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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노닐던 곳’이라고 해서 선유도(仙遊島)란 이름이 붙여졌다지요. 전북 군산 앞바다의 고군산 군도. 그 섬의 무리 속에서 단연 ‘꽃술’로 일컬어지는 섬, 선유도를 찾았습니다. 서해바다에 습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짙은 해무를 몰고 다니던 날이었습니다.
지난해 4월 새만금 간척사업의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마무리됐지요. 그리고 이제 서해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하나 둘 육지가 됐거나, 혹은 되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옳은 일인지 어쩐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이미 고군산 군도의 야미도와 신시도가 육지와 연결됐고, 앞으로 신시도와 선유도가 다리로 이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섬이지만, 곧 다리로 이어져 육지가 돼버릴 선유도의 안부를 물으러 찾아갔습니다. 물길을 닫아 수억 평의 바다가 땅이 되는 새만금의 대역사 속에서 선유도는 안녕할까요. 선유도와 장자도, 무녀도에서 관리도, 방축도를 넘어 멀리 말도, 명도에 이르기까지 고군산 군도를 따라 쭉 늘어선 섬들은 모두 안녕할까요. 군산에서 한창 공사중인 새만금 방조제를 따라 야미도를 거쳐 신시도에 내려 배를 타고 선유도로 들어가봤습니다. 선유도는 예전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해수욕장의 모래톱을 바라보고 서 있는 바위산인 망주봉의 위세도 여전하고, 먼 바다 쪽에서 소리없이 밀려오는 해무도 여전했습니다. 섬 안에 펜션이며 숙박업소가 늘어났고, 주민들은 개발열기로 들떠 있고, 젊은이들의 모습이 더 많이 눈에 띈다는 것 정도가 달라진 모습의 전부였습니다. 해안을 훑고가는 바닷물의 투명함이나,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부드러운 무늬를 그려대는 고운 모래의 감촉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해무가 선유도와 장자도를 잇는 다리를 빨아들여 지워버렸다가 뱉어내고 다시 빨아들였습니다. 온통 휘감은 해무로 섬은 더 아름다웠습니다. 선유도를 찾아가는 길에 들른 군산. 지금 군산은 새만금개발과 속속 들어서는 공장 등으로 활력이 넘치는 곳이 됐지만, 그동안 군산에 대한 기억은 ‘흑백사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 곳. 일제시대 쌀을 수탈해가던 항구로 번성했다가 오랜 세월 쇠락해진 도시. 고군산 군도를 갈 때마다 딛고 가는 군산의 느낌은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리저리 군산 곳곳을 돌아보고 알았습니다. 남루한 모습이 남아 오히려 아름다워지는 풍경이 있음을…. 군산항이 내려다보이는 달동네 해망동의 정겹고 또 아름다운 풍경과, 기차가 아슬아슬 집들 사이를 지나쳐가는 경암동의 기찻길 풍경. 군산은 다른 도시들이 다 버린 것들을 아직도 꼭 끌어안고서 바다와 얼굴을 비벼대고 있었습니다. 이런 풍경은 다른 도시들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오로지 ‘군산만의 것’이었습니다. 군산에는 또 근대 치욕의 기억을 되살리는 유적지들이 수난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지어진 관공서며, 일제시대 지주의 으리으리했던 집들과, 일본에서 실어온 스기목으로 지었다는 사찰들. 처음에는 ‘이국적인 풍물’로 들여다보다가, 발산초등학교 뒷마당에 일본인 지주의 어마어마하게 큰 금고와 일본으로 실어내가던 석탑이며 석등이며 유물들이 서있는 모습을 대하고는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군산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 munhwa.com 신선이 놀던 군산 선유도 여행
△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해넘이. 물이 빠지면 주변의 작은 섬들이 다 연결돼 갯벌에서 바지락·고둥 등을 잡을 수 있다. 바다를 가로질러 봤나요? 배 말고 자전거로
섬솨 섬 사이 다리 따라 페달 신나게 밟아보세요. 포구 지나 숲길로..다시 다른 포구서 숲길로..초분·해당화·갈대밭‥쉬엄쉬엄 볼거리도 가득
‘섬에서 섬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여행.’ 남녀를 실은 2인용 자전거 행렬이 바닷가 시멘트길을 달려 숲길로 오른다. 오가는 유람선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다리를 건너, 작은 포구를 지나면 다시 숲길이다. 코끝에 스미는 상큼한 갯내음에 함께 밟는 페달이 한층 가볍고 해맑은 바닷바람은 앞으로 사랑할 날들처럼 끝없을 듯이 불어온다.
