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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치(數値)를
아십니까?
지구(地球)의
바다와 육지의 면적
비율은 78:22%이며,
인간의 인체(人體)도
수분과 기타의 구성 비율이 78:22%다.
혈액(血液)도 물과
기타의 구성 비율이
78:22%이며,
공기(空氣) 속에 질소와 산소를 포함한 기타의 구성 비율도
78:22%다.
3대 영양소(營養素)인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포함한 지방, 기타의
구성 비율도
78:22%다.
미국의 중앙은행을
거의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78:22%의 비율이
창조 및 경영의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이 법칙을
상술(商術)에 적용하여
성공확률이 78%, 실패확률이 22%이면
최상의 조건이라 한다.
그래서 성공확률이 78% 정도라고
생각되면 과감히 투자하고 거래한다.
주식, 증권에서도
78% 능선에서 매도(賣渡) 하고
22% 능선에서 매수(買收) 한다.
대부분 상품(商品)도
물건의 원가가
78원이라면 거기에
이윤 22원 붙여 100원에 판다.
일반적으로 부자(富者)와 빈자(貧者)의
비율이 78:22%
라고 하고,
돈도 부자와 보통
사람의 소유 비율이
78:22%라고 한다.
사람의 성격(性格)도 유전인자와 환경요인의 비율이
78:22%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人間)도
긍정적인 인간과 부정적인 인간의
비율이 78:22%일
것이며, 인간관계
(人間關係)도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비율이78:22%일 것이다.
또한, 어떤 일에
대한 성공과 실패율도
78:22%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노동과 휴식의 비율도 78:22%,
공부와 휴식의 비율도 78:22%가 되어야 한다.
“내 영혼아! 끼니때마다 먹고 마시는 것도
78%에 만족(滿足)하고 절제 (節制)하라.
오늘도 78:22%의
통계의 법칙(法則)을
잊지 말고 응용(應用)하라.
- 옮긴 글 -
💠우물만 팔았지 물은 팔지 않았다는 부자(富者)의 최후💠
.
가난한
농부가 이웃에 사는 한 부자로부터
우물을 샀다.
우물에서
나오는 물을 이용해 논에 물을
대기 위해서였다.
농부는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부자가 부르는
대로 값을 고스란히 치러야 했다.
바로
다음 날 농부는 우물에 물을
뜨러 갔다.
그런데
우물을 팔았던 부자가
농부를 가로막고 나섰다.
물 긷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부자는 교활했다.
농부가 자기에게서 사 간 것은
우물뿐이라며,
그 안에 있는 물은
판 것이 아니어서 여전히
자기 소유라고 억지를 부렸다.
농부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불쌍한 농부는 고민 끝에
왕에게 탄원해 보기로 했다.
왕은
농부의 하소연을 듣고는 가장 현명한
신하를 불렀다.
그에게
문제 해결을 돕도록 했다.
왕의
지시를 받은 신하는 부자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해보라고 했다.
부자는
뻔뻔하게도 농부에게 한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그러자 신하가 준엄하게 명령했다.
“당신이
우물만 팔았을 뿐 물은 판 것이
아니라고 하니,
당장 모든 물을 다른 곳으로 옮겨라.
만약 물을
우물에 계속 놔두려면
그 우물의 소유권자인
농부에게 매일 임차료를 지급하라.
그러지 않을 경우,
감옥에 처넣을 것이다!”
그제야 그 부자는
자신의 간교함으로 인해
자승자박이 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농부에게 우물에 있는 물을
쓰도록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하지 마라.
오래지 않아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조선일보 "윤희영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서 발췌)
오늘도
간교함으로 타인에게 손해를 주지 않는
현명한 하루가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이런 분들이 대한민국을 만듭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노다지 땅.....
평당 수억원을 호가하는 서울 광화문 네거리의 초고층
빌딩 지하....
모두가 돈 냄새 풀풀 나는 화려한 상가나 유흥가를 들여
놓으라 외칠 때....
뜬금없이 동양 최대의 공짜 서점을 넣어버린 미친
기업가가 있었습니다.
고위 임원들이 수십억 적자가 뻔하다며 결사 반대하자
오직 나라의 정신을 통채로 바꾸겠다며 독단으로 판을
엎어버린 사람....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발명하고 가난한 학생들의
방패가 되어준 거인....
교보그룹 창업주 신용호의 이야기입니다.
1980년대...광화문 교보빌딩 건설현장....
황금알을 낳을 지하 1층 명당자리에 신용호는 전국민이
볼 수 있는 서점을 차리겠다고 발표합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적자라며 경영진들이 목숨걸고
반대하자 그는 모두의 뺨을 갈기는 서슬퍼런 한마디를
내리 꽃았습니다.
"사람이 책을 읽어 나라가 잘되어야 우리 회사도
사는 법이다"
자산가의 거대한 격조가 자본의 논리를 완전히 누르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교보문고....
하지만 이 서점의 진짜 감동은 서점 내부의 절대 규칙에
있었습니다.
돈없는 고학생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지식을 훔치게
하라며 신용호는 직원들에게 뜻밖의 지침을 하달했습니다.
