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사천시 곤양군(昆陽郡) 곤명현(昆明縣) 한시>
現 사천시 곤양면 곤명면 서포면과 하동군 진교면 전체, 하동군 북천면 일부 마을이 모두 옛날에는 곤양군(昆陽郡) 또는 곤명현(昆明縣)의 관할 지역이었다.
경남 사천시 곤양면과 곤명면은 옛날 삼국시대 「거열성」, 통일신라시대 「포촌현」, 고려 현종 9년(1018년) 「곤명현」으로 진주목에 예속되었다가, 조선 세종 1년(1419년) 「곤남군」, 조선세종 19년(1437년) 「곤양군」, 조선 고종 32년 곤양군은 사천군에 편입되었다가 곤양군에 환원되었고, 1914년 지방군현 폐합과 재개편에 의거, 사천군에 편입되어 「곤양면」이라 칭하였다. 1995년 5월 10일 법률 제4948호로 사천시 곤양면과 곤명면, 서포면 등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 조선전기 곤양군(昆陽郡)은 동쪽으로는 사천현(泗川縣) 경계까지 28리이고, 북쪽으로 진주 경계까지 37리이며, 서쪽으로 하동현 경계까지 9리이고, 남쪽으로 남해현 경계까지 45리인데, 서울까지 거리는 9백 57리이다. 본래 고구려 곤명현(昆明縣)이며, 신라 때 칭호는 자세하지 않다. 고려 현종이 진주에 예속시켰고, 세종 원년에 군 북쪽 소곡산(所谷山)에다가 어태(御胎)를 안치하고, 남해군(南海郡)을 합쳐서 곤남군(昆南郡)으로 승격시켰다. 19년에 다시 갈라서 남해현을 설치하고, 진주 김양 부곡(金陽部曲)을 내속시켜서 지금 이름 곤양군(昆陽郡)으로 고쳤다.
동곡산(銅谷山)은 군 북쪽 3리 지점에 있으며 진산이고, 소곡산(所谷山)은 군 북쪽 25리 지점에 있다. 봉명산(鳳鳴山)은 군 북쪽 15리 지점에 있는데 봉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서봉사(棲鳳寺) 영악사(靈岳寺) 사찰이 있다. 우산(牛山)이 객관 남쪽에 있고 금오산(金鰲山)은 군 서쪽 20리 지점에 있는데, 병요산(甁要山)이라 부르기도 하며, 영월사(迎月寺)가 있다.
곤양읍성(昆陽邑城)은 사천시 곤양면 성내리 성내공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전기 1430년에 쌓은 석축 성(城)인데 둘레는 3천 7백 65척이고, 높이는 12척(높이 3.6m, 길이 1,140m)이다. 성안에 우물 셋, 못 셋이 있다. 성문은 3개로 동,서,남문이 있고 읍성주위로 곤양천이 흐르고 있어 자연스러운 해자의 기능을 하고 있고, 타원형의 읍성으로 평산성의 구조로 되어있다. 현재 성안에는 삼동(三洞), 수동(水洞) 2개 마을이 있었으며 성내리라 한다.
우산봉수(牛山烽燧)는 동쪽으로 진주 각산(角山)에 응한다. 역원 완사역(浣紗驛)은 군 북쪽 18리 지점에 있고 양포역(良浦驛)은 현 서쪽 25리 지점에 있다. 봉계원(鳳溪院)은 완사역 북쪽에 있고 완사원(浣紗院)은 군 동북쪽 20리 지점에 있다. 이맹사(理盲寺)는 못의 용이 이 다리 밑으로 옮겨왔다 하여 이런 이름이 되었다.
1) 곤양성[昆陽城] / 김의정(金義貞 1495∼1547)
東漢如何建水成 여하간 동한(東漢)은 물을 다스려 일으켰는데
當年功烈問荒城 당시의 뛰어난 공적이란 황폐한 성(城)을 찾아갔음이다.
龍顏日角纔聲義 용의 이마 가운데 뿔이 튀어나와 대의를 올곧게 밝히니
象隊貅群奄喪生 코끼리 부대와 맹수 무리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從古仁猶難事業 예로부터 어짊으로 다스리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于今獸豈贊經營 지금까지 야만인이 어찌 경영을 이끌었나.
