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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정 소나무, 팽나무 세상의 혼이 서린 곳...마을 지킨 수호신 당산나무, 채워준 비보수와 지조.평화 상징
신목으로 모셔야할 소중한 문화재
소나무 천연기념물적인 가치성 띠어
팽나무 펑은 뚱뚱하다의 팽(彭)
혼(魂)이 서리다.
혼에는 ‘진정성+간절함’ 이 들어져있다 라고 한다. 마을에 있는 정자나무, 당산나무에는 혼이 서려져있다고 한다. 진심을 갖고 나무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고픈 간절함이 느껴진다.
마을마다 절마다 곳곳에 정자나무가 서있다. 이 큰 나무가 그 곳에 주인인 듯, 터줏대감처럼 꿋꿋이 서 자라고 있다. 우리는 이런 큰 나무를 정자나무, 신목, 당산나무 등등으로 여러 이름으로 부르며 극진히 모시고 있다.
정자나무, 당산나무들은 악귀를 쫓고, 나쁜 기운을 막고, 그런 것들에 대한 보호를 해주는 ‘수호신(守護神)’ 과 모자란 것을 채워주는 ‘비보(裨補)’ 로서의 역할을 띤다.
큰 나무, 오랜 나무가 간직해온 조상의 숨결과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고장 설화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 담겨있다. 마을 앞 정자나무 밑에서 뛰놀던 추억은 언제나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오랜 세월 모진 풍상을 헤치고 살아남은 늙은 나무들은 마을의 전설과 선조들의 유훈으로 인해 나무 자체가 신성하게 여겨지게 됐다. 그 때문인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 해창리 신덕정 마을에는 500년이 넘은 소나무가 있고, 불타 사라진 팽나무 정자가 있었다. 소나무 수령이 600년 정도 됐을 것이라는 추정이 되곤 한다. 마을이 생긴 지가 500년 가까이 됐고, 이곳에는 200~300년이 넘은 소나무가 몇 구루가 더 있다. 사라진 펭나무는
지금으로부터 521년 전인 1490년경에 영암읍 새실(초곡) 마을에 처음 정착한 하동정씨 졍령공파 정희주의 후손인 조선중기 소과의 진사를 초장에 합격한 정삼광의 아들 정구씨의 아들 정팽일은 1557년경에 년 전에 영암 영암읍 용흥리 세실마을에 사는 하동 정씨의 후손인 정평일 씨가 최초 신덕정에 정착했다. 그 뒤로 경남함양에 살던 박양신이가 이거했고, 그 다음으로 서호 몽해에 살던 김한성의 후손인 김세경이 이거를 했다.
이런 선조들로 형성된 신덕정 마을에 있는 '소나무와 팽나무' 의 소나무는 스스로 나서 자란 자생(自生) 나무이며, 팽나무는 식수(植樹)를 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 북쪽 어귀에 있던 팽나무는 1970년 초에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마을에서 수확한 콩대를 팽나무에 쌓아 둔 것이 원인이었다. 누군가 야심에 이 곳을 지나가면서 콩대를 쌓아 둔 일명 ‘콩동’ 이라는 곳에 불을 질러버려 그만 불로 인해 팽나무 한쪽이 타버려 팽나무가 5년 정도 버터 오다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분재 같은 팽나무는 큰 줄기가 세 개로 된 정지나무로서의 거목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무더운 여름이 되면 팽나무 아래서 더위를 피하며 쉬곤 했다. 장기를 두거나 구술치기 같은 놀이를 하며 보냈다. 이러한 나무는 마을에 크고 작은 일이 일어났을 때 모임 장소로, 또는 여름철에는 무더위를 식혀주는 정자로 쓰였다. 또 동네 정보를 주고받는 중요한 장소가 되기도 했다.
세 가지 중 화재로 한쪽이 고사되고 그 줄기는 그만 바람에 부러졌고, 그로인한 균형을 잃고 나머지 두 가지마져도 몸체가 쪼개지면서 밑동까지 손상돼 실체를 잃고 말았다. 이때가 1977년 가을 초다. 수확한 깨 대를 말리는 시기이었다.
사라지고 만 팽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이었다. 혼이 서린 ‘신목(神木)’ 으로 모시며 음력 정월대보름이 되면 당산제를 지냈다. 팽나무는 마을의 영험한 나무로 보고, 팽나무에 정성을 다해 제물을 바치면서 마을의 안녕과 평화, 건강과 발전을 기원했다.