군산항에서 1시간30분, 고군산군도는 63개의 유·무인도로 이뤄진 아름다운 섬 무리다. 고려때 왜적을 막기 위해 이곳에 군산진을 설치했으나 조선시대 진을 현재의 군산으로 옮기며 ‘고(古)군산’이 됐다. 16개의 유인도 중 가장 경치가 뛰어나다는 선유도는 무녀도·장자도·대장도와 다리로 이어져,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바다 경치를 즐기기 좋은 섬이다.
신선이 내려와 놀았을 정도로 아름답다 해서 선유도다. 망주봉을 바라보며 선착장을 오르면 가장 먼저 반기는 곳이 자전거 대여소다. 몇년 전만 해도 이곳은 자전거·오토바이가 교통수단이었을 뿐 자동차 한 대 없는 ‘청정 섬’이었다. 지금은 소형트럭 등이 30여대에 이른다. 이어진 섬들은 선착장을 중심으로 3㎞ 안쪽 거리다. 3시간이면 섬 구석구석을 다녀올 수 있다.
선착장에서 왼쪽 산길로 오르면 통개마을로 불리는 선유1구와 선유대교 건너 무녀도로 이어진다. 무녀도에선 땅을 파지 않고 짚으로 덮어 장사지내던 풍습인 초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1970년대만 해도 주변 섬들에 수십기의 초분이 있었으나, ‘관광 미관을 해친다’며 대부분을 철거해버렸다. 이 초분은 50년 된 것인데, 요즘은 오히려 ‘관광객을 위해’ 해마다 이엉을 엮어 새로 덮는다고 한다.
선착장 오른쪽길로 달리면 식당·민박집·여관들이 몰린 선유2구를 지나 깨끗한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선유3구(북섬)와 선유1·2구(남섬)를 연결하는 폭 100여m, 길이 1㎞의 모래밭이다. 길 오른쪽엔 해당화 몇포기가 선명하다. 수십년 전 이 모래밭은 폭이 수백m나 되는 울창한 소나무숲이었다고 한다.
모래밭 끝에 우뚝한 바위산이 선유도의 상징 중 하나인 망주봉이다. 귀양왔던 선비가 임금이 불러주기를 기다리다 바위가 됐다는 전설이 있다. 바위 아래쪽엔 해석되지 않는 글씨가 넉자 새겨져 있고, 장사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고 한다. 비가 오면 바위 중간쯤에서 쏟아져내리는 서너 줄기의 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 무녀도에 있는 초분 흔적. 우체국 옆 횟집에선 낚시도구도 빌려준다. 선착장 옆이나 다리 위에서 우럭·놀래미 따위가 잡힌다. 물이 빠지면 주변의 작은 섬들이 갯벌로 연결돼, 바지락·고둥 등을 잡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섬의 옛 지명들이 사라져가는 건 아쉬운 일. 선유도 주민 이동연(64)씨는 무녀도의 옛이름이 ‘무너지기’였다고 말한다. 섬 뒤쪽에 바위가 자주 굴러떨어지는 지형이 있어 그렇게 불러 왔으나, 언제부턴가 무녀도가 됐고, 무녀가 춤을 추는 형상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그럴듯한 해석까지 나왔다고 한다. 서더리(무녀1구)·모개미(무녀2구)·가재미(장자도)·지풍금(신시도)·새터(선유3구 신기리)·밭넘어(〃전월리)·나매기(〃나막리)·불넘어(해당화 피던 모래밭) 등 아름다운 우리 옛 이름들은 이제 주민들의 기억속에서도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민박·여관들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1인용 1시간 3000원, 2인용 6000원. 빌릴때는 멈춤장치가 잘 듣는지 살필 것. 시멘트길이 비탈진 곳이 많고 난간도 없다.
