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의는 본래 명문가 출신으로 그의 부친은
경조윤, 요즘으로 말하자면 서울 시장이나 경기도 지사에 해당하는 높은 벼슬을 지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그는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관직에 진출했다.
반면 공명은 전한 시대에 사례교위 벼슬을 지낸 제갈풍의 후손으로, 어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숙부 밑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 숙부가 죽은 뒤에는 후한 말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와룡산 기슭 초가에 숨어 살았다.
201년 조조는 순욱의 추천에 따라 사마의를
초빙하지만 사마의는 병을 핑계삼아 응하지 않았다.
7년 뒤, 승상이 된 조조는 세 차례나 사람을 보내 사마의를 다시 초빙하지만 이번에도
사마의는 응하지 않았다.
이에 조조는 사마의의 몸을 묶어서라도 데려오라는 명을 내렸고, 그제서야 사마의는 조조의 사람이 되기로
한다.
뛰어난 능력을 인정하여 세 번이나 초청한 끝에 어렵게 부하로 삼았다는 점에서 보면, 유비가 공명을 초청한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공명이 천하삼분지계 라는 전략과 천하통일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유비의 초청에 응한데 비해 사마의는 마지못해 조조의 부하가
되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사마의는 정치적, 군사적 수완을 모두 갖춘 위나라 최고의 지략가이자 실력자였다.
특히 전쟁
중에 그의 신중한 판단력과 확신에 찬 지략은 두드러졌고, 언제나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결과를 얻어냈다.
사마의는 성급하게 싸움에 임하기
보단 시간을 벌여 적이 자멸하기를 기다리는 지구전을 즐겨 사용했다.
237년, 요동에서 공손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사마의는 성급하게
공격하지 않았다.
먼 거리를 움직인 사마의로서는 싸움을 오래 끌면 불리한데도 지구전을 사용했고 결과는 사마의의 승리였다.
공손연이
사마의에게 쫓기다가 사로잡혀 목숨을 구걸하자 사마의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에는 다섯 가지 길이있다.
첫째,
전력이 충분하면 공격하라.
둘째, 전력이 충분하지 못하면 지켜라.
셋째, 지킬 전력도 없으면
도망가라.
나머지 두 가지는 항복과 죽음뿐이다.' 그가 얼마만큼 철두철미하게 전쟁에 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좀처럼 싸움에 응하지 않는 사마의와 어떻게
해서든 사마의를 빨리 싸움터로 이끌어 내려는 공명의 모습도 무척 대조적이다.
물론 여기에는 까닭이 있었다.
공명은 사마의에 비해
불리한 조건 속에서 싸워야 했다.
후한의 13주 가운데 위나라에 속한 곳이 9주 촉나라에 속한곳은 1 주에 불과했다.
촉나라와
위나라의 국력 차이는 극명했던 것이다.
더구나 공명은 전쟁 외에도 도맡아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도 과로가
원인이었다.
이에 비해 사마의는 전쟁을 총괄하는 임무만 수행하면 되는 처지였다.
공명도 사마의도 촉나라와 위나라의 국력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전쟁이 오래 갈수록 군량 조달 문제 등으로 불리해지는 쪽은 촉나라였다.
때문에 공명은 빨리 승패를 결정지으려 했지만,
사마의는 그러지 않았다.
공명이 한 황실 부흥과 천하통일이라는 대의명분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면, 사마의 인생에선 그런 대의명분을 찾기 힘들다.
공명은 전쟁에 임하면서 적을 속이는 계략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에 비해 사마의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남을 속이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위나라 최고
권력을 나누어 가지고 있던 조상이, 부하 이승를 보내 사마의의 동태를 파악하려 했을때의 일이다.
사마의는 깊은 병에 걸렸다는 거짓말로 마치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행동한다.
이승이 사마의의 그런 모습을 보고하자 조상은 사마의를 대단치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10년 뒤,
사마의는 군사를 일으켜 조상을 처형하고 권력을 독차지하는 데 성공한다.
사마의는 현실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면서 자신의 야망을 이루어
나가는 현실주의적인 인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은 진 왕조를 열고 천하를
통일했다.
적어도 삼국지의 결말만 놓고 보면 최후의 승자는 사마의 혹은 사마 씨 집안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마의에게
박수를 보내기 보다 공명이 못다 이룬 꿈에 대해 아쉬워하고, 공명의 죽음을 애닯아한다.
왜일까? 그것은 공명과 사마의의 인간됨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공명은 유비와 유선을 성심을 다해 보좌한 충신이다.
유선에게 울린 출사표에도 나와 있듯이, 공명은 유비로부터 받은 심임을
보답하기 위해 중원 정벌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
이에 비해 사마의는 권력을 차지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조예가 죽고 어린
조방이 제위에 올랐을때, 사마의는 정치적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승상이 되어 위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공명이야말로 마음만 먹으면, 황제
유선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자신이 사실상의 황제 역할을 할수 있는 처지였다.
그러나 공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명이 전형적
충신이었다면 사마의는 큰 야망을 품고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한 인물이라고 할수 있다.
첫댓글 저만 엑박인가요?? 위에 두사람도 ㅎㄷㄷ이긴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곽가를 제일 좋아합니다.
한국팬들에게 곽봉효 인기좋죠
최대한 수정했는데 잘안데내여
유비가 죽기 전에,공명에게 대신 나라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예'라고 했다면 사형 당했을 지도 몰랐을 거라는 얘기가 있죠...