팽나무는 자생적으로 자란 것이 아닌 ‘수호신과 비보’ 목적으로 심은 걸로 추정된다. 소나무는 자생적으로 자란 것이다. 소나무가 있는 잔등은 온통 소나무들이 무성한 소나무 숲이었다. 1970년대만 봐도 주변에는 소나무 숲이나 아름드리 거목들이 서 있었다. 현재 솔랏재라는 곳에는 묘 주변으로 300년이 넘은 소나무들이 묘를 에워싸고 있다.
마을을 400년 넘게 지켜왔던 팽나무가 사라진 것은 신덕정 마을에 크나큰 손실이다. 한 구루의 나무가 아닌 팽나무는 이 마을의 역사요, 문화요, 정신이요, 지주였다. 사라진 곳에 다시 팽나무를 심어났다. 현재 후계자로 들어선 팽나무도 수령 4~50년 쯤 되어 보인다. 다행이 예전의 팽나무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어 위안이 된다.
인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토속적인 전설이 있는데, 우리의 큰 나무들도 이러한 전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마을의 구심적인 이 큰 나무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왔다.
찬 서리, 눈보라, 태풍 등 모진 고난을 이겨내며 마을을 지켜온 큰 나무, 우리는 이러한 나무를 신처럼 모셨기에 신목(神木)이라 부르기도 한다.
팽나무는 나무줄기가 팽팽하게 늘어서 자란다고 해서 팽팽하다의 팽자를 따 ‘팽팽한 나무 또는 굳세다고 해서 ’팽목(憉木)‘ 이라고 했다. 또는 몸체가 굵고 크고 뚱뚱해서 성씨 팽(彭)자를 써 ’팽목(彭木)‘ 이라고도 한다. 또는 후박나무 박(朴)자를 써 ’박수(朴樹)‘ 라고도 한다.
팽목(彭木)은 산림경제 치포(治圃) 생심균법(生蕈菌法)에 '생송목(生松木) 팽목(彭木) 진목자역무독(眞木者亦無毒)' 라고 쓰였다. 소나무와 팽나무는 독성이 없는 참 남로 대단하다 라고 기록했다.
팽나무 이름에는 ‘이삭이 패다. 꽃이 피다’ 라는 데서 왔다는 어원설도 있다. 또한 팽나무 열매를 시누대에 딱총의 총알로 썼는데 소리가 “팽(嘭)” 한다고 해서 팽나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어원설도 있다. 하지만 이 팽하고 나가서 그 소리를 낸 열매여서 팽나무라고 했다는 어원설은 우스개로 하는 그럴듯한 풀이로 보여 진다.
가장 정확한 팽나무의 한자 이름은 ‘팽목(彭木)’ 이다. 갑골문 성씨 팽(彭)의 자형은 힘차게 울려 퍼지는 북소리를 형상화한 글자로 갑골 상형자이다. 또는 북을 의미하는 악기이름 주(壴)를 표현하고, 북으로 허공을 향해 발산되는 음향 에너지를 몇 개의 필획으로 묘사한 갑골 자사자이기도 하다.
성씨 팽은 자전에서 ‘방과 팽’ 두 가지 독음을 지니고 있다. 방의 독음으로 읽을 경우 팽은 곁 방, 북 치는 소리 방, 두드리는 소리 방, 많을 방, 강성할 방 등으로 풀이한다.
또는 팽의 독음으로 읽을 경우 ‘띵띵(뚱뚱)할 팽 또는 부풀어 띵띵할 팽, 장수 팽, 땅이름 팽, 나라이름 팽, 성씨 팽’ 등으로 풀이한다.
팽은 성(姓)의 하나로써, 땅의 이름으로서, 나라의 이름으로서, 북치는 소리, 방패, 사물의 모양, 성(盛)한 모양, 많다(龐), 매질하다(榜)으로도 쓰이지만, ‘부풀어 오르다. 불룩해지다. 띵띵하다(살이 몹시 찌거나 붓거나 하여 아주 팽팽하다)’ 등으로 쓰인다.
