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영성을 말한다면 스데반의 영성, 즉 순교자의 영성입니다. 순교의 영성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가져야 할 영성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증인이라는 마르투스는 영어 martyr(순교자)와 의미가 같습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은 내 순교자가 되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죽을 각오 없이 예수 믿기 어렵다는 것이고 증인은 믿을 때부터 이미 죽은 자입니다. 교회는 피 흘리러 오는 곳, 죽으러 오는 곳입니다.
어떤 분이 조크로 한국에 부흥이 빨리 왔던 것은 죽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추워 죽고, 더워 죽고, 힘들어 죽고, 좋아서 죽고, 놀라서 죽고 마지막엔 부활의 신앙 가지고 다시 살아납니다. 우리는 진짜 죽은 자입니다. 그리고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증인이 된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면 피 흘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말씀은 피 흘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죽은 척해서는 세상을 살릴 수 없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면 강하고 담대함이 있습니다. 죽음조차 두렵지 않습니다. 이 사랑을 만난 사람이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지금 죽음의 위력 앞에서 하나님은 한 분, 예수님밖에 없다는 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증인 됨의 권세가 나오는 것입니다. 스데반을 이야기할 때 항상 강조하는 것이 가득 찼다, 충만하다 입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3)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5)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8) 스데반이 들어가는 말씀마다 가득 차고 충만하다고 증거 합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행7:55) 스데반은 성령과 지혜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의 기초를 세운 사람이 베드로라면 교회의 기둥을 세운 사람은 바울이고 교회의 내면을 채운 사람은 요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면이 꽉 차 있는 사람을 이야기하면 스데반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교인 중에는 깡통 신자들이 있고 쇠기둥 같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원통으로 된 것들이라 외형으로는 구분이 안 되지만 깡통은 발로 차면 찌그러집니다. 그래서 내면이 비어 있는 성도는 상처에 약합니다.
IMF 때 찌그러진 고통이 아직도 남아 있고,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아픔이 아직도 남아 있고, 작년에 찌그러진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깡통이기 때문이다. 쇠기둥은 차는 놈이 다칩니다. 차지 말라고 말하는 것보다 깡통 신자를 쇠기둥 신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데반 순교 사건을 보면 학대하는 사람들이 더 괴로운 것을 봅니다. 내면이 충만하게 꽉 차 있으면 세상의 도전에 대해서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면이 꽉 차 있는 사람과 함께 하실 뿐 아니라 넉넉히 이기는 승리를 주십니다(롬8).
다니엘서 3장에 금신상에 절하지 않아 풀무불에 들어간 다니엘의 세 친구가 나옵니다. 들어갈 때는 세 사람이었는데 안에는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넉넉하고 완전하게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함께하시니 시험이 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장 속에 예수님이 함께하셔서 완벽한 치유와 승리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단3:27). 고깃집만 갔다 와도 냄새가 배는데 이들은 풀무 불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냄새도 없었습니다. 완전한 승리입니다.
내가 깡통이면 맨날 공격이 두렵고, 상처가 두렵고, 누가 발로 차서 찌그러질까 봐 걱정입니다. 찌그러지는 것이 걱정인 것은 충만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꽉 찬 영성이 필요합니다.
꽉 차 있는 것을 흔들면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 다 나옵니다. 스데반에게 말씀이 들어 있으니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스데반과 변론하던 자들이 말로 당하지 못하니 스데반을 잡아 공회로 끌고 갑니다. 그런데 이들이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거짓으로 증거 합니다(13). 스데반이 성전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 72명인데 의장인 대제사장이 이 증언들이 사실인가 물었는데 스데반은 2절부터 시작해서 53절까지 무려 52절이나 입을 열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성경 전체를 논하며 예수를 전한 것입니다. 스테반이 순교하지 않았으면 500절도 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스데반의 영성을 갖는다는 것은 속을 채운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채우고 말씀으로 채우고 기쁨으로 채우면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말씀이 나오고 기쁨이 나옵니다.
성만찬은 배고파서 먹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내 살이고 피니 먹으라"는 말씀은 내 능력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한 몸이 되기 위해 내 피와 살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무력하게 살지 말고 예수님의 능력을 먹으라는 것, 깡통같이 살지 말고 말씀을 먹고 기도로 채워서 건들면 말씀이 나오고 기도하면 성령의 능력이 나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본질(엑수시아)로부터 나오는 권세가 있어야 하고, 자녀된 삶에서 나오는 능력(두나미스)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로 살라고 하신 것은 순교자의 영성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린 이 땅에서 증인으로, 순교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럼 상처로 인해 찌그러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이냐 한마디 하면 52절이 터져 나와야 합니다. 채워야 승리할 수 있고 충만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