으십니다. 초자연적 능력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환상인지
착각인지 분간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만지게끔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세상을 떠난 후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새로운 지도자로 이
미 여호수아를 지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 백성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분명한 지도를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을 수 있도록 모세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셨고 모세에게 그것을 여호수아에게 들려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
진 새천년을 약속하신 땅으로 차지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감격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만유를 손에 쥐고 계신 하나님, 말씀으로 만물을 지배하고 섭리
하시는 그 하나님이 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다면 굉장
한 선언이 아닙니까? 이 말씀은 놀라운 격려입니다. 이 말씀은 놀라운 약속입니다. 새천년을
승리하기 원하십니까? 성경을 읽으세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에 대한 지식이 너
무 빈약한 것이 문제입니다. 세례문답을 하면서 "예수님이 세례를 누구에게 받았습니까?"라
고 하면 "모세에게 받았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십계명을 믿습니까?"
라고 물으면 대개 "예, 믿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십계명이 무엇인지 말씀해 보세
요" 하면 대답하는 분이 별로 없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면 어
떻게 성경말씀을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을 읽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창세기 1장
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 절까지 다 믿느냐?"고 물으면 다 믿는다고 손을 드시면서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습니까?"라고 물어 본다면 "예"라고 대답
하실 분이 아주 적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
데 성경의 지식이 필요하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
는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지식은 책임을 알게 합니다. 성경에 "우리가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
서 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면 인생관이 달라지고, 역사관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지식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관점이 변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런 일을 하시는지를 볼 수 있게 하십니다. 시편
103편 7절에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라고 말씀했습
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하면서 "너의 마음의 눈
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임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 공부하는 데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
면 확신이 생깁니다. 세상에 영향을 미친 사람은 영리한 사람도, 지식 많은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영향력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에게 필요한 사람은 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진리
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거짓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진짜 돈과 가짜 돈을 식
별하는 훈련을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요원에게 가짜 돈을 주어서 식별하는 훈련을 시키
는 것이 아니라 진짜 돈을 연구하게 한다고 합니다. 진짜 돈만 잘 알고 나면 가짜 돈을 분
별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진짜가 아닌 것은 다 가짜니까요. 우리는 모든 거짓 종교를 다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필요도 없습니다. 진리
를 확실히 알면 거짓을 확실히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공부함으로
우리의 확신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가치관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이해하게 되면 마음에 믿게되고 거기서 확신이 발전되어 우리 삶이
확실한 기반에 서게 됩니다. 확신을 어떻게 개발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확신
에 이르게 됩니다. 묵상이란 어떤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부정적인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면 그것은 염려입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계속해서 생각하면 그것은
묵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게 되며, 하나님이 느끼시는 것
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오늘 주신 말씀 8절을 보세요.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
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굉장한 약속입니다.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번영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 비결은 아주 간
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들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입
니다. 삶이 평탄하고 성공적이 되기 원하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
합니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삶이 훨씬 쉬워집니다. 어리석은 실
수를 하지 않게 됩니다. 공연한 염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워할 것도 없어집니다. 내
경험을 통해서 어렵게 배우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직접 배울 수가 있습니다. 이
렇게 배우는 것이 훨씬 현명합니다.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2절에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들은 하나
님의 말씀을 실제로 행해야 합니다. 듣고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행하는 것보다 아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십일조에 관해서 넉
달 동안 매주일 설교했습니다. 한번은 어느 교인이 목사님을 찾아가서 언제 십일조에 관해
서 설교하는 것을 마칠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교인들이 십일조를 하게되면
마치겠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배워서 알기는 하지만 그것을 행하기 전에 다른 주제로 옮
기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실 행하기 전에는 배운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듣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하기를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
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론은 실험을 통해서 확인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도 말씀하
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
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
리석은 사람 같다." 들은 바를 행해야 합니다. 행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보다
행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여러분, 2000년 한해가 형통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
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
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했습니다. 신명기 29장 9절에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했습니다. 시편
128편에 보세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
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금년 1년 아니 평생 하나님 말씀을 주야
로 묵상함으로 인생의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고 범사에 형통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