책을 사지 않고 앉아서 읽기만 해도 절대 눈치를 주지 마라...
책 내용을 통채로 베끼더라도 말리지 마라...
그리고 심지어 책을 몰래 훔쳐 가더라도 절대 망신 주지
말고 조용히 타이르고 보내라....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민족의 정신을 키우는 거대한
영혼의 요람을 만든 것입니다.
사실 그의 지독한 독기는 젊은 시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따돌리며 이육사 시인에게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대던 청년....
해방 후에는 돈이 없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돕겠다며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이라는 개념을 창안해 냈습니다.
이로 인해 수백만명의 가난한 아이들이 대학문턱을
넘었고 대한민국 인재의 판도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가장 눈부신 땅에.....돈 대신 조국의 미래를 박아 넣은
위대한 거상의 이야기 입니다.
오늘도 행복하게 하루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대는 파도/배경 음악 그대를 사랑한 건 (작사,자곡,노래 권오중)}
https://youtu.be/qy_FpZloJB8?si=y15zkLAkRGcUDw9v
💝'물난리'철이면
생각나는 사람
"1968년 7월 3일밤 이었다"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물난리가 났다.
잠원동 주민 300여 명이 신동초등학교에
긴급 대피해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폭우 속에
황토물 교정을 철벅철벅 걸어오고 있었다.
'이 밤중에 누굴까'
그는 교사안으로 들어오며 머리를 감쌌던
흠뻑 젖은 수건을 벗었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사님이 아니냐"
누군가 놀라 소리쳤다.
육영수 여사는
"여러분 얼마나
고생 많으세요?"라고
인사한 뒤 가져온 구호 물품을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나룻배를 타고 발목까지 빠지는 흙탕길을 고무신 차림으로 걸어서 그곳까지 온 것이다.
그 해 호남은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현장을 찾은 육 여사는 논두렁길로 걸어갔다.
말라 타버린 논 구석에
양수기가 있었다.
올라서서 양수기를 밟기 시작했지만
흙먼지가 뒤덮인 빈 양수기가 쩍쩍 소리를 냈다.
그녀를 발견한 동네 사람들이 다가갔다.
육 여사는 울먹이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 사람들을 어떡하지"
육 여사는 소리소문 없이
봉사와 선행에 힘썼다.
보육원, 양로원 등 사회의
그늘진 곳을 보살폈다.
67년 말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정부·여당 송년회에
육 여사가 불참했다.
의아해하는 참석자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집사람은 보육원에
가느라 못 왔다.'고
실토하는 바람에 모두 아무 말을 못하고 민망해 했다.
육 여사가 만든 사회봉사단체 '양지회'는 전국 87개
나환자촌 지원의 대명사였다.
그는 한센인들을 찾아가
손을 덥석 잡고
고구마를 나눠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육 여사는 검소했다.
이애주 전 의원의 증언이다.
육 여사가 흉탄에 쓰러진
74년 8월 15일에 서
울대병원 현직 간호사였다.
"서거하신 후 유품을 정리하는데 글쎄 한복속옷을 기워 입으셨더라고요.
알뜰하고 소박한 성품을 생각하며 유품앞에서
다시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남들이 화려한 자리라고 부러워하는 대통령 부인이지만 '청와대는 항상 중류 살림을 하자'며
근검절약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비싼 옷을 입는 일은 없었다.
청와대에는 그 흔한 꽃꽂이도
못 하게 했다.
박 대통령은 육 여사 서거 후 이렇게 회고했다.
"살아생전 자신의 사사로운 욕망을 채우기 위한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당시에는 다들 가난하게 산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도 사람 나름이다.
비슷한 시기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는 사치 행각을 벌였다.
명품 구두만 3,000켤레가 넘었다.
육 여사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절대권력의 부인이었지만
한복 속옷을 기워 입을 정도로 검소했고
권력을 누린다는 원성을 살까 봐 늘 조심했다고 한다.
조용히 봉사와 선행으로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았던
육 여사같은 영부인을
또 볼 수 있을까.?
그녀는 사려 깊고 겸손했다.
가수 이미자씨 레코드판
한 장을 산 것이 알려진 후
가게에 들른 적이 있었다.
한 직원이 "영부인님
이것도 사주세요"하고
물건을 내놓았다.
육 여사가 "근혜 엄마라고
하면 몰라도
영부인이라고 하니까
깎지도 못하겠네요."라고 말해 주위 사람들을 웃긴 적이
있다고 했다.
김두영 전 청와대 2부속실 비서관의 증언이다.
"육 여사는 권력을 즐기는
행세로 국민의 원성을 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늘 조심했다.
오만하게 보일까 봐
행사장에서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을 정도였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았다.
국가의 대소사와 인사는 대통령의 영역이라고 판단해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대신 소소한 민원 처리는
자기 일이라고 여겼다.
매일 50여 통의 민원 편지를 뜯어보고
답장하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내 앞으로 온 편지는
절대 손대지 마라"고 하고
민원을 직접 챙겼다.
