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코엑스 컨벤션센터 3층 오디토리움에서는 국내 프로야구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골든 글러브 시상식이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 개최로 열렸다.
골든 글러브 시상식. 골든 글러브는 수많은 상(사실 우리나라에는 상이 너무 많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주석에서 이야기하겠다) 중 시즌 MVP, 신인왕 선정과 함께 가장 권위 있고, 선수들도 가장 탐을 내는 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날 2루수 부분에서 수상을 한 타이거즈의 김종국 선수가 "야구선수가 되면서 최고의 목표로 삼았던 것을 이루었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힌 정도이니 말이다.
이런 최고의 권위에 골든 글러브 시상식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골드 글러브'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겠다. 메이저리그의 골드 글러브는 1956년 미국의 엘머 블래스커에 의해 만들어졌다. 골드 글러브는 이름에 걸맞게 최고의 수비수들에게 상을 주려 만들어졌다.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한 해 시즌을 돌아보며 수비력이 가장 뛰어난 18명의 선수에게 이 상을 수여하고 있으며, 각 팀의 감독과 코치들의 투표(소속팀 선수는 제외)에 의해 수상자가 선정된다. 아무래도 타격면에서는 타이틀 홀더들에게는 많은 영광이 돌아가기에 공격 못지않게 중요한 수비에서의 능력을 평가하는 면에서 골드 글러브의 의미는 아주 크다고 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의 골드 글러브는 이름에 딱 맞게 수비수들에게 상을 주지만, 이것이 우리나라로 오면서 이상한 쪽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후보자 선정기준을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투수부분 후보선정기준(15승 이상 또는 30세이브 이상과 방어율 3.50)을 제외하고, 포수는 타율 0.250이상, 내야수는 타율 0.240 이상, 외야수는 타율 0.285 이상, 지명타자는 타율 0.300 이상의 후보선정 기준을 내세우고 있다. 이 밖에 각종 공격 개인기록 타이틀 홀더(홈런, 타점 등)들은 자동적으로 후보에 등록된다.
골든 글러브가 아니라 골든 배트?
후보 선정기준만 보더라도 수비력보다는 공격력에 치중하여 후보를 선정하며 선수들의 팀 공헌도나 리더십, 수비력 등을 내세워서는 분명히 골든 글러브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확실히 문제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야구란 타력이 전부가 아니다. 물론, '타고투저'가 심해진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타력이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야구를 전체적으로 보자면 타력도 중요하지만 그외의 성실한 팀 플레이, 선수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팀 공헌도, 팬들에게 멋진 플레이를 보이는 프로정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수비위치에 맞는 수비능력 등이 아주 중요한 골든 글러브 후보 선정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번 골든 글러브 시상식은 이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 시상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골든 글러브 수상자부터 살펴보자.
일단 투수부분 수상자 송진우와 지명타자 마해영은 제외시키자. 이유는 투수는 타력과 관계가 없고, 지명타자는 어차피 타력에 관계된 부분이니 타력에 치중된 수상이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머지 수상자들은 수비력보다는 공격력에 더 치중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1루수 부분에서 수상을 한 이승엽 선수는 홈런, 타점, 득점, 장타율 1위, 최다안타, 출루율 2위, 타격 3위 등이 당연히 수상 이유가 됐을 것이 뻔하다.
외야수 부분에서도 이종범, 심정수, 송지만 선수가 수상하였는데 이들도 그들의 수비력보다는 타격이 수상 이유였을 공산이 크다. 특히, 송지만 선수는 수비는 조금 뒤처진다는 평가를 예전부터 받아 왔으며 이번 외야부분 후보들 중에도 팀 동료 데이비스(수비율 .958)에 이어 두번째로 낮은 수비율(.977)을 보여 주었다. 만약 수비력이 높이 평가됐다면, 수비율 100%를 기록한 트윈스의 박용택 선수가 제외됐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타력보다는 수비력이 더 중요하기로 유명한 2루수 부분과 유격수 부분에서도 타력에 대한 비중은 더 높이 나왔다. 2루수 부분에서는 타율 .287, 도루 1위, 최다안타 5위를 기록한 김종국 선수가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으며, 유격수 부분에서도 브리또가 유격수로는 아주 높다고 볼 수 있는 .283의 타율로 2할5푼대에 머무른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당당히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였다.
