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21세기를 사는 나로서는 제목이 제법 실감이 난다. 21세기를 살면서 이 시대를 알고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많은 질문을 던지고 살아간다. 20세기에는 파시즘,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간의 거대한 이념 전쟁에서 자유주의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는 듯이 보였다. 민주적 정치와 인권 그리고 시장 자본주의가 세계를 정복하도록 예정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역사는 예상 밖으로 선회했고,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붕괴한 후에는 자유주의가 다른 어떤 곤경에 처해 있다. 우리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바야흐로 옛 이야기는 붕괴했지만, 그것을 대신할 새 이야기는 아직 출현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누구인가?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가? 오늘날 과학과 신, 정치와 종교에 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모두 감안할 때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을 누가 제시해 줄 수 있을까?
“어려운 과제지만 선택해야만 한다.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데 악용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내 생각을 터놓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자신을 검열해야 할까? 우리 종의 미래에 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일은 점점 위험해 지고 있다. 나는 고심 끝에 검열보다는 자유로운 토론을 하기로 했다. 자유주의 모델을 비판하지 않고서는 그것이 갖고 있는 결점을 고치거나 극복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마음대로 생각하고 바라는 대로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를 누릴 때 비로소 이런 책이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 주기 바란다.”이 책의 저자 ‘유발 하라리’교수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의 가치는 표현의 자유가 먹혀들 때 누리게 된다”라고도 했다.
전 세계 50개국에서 출간되어 800만 부 이상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 《사피엔스》는 보잘 것 없는 유인원이 어떻게 지구라는 행성의 지배자가 되었는지를 개관했고, 후작 《호모 데우스》는 인류가 결국에는 신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추측해 보면서 미래를 탐색했다. 그리고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라는 이 책은 “현재의 인류, 사피엔스 종의 커튼이 내려가고 완전히 다른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에 한 명의 사피엔스가 다른 사피엔스에게 건네는 엄숙한 제언을 담고 있다”라고 책을 출판한 [김영사]가 말한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가 보기로 하자.
〔1부〕기술적 도전
“프랑스와 영국의 우익 극단주의자들은 러시아의 지원에 의존하고 푸틴에 대한 흠모를 표시하는 일도 있을 법하지만, 두 나라의 유권자들조차 실제로 러시아 모델을 빼닮은 나라 –고질적 부패와 서비스 장애, 법치주의 부재, 엄청난 불평등의 나라– 에서 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 국부의 87%가 상위 10% 부유층 손에 있고,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사람들은 자신의 발로 투표한다. 미국, 캐나다, 독일, 호주로 이민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중국이나 일본으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 있지만- 러시아로 이민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도중에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또 독일에서 태어난 무슬림 청소년 중에서 무슬림 신정 체제에서 살기 위해 중동에 간 사람이 한 명이라면, 반대로 자유주의 독일에 가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중동의 청소년은 아마 100명은 될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에 일어난 사건들 때문에 좌절감에 빠진 자유주의자라면 1918년과 1938년, 1968년에는 상황이 훨씬 나빠졌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결국 인류는 자유주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체제에 분노하지만 달리 갈 데가 없어 결국에는 돌아올 것이다. 20세기만 해도 민족주의와 종교적 이야기에서 안식처를 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는 세계를 독립된 민족국가들로 분할 하는 것에 대한 지지 외에는 미래를 위한 일관된 청사진은 없었다.
