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신냉전' 망상은 깨졌고 비극만 시작됐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교육원 객원교수
2023년에 윤석열 정부가 확신했던 미국과 중국 간의 신냉전은 끝내 오지 않았다. 현재 대통령실 안보실의 김태효 1차장이 2121년 <신아세아>에 발표한 '미-중 신냉전 시대 한국의 국가전략'이라는 제목의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지난 5년 사이에 본격화 된 미국의 대중 봉쇄정책은 마치 과거에 소련에 했던 것처럼 중국이 미국 앞에 완전히 굴복하고 쓰러질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당히 잘 지내면서 모호한 외교를 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김 차장이 이 논문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달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김태효가 대선에 참여하고, 집권 후 안보실 1차장으로 부임하면서 그의 대중(對中)인식은 윤 정부의 확고부동한 정책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이 대중 무역에서 수교 30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고 요소수와 희토류에서 중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커졌지만 윤 정부는 개의치 않는다. 미국이 과거 소련을 봉쇄했던 것처럼 중국을 완전히 굴복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10월 초에 미국의 제이크 설리번 안보보좌관이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7000자 분량의 에세이 '미국 힘의 원천'에서는 전혀 다른 주장이 나온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어떻게 끝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우리는 중국이 앞으로도 세계무대의 주역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번영하며 안전한 국제질서, 즉 미국과 미국의 친구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세계 공공재를 전달하는 질서를 추구한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소련의 붕괴에서 비롯된 것과 같은 변혁적 최후국가는 기대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미국이 이득을 얻겠지만 중국도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제1세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잠시 대화하고 있다. 2023.11.17. 연합뉴스
미·중 접근에도 닥치고 중국과 '헤어질 결심'인 대통령실
설리번의 주장은 김태효 차장으로서는 매우 실망스러울 것이다. 어떻게든 중국과 신냉전이라는 재앙을 회피하려는 미국은 2023년 11월 샌프란스시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정부가 기대하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무역협정 체결도 포기했다. 2022년 5월에 한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윤석열 정부는 중국을 견제하는 경제협력체인 IPEF에 참여하게 된 것을 최대 성과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이 협력체는 13개 참여국들과 아무런 무역 규범도 정하지 못한 채 중국 견제에 종이호랑이가 되고 말았다.
놀랍게도 경제공동체 형성에 반대하는 미 공화당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내년 대선에 부정적 영향을 우려한 민주당의 반대로 바이든 대통령이 무역 규범을 스스로 포기해버렸다. 2022년 정상회의 직후 IPEF 가입을 성사시킨 대통령실은 미국과 아세안 국가들이 산업과 무역에서 중국과 분리되는 '경제 안보' 체제가 형성될 것이라고 호들갑 떨었다. 정상회의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IPEF에 반대하는 중국을 향해 '비합리적'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 당시만 해도 대통령실은 경제에서도 신냉전의 질서에 확실히 진입했다고 믿은 것 같다. 그러나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와서 보면 비합리적인 존재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임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미중 관계가 파국에 직면할 것이라는 윤 정부의 망상에 가까운 믿음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경제의 각종 부정적 지표에 초조했던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중국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조율하고 있다"던 대통령실의 바람과 달리 시 주석은 한국과 정상회담을 거절했다. 뒤이어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공동성명은 나오지 않았고,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밥도 먹지 않고 돌아가 버렸다. 11월 말이 되자 대통령실은 부산 엑스포 유치를 기정사실화하며 '부산 천지개벽', '50만 신규 일자리 창출'과 같은 장밋빛 희망을 마구 뿌려댔다. 이미 부산 엑스포 홍보에 4600억 원의 예산을 허비하면서 홀로 망상에 빠져 있던 대통령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2023.11.29. 연합뉴스
"엑스포 실패 배경에 중국 있다"는 외교전문지 분석
그 직후 미국의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는 기사 말미에 의미심장한 분석을 내놓는다. "윤 대통령이 중국과 갈등을 빚은 것이 아프리카를 소원하게 했는데,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긍정적인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중국이 아프리카와 중남미 일부 국가들에게 부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이다. 한중관계의 경색이 엑스포 유치 실패로 이어지는 국제정치 맥락을 짚어낸 이 기사는 한국의 외교력과 정보력의 심각한 결함도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은 외교력과 정보력을 잠식하는 대통령실의 자기 최면과 망상이 바위처럼 버티고 있는 한 있는 능력마저 발휘될 수 없다.
