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4장 4-5절
4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5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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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감빵생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있었습니다. “슬기롭다”는 단어는 ‘사물의 이치를 바르게 분별하고 일을 정확하게 처리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재능이 있다.’가 사전적 의미입니다. 슬기롭지 않으면 슬퍼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슬기로움이란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움입니다. 착한 건 너무 좋은 것이지만 착하기만 해서는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듭니다. 처세와 인간관계가 너무 중요하지만, 그쪽으로만 발달하면 간교해집니다. 슬기로움이란 지혜롭게 착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믿음도 좋고 생활도 좋아야 슬기로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이 둘을 갖추기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어떤 기업은 “가정을 지키려면 가족을 버려라”고 합니다. 가족을 버리고 일에 몰두해야 가정을 지킬 돈을 번다는 것입니다.
좋은 목사가 되려면 목사가 할 일에 몰입해야 합니다. 그러나 설교 준비, 심방, 기도에 몰입하면 다른 것에는 소홀하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슬기로운 신앙생활”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답을 찾았습니다. 슬기로운 신앙생활은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일에 진정성을 가지는 생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극정성’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부족할 수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를 쏟으면 가장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대단하다고 말해도 내가 더 할 수 있었는데 안 했다면 못 한 겁니다.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제물은 대단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양은 충분한데 질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벧엘과 길갈은 이들의 성지입니다.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이고 길갈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후 기념비를 세운 곳입니다. 벧엘은 복이고 길갈은 승리입니다. 하나님을 찾은 백성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범죄하고 죄를 더했다.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제물을 드렸습니다.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이들은 매일 희생제물을 드리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삼일마다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십일조는 세 가지입니다. 성전에 드리는 십일조, 가난한 이웃을 위해 드리는 십일조, 3년마다 과부와 객과 고아를 위해서 드리는 십일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3년마다 드려야 할 십일조를 3일마다 드렸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종교적 열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기쁨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백성입니다. 자기만족만 있었고 자기 드림은 없었습니다. 자기만족으로 드린 제사와 제물을 가리켜 하나님은 범죄하며, 죄를 더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진정성이 빠졌습니다.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우리 교회가 드리는 예배와 기도회는 주일 오전, 주일 오후, 수요 기도회, 금요 기도회,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드리는 새벽기도를 합쳐서 총 아홉 번을 드립니다. 더 많이 모이는 교회는 11회에서 15회까지도 모입니다. 거기엔 구역장 모임, 구역예배, 교사 모임, 노인대학, 알파, 셀 모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예전 부목사 때 한 권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목사님, 아침에 교회 오면 직장에 온 기분이에요.” 일하러 교회 오니 기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슬기로운 신앙생활은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모든 일을 진정성있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양이 아닙니다. 질입니다. 이건 기도와 제물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합니다. 양으로 살지 말고 질로 삽시다. 오래 사는 것보다 제대로 살아야 잘 사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살아보십시오. 그것보다 더 잘 사는 인생은 없습니다. 슬기로운 신앙생활은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나를 잡아 드리는 하루입니다. 나를 잡아 드릴 때 주님이 나를 잡아주십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이 가장 강합니다. 내가 나를 잡으면 하나님이 나를 잡으시기에 붙잡혀서 강해집니다. 오늘을 산 제물로 살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