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릇한 미소 지은 자매
예배 전, 한 자매가 밝은 얼굴을 내밀고 중2 층으로 올라갔다.
깜짝 놀랐다.
남편과 세 살 딸이 보였다.
엄마 생신이라 친정에 찾아온 모양이다.
나이 스물아홉 살!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났다.
부안에서 교회 앞 골목집으로 이사하여 등록한 가정이다.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학생 수련회! 왼팔 반 깁스하고 갔다.
명사십리 바다에서 비닐로 묶고 신나게 놀았다.
중학생 컬러링이 “결혼을 하고 싶은데..”였다.
격에 맞지 않아 3천 원으로 바꿔줬다.
럭비공처럼 튀는 사춘기를 보냈다.
교회 오빠와 싸우다 소리 지르며 울고 갔다.
피아노 반주자로 짧은 치마 입고 맨발에 슬리퍼로 앉았다.
권면한 말에 순종하며 고쳤다.
고 3초에 대학입시 접고 법원 행정직 시험 준비를 시도하였다.
아빠가 힘들게 일한 모습에 빨리 돈 벌 생각이 앞섰다.
황소고집이나 마음은 여리고 달빛 닮았다.
여러 날 기도하며 설득하여 법대에 지원하도록 이끌었다.
수험생이 반주자로 주일을 온전히 섬겼다.
주일학교 교사를 감당해 나갔다.
새벽 기도에 나오고 용돈 받으면 십일조를 드렸다.
일대일 제자 양육 받으며 체계적으로 믿음의 뿌리를 내렸다.
무등 도서관에서 엉덩이를 무겁게 만들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가슴 뭉클한 삶이었다.
열공 끝에 두 법대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등록금 비싼 대학 선택에 엄마와 갈등이 컸다.
난 그 편을 들어 가까운 대학에 등록시켰다.
기뻐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루는 ‘목사님 쌍수 했어요?’
난 쌍수가 뭔지 몰랐다.
눈 쌍꺼풀 수술이었다.
입학 후 한국 기독 학생회(IVF)에 가입하며 교회관이 흐려졌다.
그 단체 소속 집사님이 연립 주택을 내놓았다.
구 시청 근처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했다.
가끔 간식을 들고 찾아갔다.
시험 기간 중 학교 도서관에 빵과 우유를 간식으로 줬다.
학기를 더할수록 힘겨워 보였다.
믿음의 끈이 풀릴 때 문자를 보냈다.
‘진아, 좋은 하루 시작이다.
그냥 오늘 함께 점심 한 끼 먹자.
너 좋아한 음식으로.. 11시 30분 아파트 정문으로 갈게. 연락 주렴.’
‘안녕하세요. 목사님! 연락드려야 했는데 문자 주셔서 감사해요.
전대 후문 셀프 비빔밥 집 괜찮으세요?
약속 시간에 정문으로 갈게요.’
‘그래 알았다.’
함께 밥을 먹고 타일러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가정으로 찾아가도 막무가내였다.
교회 밖으로 돌았다.
결국 세상 자유 누리며 학사 일정을 미루었다.
채식만 섭취하며 체중을 줄였다.
집에 있는 책을 버렸다.
법원 행정직에 대한 꿈도 접었다.
카톡도 하지 않았다.
쌩얼로 다녔다.
자기 방 도배하면서 전기를 죽였다.
마침내 말없이 서울로 떠났다.
한동안 소식을 끊고 식당 알바로 버티다 집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학기 접고 고창 자연 마을로 가 버렸다.
아빠가 새벽 기도 마치고 목양실 문을 두드렸다.
“목사님 큰일 났습니다.
딸이 골치 아프게 되었어요.
하라는 공부 안 하고 집을 나갔어요.
산과 섬으로 돌아다니다 ‘나는 자연인이다’
TV에 나온 사람과 살고 있어요.
나이 많은 사람이어요.
임신한 딸의 편지 받고 일손이 잡히지 않네요.
아내는 집으로 들어오라! 난리여요.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어떻게 하지요?”
부모가 외동딸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딸을 만나면 분노 조절이 어려울 것 같아 동행 여부를 물었다.
조건 없이 승용차로 모셨다.
먹장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엄마가 사랑의 손길로 묵은 지, 된장, 고추장, 밑반찬, 양념을 챙겼다.
난 복숭아를 샀다.
초행길이라 더디 가는데 엄마는 뒷좌석에서 끝까지 훌쩍거렸다.
정오쯤 장수군 산서면 주민 센터 마당에서 그를 만났다.
자연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자매의 맨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라는 자세였다.
속상한 엄마가 딸에게 ‘아침도 못 먹었다. 밥부터 먹자!’ 권하였다.
산채 나물 돌솥 밥을 주문하고 궁금한 사항을 물었다.
난 자매가 남자를 목석 보듯 한 줄 알았다.
상식을 벗어난 일에 원하는 임신이라고 당당하게 드러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표현에 놀랐다.
그 모습 인정하고 축하하며 감사 기도를 드렸다.
엄마의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자연인은 법대 출신으로 저술가였다.
‘나는 자연인이다!’ 오랜 가난을 벗 삼았다.
산전수전 겪은 초라한 형색에 논리가 정확하고 삶의 목적이 분명했다.
빈민 운동가로 세상 욕심을 내려놓았다.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자연에 순응하였다.
음악을 사랑하는 산 사나이였다.
유기농으로 논밭을 일구는데 삽 하나면 된다는 식이었다.
자매를 사랑하며 그 원하는 데로 살고 싶다는 주장이었다.
식후에 산을 넘어 보금자리를 찾았다.
진입로와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였다.
고양이가 낯선 일행을 경계하고 나갔다.
공간은 넓고 높은데 방과 거실, 부엌이 구분되지 않았다.
정리 정돈하기 어려운 살림에 엄마가 충격을 받았다.
“너 이런 꼴 보려고 뼈 빠지게 벌어 공부 가르친 것 아니다.
벌레 기어 다닌 곳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아 키우겠느냐?
냉장고도 없지, 화장실도 없지? 이 미친 뇬아! 생각을 해 봐라.
아무리 자연인이라 해도 너무 한다”라고 울분을 쏟았다.
험한 분위기에 딸은 고개를 숙이며 흔연스럽게 대했다.
난 음료와 간식을 눈으로 먹고 마셨다.
밖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려 딸이 나갔다.
주민 센터 직원과 이장이 임산부 도우려고 실태 조사 나왔다.
자리를 내줬다.
그 해 겨울,
자연분만으로 출산하여 이웃에서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 섬겼다.
그 딸이 왔다.
2023. 9. 23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