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라고 해야지
오래된 친구가 책을 보냈다.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다. 책 뒷부분에 실린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
할머니는 얼마 전 강도들에게 납치당했다. 주차하는 순간 불량배들이 난데없이 나타나 할머니를 자동차 트렁크에 가두었다. 계획된 범죄였다. 그들은 할머니 지갑에서 꺼낸 신용카드로 은행에서 돈을 꺼내 썼다. 경찰이 추적하는지 라디오를 틀었으나 고장이 나 있어, CD 플레이어를 작동했다. 황 신부의 <화가 나십니까>라는 CD였는데, 강도들은 그 강의를 들으면서 돌아다녔다.
차 안에서 그들의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렸다.
“죽이자.”
“죽이지는 말자.”
한참을 다투더니 할머니를 죽이지 말고 풀어주자 했다. 한 청년이 할머니를 내려주며 “자동차에서 강의를 들으며 할머니 손을 잡고 성당에 다니던 생각이 났습니다. 제발 경찰에 신고하지는 마세요.” 라고 당부했다.
할머니는 세상이 무서워 1년 동안 바깥출입을 못 했다. 할아버지는 아내에게 말하곤 했다. ‘당신은 그 신부님 덕분에 살아난 것’이라고. 할머니는 황 신부가 서울 어느 성당에서 강론할 때 그를 찾았다. 신부는 미사 시간에 아프리카 잠비아의 형편을 들려주고 그들을 돕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황 신부 덕택으로 목숨을 구했으니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돈을 쓰기로 결심했다. 부동산을 모두 처분하여 100억 원을 만들고 잠비아 농업대학을 세우는 데 쓰라고 황 신부에게 봉헌했다. 그 뒤 할아버지는 폐암으로 사망했다.
황 신부는 82세가 된 할머니를 모시고 잠비아에 갔다. 무푸리나 시에 대학을 세우고자 시장을 만났다. 그와 농업대학 설립 문제를 의논하며 3,000헥타르의 땅을 달라고 했다. 900만 평이 넘는 엄청난 규모였다. 황 신부가 꿈에서 받은 계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장은 시 전체 면적이 1,500 헤타르에 불과하다며 난색을 보였다. 어찌하면 가능하냐고 물으니 대통령을 만나라고 권했다.
황 신부는 잠비아 대통령을 만나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부지를 요청했다. 대통령은 국토부장관에게 그만한 땅을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100억 원이라면 엄청난 돈이다. 그 돈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어려운 이들을 도울 수 있다. 장학금이나 복지기금으로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왜 하필 아프리카 잠비아냐고 묻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해외 선교 사업을 위해 애쓰는 종교인들을 보면서 나도 언뜻 우리나라의 일도 많은데 바깥에까지 신경 쓰느냐고 불만스러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예전의 세상이 아니다. 국제화 시대다. 지구촌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살아야 할 세상이다. 목숨을 버리면서 우리에게 도움을 준 외국인들을 기억해야 할 때다.
할머니 부부에게 상속해달라고 보채는 자녀가 없지 않았을 것이나, 부모의 뜻을 따라준 자손들에게 큰 복이 주어질 것으로 믿는다. 평생 모은 재산을 이국 젊은이들 장래를 위해 쓰게 한 노부부의 결단을 높이 평가해야겠다.
우리는 충북 음성에서 <꽃동네>의 기적을 이룬 오웅진 신부를 기억하고 있다.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의료와 교육 사업을 펼치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태석 신부가 떠오른다. 이 신부는 톤즈에서 하루 3백 명의 환자를 치료했고, 학교를 세워 교사가 되었으며, 신부로서 아픈 영혼들을 구원했다. 황창현 신부는 이 두 사람, 오 신부와 이 신부의 헌신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성직자다. 황 신부의 평창 생태 마을 사업과 잠비아 농업대학 건립사업이 성공하기를 빈다. 우리 주위에 이런 훌륭한 성직자들이 있다는 것에 긍지를 느끼고 감사한다. 기적은 하늘이 내리는 선물이 아니다. 인간의 지극한 정성과 헌신에 따른 마땅한 보답일 것이다.
(2016.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