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양순 朴良順(1903 ~ 1972)】 " 배화여학교 재학 중 3·1운동 1주년 기념시위 주도"
1903년 4월 5일 경기도 시흥군(始興郡) 북면(北面) 본동리(本洞里,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에서 태어났다. 기독교도로 1920년 당시 배화여학교(培花女學校)에 다니고 있었다.
1920년 3·1만세운동 1주년이 다가오자 서울 시내 각 학교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시위를 계획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1년 전 세계만방에 한국 독립을 천명한 사실을 상기하여 독립의식을 고취하고자 함이었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배화여학교도 동맹휴학에 동참하였고, 많은 학생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므로 1주년 기념시위 계획에 공감하여 적극 참여하였다.
배화여학교에서는 이수희(李壽喜)·김경화(金敬和) 등이 중심이 되어 시위를 준비하였다. 거사일인 1920년 3월 1일 아침 동료들과 약속한 대로 시위에 나서서 학교 기숙사 뒤편 언덕과 교정에서 만세를 불렀다. 배화여학교뿐만 아니라 진명여학교(進明女學校) 등 서울 시내의 많은 학교가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것이 일제 경찰에 알려져 붙잡혔다. 동료 학생 23명과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1920년 4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고, 다음날 4월 6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