수비율을 보자면, 김종국 선수는 다른 후보였던, 베어스의 안경현 선수(수비율 .995)보다 낮은 수비율( .987)을 보여 주었고, 특히 유격수 부분 수상자 브리또의 수비율( .957)은 후보자들(와이번스의 김민재 .973, 타이거즈의 홍세완 .969) 중 꼴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골든글러브 수상자 선정의 기준이 타력이었다면, 왜 굳이 각자의 수비위치를 정해 놓고, 그 수비위치에서 한 명씩 수상자를 선정하냐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비위치를 정해서 수상하다 보니 아무리 좋은 타력을 보였다 하더라도, 자신보다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는 이유로 수상을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차라리 그것보다는 타력 베스트 9을 뽑아 1등부터 9등까지 상을 주는 것이 더 공정하지 않을까 필자는 생각한다.
그랬다면, 적어도 타율 .343, 타격, 출루율 1위, 최다안타 2위 등 아주 뛰어난 타력을 보여준 타이거즈의 장성호 선수가 이승엽 선수에게 밀려서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하는 피해는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지명타자 부분 수상자에게는 어차피 타력에 의존하여 뽑는 자리인 만큼 상으로 골든 글러브보다는 골든 배트를 선사하는 것이 그 이치에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날 시상식을 찾은 팬들도 대부분은 골든 글러브 수상자 선정이 타력에 치중됐다는 것에 동감을 하였다. 이글스 서포터즈 그룹 '파워이글스'의 청주지역장 겸 운영기획장이라고 자신을 밝힌 홍순태씨(24·학생)도 "골든 글러브라는 이름을 들어보면, 수비선수들에게 나누어주는 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외국에서는 수비 선수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골든 방망이도 아니고... 이런 부분은 바꿔야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골든 글러브는 우승 프리미엄?
이날 골든 글러브 수상자 10명 중 5명은 올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라이온즈 선수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고,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거둔 팀에서 많은 수상자를 배출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 라는 반문을 받을 수 있지만, 작년 그리고, 올 골든 글러브 시상식을 지켜본 필자에게는 우승 프리미엄이 너무 당연시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도 코리안시리즈 우승팀 베어스는 정규시즌 3위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3명의 골든 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중 가장 말이 많았던 부분은 바로 포수 부분이었다. 포수 20-20클럽 가입(국내 최초, 세계에서 2번째-미국은 한 번, 일본은 없음)과 좋은 수비력을 보여준 유니콘스의 박경완은 수상자에서 제외되었고, 그 자리에는 우승팀 베어스의 홍성흔 선수가 서 있었다. 이날 소감에서도 홍성흔 선수는 자신이 박경완 선수의 골든글러브를 뺏은 것 같은 기분이다 라고 수상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올 골든글러브의 핫 이슈도 포수부분이 될 듯하다. 포수부분 수상자는 라이온즈의 진갑용이었다. 진 선수는 타율 .281에 포수의 능력을 가장 많이 평가받는 도루 저지율에서는 .413, 수비력에서는 .990을 기록했다. 만약, 타력이 가장 큰 초점이었다면, 진 선수는 베어스의 홍성흔(.289)보다 낮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트윈스의 조인성은 비록 타격면에서는 뒤처지긴 했지만, 도루 저지율 .500, 수비율 .989로 진 선수보다는 월등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50%의 도루저지율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호성적이었으며 올 시즌 조인성 선수의 투수 리드능력은 어느 시즌보다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진 선수는 약물파동 사건을 낸 장본인이기도 했다.
베어스 팬이라고 자신을 밝힌 조삼석씨(40 자영업)는 "오늘 수상자 선정에는 큰 불만은 없다. 그러나, 포수부분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자들이 알아서 했겠지만, 약물파동을 일으킨 선수가 골든글러브를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야구선수 자질면에서 고려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하였으며, 이글스 팬 홍순태씨(24 학생)도 "포수 부분은 당연히 조인성이라고 생각했다. 실력면으로 보았을 때 조인성이 당연하다. 아마도 우승 프리미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진갑용 선수의 수상 이유를 예상하였다.
