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개막한 전시회를 오늘 다녀왔다. 간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화보국전이다.
사립미술관인 간송은 상설로 전시가 열리는 곳이 아니고 1년에 봄, 가을, 딱 두 번만 전시회를 연다.
그래서 전시회를 보기 위해 틈틈히 미술관을 순례하는 나도 여기는 몇 번 가보지를 못한 곳이다. 그럼에도 이 미술관이 한국 미술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번 전시 제목은 <문화보국>이다. 왠지 이 네 글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지 않은가.
전시 작품은 간송미술관 문화재가 어떤 과정으로 소장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이다. 전시 부제가 <신념으로 지켜낸 우리의 얼>인 것도 그 이유다.
우리는 5천만 년이라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 비해 유물이 많은 편이 아니다.
임진왜란 등 잦은 외세침략과 일본의 식민지배에 이어 6.25 전쟁 등에서 많은 유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송미술관 같은 기관의 역할이 소중하다. 간송(澗松)은 이 미술관 설립자인 전형필 선생의 호다.
간송 미술관은 한국 최초의 민간 박물관으로 이전에는 보화각이라 불렀다. 오늘 내 글은 전시에 관한 감상문보다 간송 선생의 일생을 잠시 기술해 본다.
1906년에 태어난 간송 선생은 휘문고보와 일본 와세다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다. 간송의 조상은 일제시대에도 서울과 경기도 근처에 수많은 전답을 가진 억만 갑부였다.
조부, 부친, 숙부 등이 차례로 세상을 뜨면서 간송은 아주 젊은 나이에 유일한 상속자가 된다. 하루 아침에 억만 부자가 된 것이다.
부자들이 부자인 이유는 분명 있다. 그러나 부자도 부자 나름이라 그 재산을 활용하는 방식도 가지가지다.
전형필 선생은 당신의 재산을 오직 문화재를 수집하는 곳에 쓴다. 간송은 돈이 많다고 유흥을 위해 흥청망청 쓰지도 않았고 교만하지도 않았다.
실로 내가 존경할 만한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빼어난 안목이 있었다. 안목(眼目), 중요하면서도 참 멋진 말이다. 인생이 풍요로운 사람일수록 세상을 보는 안목이 좋다.
기업 대표는 직원을 뽑는 안목, 여자 또한 남자를 보는 안목 있어야 한다. 남자 잘못 만났다가 평생 고생을 하는 여자를 여럿 봤다.
미술 사학자 유홍준은 미(美)를 보는 눈을 안목이라 했지만 세상이 어디 아름다운 것만을 보면서 살 수 있던가.
유홍준은 그의 책 안목에서 전형필 선생을 민족의 자존심을 위해 전 재산을 바친 사람이라고 했다.
간송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오세창을 만나면서 인생 전환점과 함께 안목에도 더욱 뛰어난 날개를 달게 된다.
말 그대로 예술을 보는 안목이 트인 것이다.
지식인 오세창은 정치인이면서 언론인, 그리고 빼어난 솜씨를 가진 서예가이기도 했다.
오세창을 스승으로 모신 간송은 평생 우리 문화재 수집에 열성을 다한다.
조선백자를 사기 위해 경매장에서 한 일본인 수집가와 치열한 경합 끝에 낙찰에 성공한다. 오늘 전시장 벽면에는 당시를 설명하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젊은 수장가의 불타는 웅지(雄志)는 드디어 다시 현해탄을 건너려 하던 우리나라의 조선백자 중 가장 귀중한 보물 문화재를 빼앗기기 직전에 수호하고야 말았다.
장하도다. 약관 31세로 일본인 거상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리 민족에게 영광을 가져온 간송>.
간송은 조선백자의 우수성을 믿는 안목이 있었던 것이다. 아래 첨부한 사진이 오늘 전시장에서 본 그 조선백자다.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문병(白磁靑畵鐵彩銅彩草蟲文甁)이란 긴 이름을 가진 이 백자는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당시 전형필 선생이 수집하지 않았다면 이 백자는 지금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뿐 아니라 간송이 수집한 문화재는 수두룩하다. 지금 국보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도 간송 선생이 당시 기와집 열 채 값을 지불하고 구입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훈민정음 간송본이라 부른다. 간송이 아니었으면 이것 또한 누구 손에 들어가 어디론가 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 한국이 낳은 화가들의 그림들 또한 간송 선생이 수집을 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서화 중에는 이미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그림들이 많았는데 간송이 직접 일본까지 가서 사 온 것이 많다고 한다.
