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聖) 어거스틴은 이런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모든 것을 하라"
생각할수록 명언입니다.
어거스틴은 카톨릭과 개신교회가 인정하는 대학자이며 교부이며
신학의 기초를 놓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 그도 깊은 사색과 고민 그리고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결국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귀결했습니다.
과거 리처드 포스터의 "기도"라는 책을 읽다 어거스틴이 말한
기도에 대한 정의를 읽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진정한 기도란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 말도 역시 사랑으로 귀결한 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많은 이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걸 봅니다.
저도 한 때 그랬습니다.
아니 최근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한두번 아니면 그 이상?
하나님의 뜻에 대해 고민하는 날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큰 틀이 제 마음에 그려 있기에 큰 혼란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익명 상담실에 어느 분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 글을 올려놨습니다.
..
제가 6년 전에 섬기던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는 제가 나오려던 시점에서 교회건축을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재정적으로 큰 건물을 질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들마다 나름의 기준과 믿음이 있으시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 말씀 그대로 믿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의 빚 이외는 지지말라"
그런데 한국교회는 은행빚을 너무 많이 지면서 교회건축을 합니다.
교회의 목적은 교회건축이 아닐찐데 교회건축에 사활을 걸다 교인들 나가고
교회가 깨지고 목사님은 과로로 쓰러지는 일들이 속출합니다.
..
아무튼 그 교회도 빚내서 교회 잘 지었습니다.
저는..그걸 보면서 그런 생각 했습니다.
저 교회가 지어지는 게 하나님이 당장 원하시는 뜻이 아니었어도
하나님은 정말 자비로운 분이셔서 저 교회가 교회를 건축하겠다고 하시니까
기회를 주시는구나..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역시 그 교회에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 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나님의 허락..
하나님의 계획..
이런 말 우리가 자주 교회에서 듣는 말씀인데..
저는 어느 신학자가 한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하나님에게 뜻이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 있다면
하나님의 허락된 계시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너무 동의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럼?
그럼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이나 계획같은 건 없다는 말인가?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해보겠습니다.
새계명만 지키라.
새계명.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신 그 한 마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신 그 말씀
이 계명에 근거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섭리와 허락을 말하라 하고 싶습니다.
이 계명에 근거해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섭리와 허락을 이해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이를 키워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릴 적에는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잔소리꾼이 됩니다.
뭐해라 뭐하지 말아라
뭐하면 혼난다. 뭐하면 큰 일 난다.
만지지 마라. 조심해라.
그런데 아이가 나이들어서도 부모가 그런 말 합니까?
그런 부모는 병든 부모입니다.
다 큰 아이에게는 큰 틀만 제시합니다.
늦어도 11시 안에는 들어와라.
티비를 보는 건 좋지만 두 시간 이상은 눈나빠지니 가능한 보고 꺼라
그렇게 말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구약에 왜 그렇게 규율과 규정과 규칙이 많이 나온다고 보십니까?
에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백성들이었기에 그들에게는 세세하게 세부적인 지시와 명령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님은 새계명을 준다고 하시면서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 두 가지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이 우상 섬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말할 수 있습니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를 함부로 대할 수 있습니까?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이 두 가지 계명에 모든 것을 함축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들 중에는 교인들에게 너무나 엄격한 하나님
24시간 사람이 죄 짓나 안 짓나 감시하는 것으로 묘사된 하나님
내 말 듣나 안 듣나를 살피는 하나님
그런 유치한 하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제가 설교를 할 적에는 언제나 이런 말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궁극적 주인은 누구시죠?"
당연히 하나님 이십니다.
"그럼 여러분 인생의 주인은 누구시죠?"
정답은 "나"입니다.
그럼 사람들은 의아하게 쳐다봅니다.
인생의 궁극적 주인도 하나님이셔야 하고 인생의 주인도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왜 저 사람이 자기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라 떠드나?
그러나, 저는 양보하지 않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래야 내가 내 인생의 책임을 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르틴 루터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
그러나, 모든 것은 사람이 한다.
모든 것은 사람이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
50은 하나님 50은 내가가 아닙니다.
100% 하나님이 하시고 100% 사람이 행한다는 이 역설과
모순은 우리 시대에 들려줄 진리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얼하든 그대로 두십니다.
그걸 마치 "쯧쯧 그래 이 놈들아 나 없이 니들끼리 한번 잘 해 봐라"
이런 빈정대는 투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런 하나님이 있다면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기회를 주시고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리도 기도하는 모든 일에 침묵으로 일관하시냐구요?
사람이 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으니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뿐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변상규 교수의 열린 연구실(www.iark.co.kr)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