21세기 자유주의는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아직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생태학적 붕괴와 기술적 파괴라는 문제만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전통적으로 경제 성장에 의지해 사회적, 정치적 갈등들을 마술처럼 해결해 왔다. 자유주의자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를 화해시키고, 신앙인과 무신론자, 토박이와 이민자, 유럽인과 아시아인까지도 화해시킨 비결은 모두에게 파이의 몫을 더 키워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실제로 그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은 지구의 생태계를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가 될 것이다.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지고 출산율은 낮아지면서 이제 연장자를 돌보는 일이야말로 노동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람을 돌보는 능력과 더불어 창의적 또는 자동화가 시스템이 넘기 어려운 장애물이다. 음악을 파는 데는 사람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 뮤지션, 가수, DJ는 여전히 피와 살로 된 인간이어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능성 중에 선택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의 창의성에 의존한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어떤 일자리도 자동화 위협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안전한 상태로 남지는 못할 것이다. 감정이란 것도 어떤 신비로운 현상이 아니다. 생화학적 과정의 결과물일 뿐이다. 따라서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기계학습 알고리즘은 우리 몸 겉과 속에 정착된 센서를 통해 실시간 전달되는 생체 측정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별 성격 유형과 수시로 바뀌는 기분까지 알아내고 어떤 감정적 영향을 미칠지까지 계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십 년 내에 기계 알고리즘이 수백만 가지 음악을 섭렵하고 나면 어떤 노래를 입력했을 때 어떤 효과가 나오는지 예측하는 법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재훈련할 수 있다 하다 하더라도 격변해지는 환경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감정의 근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아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변화는 늘 스트레스를 만든다. 21세기 초 세계는 미친 듯이 바빠지면서 지구는 스트레스라는 유행병을 앓고 있다. 사피엔스가 정신이 나가는 것을 막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효과적인 스트레스 경감기술이 필요하다. 2050년쯤 ‘무용(無用)’계급이 출현하는 원인에는 일자리의 절대 부족이나 관련 교육의 결여뿐 아니라, 정신 근력의 부족도 포함될 것이다.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우리 몸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느끼기 훨씬 전에 질병이 생기는 순간부터 감지할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의 독특한 체질과 DNA, 인성에 맞춰 처방된 적절한 치료법과 식단, 식이요법을 추천할 것이고, 사람들은 사상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그들은 늘 환자 신세가 되고 말 것인데, 우리 몸 어딘가에는 늘 어떤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항상 무언가 개선될 것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엔 눈에 보이는 장애가 없는 한 건강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2050년이 되면 생체 측정 센서와 빅데이터 알고리즘 덕분에 질병의 고통이나 장애가 나타나기 훨씬 전에 미리 진단과 처방이 내려질 것이다. 그러면 늘 어떤 ‘의료가 필요한 상태’에 놓이고, 알고리즘의 추천에 따라야 할 것이다. 거절하면 의료보험 효력이 정지되고 상사가 당신을 해고할지도 모른다. 반드시 그런 대가를 치러야만 할까?
인생은 늘 결정의 연속이다. 지도자의 경우는 더 많이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우리가 내려야 할 결정을 AI에 의존하게 되면서 변화가 생길 것이다. 영화를 고를 때는 넷플릭스의 추천을, 좌/우회전을 선택할 때는 구글 지도를 신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공부할지, 어디서 일할지, 누구와 결혼할지를 선택할 때도 AI에 기대게 되면 인간의 삶은 결정이 필요 없을지 모른다. 권위가 인간에게서 알고리즘으로 이동함에 따라 우리는 더 이상 세계를 자율적인 개인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분투하는 장으로 보지 않게 될 것이다. 대신 우주는 데이터의 흐름으로, 생화학적 알고리즘과 다름없는 유기체로 보고 인간의 우주적 소명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라고 믿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이해하는 거대한 처리 시스템 속에 작은 칩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1년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은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군을 투입했다. 하지만 군부가 진압을 거부함에 따라 결국은 자진 사임했다. 만약 이때 정부가 개발이 완성된 로봇 군대를 활용했다면 인기 없는 전쟁을 벌이면서도 로봇들이 전의를 잃거나 가족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킬러 로봇이 있었다면 대량학살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반전 참전용사 로봇 운동 걱정을 미국 정부가 덜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다시 말해 미국 시민은 여전히 전쟁에 반대했을 수 있지만, 자신이 징병될 걱정이나 직접 잔혹 행위에 가담한 기억이나 사랑하는 친척을 잃은 아픔이 없다면 시위대의 참가 규모와 결의는 높지 않았을 것이다.
관심이 가는 사례가 또 있다. 가령 북한 정권은 신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가정해 볼 때, 북한 국민들에게 혈압과 뇌활동은 물론 모든 언행까지 감시하는 생체 측정 팔찌 착용을 의무한다면, 점점 증가하는 인간 두뇌에 관한 지식과 기계학습의 막대한 힘을 사용해서 북한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매 순간 모든 국민의 생각을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의 사진을 보여준 다음 생체 측정 센서에서 분노의 징후(혈압상승 등)가 포착되면 그 사람은 아마 내일 아침에는 정치범수용소에 가 있을 것이다. 북한은 고립되어 있어서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빈말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의’문제에 관해 ‘우리가’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다양한 인간 집단이 서로 완전히 다른 미래를 맞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세계 어떤 지역에서는 자녀에게 컴퓨터 코딩을 가르쳐야 하는 반면에 또 다른 지역에서는 재빨리 총을 뽑아 명중시키는 법을 가르치는 게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2부] 정치적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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