奸邪英傑終爲土 간사한 영걸은 끝내 흙으로 돌아갔으니
慷慨傾樽不勝情 기우는 술잔에 강개한 이 마음 달랠 길 없네.
2) 곤양 석상촌[昆陽石上村] / 오횡묵(吳宖默,1834~?) 1886년 영남향별사, 고성부사(固城府使, 1893~1894년)
碧山叢桂畫圖中 푸른 산 계수나무 숲이 그림 속 같고
洞府深深淑氣通 골짜기도 깊고 깊어 맑은 기운 통한다.
塵鬧不曾仙界入 세속의 먼지 씻어내려 선계로 들어가
烟霞脕闢瑞暉曨 안개와 노을이 상스러운 빛에 곱게 피어났네.
3) 곤양도중[昆陽途中] / 오횡묵(吳宖默,1834~?) 1886년 영남향별사, 고성부사(固城府使, 1893~1894년)
山復水兮行路難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산 너머 물이로세.
壚醪渴飮勝龍團 용무늬가 빼어난 주막의 막걸리 목말라 마시며
遣懷謾作新詩句 회포를 풀고자 부질없이 새로운 시구(詩句)를 짓노니
林雨霏霏日已闌 한적한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해는 이미 저물었네.
4) 곤양 구선창 즉사[昆陽舊船倉卽事] / 오횡묵(吳宖默,1834~?) 1886년 영남향별사, 고성부사(固城府使, 1893~1894년)
橫挹大江到武昌 큰 강이 가로지르는 무창에 이르니
蘆花一帶舊船倉 갈대꽃이 옛 선창(船倉)일대에 덮었네.
短蓬帆影天平八 뜸집의 돛 그림자가 하늘을 가지런히 나누는데
歌罷詩成興味長 노래 마치고 시(詩)를 지으니 흥미가 길어지네.
5) 곤양에 눈(雪)이 내려 금성 여점에서 숙박하다[昆陽遇雪宿金城旅店] / 안덕문(安德文 1747∼1811) 경남 의령人.
旅愁挑盡小燈懸 나그네의 수심은 심지 다 탄 작은 등잔에 걸려있는데
坐數寒更夜似年 추위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이 밤이 일 년 같구나.
玉女峯高添雪後 옥녀봉 꼭대기에 눈이 더 내린 후에야
金城村近聽鷄前 금성 마을 가까우니 닭소리가 먼저 반기네.
癡僮索酒遲爲步 어린 동복은 술을 찾아 더디게 걸어가고
老馬當泥懶受鞭 늙은 말은 진흙 길에서 게으름 피우다 채찍을 벌구나.
自笑今行多錯迕 절로 웃음 나오는 이번 여정에서 어긋남이 많았지만
書生難得好夤緣 서생(書生)으로서 좋은 인연(夤緣) 맺기가 어려웠네.
[주] 인연(夤緣) : ①덩굴이 벋어 올라감 ②나무뿌리나 바위 등(等)을 의지(依支)하고 산등성이를 이리저리 올라감 ③권세(權勢) 있는 연줄을 타서 지위(地位)에 오름의 비유(比喩)함.
6) 삼가 곤양군수 관포 어선생의 동주서원의 시(詩)에 화(和)답하다.[謹次 昆陽郡守 灌圃魚先生東州書院韻] / 이황(李滉) 1533년 作. 어득강의 초청으로 곤양에 옴.
郡城西望倚山巓 군성(郡城)의 서쪽을 바라보니 산꼭대기 기이하고,
屋舍熙熙官道邊 화목한 집들이 관청 가에서 빛나도다.
方丈群仙知得未 방장산의 여러 신선(神仙)을 알고나 있으려나.
此邦風采倍華鮮 곤양의 산세지리 곱고 고운 빛인 것을.又
昆陽一郡頗閒僻 곤양의 한 군이 자못 한벽(閒僻)하여
作吏還如林下休 관리들은 여유롭게 수풀 아래 쉬고 있고
官閣市槁梅樹遍 군청의 문설주와 장터의 다리 가에 매화나무 둘렀더라.
使君復憶古東州 그대 옛 곤양 땅이 다시 생각나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