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 몸은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몸에 대해 아는 부분보다 여전히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 만큼 미지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어떤 과학자들이 이런 연구를 했습니다. 사람의 육체를 화학적으로 분해해 제품을 만든다면 무엇을 얼마나 만들 수 있을까? 이에 따르면 체중 63㎏인 성인은 지방으로 7개의 비누, 인으로는 성냥개비 머리 2,200개, 설사약 한 봉지의 마그네슘, 못 한 개 분량의 철, 연필 2,000자루의 탄소, 1.8ℓ짜리 물 20개의 수분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의 가치로 환산한다고 해도 20만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그렇게 물질적인 가치로 판단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듯이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중에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천하보다 귀한 영혼입니다. 온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명 경시의 풍조와 안전사고는 우리 국민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가는 일에 힘을 합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한 사람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여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당부합나다.
우리 몸은 여러 기관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한 기관이 모든 것을 다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우며 협력하여 살아가도록, 기능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머리가 배고프니 밥을 먹으라고 지시하면, 밥을 먹을 때는 손도, 씹는 이도, 소화시키는 위장도 필요합니다. 한 행동을 위해서 여러기관이 협력을 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엡1:22-23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어디서나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분이 계신 곳입니다.”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몸의 특성대로 우리는 한가지 사역을 하기 위해서 서로 돕고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안내,찬양팀, 반주자, 기도자, 봉헌위원, 설교자 모두 힘을 합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그 예배는 결함이 있는, 부족한 예배가 될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바라볼 때 이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 사람이 없으면 우리 몸의 어느 한 부분이 기능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 사람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성경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올해 우리 교회를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을 만들어가는 섬김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 허물을 덮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새 가족을 의미합니다. 교회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행복하고 안전한 나라입니다. 교회는 Safe Zone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약점과 결점이 그것이 수군거리는 말거리가 되지 않도록 약함과 결점을 품는 가족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안에서는 서로의 나쁜 점과 결점을 폭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가리워주셨듯이 교인들의 결점과 단점은 드러내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덮어 치료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세상에서는 허물은 물고 뜯어야 할 먹거리입니다. 우리나라 정치를 통해서 매일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서로의 허물은 부족함이나 결핍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지점입니다.
어떤 모임에서 한 귀부인이 유명한 사상가인 존 러스킨에게 값비싼 손수건을 보여주었습니다. “선생님, 이 손수건은 최고급 실크로 만들었는데 누군가가 잉크를 쏟았어요.손수건에 얼룩무늬가 생겨 이제는 쓸모 없게 되었답니다.”존 러스킨이 말했습니다.“그 손수건을 몇 일만 빌려주십시오.”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던 러스킨은 손수건의 잉크 자국을 이용해 아름다운 나무와 숲과 새의 모양을 손수건에 그려넣어 돌려주었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고상하고 우아해 보였습니다.손수건에 감격한 부인에게 러스킨이 말했습니다. “잉크자국이 손수건을 망친 것이 아니라 멋진 그림을 그려 넣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전보다 훨씬 아름다운 손수건이 되지 않았나요?”
