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진국에 대한 질문이 여럿 올라왔는데, 정곡을 찌르는 답변 대신에 좀 엉뚱한 이야기들이 올라오는군요. 진국이 진조선(신조선)이 아니냐는 말도 아는데, 이는 단재 신채호의 주장이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검증이 되지 않은 주장입니다.
진국에 대해서 국사교과서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조선은) 지리적인 지점을 이용하여 예나 남방의 진이 중국 한나라와 직접 교역하는 것을 막고, 중계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려 하였다.”
“한강 이남 지역에는 일찍부터 진(辰)이 성장하고 있었다. 진은 기원전 2세기경 고조선의 방해로 중국과의 교통이 저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에는 고조선 사회의 변동에 따라 대거 남하해오는 유이민에 의해 새로운 문화가 보급되어 토착 문화와 융합되면서 사회가 더욱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마한, 진한, 변한의 연맹체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우선 이러한 표현이 나오게 된 근거 자료부터 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사기 조선전을 볼까요.
朝鮮王滿者, … 傳子至孫右渠, 所誘漢亡人滋多, 又未嘗入見; <眞番>旁衆國欲上書見天子, 又擁閼不通 : 조선왕 위만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때에 이르러서 유인해 낸 한나라 망명자 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으며, 천자에게 입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번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에게 알현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했다.
위에 국사 교과서에 고조선이 어쩌고 한 것은 실은 위만조선임을 말합니다. 대략 기원전 2세기입니다. 사기에 보면 진국이란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진번은 진국이 아니며, 진번은 대체로 황해도 일대에 나라로 비정하는 것이 현재의 통설입니다. 그럼 교과서에 진국이 고조선의 방해로 교통이 저지되고 한 것은 무엇이냐는 것이지요. 그것은 위에 나오는 중국(衆國)을 진국으로 보는 주장 때문입니다.
사기보다 한참 뒤에 쓰여진 반고의 한서 조선전에는 바로 중국이란 글자 대신에 진국(辰國)으로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치통감도 진국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기의 것이 더 오래된 기록이고, 문맥상 여러 나라를 의미하는 중국이란 표현이 더 옳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게다가 사기의 여러 판본 중 가장 널리 사용하는 교감본에는 중국이라고 하지만, 가장 오래된 송판본에는 진국으로 되어 있어, 진국이란 주장도 강한 설득력을 갖습니다. 따라서 교과서의 내용은 대체로 진국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면 진국이 이것뿐이냐 하면 또 다른 기록이 있습니다.
그것은 후한서 한전(韓)의 기록입니다.
<韓>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辰>, <馬韓>在西, 有五十四國, 其北與<樂浪>, 南與<倭>接. <辰韓>在東, 十有二國, 其北與<濊貊>接. <弁辰>在<辰韓>之南, 亦十有二國, 其南亦與<倭>接. 凡七十八國, <伯濟>是其一國焉. 大者萬餘戶, 小者數千家, 各在山海閒, 地合方四千餘里, 東西以海爲限, 皆古之<辰國>也.
<馬韓>最大, 共立其種爲<辰王>, 都<目支國>, 盡王<三韓>之地. 其諸國王先皆是<馬韓>種人焉.
여기서 한은 3종인데, 모두들 옛날의 진국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한은 모두 진국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조선의 주변에 있는 큰 나라, 또 진번이 황해도 정도니까, 또 삼한이 모두 현재의 남한 지방으로 비정되니까, 진국을 당연히 현재의 한강 유역으로 비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한서의 내용을 보면, 진국의 왕인 진왕은 비록 마한, 진한, 변한 삼국으로 변했어도 그 호칭이 남아있고, 특히 3한 가운데 최대인 마한에서 왕이 나와 진왕이라 하면서 전체 삼한 지역의 왕으로 군림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옛날의 진국은 엄청나게 큰 현재의 남한 면적 전체에 해당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후한서보다 일찍 편찬된 삼국지의 한전의 내용 때문입니다.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辰韓>者, 古之<辰國>也
여기서는 진국이 오직 진한의 조상국으로만 나옵니다. 이 기록 때문에 진국은 거대한 나라가 아니라, 단지 진한의 조상국으로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즉 북쪽의 고조선에 버금갈 많큼 큰 남쪽의 진국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저 고조선 남쪽에 매우 유명한 국가가 있었다는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왜냐하면 진국이 이렇게 컸다면, 그 다음 78개국이 갈라진 시대 규정이라던가, 또 사회발전 단계 등을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게 되니까요. 소위 말하는 진화론적 역사관에 반대되지요.
더군다나, 남한 전역을 하나의 국가로 볼 만큼 강력한 진국을 상정할만한 고고학적 유물(어느 특정 지역에 거대한 도읍이 있다던가 하는 식)도 없습니다. 또한 후한서보다 삼국지가 더 문헌적 가치가 높기 때문에 후한서의 기록이 착오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국은 어차피 삼국지와 후한서 집필 시절에는 과거의 국가였습니다. 그러므로 진국과 진왕을 연결시키는 것도 반드시 옳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진왕은 마한의 가장 강력한 국가인 목지국의 왕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보자는 것이며, 진국 역시 진한의 조상국으로만 보자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진국 문제는 사기 조선전의 중국, 진국 문제의 논란, 후한서와 삼국지의 진국에 대한 상이한 개념의 차이 등으로 인해 계속 논란의 소지가 남아있습니다만, 워낙 기록이 없는 관계로 진국의 실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진전을 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고고학 유물로 엄청난 진국의 중심지가 발견되지 않는 한 말입니다. 혹시 풍납토성의 연대가 올라가서 그곳이 진국의 중심지일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연구자들의 머리 속에서 그저 상상해보는 정도일 뿐, 진국을 큰 나라로 보기에는 아직은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위에 교과서 내용중에 "고조선 사회의 변동에 따라 대거 남하해오는 유이민에 의해 새로운 문화가 보급되었다"는 표현은
우선 위만에게 좇긴 고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의 남하가 있을 수 있겠고,
신라가 본래 고조선의 유민이라는 삼국사기 기록에서 보듯, 고조선 유민이 남쪽으로 내려온 뚜렷한 흔적이 있으며,
삼국지 한전에 채록된 위략의 기록에 조선상 역계경이 우거에게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2천여호 - 무려 1만명 정도를 거느리고 동쪽 진국으로 갔다는 것 등의 기록이 있기 때문에 이에 근거하여 쓴 기록들입니다.
위에서 혹여 역계경이 위만조선의 남쪽이 아닌 동쪽으로 갔다는 것에 주목하여 여러 이견이 나올 수가 있으나, 대체로 이것보다는 다른 정황 증거로 해서 진국은 역시 한강일대 정도로 비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겠습니다.
*** 진국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견해를 내세울 때는 정말 기존의 주장을 뒤엎을 만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견해를 내세워야 할 것입니다. 한 두개의 단서로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식의 주장을 남발만 한다고 기존의 통설이 바뀌어지지는 않을테니까요.
진국에 대해서는 현재 새로운 문헌을 찾을 길이 없으므로, 고고학 발굴을 기대하는 것 외에 큰 연구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