분명 골든 글러브는 정규시즌 성적으로 정해져야 한다. 물론, 개개인의 선수가 최선을 다해 우승을 일구어냈긴 했지만, 우승은 팀이 한 것이다. 우승을 했다는 이유로 프리미엄을 얻는다면, 약체 팀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선수들은 모두 무시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야구는 혼자 잘해서 되는 스포츠가 아니므로 약체팀에 아무리 좋은 선수가 있다하더라도 그 선수 한 명으로 팀이 우승을 하긴 정말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평가를 한다면 정규시즌을 통해 모든 선수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평가를 받아야한다. 개개인의 선수를 평가하는 장이라면 우승은 배제하고, 정규시즌 성적으로만 평가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만약, 골든 글러브 수상자 선정에 코리안시리즈 우승이 한몫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공정한 평가가 아니고, 그로 인해 골든글러브의 권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 골든글러브 수상자는 지난 달 28일 KBO의 8개 부문에 43명의 후보발표로 시작되었고, 프로야구 기자회 회원들과 방송PD, 해설자 등 292명의 투표로 이루어졌다. 한국 야구기자회 소속이 아닌 필자는 이번 수상자 투표를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참고로 한국 야구기자회에는 인터넷 신문기자는 참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올 골든 글러브 시상식을 보면 후보자 선정부터 수상자 선정까지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KBO와 골든글러브 수상자 투표단들에게 부탁을 하고 싶다. KBO는 골든 글러브의 권위만큼 단순 타격기록에 의한 후보 선정을 벗어나 좀더 신중히 후보를 선정하여 주길 바란다. 골든 글러브 수상자 투표를 담당하는 프로야구 기자회 회원들과 방송PD, 해설자 등도 좀 더 신중하고 투표에 임해주길 부탁한다. 단순히 후보자 중 눈에 들어오는 선수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 기록을 세밀하게 살펴보고, 정규시즌을 돌아보고, 포스트시즌 성적은 확실히 배제한 다음 투표에 임해주길 강력히 요구하고 싶다.
기자는 여기서 메이저리그와 같은 각 팀의 감독과 코치들의 투표(소속팀 선수는 제외)에 의해 수상자가 선정하는 방식을 KBO가 채택하는 것이 어떠한가 제안하고 싶다. 물론, 기자들 중에는 야구에 대한 남다른 평가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감독과 코치들이 일선에 있기에 그들이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이 가장 문제의 소지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방식이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평가하여 자신들 중 가장 뛰어난 선수들에게 주는 상이 제 3자가 개입하여 주는 상보다는 훨씬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볼 때 KBO와 투표단은 골든 글러브 시상식을 단순히 상을 주는 자리라는 생각보다는 한해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자리라는 인식을 해주길 부탁한다.
14년만의 수상
마지막으로 필자는 14년 야구생활에서 첫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송진우 선수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송 선수는 수상소감에서 "어떤 선수가 골든 글러브를 받기 위해 8년을 기다렸다고 하는데 나는 14년을 기다려 왔다"라고 하며 눈시울을 흐렸고, 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송 선수는 매년 좋은 성적을 뽑내면서도 골든글러브와는 인연이 멀었다. 14년만의 골든글러브 수상. 이것이 '회장님' 송진우 선수가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길 필자는 바란다.
올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고, 지금까지 보면서 국내 프로야구에는 너무 많은 시상식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KBO가 선정하는 프로야구 부분별 수상(MVP, 신인왕과 개인타이틀)이 있고, 골든글러브가 있다.
여기에 각 언론사들이 제정하는 골드스포츠 프로야구 대상, 연간 구원투수상(이상 일간스포츠), 올해의 상, 매직글러브(이상 스포츠서울), 프로야구 대상, 베스트10(이상 스포츠조선), 스포츠투데이 야구대상(스포츠투데이)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일구회가 제정하는 일구상이있다. 여기 나열한 것만해도 10개나 된다. 아무리 상을 좋아하는 국민이라지만, 이건 조금 너무 많은 듯 싶다. 동아일보에서 '장외홈런'이라는 칼럼을 쓰고 있는 장환수 기자도 "가치 떨어뜨리는‘賞홍수’"라는 제목의 글로 필자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필자는 <오마이뉴스>에 <동아일보>와 오랜만에 같은 뜻의 글을 쓴 것 같아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상은 그 가치를 떨어 뜨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한국 고교야구에서 너무 많은 대회가 오히려 야구팬들의 관심을 떨어뜨리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상의 수를 줄이고, 좀 더 내실있는 시상식을 거행한다면, 보다 더 높은 팬들의 관심을 끌어 올 수 있고, 선수들도 더욱 관심을 갖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