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의 이곳- 홍수진 시 ‘경부선 원동역’ 배경을 찾아서 무궁화호 17차례 서는 낙동강 옆 작은 역 시골인심과 느림의 여유 느낄 수 있어 좋아 산자락을 넘는 자동차는 연신 거친 기계음을 내뿜으며 오르막길을 내닫는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자동차의 힘이 금방 떨어질 것 같아 조바심을 낸다. 왼쪽 아찔한 낭떠러지 아래로 낙동강이 잠시 보였다가는 이내 사라진다. 황지(黃池)에서 발원하여 천 삼백리 길을 흘러온 강물은 잠시도 쉬지 않고 바다로 바다로 향하고 있다. 울긋불긋 물든 나뭇잎들이 한 잎 두 잎 떨어져 길 위에 구르고 능선마다 가을색은 짙게 배어 있다. 토곡산 봉우리들은 실루엣을 두른 듯 엷은 비구름이 감싸고 있고 멀리 보이는 천태산 봉우리들은 수묵 담채화처럼 펼쳐진다. 골짜기마다 계절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지난 8일 원동면 원리 매화공원에서 이곳 출신 고(故) 홍수진(洪銖珍, 1949~1997) 시인의 시비(詩碑) 제막식이 ‘추억의 등불을 켜는 춤’으로 시작됐다. 위를 쳐다보면 산, 아래로는 강이 흐르고 그 강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철길을 따라 부지런한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이윽고 열 개의 솟대가 보호하며 흰 천에 가려져 있던 시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그때 부산역에서 같이 떠나, 완행열차가 서는 곳, 경부선 원동역에서 헤어졌다./1969년.//무거운 짐 진 그대 영혼 멀리 떠나거라 / 우리 헤어질 때 / 빈 들에는 어둠이 더욱 넓게 번지고 / 강물도 고여 멎었다//소리 없는 강물처럼 행렬 속으로 사라지던 그대, 뱉는 침 / 저주처럼 가라고 말하지만 / 驛舍에는 빛이 고이고 / 흐린 불빛은 나의 절망이었지//떠나가는 것에 대해 / 다시는 추억하지 않으마. 언약처럼 / 떠나거라 떠나는 길 / 이승의 끝이랴//휘어진 길 돌아서 가는 열차의 불빛 / 삼랑진, 낙동강변으로 / 이어진 길 / 추억이 아득할수록 그날의 불빛은 살아 / 차라리 따스하고 아름답다//그대 떠난 후 남아 있는 것 / 시 한 줄의 아픔 뿐, / 너무 늦은 눈물로 내 다시 찾아 오마 (‘경부선 원동역’ 전문) 역(驛)은 시(詩)에서 만나고 떠나는 대기실 또는 정거장으로서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대부분 만남보다 헤어짐의 의미가 더 강하게 와 닿기 마련이다. 그의 시에 나타난 역의 이미지 또한 이별임을 알 수 있다. 시집 『오늘밤 내 노래는 잠들지 않는다』에 ‘경부선 원동역’과 함께 실린 ‘변방의 풀잎 하나가·2’에도 ‘낙동강변, 驛舍’의 시어가 나오며, ‘양산군 원동면 원리 927번지/내 본적지’라는 부분도 있어 평소 고향을 그리워했음을 짐작케 한다. 그는 그 스스로를 “내 젊음이 그랬듯이 나는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떠돌아다녔다. 잡지편집인으로, 디스크 쟈키로, 실내장식가로, 방송 스크랩터로… 나는 모든 것에서 참으로 자유롭고 싶었다. 아직도 내 시 정신만은, 아무데고 얽매이고 싶지 않다”면서 “나는 다시 이 세상을 시로 엉켜 살고 싶다”고 했다. ‘울산예총 30년사(2004, 한국예총 울산광역시연합회)’에는 홍 시인에 대해 “홍수진의 시는 음악(민요, 팝 등)과 그림 등의 문화예술적인 것을 시적 소재로 삼아 느낌을 추상화하는 경향이 많다. 그의 시 세계는 삶의 원형에 대한 상실감과 죽음으로 상징되는 어둠의 의식과 대척되는 불꽃 이미지로 나타나는 생명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원초적 생명력에 대한 희원을 지향하고 있다. 그의 시는 시 제재를 내면화하고 탐구하기에는 그의 삶이 너무 분주하고도 짧았고, 낭만성과 열정이 앞선 로맨티스트였다”고 적고 있다. 시비 앞에서 만난 홍 시인의 부인 최정순 씨는 “눈물이 납니다. 남편이 이 시비를 본다면 좋아하실 겁니다. 23년을 함께 하는 동안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가족의 한 사람으로 서운한 점도 있었지만 시를 쓰는 모습이 무엇보다 좋았습니다”라며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향후 원동에서 살고 싶은 희망을 말하기도 했다. 