삼성의 이병철과 이건희가 투자에 비중을 두고 미술품을 수집했다면 전형필은 우리 문화재의 해외유출을 막기 위해서였다.
전형필의 업적이 훌륭한 것은 해방 이전, 우리 문화재의 해외유출이 극심하던 때 당신의 재산을 헐어 수집했다는 점이다.
거기엔 무가지보(無價之寶)라 할 수 있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보물들이 수두룩하다.
간송에게 위기도 있었는데 바로 6.25 전쟁이다. 서울이 북한에 점령을 당한 그때 간송은 끈질기게 이 유물을 지켜내는 지혜를 발휘한다.
안타깝게도 간송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타계했다. 급성 신우염으로 쓰러진 선생은 투병 생활 끝에 1962년 1월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그전까지 전형필 선생은 수집만 했지 전시를 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갑작스런 병마로 세상을 떠난 후에야 후손들과 주변 지인들의 노력으로 간송미술관을 개관할 수 있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당신의 호가 붙은 이런 미술관을 남겼으니 그의 짧은 삶이 헛되지는 않았다.
올해가 간송 탄신 120주년이라서 이번 전시는 더 의미가 있다. 나는 오늘 간송 선생의 뛰어난 안목(眼目) 덕분에 안복(眼福)을 제대로 누리고 온 날이었다.
대구에도 간송미술관이 있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전시 공간이 협소해서 아쉬웠는데 2024년 9월에 개관한 대구 간송미술관은 전시 공간이 엄청 넓다.
간송재단은 성북동 간송이 너무 협소해 훌륭한 소장품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힘들었기에 분관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지역 균형과 대구의 문화적 가치를 높게 보고 대구에 미술관을 세웠다고 한다.
나는 작년 봄(2025년 3월)에, 김홍도의 백매(白梅)를 보기 위해 간송미술관을 간 적이 있다. 간송은 대구 미술계의 상징이라 해도 될 정도로 아름다운 미술관이었다.
이곳은 성북동 간송과는 달리 연중 전시회가 열리는데 지금 대구 간송미술관에는 추사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추사의 대표작인 세한도, 불이선란도 등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이 전시회를 보지 못했다. 5월에 대구에 사는 지인의 혼사가 있어서 겸사겸사 그때 방문할 예정이다.
간송미술관 바로 옆에는 대구 미술관이 있어서 연계해 들르면 더욱 알뜰한 나들이가 될 것이다.
이 좋은 봄날에 이런 전시회가 있기에 인생이 더욱 살 만하지 않겠는가. 예술에 대한 안목 또한 자주 봐야 늘어날 테고,,
두 곳 다 강추하는 전시회다.
첫댓글 우왕~~ 소중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
저도 유홍준교수님의 저서를 통해 간송 전형필 선생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간송미술관이 상시 개방은 안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요즘이 그 개방 시기임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한 내에 꼭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구에도 간송미술관이 있음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구의 한 교회에 친분이 있는 목사님을 봬러 갈 일이 있는데 그때 간송미술관도 가면 되겠습니다.
억만 부자라도 이 세상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가는데
사시는 동안 그 재물을 이렇게 가치있게 쓰셔서 문자 그대로 문화보국을 하신 간송 선생을 존경합니다.
현덕님 귀한 글 오늘도 감사히 읽고 갑니다. ^^
아하~ 달항아리님,,
그냥 나만 몰래 보구 혼자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다가 행여 카페 식구들한테 도움이 될까 해서 올렸는데 잘한 것 같네요.ㅎ
낮에 강한 햇살을 본 탓인지 오늘 저녁 유난히 눈이 침침하데요. 그래도 손가락이 가는 대로 쓰다 보니 완성할 수 있었답니다.
성북동 간송은 내달에 전시가 끝나니 먼저 가시고, 대구는 칠월까지 하니까 조금 느긋하게 가셔도 될 듯하네요.
그래도 달님이 도움되는 정보라니 다행입니다.
달님 말씀처럼 전형필 선생 또한 세상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가셨지만 이렇게 가치 있는 업적을 남기고 가셨으니 오래오래 남을 인물입니다.