선유도/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군산서 해볼 것들
△ 선유도의 상징물 중 하나인 망주봉. 이 부근에 해당화가 무성했다 하나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군산항은 금강 건너편의 옛 장흥제련소(지금은 엘지화학 공장)를 비롯해 군산 외항쪽의 산업단지로 공장 굴뚝이 즐비한 항구도시다. 그러나 큰 강 하구의 도시답게 볼거리도 적지 않다. 도시 한가운데 자리잡은 월명공원은 시민들의 휴식처다. 이곳 출신인 <탁류>의 작가 채만식의 문학비와 조각공원 등이 있다. 수협 어판장에 들르면 수시로 이뤄지는 해산물 경매 구경과 함께 좌판에서 싸게 살 수도 있다. 시내에서 금강하구둑으로 차를 몰아 유채꽃 만발한 강둑길 드라이브를 즐길 만하다. 왼쪽으로 채만식문학관·철새조망센터 등이 이어진다. 하구둑 일대는 겨울이면 수십만마리 철새가 몰려드는 곳이다. 부근에 있는 군산온천금강랜드에 들러 온천으로 피로를 풀 수 있다.
이밖의 볼거리로 백제시대 절 은적사, 보물인 발산리 5층석탑과 석등 등 유적이 있고, 시내에선 이영춘 사옥, 옛 조선은행 등 왜정시대 건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병학 기자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타고 군산 나들목(남쪽에선 동군산)에서 나간다. 군산항 유람선도선장에서 로얄퀸호·코스모스호·진달래호등 고군산도를 돌아오는 유람선이 하루 2~3회 뜬다.(시간은 물때·손님에 따라 변동). 선유도에서 1시간쯤 머물 시간을 준다. 왕복 도합 4시간 안팎. 2만원. 월명 유람선 (063)445-6742. 여객선터미널에선 선유도행 배가 하루 세번(08시·11시·14시 30분, 변동 가능)왕복한다. 왕복 2만 2400원. 계림해운(063)446-7171
★먹을거리
선유2구에 매운탕·바지락죽 등을 내는 옥순식당(063-466-1335), 우럭·놀래미등 회와 꽃게 요리를 내는 평사낙안식당(063-465-8835) 등 횟집이 몰려있다.
★묵을곳
'선유2구에 중앙민박(063-465-3450) 등 민박·여관들이 10여곳 있다. 민박 2만 5000~3만원, 여관 4만~4만5000원. 시설이나 수질 등 사정이 좋지는 않다.
여행상품 여행자클럽은 6월6,7일 당일로 선유도 여행을 다녀온다. 서울 아침 8시 출발. 왕복교통비·점심·유람선비 포함 4만7000원.(02)2277-5155 군산 선유도의 추억사진 그리고 이야기/바다에서 2005/09/21 01:02 지난해 8월 9일, 나는 군산의 선유도에 갔었다. 집을 나선 것은 새벽 5시였다. 군산에 도착하여 항구에서 배를 타고 선유도에 도착한 것은 12시 30분. 나는 자전거를 빌려타고 섬을 이 구석 저 구석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물론 선유도의 모든 것을 다 돌아볼 순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4시에 배를 타야했기 때문이었다. 성수기였던 관계로 섬은 북적거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집을 나설 때 새벽이라 지하철이 다니질 않아 택시를 타고 고속터미널까지 갔다. 택시비 1만5천원. 서울에서 군산까지의 고속버스비는 1만1천5백원.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빵과 음료로 점심을 떼웠다. 3천5백원. 군산항까지는 또 택시를 탔다. 8천원. 군산항에서 선유도까지 가는 카페리 아림1호의 요금은 1만7백원. 선유도에선 물을 두 개 사먹었다. 2천원. 선유도에서 나올 때 옥도 페리호를 탔다. 1등칸밖에 없어서 1만5천6백원. 군산에서 서울로 오는 고속버스는 1만1천5백원.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호두과자를 하나 샀다. 5천원. 집에 들어갈 때는 지하철을 탔다. 9백원.