방통이 조금더 살아서 커리어를 쌓았다면;; 제갈량을 잡지 않았을까요;;
방통이 커리어를 쌓앗다면 공명이 내정에 올인하고 방통이 전쟁에 올인하면 ㄷㄷㄷ;
방통은 뭐 보여준게 하나도 없죠. 방통보다는 정군산에서 조조군에서도 손꼽히는 역전의 노장인 하후연을 관광태운 법정이 장수했더라면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싶습니다. 정사에서도 법정의 군사적 능력은 제갈량과는 비교도 안되게 뛰어나다고 평가하고 있죠.
전략가로서의 법정은 뛰어나죠. 성격이 좀 안좋았던가...;;
법정은 성격이 극단적이었다죠... 자신에게 은혜를 준 사람이 큰 죄를 저질러도 어떻게든 면하게 해주려 했고,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사람은 어떻게해서든 작살내려고 했다는... 유비도 그 성격에 질렸었죠... 나중에 유비가 이릉에서 육손에게 크게 패할 것을 안 공명이 '법효직이 살아있었더라면...'이라며 탄식했다죠...
이학봉..ㅋㅋ
방통과 서서는 참 아쉽죠.. 미완의 대기... 주유도 그렇지만 그나마 주유는 적벽 한방 크게 터뜨리기나 했지.. 사마의와 제갈량이라면 제갈량이 군사적으로는 약간 위, 민정적으로는 크게 위라고 생각합니다만.. 그야말로 정치 공작에서는 사마의의 실적이 워낙 압도적이죠..
오나라가 연의에서 워낙 비중이 없어서 그렇지 주유의 군사적 능력은 삼국지 전체에서 꼽힐만 하다고 봅니다. 방통은 보여준게 없고, 서서는 본래 조인 격파한게 유비 책략인가 그렇고 조조진영으로 넘어가서는 완전 캐버로우 타죠.
방통도 적벽대전에서 한가지 보여준거 있죠...배들을 쇠사슬로 묶는 것을 조조에게 조언해서 화계를 성공시켰죠.,..
그리고 이건 사마의죠ㅋㅋㅋ결국 역사의 승자이지 않습니까ㅋ
222
공명은 대표적인 유가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忠을 중시하는 유교 사상을 가진 공명이 유선을 넘어서지 않는 것은 거의 종교적인 신념이라고 볼만 하죠. 그리고 공명이 군사적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말을 들은게 꽤 있습니다. 삼국시대의 최고의 정치가지만 군사적 재능으로 보자면 오히려 패배한적이 많다고 하더군요.
대표적인 법가사상을 가진 인물로 기억하는데 아닌가요? 그리고 공명의 군사적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건 가정전의 완벽한 패배와 사마중달과의 중원싸움에서 위연의 자오곡을 받아들여지지 않다는 점에서 소위 제갈량까들에게 공격을 받은거지만 글쓴분 말씀대로 위와 촉의 국력차이는 10배라고 무방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제갈량이 일으킨 군사는 촉의 전력이었고 도박적인 공격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 셈이었고 천하의 사마의가 제갈량을 '천하의 기재'라 평했는 걸로 짐직하건대 그의 다른 뛰어난 능력에 군사적 재능이 묻혔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게 촉-위 전투에 국한된다면 평가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도 싶네요 일단 국력의 차이도 그렇고 촉이 천혜의 요새인만큼 위쪽으로 쳐들어가는 루트 역시 그렇게 쉽지 않은 지형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리한 북벌이 문제였지만 당시 촉의 지형상의 문제점때문에라도 조기에 승부를 짓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죠
아.. 그러고 보면 사마의의 정세를 읽는 눈에도 감탄을 할수밖에 없네요 위정도의 국력이라면 무리해서 촉이나 오를 정벌할만한데도 그렇게 무리해서 정벌에 나선적은 없는걸로 기억합니다 촉이나 오나 어느정도 지형적인 방어선을 구축하기도 했고 공세로는 몰라도 수세에는 어느정도 기반이 갖추어져 있었는데 아무튼 무리한 원정의 자제로 점점 힘의 균형이 위쪽으로 쏠렸고 타이밍이 절묘하게 두명의 바보군주에 의해서 촉이나 오나 쉽게 멸망해버렸죠
저도 개인적으로는 사마의가 좋지만.. 언제나 대세는 공명이더군요.. ㅎㅎ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나 멀티가 많아야 후반에 강한듯.. ㅋ 뜬금없으면 죄송.. 사마의는 최연성 같고 공명은 임요환 같네요.
ㅋㅋㅋ그런듯도 싶네요.
ㅋㅋㅋㅋ멀티ㅋㅋㅋ
이재용 아저씨 보면서 정말 사마의 이미지랑 딱 맞더라구요...
공명은 엑박이네요. 누구 사진인 지...
삼국지 연의가 여러 사서에 의해 재조명되고 그 중 가장 거품으로 평가되는 예가 제갈량이지만 일국의 재상으로써의 자질은 장량이나 진평에 비해 조금도 모자르지 않았다는 평가가 아직도 대세입니다. 그리고 군사적인 측면에서 최근에는 사마의나 주유가 제갈량보다 뛰어났다라는 평가도 있지만 모두가 추측일 뿐이고 오히려 위국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 국력으로 죽기 전까지 촉나라의 대부분의 영토를 기본적으로 수호한것을 생각한다면 그의 군사적 재능을 가히 엿볼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약소국으로써는 드물게 제갈공명의 생전에는 촉은 위에 대항하여 침입국 형식의 갈등을 만들어 갔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침입이 최고의 방어라는 취지에서 제갈량이 헤아린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신이나 강자아보다도 제갈량이 뛰어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랑 생각하시는게 비슷하시네요..
장량,진평에 못지않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신이나 강자아보다 낫다고 하기에는 그들이 이루어 놓은 것이 너무 거대하군요. 공명이 무력에 조금만 더 뛰어났으면 그가 활용할 수 있는 전술, 전략의 폭이 좀 더 다양할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참 많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