매화 공원을 지나 원동초등학교 입구에서 왼쪽으로 접어들어 내리막길을 조금 가면 원동역이 나온다. 사방이 트여 쉽게 눈에 띄는 여느 역사와 달리 지방도 아래에 숨다시피 자리하고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낙동강과 접하며 자연의 품에 안겨 그리 화려하지 않은 소박하고 아담한 역이다. 철길 옆에 늘어선 벚나무는 내년 봄, 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 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1905년 1월 1일 간이역으로 시작한 원동역은 1906년 보통역으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루에 상행선 8차례, 하행선 9차례의 무궁화호가 선다. 상행선의 경부선은 동대구, 대전을 거쳐 서울까지, 경전선은 마산, 순천을 거쳐 목포까지 여행할 수 있으며, 하행선은 물금을 거쳐 부산까지이다. 올해 초에 부임한 역무원 김효근(29) 씨는 “요즈음에는 사람이 많이 없어요. 천태산 쪽으로 운행하던 마을버스가 없어지면서 등산객들이 호포에서 노선버스를 타고 가니까 예전보다 이용객 수가 많이 줄었죠”라면서 “전화 한 통 할 수 있습니꺼?”라는 할머니에게 수화기를 건네며 불러주는 대로 버튼을 누른다. 시골 역에서만 볼 수 있는 친절하고 후덕한 인심이다. ‘맞이방(대합실을 원동역에선 이렇게 표기하고 있다. 국어원은 일본식 한자어인 대합실을 ‘기다림방’으로 순화했다. 우리식 한자어는 대기실이다.)’에서는 열차를 기다리며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도 눈에 들어온다. 배내골에서 출발한 마을버스가 역 앞에 도착하고 승객들이 차례로 버스에서 내린다. 조용하던 대기실이 분주해지며 제각기 행선지를 알리며 열차표를 산다. 여행은 언제나 마음 설레는 것. “열차가 8분 정도 늦어진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와도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는다. ‘빨리빨리’가 만연하는 세상에서 잠시나마 ‘느림’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경부선 역 중 전기가 마지막으로 들어왔다는 원동역은 밀양이나 부산 쪽으로 볼일을 보러가거나 구포저자에 가는 주민들, 양산이나 부산으로 통학하던 학생들, 토곡산이나 천태산 등산객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통로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요즈음처럼 노선버스가 자주 운행되지 않을 뿐더러 자동차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 험한 산길을 다니는 것보다 열차를 이용하면 부산권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밤 8시 55분, 마산으로 향하는 마지막 열차가 흐르는 강물처럼, 미끄러지듯 그렇게 캄캄한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대합실을 환하게 밝히던 불도 꺼졌다. 갑자기 적막이 주위를 감싼다. 칠흑 같은 철길 위에는 빨간불, 녹색불빛만이 외롭게 이 밤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어둠은 자유롭지 못하다. 밤 또한 마찬가지다. 강물에 어리는 불빛을 뒤로 하고 원동역을 떠났던 밤 열차는 얼마 안 있어 어둠에서 벗어나 밝은 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렇다. 이 밤이 지나면 홍수진 시인 그가 그렇게 갈망했던 ‘자유’가 있는 찬란한 아침이 찾아올 것이다. / 이종락(수필가·양산대학 학사지원처 근무)
원동역.
원동면 원리 매화공원에 세워진 홍수진 시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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