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아는 중세 종교개혁자 칼빈은 주께서 그의 계획의 때를 따라 실행해 가시는 그분의 거룩한 교회 개혁의 역사에 도구 되었던 자입니다. 그러니까 칼빈은 종교 개혁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가 주의 주권적 역사에 의해 그분의 교회된 모습으로 거룩해지고 새롭게 되어져 가는 역사에 쓰임 받은 일군된 그릇인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주님의 교회 개혁을 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사람이 개혁을 한다면 그건 주의 교회가 아니라 그야말로 사람들이 교회 이름을 빌려 저들이 원하고 좋은 대로 바꾸고 변화시켜 가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보면 개혁을 말하는 개혁주의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졌던 중세 때에 비하면 개혁주의자라는 사람들은 수천 배 아니 수만 배 이상이 될 것입니다. 너도나도 개혁파, 개혁주의, 개혁교회를 한다고들 하지만 어디 교회들이 성경적인 교회된 모습으로 실제 개혁되어 가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진정한 교회개혁은 주께서만이 하십니다. 물론 가칭교회가 아닌 그분의 언약교회만입니다. 그분이 교회 구원을 계획하시고 계시 언약하신 복음대로 교회를 복음으로 불러 구별하여 세우시고 또한 그 복음의 능력으로 그 복음에 합당한 교회로 변화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회개혁은 복음의 역사에 있는 것입니다.
<칼빈은 복음의 사역자>
우리가 기독교 안에서 주의 사역자들로 흔히 구별하기를 신학자, 목회자, 선교사 등으로 구분 짓는데 그러다 보니 각자가 다른 것 같고 하는 일이나 입장이나 주 역할에 차이가 있는 것 같이 달리 구분하지만 모두가 주께서 부르시고 주께서 쓰시는 도구이며 복음의 일군들입니다. 그리고 모두 교회구원을 이루는데 쓰임 받는 복음의 동역자 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칼빈도 복음의 일군으로서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는 성경에 있는 복음으로의 교회구원의 원리를 성령의 깨우침과 능력의 역사로 증거 하여 세운 것입니다. 복음에 있는 주의교회와 복음으로 실현되고 복음의믕력으로 거룩해지는 그 은혜의 역사를 증거 하므로 교회개혁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속에 복음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신학의 압축이고 중심이 되는 5대교리는 복음과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해서 성경의 전부가 되고 복음의 비밀과 복음의 언약과 복음의 능력의 역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권의 역사로 하시는 교회구원의 원리와 역사를 증거한 것이 칼빈의 5대교리가 되는 것입니다.
칼빈의 5대 교리는 ? 전적 타락, ? 무조건적 선택, ? 제한적 속죄, ? 불가항력적 은혜, ? 성도의 견인입니다. 이것은 칼빈이 이렇게 요약확정한 것은 아닙니다. 중세 때 칼빈의 신학에 반대되는 알미니안주로 인해 당시 개혁파 교회들이 화란의 도르트에서 총회를 열고 (1618-1619) 오직 은혜의 구원을 하나님 주권적인 입장에서 세운 그의 신학 전판에서 이 다섯가지 교리를 중심으로 채택하여 만장일치로 결정하여 발표하게 된 것이 칼빈의 5대교리입니다. 이것도 성령의 간섭의 역사를 통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개혁신앙을 하는 개혁파교회들의 신앙의 교리들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원주의가 판치고 신앙은 짬뽕되고 이름만 개혁주의자들인 인본적 개혁주의자들이 판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바른 구원의 신앙의 원리를 알고 굳게 세워가기 위해서는, 성령에 의해서 성경에 나타나있는 교회구원의 원리와 실제역사를 바르게 세운 칼빈의 5대 교리를, 특히 장로교회들은 신앙의 교리로 가르치고 신앙하게 해야합니다. 성경은 구원의 책입니다. 구원에 관한 하나님 말씀으로 된 것으로 성경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작정과 계획이 있고 또한 그 작정을 계시로 알리고 구원을 언약대로 구원을 역사적으로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에 있는 하나님의 "의"이고 복음의 역사인데 바로 이것을 성령의 계시로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타나있는 하나님의 교회 구원의 원리와 역사를 그대로 정리하며 세운것이 그의 신학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칼빈의 신학과 신앙교리는 그 사람의 사상이나 이론이 아니라 성령의 도구된자로서 교회구원의 원리와 그역사적 구원을 말하는 복음의 진리로 증거하여 교리로 세운 것입니다.
<칼빈의 5대 교리 중 전적타락과 복음의 일치>
전적인 타락이라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납득을 잘 못하며 의구심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건전하고 서로 규례를 지키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보통 세상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반박함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개신교 교회들도 이 말을 이해 못 하고 거부하며 그렇게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교리가 필요하고 이런 교리가 증거하는 말씀의 원리를 통해 인간과 우리 자신들을 제대로 조명해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전적 타락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죄의 권세 아래 속하여 죄의 본성인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자가 됨에 있습니다. 창세기 6:3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말씀하심에 있습니다.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라는 것은 하나님과 단절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그저 육체의 소욕만 가지고 사는 존재를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점을 증거 하기를 "너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며 곧 지금 불순종하는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1-3)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죄와 허물의 징벌로 죽게 되었고 그 형벌 중에 하나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죽어가는 삶을 사는 자가 된것입니다. 때문에 야고보 사도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증거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로마서3:9-18절에 보면 죄 아래 인생들이 어떻게 전적으로 타락되어 있는지 잘 말씀해 주는데 보면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보다 더 죄로 인해 저주받은 인생의 전적 타락의 상태를 잘 말씀해 주는 곳은 없습니다.
모든 인생은 죄인입니다. 그 죄의 증거는 그 죄로 인한 형벌로 죽는 것에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죽었고 죽어갑니다. 죄가 죽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고 증거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인이라는 것은 아담 때문에 그 후손 모두가 죄인으로 낙인찍힌 원죄뿐만 아니라 죄인된 사람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죄인을 낳고 그래서 죄의 본성으로 자범죄를 쌓아 영원한 형벌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모든 인생들에게는 누구도 의인이 없고 다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된 인간들끼리 의로움을 말하고 선한 사람을 논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마치 이미 교도소에 형을 받는 사람들끼리 너는좀 의롭고 저 사람은 좀 선하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것 입니다. 무엇보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죄를 벗어 의롭게 될 수 없고 그 어떤 것으로도 선을 이룰 수 없고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행위로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칼빈의 전적 타락교리는 성경에 있는 그대로의 죄인된 인간상태를 찾아 증거하여 세운 말씀교리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