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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간은 유행하는 기(氣): 하늘의 갑을(甲乙)은 기운으로서 쉼 없이 흐른다. 갑목은 생기가 되어 만물에 유행하고, 천간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動而不居). 이는 곧 천간이 구체적인 '사건'과 '변화'를 주도함을 뜻한다.
지지는 수용하는 질(質): 땅의 인묘(寅卯)는 만물의 형체로서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인다. 지지는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으며(止而不遷), 천간이 바뀌어 흘러가더라도 지지는 그 자리를 지킨다.
관료와 임지의 비유: 천간은 임명받아 이동하는 '관료(官長)'와 같고, 지지는 그 관료가 다스리는 '행정 구역(地方)'과 같다. 관료는 바뀌어도 지역은 그대로 남듯, 지지는 변하지 않는 환경적 배경이 된다.
결론: 천간의 '동(動)'은 행정 행위와 같고, 지지의 '정(靜)'은 법이 집행되는 영토와 같다. 따라서 지지는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천간의 기운을 수용하고 통제하는 터전이 된다.
2. 연해자평(淵海子平) - 논천지간지소출(論天地干支所出)
황제가 천간과 지지를 처음 배치할 때의 형상적 원리를 다룬 문헌으로, 동정(動靜)의 물리적 근거를 제시한다.
[원문 전문]
竊以奸詐生, 妖怪出. 黃帝時有蚩尤神擾亂, 當是之時, 黃帝甚憂民之苦, 遂戰蚩尤于涿鹿之野, 流血百里, 不能治之. 黃帝於是齋戒築壇祀天, 方丘禮地. 天乃降十干, 即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十二支, 即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帝乃將十干圓布象天形; 十二支方布象地形. 始以干爲天, 支爲地, 合光仰職門放之, 然後乃能治也.
[상세 해설 및 분석]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철학: 황제는 천간을 둥글게(圓) 배치하여 하늘의 형상을 본떴고, 지지는 모나게(方) 배치하여 땅의 형상을 본떴다.
원동방정(圓動方靜): 기하학적으로 원은 구르며 움직이는 성질(動)을 갖고, 방형(사각형)은 바닥에 밀착하여 고정되는 성질(靜)을 갖는다. 이는 천간은 가변적이며 활동적이고, 지지는 불변하며 안정적이어야 함을 상징한다.
명리학적 함의: 지지가 천간처럼 움직인다는 주장은 땅(方)이 하늘(圓)처럼 구른다는 말과 같다. 지지가 정물(靜物)로서 안정을 유지해야만 만물이 그 위에서 생명 활동을 영위할 수 있으며, 사주의 뿌리(根)가 흔들리지 않게 된다.
3. 적천수(滴天髓) - 천도(天道) 및 지도(地道)
사주 명리의 최고 정수인 적천수의 서두 부분으로, 천지의 공용이 계절을 통해 드러남을 설명한다.
[원문 전문]
欲識三원萬法宗, 先觀帝載與神功. 坤元合德機緘通, 五氣偏全定吉凶. 戴天履地人爲貴, 順則吉兮凶則悖. 要與人間開聾聵, 順逆之機須理會. ... 五行播於四時, 是謂神功.
[상세 해설 및 분석]
제재(帝載)와 신공(神功): 하늘의 주재함(帝載)은 천간의 기운을 뜻하고, 땅의 신령한 공용(神功)은 지지의 터전을 뜻한다.
오행파어사시(五行播於四時): 오행이 네 계절(사시)에 퍼져 작용하는 것을 '신공'이라 하였다. 사시(四時)는 곧 지지(월령)를 의미하며, 지지는 계절이라는 고정된 시간적 배경으로서 오행의 기운을 갈무리하고 발산시킨다.
지지의 환경적 지배력: 지지는 스스로 움직여 사건을 만들지 않지만, '계절'이라는 거대한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천간 오행의 강약(왕상휴수사)을 결정한다.
결론: 적천수에서 말하는 길흉의 판단 기준은 결국 '지지가 천간의 기운을 얼마나 잘 싣고 있는가(載)'에 달려 있다. 지지가 정(靜)하게 버티어주어야만 천간의 신공이 온전하게 발휘될 수 있다.
[종합 분석] 천동지정의 명리적 가치
위 고전들의 논리를 종합하면, 지지가 정(靜)하다는 것은 영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배경(계절과 환경)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천간은 타격(Strike)이고 지지는 압박(Pressure)이다.
천간의 칠살은 자객처럼 공격해오지만, 지지의 칠살은 내가 갇힌 혹한의 겨울과 같다.
지지가 정물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킬 때(靜), 비로소 사주의 격국이 안정되고 천간의 작용력이 실질적인 근거를 얻게 된다.
첫댓글 기질론과 동정론의 차이
故以人之八字地支配藏於下者為之靜也[신봉통고]
이 구결에서 살펴보면 “지장간의 글자를 정(靜)이라 한다” 라고 분명히 언급을 하는 겁니다.
곧 지지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천간과 지지는 동입니다
지징간이 정입니다
이게 신봉통고 이론이죠
위의 원형이정 이론의 기질론과는 서로 의미가 다릅니다
문제는 동정의 용어가 동일하다고 보니까
이걸 신봉통고의 동정론 이론으로 오해하는 거죠
다만 천간은 흐름이 빠르고 지지는 늦다
이게 요지 입니다
즉 하늘은 비행기로 오고 가지만
지지는 걸어서 가는 거죠
사람이 집이 아닌데 어찌 고정이 되겠나요
자연만물의 생성 과정을 설명하고자
기질론으로 접근한 것 뿐입니다
기는 동하고 질은 정하다
기질론은 원형이정의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고
실제 팔자에서 말한
지장간의 동정론은
운기의 실현입니다
고로 우리가 현재 논쟁중인 봉운투청의 논제에서는
신봉통고의 이론이 맞아요
지지는 정이기에 투간을 기다린다고 하죠
형충합으로 동한다고 주장하잖아요
그러나 천간은 이미 동하죠
그러면 천간은 이미 동한 물건이므로
합충극이 필요없습니까
만약 천간이 동하므로 세운의 합충국이 필요없다면
매 해년 마다 동하니
매년 얻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오겠죠
예를 들어 갑목이 재성인데
이 사람은 천간 갑목이 동하므로
합충극이 없는 매년마다 재물을 얻는가요
그런 것은 없죠 분명히
천간도 지지처럼
행운에서 동해 줘야
얻는다는 것이죠
즉 형충합으로 얻는 것은
지지와 천간이 동일합니다
다만 천간의 움직임은 지지보다 빠르게 나타난다
이게 좀 다른 점입니다
그걸 밝히려는게 신봉통고의 동정론입니다
반면, 기질론의 동정은
신봉통고의 지장간 동정론과 다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봉통고의 동정론에서는
정한 물건의 대상자를 지지가 아니라
지장간을 놓고 언급하니까요
이에 반해
기질론은 천간과 지지의 기질의 차이를 논한 거죠
명백하게 이 두 이론에서는
지지와 지장간의 구별이 다릅니다
그러니 어떻게 이 둘의 동정이 똑같겠나요?
문제는 항상 주석자가 일으킵니다
원문의 번역을 이상하게 해석 하는거죠
기질론의 동정과
신봉통고의 봉운투청(逢運透清)의 동정은
그 대상자가
지지와 지장간의 기준 자체가 다른 겁니다
고로 서로 비교할 대상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