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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그가 어떠한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하고 나서 이렇게 변화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변화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무엇으로 증거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도 옛 생활, 옛 모습 그대로라면 복음이 전파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진실로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변화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변화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 이런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오늘은 그중에 한 사람 바로 삭개오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이야기입니다.
삭개오는 그 이름의 뜻이 ‘청결’, ‘순수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갔더니,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 ‘청결하다’는 이름의 뜻과 달리, 그는 동네에서 죄인으로 통했습니다. 이름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제 이름대로 살지 못합니다. 이름은 주철(무쇠)인데, 몸은 플라스틱인 것 같습니다.
요즘 베트남에서 킹 대접받는 분이 있습니다. 김상식 축구감독! 베트남이 이번에 동남아 월드컵이라고 불리는 대회를 또 우승했습니다. 감독으로 부임하고 2년 동안 26전 무패의 신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누구와 달리 그 이름대로 축구 상식이 통하는 감독입니다. 기자가 전임인 박항서 감독에게 베트남 선수들을 지도하는데 특별히 전수받은 비결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박감독이 가르쳐준 비결은 한 마디로 ‘정’이라고 했습니다. 선수들에게 인정으로 대하라고 했는데 그대로 했답니다. 선수들에게 초코파이도 사다 주고... 참고로 내년 아시안컵 대회에 베트남이 우리나라와 같은 조입니다.
사람은 머리가 있어야 합니다. 인정머리, 주변머리, 소갈머리, 채신머리, 공부할 때는 공부머리, 일할 때는 일머리가 있어야 합니다. 제일 안 좋은 머리는 돌머리가 아니라 버르장머리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살아계신다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버르장머리를 고치려고 하니까.
그런데 진짜 이름대로 사신 분, 이름값 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저희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 이름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할 자’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 이름대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옆에 앉은 분에게 이렇게 인사합니다. “이름값은 하고 삽시다.”
삭개오도 이름값을 못했습니다. 그의 직업이 세리입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성의 세무서장입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권세, 가진 재물이 그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재력과 권력으로 행복을 살 수 없었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돈으로 시계는 살 수 있어도 시간은 살 수 없고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편한 잠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책을 살 수 있어도 지식은 살 수 없고 돈으로 의사는 살 수 있어도 건강은 살 수 없다.’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삭개오는 인생의 행복과 의미를 살 수 없었습니다. 참된 만족을 얻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미리 말씀합니다. 전5:10에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6:3에는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라고 합니다. 은을 풍요롭게 가지고 소득이 넘치고 자녀가 많고 장수하여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랍니다. 삭개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공허함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여리고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도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들으면서 그가 혹 메시야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린 것이나 초자연적인 기적을 베푸신 일, 유대인들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 것이 없을 정도로 지혜로운 자임을 듣고 그가 메시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을 것입니다. 그가 메시야라면 자기 같은 세리도, 사람들의 손가락질받는 자라도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사람들로부터는 버림받아도 하나님께는 버림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을 봐야겠다, 그런 생각에 예수님이 지나는 길에 앞서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키가 작아 사람들 틈에서는 예수님을 보지 못할까 봐 그랬겠지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도 그랬을 것입니다.