2023년의 한국 외교는 재앙이었다. 과거에 한중관계는 마늘 파동이나 사드 배치, 이어도 영유권 논란 등 구체적인 악재가 있을 때 긴장을 경험한 바 있다. 이런 악재는 대부분 해소되었고 한중관계는 회복력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서는 특별한 악재가 없었음에도 오직 말과 생각만으로 소모적인 갈등을 자초하다가 이제는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마저 한국에 등을 돌린 지금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교량은 끊어진 상태다.
2023년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국제질서는 미국과 중국이 아무리 전략 경쟁을 격화시킨다 해도 다극화된 세계는 강대국 정치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국가는 이념이나 진영이 아닌 국익과 실용을 바탕으로 자국 우선의 외교를 펼친다는 점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이 가치 외교를 명분으로 대륙과 단절을 선포하고 고립의 길에 들어섰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아무리 극우 보수정권이라도 상상하기 어려운 극단적 이념 외교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에는 이익은 없고 이념만 있다.
한국이 수출한 K-2 전차가 지난 3월 30일 폴란드 오르지스 인근에서 열린 군사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2023.3.30. 로이터 연합뉴스
자기 회사 금고 탈탈 터는 '영업사원 1호'의 영업비밀
윤 정부 외교의 가장 파국적인 요소는 대통령 한 명의 위신을 세우는 데 국익을 희생한다는 점에 있다. '영업사원 1호'를 표방한 윤 대통령은 2022년에 원전, 방산, 인프라에서 자신이 500억 달러 규모의 해외 수주를 달성하겠다고 큰소리친 적이 있다. 재벌 회장들을 10여 차례 해외 순방과 국내 행사에 동원하면서 대통령의 영업실적을 돋보이게 하려다가 탈이 난 사업은 폴란드 무기 수출이다. 이 수출의 내막이 밝혀지면 2024년에 한국 외교는 전대미문의 충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 수출입은행과 예금보험공사를 동원해 폴란드에 공여한 차관이 5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법을 바꿔 여신 한도를 더 늘리겠다는 게 대통령실의 의도다.
이마저도 모자라서 100억 달러 규모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폴란드 2차 무기 수출을 성사시키기 위해 시중 5개 은행에게 폴란드에 대한 장기 저리 대출을 압박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임 정부의 무기 수입 계약을 재검토하겠다던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신임 총리는 최근에는 "한국과 계약을 존중하겠다"고 말을 바꾸더니, 한국에 대해 "한국이 약속한 금융지원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계약을 이행하라"고 거꾸로 압박을 가하는 모양이다. 도대체 윤 대통령이 폴란드에 가서 뭘 약속했기에 폴란드가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지, 그 내막이 궁금해질 따름이다. 아마도 윤 대통령이 영업사원 1호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정부 산하 금융기관과 시중은행까지 동원하여 파격적으로 폴란드에 금융지원을 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결렬되었어야 할 위험한 무기 거래다. 2024년에 이 문제에 대해 정치권은 책임있게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 개인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에 남발한 수백억 달러의 투자 약속을 제외하고도 허공에 뿌린 5700억 원 엑스포 유치 관련 예산, 공적개발기여금과 인도적지원 증액분 1조 4000억 원, 폴란드에 대한 대출 지원까지 얼마나 많은 국고가 낭비된 것인지는 추산하기조차 어렵다. 영업사원을 자처하면서 흥청망청 국고를 유용하는 낭비벽이 심한 대통령의 정상외교는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이 위험한 영업사원이 2024년에도 세계를 휘젓고 다닐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차라리 가만있으니 만도 못한 오지랖이다.
출처 : 재앙을 부른 2023년 윤석열의 망상 외교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