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였다. 바다의 터미널. 보통 터미널엔 버스들이 우글우글 거리고 있지만 바다의 터미널엔 배가 들어오기 전까지 저 끝에서 손짓을 하듯 바다가 일렁이고 있다. 배가 막 항구를 떠날 때쯤 머리맡에 나타났다 사라진 스텔스 전폭기. 군산항은 보통 넓은 항구가 아니었다. 목포항에 갔을 때는 섬들이 방파제처럼 늘어서 있어 아늑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군산항은 너무 넓어 그냥 바다를 향하여 모든 것을 열어놓은 느낌이었다. 등대를 저 멀리 밀어내며 배는 그 넓은 항구를 빠져나갔다. 배가 바다를 밀어내자 바다는 한쪽 낯빛을 하얗게 바꾸었다. 바다가 일렁인다는 것을 제대로 알려면 작은 몸집으로 그 위에 가볍게 무게를 실어보아야 한다. 몸집이 크면 바다를 힘겹게 헤치고 가야 하지만 몸집을 줄이면 바다의 일렁임을 타고 앞을 나갈 수 있다. 섬이다, 섬! 나보다 구름이 더 반가웠던 것일까. 구름이 섬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선유도. 섬 뿐만 아니라 구름도 포즈를 취해 주었다. 선유도엔 다리가 두 개 있다. 장자교에서 내려보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두 개의 다리가 세 개의 섬을 이어주고 있다. 물이 빠져나가면 뻘에 다리가 빠진다. 그러면 배는 꼼짝없이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아무리 한눈을 팔려해도 배의 삶은 바다의 것이다. 사랑할 때 내가 그녀에게 주는 자유도 이와 같다. 나는 바다가 되어 그녀에게 유영의 자유를 허용하지만 내가 자리를 비울 때면 그녀의 발목을 뻘밭에 묶어둔다. 동해와 달리 서해의 바다에서 보는 사랑은 그래서 찐득찐득하다. 선유도에 있는 두 개의 다리 중 하나인 선유대교에 올라서면 이런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선유도의 두 다리는 모두가 하나같이 매우 높아 아래쪽의 바다가 아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사실 섬은 가까이서 보면 전혀 흔들림이 없어 견고한 뭍의 자태를 유지한다. 어디에서도 불안한 구석이 없다. 마술은 마술가와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그 신비를 즐길 수 있다. 마술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그의 손놀림이 보이며 그의 손놀림이 보이면 마술의 신비는 싱거워지고 만다. 섬도 마찬가지이다. 섬을 제대로 즐기려면 섬과의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리하여 섬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지는 순간 마치 마술처럼 섬은 바다 위로 둥실 떠오른다. 나는 뱃전에서 선유도여, 안녕이라고 말했다. 그 짧은 작별 인사의 여운은 한뼘도 되지 않았다. 배는 매일 서너 번은 선유도를 들락거리면서도 떠나는 작별의 여운을 하얀 포말로 길게 남기며 섬을 뒤로 하고 있었다. 파도 위에 그림자를 눕히다. 들어갈 때 타고 갔던 아림 카페리호가 이번에는 섬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올 때 탄 배는 이보다 작은 배였지만 표가 매진되어 1등실의 비싼 표를 사야했다. 사진을 찍느라 내내 바깥의 바람과 동행했다. 내 자리는 내내 비어있었다.
군산항의 풍력 발전기. 아무래도 바람 속에 전기가 있나보다. 배위에서 바람을 맞을 때마다 짜릿짜릿한 느낌이었다. 그러니 바람이 불 때도 감전에 조심할 일이다. 바람에 감전된 탓인지 찌르르한 표정으로 부등켜 안은 남녀가 정말 많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