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사람들의 경우 자극에 대한 반응속도가 천차만별이다. 이른바 성격이 급한 다혈질의 사람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조금 느긋한 성격의 사람들은 반응 속도가 상대적으로 늦다. 그리고 자극을 읽고 해독하는 시간에 따라 반응의 속도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미리 그런 자극이 올 것이라는 것을 상정한 경우에는 반응이 더욱 빨라질 수 있다. 권투선수가 상대의 펀치에 즉각 반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자극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람들이 상대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소 고발이다. 자극에 주먹이 나갈 수가 있지만 그것은 시중잡배들이 행하는 육체적 충동이다. 정신적인 충돌일 경우 대게는 말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그러다가 말이 통하지 않을 경우 고소 고발이라는 법에 의존한 행동을 취하게 된다. 대부분 잘 아는 내용이지만 고소는 피해를 입은 당사자 즉 본인이 수사기관에 수사의뢰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고발은 수사 의뢰하는 주체를 조금 더 넓혔다고 보면 된다. 제 3자가 행하는 것이 대부분 고발이다. 우리가 언론의 고발 프로그램이라고 하지 고소 프로그램이라고 하지 않는다. 언론이 제 3자 입장에서 세상에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고소 고발도 자극에 대한 반응이니 그 속도에 차이가 많이 난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갈등 구도속에 놓이다보니 이성적인 의견개진과 타협보다는 우선 고소고발조치를 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법에 의존하는 심리가 더욱 강해졌다고 해야 할 듯하다. 요즘 많이 늘어난 변호사들의 활약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왜 말로 해결하느냐 법으로 해결하라는 주장에 휩쓸리는 풍조가 강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어느 정권의 실세였던 법률가 모씨는 정말 고소고발의 대가였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조직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보도가 행해지면 거의 즉각 고소고발 조치를 했다. 그 언론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의 여부는 따지지 않고 자신의 조직이나 자신을 거론한 그 자체만으로 사법기관에 수사의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은 나라의 아주 중요한 직책을 맡은 공인중의 공인이었지만 그는 법을 잘 안다는 것을 무기삼아 고소고발을 그야말로 밥먹듯이 했다. 언론이 한 번 고소고발을 당하면 해당 기자나 그 언론기관은 상당히 피곤해진다. 물론 없는 것을 지어내서 가짜 뉴스를 만드는 것은 정말 엄벌해야 한다. 하지만 정도를 벗어나는 행위를 지적하고 제대로 방향을 잡으라고 지적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마구잡이로 고소고발을 벌인 것이다. 언론 보도를 한 기자와 언론사는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아야 하고 법정에 불려가서 재판장의 심문에 응해야 했다. 만일 소송에 질 경우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했고 어떨 경우 회사를 그만두어야만 했다. 원고가 나라의 고위직인데다 법률적으로 대단한 인물이니 졸지에 피고 또는 피고인의 입장에서 곤욕을 치르게 된다. 대부분 무혐의 내지는 무죄가 선고되지만 그래도 그 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을 거치면 녹초가 된다. 옮은 지적 바른 보도를 해도 한번 고소고발에 휘말리면 엄청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그 당사자도 바로 그런 것을 노린 것으로 추측된다. 나를 건드리면 바로 고소고발조치한다 그러면 너도 엄청나게 피곤해질 것이니 다른 기자들도 잘 봐두어라 너희도 나 건드리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당시 언론계는 판단했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자 미국 독립선언물을 작성한 토마스 제퍼슨은 '언론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언론을 택하겠다'고 설파했다. 그만큼 언론의 순기능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부패하는 정부를 각성시키는데 언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진리이다.물론 지금은 언론인보다는 기레기들 그리고 기사 필경사들이 주를 이루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언론인들의 날카로운 지적이 권력에 취한 지도층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각성제 역할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지적은 아프다. 쓰다. 결코 달콤하지 않다. 그래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반응이 바로 고소고발조치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현 정부도 이런 저런 사유로 언론에 대한 고소고발이 이어지는 모양이다. 전 정권에서 줄어들었던 언론사 고소고발건이 요즘 다시 급증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예전 정권의 모 인사처럼 현 정권에도 법에 대가들이 많아서 그런 것같다는 분석도 있다. 당연히 잘못된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정정보도를 요청하고 바로 잡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비판적이다란 이유로 사안의 내용과 관련없이 고소고발을 행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 기사내용에 오류가 있으면 합리적으로 반박하고 근거를 제시하면 된다. 일단 고소고발부터 해놓고 보자는 식이어서는 전혀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다. 고소고발이 많아진다는 것은 갈등이 만연돼 있고 사회속 구성원들 간에 불화와 반목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조금만 양보하고 상대를 인정하려하면 고소고발이 이처럼 급증하지는 않을 것인데 말이다. 고소고발에 앞서 정정보도 요청과 같은 조정작업이 당연히 있지만 그런 것을 무시하고 단칼에 사안을 처리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보도내용이 심각하거나 그로인한 데미지가 상당할 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런 고소고발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오죽 급했으면 저렇게 빨리 반응할까 더욱 의아해할 수도 있다. 각설하고 고소고발이 횡행하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점은 분명하다.
2023년 2월 3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