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초등학교 동창회를 다녀왔습니다.
주님 돌아가신 성금요일이었지요.
저도 저를 아는 신자들도 다 어이없어 하는 일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전 마음이 끄는대로 가기로 정했고
부활 꽃꽂이를 다른 분이 하기로 하고
저는 그대신 성지 주일날 꽃을 꽂았습니다.
삼십 육년...제가 고향인 목포를 떠난지 그만한 해가 흘렀습니다.
대학 진학 후 아버지의 전근으로 그곳에 가 볼 일이 없게 된 저는
그만 초. 중. 고등학교 친구들과 완전 절연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들고 나니 제 유년의 기억이 그리웠지만
그저 그리워할 뿐 움직여지지는 않더군요.
그런 차에 문득 걸려온 전화...
"나. 초등학교 동창이야. 연이 너 맞아?"
그랬습니다. 정말 그애들이었어요.
너무나 반가운..옛 기억들....
성우 정남이 물희 옥주 영숙이 지원이. 삼석이. 웅이, 재평이, 석중이,
승원이 형용이 정교......
한없이 셀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한 번만이 아니고 여러 번 불러 보고 싶은 내 친구들....
그렇게 지난 망년회때 만나게 된 친구들과
어느 날 저희 집에서 집들이를 한다고 했더니
이번엔 목포에서 낙지, 홍어, 갈치젓갈, 새우젓...바리바리 싸들고
과연 친정집 친구들답게 그 먼 길 허위허위 달려 와 주었습니다.
그리고 요번 동창회는 제가 답방삼아 다니러 간 겁니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친구들은
안개꽃을 준비한다, 먹거리를 챙긴다 부산을 떨었지만
제겐 그저 친구들이 꽃처럼 먹거리처럼 소중하게만 여겨졌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내려가는 동안 동창회카페는
실황중계를 하고 있었더군요.
연이가 서해대교를 통과 했다고함, 군산이라함,
가는 도중 몇번쯤 오고 있느냐고 묻는 웅이의 전화..
(앞으로 웅이는 친절한 웅이로 수식어를 달아야 겠습니다.)
고향친굳르이 언제나 고향을 지키고 있어 갈 곳이 있어진 저는
그저 친구들에게 고맙기만 했는데....
모처럼 찾아가는 저를 정말 기쁘게 맞아 주었습니다.
웅이는 안개꽃다발을 가기 며칠전에 주문했고
도착하자마자 낙지연포탕을 사 주겠노라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이래서 고향이 좋다는 거겠죠?
점심을 먹고난 후 목포 해안선을 따라
벚꽃 만개하고 이미 봄이 산자락 가득 쳐들어 와
유채꽃이 군데군데 봄이 한창임을 알리는 유달산 자락으로 드라이브를 하다가
유람선이 보이자 재평이는 호기롭게
유람선을 한 척 네 사람만을 위해 빌리는 겁니다.
제 대학 친구도 한명 따라 갔거든요.
압해도 율도 고하도를 따라 도는 유람선은 트로트 가락이 난무 했지만
갈매기와 바닷바람에 마음이 설레여서 아름답게만 들렸습니다.
유람선을 타고 내려 다시 유달산 자락을 돌아
중고등학교시절을 함께 보냈던 여고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근데 정말 놀랍게도 그때 저희에게 가정을 가르치셨던 한장순 선생님께서
아직도 재직중이셔서 전화로나마 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목소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더군요.
실로 삼십년 만입니다.
언제라도 선배노릇을 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별로 다닐 때 긍지를 갖게하지 않았던 학교에 진학을 하는 바람에
늘 열등감을 선물했던 학교였지만 되짚어 생각해보면
감성교육이나 전인교육은 아주 잘 시켜주셨었고
누가 뭐라해도 선생님들로부터 저는 원없이 사랑받았던 모교였습니다.
살구을 주워 담던 그 나무도 그대로...
선생님들의 테니스코트도 그대로...