평화로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문화라면 아예 문외한입니다.
한번도 내 발로 전시회나 전시장을 찾아 본 적은 없습니다.
번개 때문에 인사동엘 가도 군것질이나 사람구경 하는 거 말고는 다른 데
별 관심을 안둡니다.
그래도 김홍도나 신윤복의 춘화도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ㅎㅎㅎ
ㅎㅎ 곡즉전님의 겸손의 말씀이란 걸 알면서도 솔직해서 마음에 드네요.
저도 처음부터 예술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근묵자흑이란 말처럼 주변 사람 따라 다니다가 저절로 물든 사람이랍니다.
춘화도를 저도 좋아하는데 김홍도보다는 신윤복 그림이 더 좋더군요. 춘화도에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면 곡즉전님은 아직 청춘임이 확실합니다.
건강한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저의 무지함을 깨우치게 해주는
귀한 글 감사합니다
부자로 살면서 흥청망청이 아니라
민족의 자존심 지키기에 전 재산을 바쳐 귀한 유산들 지켜내신 분이라니 진짜 대단한 분입니다
예술에 조예가 남다른 현덕님 대구행 반갑습니다
그이는 내일 대구
저는 담주 금욜 대구
수없이 오가는대구건만
간송은 못가본 정아입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정아님이 대구 분이셨지요. 제 절친이 대구 토박이라서 일찍부터 대구를 가끔 갔었고 묘하게 정이 가는 도시랍니다.
지금도 저는 일년에 한두 번은 대구에 가지요. 이번 지인 혼사는 그냥 부조금만 보내고 안 가려고 했었는데 추사 전시회가 있다는 걸 알고는 겸사겸사 가게될 모양입니다.
언젠가 대구에 대해 쓸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저와 궁합이 잘 맛는 도시가 대구였네요.
간송이 생긴 지가 얼마 안된 미술관이라서 대구에 사는 친구도 모르더군요. 이래저래 대구가 저를 기쁘게 하는 오늘입니다.ㅎ
간송미술관의 탄생과 전형필 선생의 이야기는 매스컴으로 본 기억은 있지만 현덕님께서 다시 상기시켜 주시네요.
참으로 보배 같으신 분이십니다.
간송 전형필 님의 헌신으로 빼앗긴 보물들이 돌아와 조국의 품에서 후손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저도 언젠가 갈 기회가 있겠지요.^^
좋은 정보와 글 감사합니다.
반가운 리진님이 오셨군요. 저도 전형필 선생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약할 때, 우리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일 때 간송 선생은 당신의 재산을 쏟아서 문화재를 수집했습니다.
이런 분이 몇 분만 더 있었다면 해외로 나간 우리 문화재가 훨씬 줄어들었을 테지요.
간송미술관이 있는 성북동은 아파트가 거의 없고 오래된 골목이 남아 있어서 더욱 정감이 가는 동네랍니다.ㅎ
오늘은 우리의 찬란한 문화 유산을 이렇게 좋은 자료와 애국자 소개 인생의 참된 삶에 대한 글까지 현덕씨 감사합니다.
운선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나 독립운동을 하면서 목숨을 바친 분들도 훌륭하지만 간송 선생처럼 문화재를 구한 분들 또한 존경할 만하지요.
저는 이런 분들 일생을 알아 갈 때가 참 행복하답니다. 일요일 아침이 참 고요하네요. 좋은 날 되시길요.
유현덕님 글을 읽으며 폭넓고 다양한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의 지식에 배움을 얻고 갑니다. ^^*
와우~ 반가운 수피님,
제 글로 수피님에게 조그만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글 쓴 보람이 있겠습니다. 저도 어제 전시장에서 배운 것이 많은 하루였네요.
수피님, 행복한 일요일 되시기 바랍니다.ㅎ
후세에 남길 가치있음을 알아보는 안목.
기와집 열채를 팔 수 있는 용기.
이런분을 이제서야 알게되었다는것이
부끄러운 일요일 아침입니다~~^^
뱃등님 말씀이 맞습니다.
후세에 남길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기에 이런 문화재를 수집할 수 있었겠지요. 이런 곳에 쓴 재산이야말로 정말 가치 있는 돈이지 싶네요.
이 글로 뱃등님께서 전형필 선생을 알게 되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평화로운 일요일 되시기 바랍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