팽나무는 비대하게 살이 찐 동물과 같다. 배가 많이 나온 사람처럼 몸이 부풀어 오르고, 불룩한 배를 하며 울퉁불퉁하게 나무가 비대하게 자란다. 그래서 띵띵하다고 해서 ‘띵띵할 팽(彭)’ 자를 써 팽나무라고 했다. 띵띵하다는 ‘뚱뚱하다’ 의 경상남도 방언이다. 띵띵하다는 ‘튼튼하다’ 의 제주도 방언이다. 뚱뚱하다를 강원도에서는 뚱땅하다 또는 뚱따하다, 전라도에서는 뚱실뚱실하다. 경상남도에서는 '띵띵하다 또는 뚱치다' . 함경도에서는 '뚱뚜하다 또는 뜅뜅하다' . 중국 길림성에서는 '뚱뚜하다' 로 방언을 쓴다. 뚱뚱하다는 '살이 쪄서 몸이 옆으로 퍼진 듯하다. 물체의 한 부분이 붓거나 부풀려서 두드러져있다' 라는 뜻이다. 뚱뚱한 나무여서 팽나무라고 했다. 나이가 든 팽나무의 생김새는 우락부락하다. 울퉁불퉁 괴물처럼 자란다. 뚱뚱하다고 해서 팽나무로 불러왔던 것이다.
팽나무 어원설에 대해 이삭이 펴다, 꽃이 펴다. 또는 딱총에서 팽하고 소리를 내서 팽이라고 했다는 데 이런 설은 그럴듯하게 붙여진 것이다. 오로지 나무가 뚱뚱하게 자라서 팽(彭)자를 써 팽나무라고 했다.
팽나무 목재는 가볍고 단단하며, 잘 갈라지지 않아서 거구나 목조 가옥을 만들 때 사용한다. 잔가지와 나무껍질은 한의학에서 박유지(朴楡枝) 또는 박수피(朴樹皮)로 부르는 약재로 사용한다.
신덕정 팽나무는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군 대산면 동부 마을에 있는 수령이 500년 정도 된 팽나무와 흡사하다. 이 팽나무가 유명해진 것은 드라마 우영우에서 촬영지로 방송을 타 이 노거수인 팽나무에 기를 받고자 관광객들이 잦아들고 있다. 수고(높이( 16m, 둘레 6.8m, 수관 폭(나무자지와 잎이 달린 최대 폭) 27m로 확인된다. 팽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팽나무는 우리나라 전국에 분포하며, 중남부방에 주로 사는 장수목으로 마을의 대표적인 당산나무 중 하나이다. 현재 천연기념물 노거수로 지정된 팽나무는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팽나무(천연기념물 제400호)의 황목근과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부안면 수동리에 있는 술여 400년이 넘은 팽나무(천연기념물 제494호)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있다.
한국에서 현존하는 최고령 팽나무는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900년이 넘는 팽나무이다.
신덕정 팽나무도 살아있다면, 위풍당당한 크기와 함께 수형(樹形)이 아름답고, 당산나무(堂山木) 또는 신목(神木)과 비보수(裨補樹)로 의미가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문화적 가치로써의 귀중한 노거수로 보전했으리라 본다. 사연도 많았을 것 같은 신덕정 팽나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것은 마을의 통탄이자 주민들의 슬픔이다.
현재 신덕정 마을은 600년 정도 되어 보이는 노송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동편 잔등(長등) 중앙 부위에 한 구루가 우뚝 서며 위풍당당하게 자리하여 마을과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소나무도 팽나무처럼 수호신과 비보수로서 자리한다. 선조들은 마을 어귀에 있는 팽나무와 마을 등허리(능선)에 있는 소나무를 당산나무로 모시면서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곤 했다. 이곳 팽나무와 소나무 역시 풍어와 풍년을 바라는 신덕정 사람들에게 중요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당산나무가 두 구루가 있는 것은 드물다고 한다. 있어도 한 곳에 있는데 신덕정 마을은 팽나무와 소나무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의미를 더하며 마을을 지키고 있고 상징성으로써의 대표하고 있다고 했다. 실은 팽나무가 한 구루가 아니었다고 한다. 죽은 팽나무 말고도 세 구루가 더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주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당산나무를 잘 보호하고 유래를 알려야한다는 여론이 높다. 대한민국의 관광명소로서의 상징적 존재로 소나무에 대한 보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신덕정 소나무는 수령이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형도 매우 웅장해 보호수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을 공동체 정신까지 오롯이 담고 있어 신덕정 팽나무는 유무 형으로써의 가치를 동시에 보유한 신덕정 상징적 존재이다. 신덕정 소나무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보호가 이뤄져야한다. 잔등에 있는 소나무뿐만 아니라 솔랏재 묘 주변의 소나무들도 관리와 보호가 필요하다.