정든 교정이 지금도 남아 있었습니다.
단발머리로 중학교를
양갈래 머리를 땋고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을 선물받은 저는
이제 다니던 초등학교로 가기로 했습니다.
애석하게도 학교앞 철길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운동장 가에 하얗게 흩날리던 벚꽃 나무들대신
새롭게 교사가 한 동 우뚝 서 있더군요.
어릴 적 추억은 어느 곳에도 남아 있지 않은 우리 교정이었는데
그 곁의 목포교대자리는 목포대학교가 되어
졸업식을 하던 강당도 그대로 ...
대학 건물도 그대로 있어 더위를 식히러 뒷곁에서 놀던
어린 소녀였던 저와 만났습니다.
해질녘까지 오빠를 기다리던 교실앞 시멘트 계단도 사라지고
해를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가던 철길도 사라졌지만
비녀산자락아래 자리한 제 어린 날의 추억은 고스란히 살아 났습니다.
이제 약속 장소인 제가 살던 집과 마을로 향했습니다.
평생 동창회장인 성우가 제가 살던 마을로 모임장소를 정하는 배려를 해서
물길러 다니던 샘자리. 그리고 내가 살던 집...아직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아파트 속에 갇혀있기는 해도
기와지붕 색깔만 바뀌었을 뿐 그 모양 그대로 버티고 있었고
윗집 살던 정교는 독서실 주인이 되어 거기서 살고 있었던 관계로
그렇게 안쓰럽게 보고 싶었던 가난했던 승태가
이제 동생들도 다 먹고 살 만해졌다고 말하는 걸 직접 듣고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못먹고 자라 키가 하나도 안자랐는지
제 가슴만큼밖에 안오는 외양을 그대로 가지고
눈밑엔 주름이 자글거렸습니다.
그런 들 어떻습니까?
살아 있으니 보게 되는 걸.....
어렸을 때 공주처럼 새침을 떨다가
지금 이렇게 사람꼴이 나는 저를 반가워하는 내 친구들을 만난 성금요일....
오직 "아!" 하는 감탄사 하나로 마치고 싶은 거 있죠?
아! 얼마나 감사한 하루였는지...
아! 얼마나 반가운 친구들이었는지...
제 잊혀졌던 유년이 생생하게 살아나 제 가슴을 덥히는 요즘,,
전 조금 흥분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친구들아! 반가웠어...
그리고 고향을 지켜서 내게 다시 고향을 선물해줘서 고마웠어.
돌아 오는 길이 하나도 안멀었고 하나도 안힘들더라.
몇번이고 전화해서 안전하게 가고 있는지 점검해준 웅아!
너 정말 마음이 이쁘더라.
그렇게 사랑했던 아내 떠나보내고 마음 아파하지 말고
떠난 아내를 위해 예쁜 새 아내를 만나 행복해지고
성우야! 아프지 말고 건강해져라.
그리고 너내들 재평이 대금연주에 감동 좀 하고..
진짜 잘 부는 거라니까?
재평아! 호기로운 네가 아니면 누가 배를 다 전세 내겠니?
바쁜데 내가 왔다고 자리를 함께한 친구들아!
언제 우리 고무줄놀이를 할 일은 없어도
함께 모여 큰 소리로 늘 웃자!
공기놀이. 동서남북, 술래잡기,,다 새삼스레 그리워지기만 한다.
첫댓글 내 마음이 다 설레여 집니다. 행복한 순간들에 소중함이 오래 머물기를 바라면서...소리가
자매님 글을 보고 제가 왜이리 행복해 지는 걸까요? 글 잘보고 갑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참으로 정겹습니다.... 친구랑,,, 세월이지나도 무엇과도 바꿀수가 없는것입니다....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가서....정말로 얼마만인지모르게 호탕하게 하하 호호 웃었습니다... 나는 나로 봐줄수 있는 친구들이 초등학교 친구인것 같습니다.... 행복을 엿볼수 있어서 저또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