잉크 자국이 오히려 멋진 작품이 된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아무리 허물많은 사람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으면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과 약점을 사용해서 우리를 성장시키고 아름답게 만드십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베드로 사도는 허물을 덮어주신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인도에서 순교한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던 사람입니다. 오늘 강단에서 설교하는 저는 운동권 학생으로 살면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허물은 우리의 실패와 절망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를 새롭게 만드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허물을 덮는 용서의 마음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거듭남을 약속하셨습니다. 거듭남이란 죄로부터 완전히 거룩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어떤 유혹과 시험앞에서도 넘어지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일까요? 우리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난 사람을 새로 태어난 아기와 비교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막 태어난 아기가 걸을 수 있습니까? 아이가 스스로 젖을 찾아 먹을 수 있습니까? 노래하거나 책을 읽거나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아직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성장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분만실에 있는 부모가 아기를 부끄럽게 여깁니까? 이제 태어난 아기가 글씨를 쓰지 못한다고 해서, 걷지 못한다고 해서, 말을 못한다고 해서 당황하는 엄마가 있습니까? 물론 없습니다. 부모는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시간이 흐르면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를 자랑스러워 하십니다. 아멘입니까? 서로의 허물을 바라보십시오. 꼬집고 들추어 비난하는 대신 그것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서로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몸된 교회를 세우는 예신 가족들이 되기를 당부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청지기처럼 섬겨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에 청지기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청지기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직분을 갖고, 자신의 몸과 재능, 물질, 시간,열정을 바쳐서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청지기에게 가장 중요한 태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청지기에게 가장 나쁜 것은 교만함, 자기 자랑,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청지기가 주인의 은혜로 산다는 고백을 잃어버린다면 그는 그때부터 주인행세를 하게 때문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려면 교인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산다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청지기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자기주장과 자랑으로 인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시험에 들게 해서는 안됩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전15:8절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세상에서는 누가 먼저 부활의 증인이 되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자신은 가장 못난 사람으로서 제일 마지막으로 부활을 목격하는 사람이 되는 은혜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 우리가 어떤 봉사를 하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의 태도는 “만삭되지 못한 자 같은”이라는 태도입니다. 청지기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신을 부르셔서 구원하신 은혜를 기억하고, 삶의 모든 순간이 그 은혜 가운데 있음을 고백하며 사는 사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에게 일을 맡기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고, 모든 일을 마친후에는 모든 공을 주인에게 돌리는 사람입니다.
미국 오리건주의 메드포드에 사는 고든엘우드라는 사람은 철저한 절약생활로 '자린고비'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사망했을 때 그가 남긴 유산은 무려 1천만 달러였습니다. 그는 유서에서 자신이 절약하며 산 이유를 밝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유산중 900만달러를 적십자사와 구세군에 남겼고 자녀들에게는 100만달러를 남겼습니다. 시카고에서 여비서 일을 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글래디스 홈은 주식투자로 번 1800만 달러를 소아암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용해달라고 아동병원에 전했습니다. 모두 무명으로 한 일들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누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의 이름만 높임을 맏는 것을 원합니다. 갈6:14절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청지기는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 일들이 자신의 명예를 높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죽은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 새 삶과 사명과 소망을 주신 예수님만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그런 청지기들이 섬기며 세워가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봉사는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듯이 봉사도 기쁨으로만 할 수 없습니다. 책임감으로, 부담감으로 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게 되면 섬김의 상급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섬김은 하나님의 은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은혜받고 섬겨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이 된 교회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슈바이쩌 박사에게 한 청년이 찾아와 말했습니디. “선생님, 저도 아프리카에서 선생님처럼 훌륭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박사는 의욕에 넘치는 그 젊은이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땔감을 하고, 물을 길어 오고, 청소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했지만 이내 싫증이 난 청년은 박사에게 따졌습니다. “박사님, 저는 박사님처럼 훌륭한 일을 하러 왔지, 이렇게 장작이나 패고 물이나 긷고 청소나 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슈바이처 박사는 작은 일에 헌신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다면 큰 봉사를 할 수 없다며 그를 쫓아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구원하는 위대한 일에 참여하고 싶어합니다. 선교회의 회장도 하고, 사람들의 주목도 받고, 그래서 큰 일에는 앞장서서 나서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만 작고 하찮은 일에는 관심도 갖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작고 하찮은 일이 있을 수 있지만, 은혜로 하는 일에는 결코 작고 하찮은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봉사와 섬김이 보석과 같이 빛나는 헌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섬김과 봉사는 주님이 주신 힘으로, 주님이 주신 시간과 물질로,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교회인에서 큰 일을 찾지 마십시오. 가장 작고 하찮은 일,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일을 하면서 기쁨과 감사를 되찾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작은 것을 크게 여기시고 보잘 것 없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자기 힘이 아닌 주님이 주신 은혜로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