팽나무는 열매가 많아 '다산' 과 오래 살아 '장수' 를 상징한다. '평화' 를 상징하기도 하다.
소나무는 '지조, 굳건함, 고결함, 장생, 절개, 기개, 한결같음' 을 상징한다.
소나무는 계절이 풍상에도 같은 색깔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데서 사람이 본받아야할 덕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나무는 독특한 향을 가진 깨끗하고 귀한 나무로서 신선이 노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선은 인간의 세계를 떠나 경치가 신비스럽고 그윽한 선경에서 유유자적한다. 아무런 속박이 없이 솔잎과 이슬로 연명하며, 조용하고 편안한 삶을 즐기는 탈속의 경지를 말한다. 선경 속 소나무이다. 이런 소나무가 신덕정 마을에 그것도 몇 백 년이 된 노거수로서 자리하고 있으니 푸르름에 생기가 돌아 세속의 번거로움이 범접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소나무는 여러 면에서 우리 민족의 품성과 많이 닮아가고 있다. 타 민족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고 자유와 평들을 존중하고, 정의롭고 정중하며, 의지적인 면에서 그러하다. 이는 우리 민족과 영고성쇠를 같이 하며 가까이서 같은 역사를 겪으며 세대를 이어온 동질감에서 오는 닮음이 아닐까?
흙 한줌 없는 바위틈에서 끈질긴 생명을 유지해온 강인한 생명력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뇌상벽력이 쳐도 꿋꿋하게 위용을 자랑하며, 천년을 버티는 고고함과 당당함, 정기를 내뿜는 기상을 지닌 나무가 소나무이다. 이런 점에서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애국가에서 『남산 위에 저 소나무』 를 노래하나 보다. 이 노래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표상을 웅변으로 들려주고 있다. 지조.고결.장생.강인.탈속.정중 등 이 기상은 우리 애국가가 불러지는 거래의 역사와 함께 영생할 것이다. 신덕정 소나무가 있어 더 그러하리라 본다.
소나무여 푸르구나
초목 중의 군자로다
눈서리 차가워도 시들지 않고
비 오고 이슬 내려도 즐거워하지 않는구나
슬퍼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 않으며
겨울이나 여름이나 늘 푸르고 푸르구나
푸르구나 소나무여
달뜨면 잎 사이로 금빛 곱게 체질하고
바람 불면 거문고소리 청아하구나
사명대사는 소나무의 푸르름과 굳건함, 한결같음에서 지조와 고결함을 예찬하고 초목 중에 려 학식과 덕행이 높은 군자(君子), 우아한 모습의 여자(麗姿)라고 칭했다.
마을이나 사찰에 오래된 나무가 서 있는 것은 비보풍수에 따른 것이다. 땅의 기운이 너무 쌔거나 나쁜 기운이 나면 여기에 나무를 심었다. 전남 영암 월출산에 있는 도갑사에도 대웅전 앞에 느티나무가 서 있다. 풍수대가인 도선국사는 도갑사가 있는 산의 형세가 호랑이가 발톱을 세우고 무언가를 잡아 삼킬 듯이 포효를 하고 있는 형상으로 보고 이곳에 사찰과 나무를 심었다. 특히 나무를 심은 것은 기가 너무 쌔서 그 기를 막기 위해 심었다. 도와서 모자란 것을 채우고자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비보풍수에 따른 노거수다.
팽나무는 느티나무, 은행나무와 함께 3대 신목(神木)으로 간주한다. 신성한 나무로서의 당산나무로 삼고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제를 올리거나 굿을 했다.
400년 넘게 마을을 지켜온 신덕정 팽나무의 숭배사상은 이어져가야 한다. 현재 후계자로 심어 놓은 어린 팽나무가 사라진 팽나무를 대신하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안겨줄 것으로 본다. 우리는 이런 팽나무에 대해 숭상하며 팽나무 팽이 뚱뚱할 팽(彭)자로 풀이하지만, 팽나무의 성질과 특성처럼 굵고 단단하고 강직하고 오래 산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팽나무의 팽을 팽(憉)으로 여기면서 이로 인한 마을이 오랜 번창을 하고, 마을 사람들이 오랜 장수를 하는 기운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팽나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슬프다. 신덕정 팽나무는 영산강을 바라보면서 그쪽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을 모든 몸으로 막아냈다. 바람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결코 생명력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으로 상징되며, 신덕정 마을사람들의 생애에 가장 의미 깊은 나무이다.
