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봄날의 이별
尊前擬把歸期說(준전의파귀기설)
술잔 앞에 두고 돌아갈 날 알리려는데,
欲語春容先慘咽(욕어춘용선참인)
말도 꺼내기 전 고운 임이 목메어 울먹인다.
人生自是有情痴(인생자시유정치)
인생이 원래 정에 약해서 그렇지,
此恨不關風與月(차한불관풍여월)
이 응어리가 바람이나 달과는 아무 상관없지.
離歌且莫翻新闋(이가차막번신결)
이별가로 새 노래는 짓지 말게나.
一曲能敎腸寸結(일곡능교장촌결)
옛 곡 하나로도 애간장이 다 녹아나거늘.
直須看盡洛城花(직수간진낙성화)
낙양성 모란이나 실컷 즐기세.
始共春風容易別(시공춘풍용이별)
그래야 봄바람과도 쉬 헤어질 수 있으리.
― ‘옥루춘(玉樓春)’ 구양수(歐陽脩·1007∼1072)
◦ 玉樓春: 사패명詞牌名. 고형顧夐의 「玉樓春⋅拂水雙飛來去燕」을 정체로 하고 쌍조56자, 전후 각단 4구3측운을 쓴다. 쌍조56자, 전단 4구3측운 후단4구양측운 같은 변체도 있다. 귀조환령歸朝歡令, 정섬수呈纖手, 춘효곡春曉曲, 석춘용惜春容 등으로도 불린다.
◦ 尊: ‘樽’과 같고 ‘준’으로 읽는다.
◦ 春容: 봄바람처럼 화사하고 자태가 고운 여인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이별하는 여인을 가리킨다.
◦ 慘咽: 슬픔으로 목에 메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 翻新闋: 새 노래, 즉 옛 곡에 새 노랫말을 채운 것을 가리킨다. ‘闋’은 노래나 시의 편수를 세는 단위로 쓰인다. 백거이白居易는 「楊柳枝」란 시에서 ‘古歌舊曲君休聽, 聽取新翻楊柳枝(옛날 노래 오래된 곡 이제 그만 듣고 / 새 노랫말 바꿔 쓴 「양류지사」 들어보세)’라고 했다. ‘離歌’는 전별연에서 부르는 송별곡을 가리킨다.
◦ 直須: 응당. 마땅히. ~한다면.
◦ 洛陽花: 모란牧丹을 가리킨다. 당송대唐宋代에 낙양에서 해마다 모란축제가 성대하게 벌어졌다. 구양수가 「洛陽牧丹記」에서 ‘洛陽之俗, 大抵好花, 春時, 城中無貴賤皆揷花, 雖負擔者亦然. 開花時, 士庶競爲遊遨(낙양 풍속에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여 봄이 되면 성중에 귀천을 가리지 않고 꽃을 심는데, 힘든 일로 생계를 꾸리는 이들까지도 예외가 없었고, 꽃이 피면 사대부와 백성들 모두 봄놀이를 나가 꽃을 감상하였다).’라고 했다.
낙양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수도 개봉(開封)으로 귀환하는 시인을 위해 열린 전별연. 시인이 떠날 시기를 알리려고 할 즈음 갑자기 동석한 ‘고운 임’이 서럽게 울먹인다. 세파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두루 겪은 시인이 차분하게 상대를 다독인다. 이별의 아픔으로 응어리가 맺히는 건 인간이 천성적으로 다정다감해서라네. 무심한 저 청풍명월과는 하등 관련이 없지. 그래도 그 무심한 존재 때문에 우리의 이별 자리가 더 가슴 아리는 건 어쩔 수 없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사람과도 모란과도 또 낙양성 봄바람과도 여한 없이 이별할 수 있을까. 술도 새로운 이별가도 아니라면 이 봄날을 만끽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지. 모란을 실컷 즐기고 나면 쉬 봄바람을 떠나보낼 수 있듯이, 이 순간 우리의 정을 원 없이 나누는 게 최선의 방도가 아니겠는가.
‘고운 임’이라 불렀대서 꼭 술자리의 흥을 돋우는 꽃다운 미녀만은 아닐 테고 동료이거나 절친일 수도 있겠다. ‘이별가로 새 노래를 짓지 말라’거나 ‘낙양성 모란이나 실컷 즐기자’는 살가운 말투로 보면 그렇다. 외견상 7언 율시와 같아 보이지만 이 작품은 ‘옥루춘’이라는 곡조에 맞춰 가사를 메운 사(詞)다.
✵ 구양수歐陽脩(1007~1072)는 북송北宋의 정치가 겸 문인으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육일거사六一居士라 하였다. 길주吉州 여릉廬陵(현재의 장시성江西省에 속함) 사람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문구를 살 돈이 없어 어머니가 직접 모래 위에 갈대로 글씨를 써가며 가르쳤다고 한다. 스물넷에 진사가 되어 관직에 나아갔다. 인종과 영종 때 범중엄范仲淹을 중심으로 한 관료파에 속해 활약하다가 신종 때 동향의 후배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며 관직에서 물러났다. 송대 초기의 미문인 서곤체西崑體를 개혁하고 당나라 한유를 모범으로 하는 시문을 지었다. 시로는 매요신梅堯臣과 겨루고 문장으로는 당송팔대가로 꼽히며 송대 고문의 위치를 확고부동하게 한 공이 크다. 전집으로 《구양문충공집歐陽文忠公集》(153권)이 있고, 《신당서新唐書》와 《오대사기五代史記》를 편찬하기도 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수(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3년 03월 17일.(금)〉, Daum, 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감사합니다
“봄날엔 다 꽃입니다/꽃도 꽃이고, 참새들도 꽃이고,/사람도 꽃입니다//벚꽃 흐드러진 공원의 벤치/반가사유상 그윽한 꽃 피어 있습니다//신발이 낡았습니다/먼 길 걸어온 꽃입니다” -문창갑 ‘풍경을 찍다’
“인생의 길이란 급히 가건, 느리게 가건, 단지 허다한 길이 있고, 재물은 악한 방법으로 모으건, 좋은 방법으로 모으건 죽음에 이르러서는 결국 한 바탕의 빈 것이 되고 만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80년 오늘 세상떠난 철학자 로마황제) 『명상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