도봉동 토굴 속에 산다는
어느 소년의 편지를 읽고는 주소도 모르는 그곳 일대를
직접 뒤졌다.
기어이 소년을 만나고는 아이스크림 장사에 필요한
장사 밑천을 대준 일도 있었다.
그분은 잡음이 나지 않도록 주변을 늘 단속했다.
청와대 내 야당을 자처해 대통령이 알아야 할 일은
직접 전달했다.
한 번은 박 대통령 친척이 운전하다 사망사고를 냈다.
다들 쉬쉬하고 덮으려고 했는데
육 여사가
그 소식을 대통령에게 전하는 바람에 그 친척은 구속됐다.
김종필 전 총리는 회고록에
"국민에게 퍼스트레이디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처음으로 알린 분"이라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에게 저항하던 사람들도 육 여사의 인품에는 고개를 숙였다.
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환 추기경은
육 여사 영결식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그분이 우리 마음에 심은
평화와 사랑의 씨가 자라
그 꽃을 피우게 해 달라."
김 추기경은 훗날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서 "국모(國母)라는 칭호를
받을 만한분"이라고 썼다.
서슬 퍼런 독재 시절
박 대통령의 철권(鐵拳)이미지를 육 여사가 절묘하게
보완한 셈이다.
서거한 74년을 기점으로
박정희 정권이 서서히
무너진 건 우연이 아니다.
그 뒤 대통령 부인이 여럿이 나왔다.
하지만 육 여사만큼 온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품격있게 대통령 부인 역할을 잘해낸 인물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옮긴 글~
저녁의 음악편지
(2026.08.05.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듣기 좋은 소리만을 들으려 하고, 향기로운 냄새만 맡으려 하며,
감미로운 맛과 부드러운 감촉만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도 있을 수 있으니
그래도
참 좋다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가 아닐까요.
♬참 좋다...양희은
https://www.youtube.com/watch?v=iW1wt5gVFtM
♡ 부끄럽지 않은 길(道)
인생(人生)이란 참 묘합니다.
칭찬은 듣지 못하더라도
욕은 먹지 않으려 애쓰고,
베풀지 못하더라도
피해는 끼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으며,
그렇게 하루를 건너고
또 하루를 넘습니다.
누군가는 큰일을 이루고,
누군가는 이름을 남긴다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그저 조용히 자기 몫의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인생의 참된 기준(基準)은
‘얼마나 높이 올랐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부끄럽지 않게 살았느냐’에
있는 듯합니다.
삶의 여정(旅程)은
어디서 쉬어야 할지,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야 할지,
알 수 없는 길입니다.
출발(出發)은 분명했으나,
도착(到着)은 늘 안갯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그래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돌아보면 쉬운 길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고개 숙여야 했던 오르막길도 있었고,
발을 떼기조차 두려웠던
위태로운 다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길을
한 걸음, 또 한 걸음
묵묵히 건너왔기에
지금의 내가 여기 서 있습니다.
세월(歲月)은 강물처럼 흘러
어느새 머리 위에 서리를 내려놓았지만,
그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애쓴 날들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조심했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이 모여
‘나’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物語)를
완성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인생이란 거창한 승리(勝利)가 아니라,
조용한 양심(良心) 하나 지키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나는 다짐(決心)합니다.
크게 빛나지 않아도 좋으니
누군가의 마음에 그늘을 만들지 않는 사람으로
돌아보았을 때
스스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삶으로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길 하나
끝까지 걸어가 보겠노라고...
- 좋은글 중에서 -

첫댓글 보문산인님
멋진 영상 멋진 글 잘봤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행복이 가득한 하루 보내셔요 감사합니다
인천갈매기님!
찌는듯한
극한폭염에
지치지마시고
시원한데서
두분
주말설계 잘 하세요.
감사합니다!
보문산인님
78대22
바다와 육지의 면적 78대22
인간의 인체도 78대22
혈액도 물과 기타비율이
78대22
공기속에 질소와산소 비율도 78대22.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과 단백질 비율도 78대22
오늘도 78대22 의 통계의 법칙을 잊지말고 응용하라
어른들 동화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하지 마라
오래지 않아 그대가를 치르게 된다
위대한 거상
교보그룹 창업주 신용호 이야기
가장 눈부신 땅에
돈대신 조국의 미래를 박아 넣은 우대한 거상의 이야기
존경 합니다
육여사 추억
조용히 봉사와 선행으로 온국민의 존경을 받았던 육여사 같은 영부인을
또 볼수 있을까
보문산인님
늘감사드립니다
이사장님!
써니님의
금주를
축하드립니다.
운전연수
잘 하시어
신나는
피서여행
잘 다녀오세요.
감사합니다!
@보문산인(대전) 감사합니다
사여사님!
즐거운
여행
계속되세요.
감사합니다!
보문산인님
오늘은
묵상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시간보내세요
초아님!
많이 덥죠?
서늘한데
그늘가만
다니세요.
감사합니다!
보문산인님
오늘은
묵상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시간보내세요
한이수님!
시원하게
상쾌한
오후되세요.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