물론 현재의 소나무는 바람을 맞은 곳에 서있다. 잔등이라는 능선 한가운데 소나무가 있다. 동서남북으로 소나무로 향한 바람을 막아줄 보호막은 없다. 그럼에도 소나무는 모진풍파를 몇 백 년을 겪어도 견디어내며 당당하게 위용을 뽐내고 있다. 분재 같은 소나무이다. 신덕정 소나무는 마을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예전의 바다였던 영산강을 굽어보며 풍어를 낳게 했고, 마을의 안녕을 하게 만들었다. 소나무도 언제인가는 모르겠지만 150년 전에 한쪽의 큰 줄기가 부러져 없어졌다. 만약 그 줄기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면, 소나무는 더 멋진 수형으로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극치를 이뤘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소나무로 멋진 나무로 사랑을 받았으리라 본다.
예전에는 신덕정 팽나무와 소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으로서의 당산나무와 그늘이 되어준 정자나무로 역할을 띠었지만, 생각해보건 데 배들과 어부들의 표지판이 되어준 나무이다. 일종의 등대 역할을 해준 셈이다. 예전에는 신덕정 마을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간척이 되고서야 물이 들어왔던 자리는 논으로 변했고 점점 바다는 줄어들었고 멀어졌다, 물론 주민들의 식량도 바다 위주에서 육지에 더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린다. 마을에는 조개무지(패총) 세 군데나 있다. 하나는 팽나무가 있던 자리 옆에, 하나는 소나무가 있는 자리 옆에, 하는 뒷개라는 곳에 굴.꼬막 등의 패총(조개무지)이 있다.
마을에 있는 노거수에 대한 당산제를 지내는 것은 미신(迷信)이 아니다. 토템이즘 사상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오로지 자연에 대한 숭상과 그 자연물에 대한 기를 통해 어떠한 대상과의 상대해서 막아주거나 물리쳐주거나 또는 도와서 모자는 것을 채워주는 역할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도록 했다.
그래서 느티나무, 은행나무, 팽나무, 회화나무, 소나무 등을 신목으로 여기며, 여기에 제를 올렸다. 제물을 받치면서 마을에 安寧-아무 탈 없이 편안하게 해달라고 빌었고, 또 豊饒-흠뻑 많아서 넉넉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守護神-마을을 지켜주고 보호해줬으면 해서 이 나무에서 건절한 소망을 전했다. 또 度厄-마을에 나쁜 기운들은 몰아내고 나쁜 기운이 못 들이게 했다. 裨補-도와서 모자란 것을 채워주는 이런 의미로써의 신목으로 모셨고, 당산나무로서의 당산제를 지냈다.
일부 종교에서는 이런 행위를 미신적인 행위로 취급하며 불신과 배척하는 데, 세상의 모든 신은 실체가 없는 정신적으로 본 신일뿐이다. 바위에 영험이 있다고 믿고 비는 일도 자신이 위안이 된다면, 그게 신적인 대상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신적인 대상물들은 기(氣)와 연관되어져있다. 그 기에 의해 보이지 않은 작용이 일어나고 생겨 바위든 나무든 해든 간에 신적 대상물로 보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빈다.
당산나무에는 진정성과 간절함이 담긴 혼이 서려져있기에 그 나무와 통하며 좋은 일만 있길 바라는 것이다.
얼마 안 있으면 민족 대 명절 음력설이 다가온다. 그리고 정월대보름이 온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마을 당산나무에서 제물을 받치고 절을 올리면서 간절한 소원을 비는 의식이 진행된다.
당산나무에 제를 올리는 일을 두고 미신이라고 보지 말고,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고 문화를 꽃피는 긍정의 마음으로 당산나무에 예를 갖추어보자. 당산제는 마을의 문화재를 지키는 일로써 보전하고 전승하는 일임을 잊지 말자.
신덕정이라는 이름은 ‘새롭다. 덕이 있다. 정자답다’ 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다. 덕이 항상 새롭고, 이 덕은 곧 정자나무에 있다고 여겨 마을 이름을 ‘새로 신(新), 큰 덕(德), 정자 정(亭)’ 자를 써 신덕정이라고 했다. 신덕정이라고 한 것은 다 마을에 있는 소나무와 팽나무 때문이며, 우리는 이런 덕스러운 나무에 예를 깍듯이 갖추어 모셔야한다.
김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