세무서장인 그가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에 올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체면이나 자존심 생각하면 못 올라갑니다. 체면의 옷을, 자존심의 겉옷을 벗어버렸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만큼 간절하게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렘29:13에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라고 약속했습니다. 잠8:17에서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라고 합니다. 간절히 찾는 자에게 만나주시고 부르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면서 삭개오를 보시고 “삭개오야, 빨리 내려오라. 내가 너희 집에 머물러야겠다.”라고 합니다. 이 부분을 주의해서 보면 삭개오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나무에 올라간 얘기지만 마치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나려고 여리고로 들어오신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10절에 말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라고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방황하고 공허한 삭개오를 찾아 여리고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이처럼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 같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찾으신 것입니다. 우리를 먼저 부르신 것입니다. 전도자를 통해서! 그렇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께서 삭개오를 부를 때 그가 어떻게 합니까?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로 내려와 주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내일로, 다음으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믿으세요.”하면 “다음에 믿겠다.”라고 합니다. 다음이 아니라 성경은 바로 지금이 구원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은혜 받을 날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시간입니다. 삭개오는 즉시 내려와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시길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집에 들어오시자마자, 삭개오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누구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습니다.” 무슨 머리가 있어 보입니까? 인정머리? 단순히 인정이 많아서가 아니라 진정한 회개의 모습입니다. 단지 반성하고 뉘우치는 것만이 아니라 분명한 돌이킴, 죄와 단절하는 결단이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삶을 청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요, 회개의 합당한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옛사람이 하나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라면, 도무지 변화가 없다면 어찌 예수님을 그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자라 하겠습니까! 진정으로 믿는 자와 믿는 척 하는 자는 다릅니다. 말이 다르고 생활이 다릅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사람들이 회개하며 나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까요?”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세리가 나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너희에게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마라.” 군인이 나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까요?”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고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이렇게 바른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회개했다면서 이런 열매, 변화가 없다면 진정한 회개라 할 수 없습니다. 삭개오는 회개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삭개오를 이렇게 변화시켰을까요? 사실 예수님이 그에게 무슨 설교나 교훈을 하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고, 만났고, 그리고 변화되었다는 것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삭개오가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예수님이 누구이심을 알고 영접하고 용서받았다는 것,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삶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돈과 권력이 더 좋았겠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엔 그것보다도 더 가치 있는 인생을 찾았고 그렇게 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삭개오의 입장에서는 나같은 죄인이라도,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수군수군하는 자임에도 예수께서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긍휼히 여기셔서 찾아오시고 만나주시고 집에 들어오시고 친구가 되어주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분의 크심 앞에, 그분의 거룩함 앞에 자신은 너무도 죄인 됨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의를 발견하고 죄와 허물을 발견하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죄의 달콤한 열매를 내려놓는,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기독교가 이 땅에 전파되는 시기에 강화도 해안에 홍의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 지역에 종순일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다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18장에 가서 탕감 받은 자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사람이 500데나리온 빚진 자를 불러 당장 갚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을 안 임금이 그를 불러서 “네가 갚을 것이 없을 때 내가 너를 불쌍히 여겨 그 많은 빚을 다 갚아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그 많은 탕감을 받고도 너는 친구의 조그만 어려움도 해결해주지 못하느냐”라며 그를 옥에 가둬버리는 내용입니다. 종순일 성도가 이 말씀을 읽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빚진 사람들을 다 불러 말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했으니 이제 내게 빚진 모두의 빚을 다 탕감해주겠다” 그리고 차용문서를 다 불태워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웃 마을의 김씨 부인이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역시 그 집에 복섬이라는 여종을 불러다가 말합니다. “나도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내게 자유를 주셨는데 너도 이제부터 자유니, 네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라고 하면서 노비문서를 불태워버렸습니다. 그러자 복섬이는 너무 감격해서 집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평생 내가 당신을 섬기며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자 김씨 부인이 “그럼 이제부터 너를 종이 아니라 내 딸로 삼겠다”라고 해서 수양딸로 삼았습니다. 나의 변화는 또 다른 사람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나의 섬김은 또 다른 섬김을 낳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 자들의 진정한 변화입니다.
전북 김제에 가면 옛날 기억자 교회인 금산교회가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조덕삼이라는 양반과 이자익이라는 머슴이 함께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나중에 장로를 세우는 투표를 했는데 조덕삼 양반이 안 되고 머슴인 이자익이 뽑혔습니다. 투표를 잘 하고도 성도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조덕삼 집사가 시험에 들어 다음 주부터 교회를 안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이 교회를 나와서 머슴 장로님에게 순종합니다. 집에서는 주인과 머슴이고 교회에서는 장로와 성도의 관계로 바뀝니다. 이후에 조덕삼이 머슴 장로님을 신학교에 보내고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서 보내주었습니다. 졸업하자 자기 교회 담임목사로 초빙합니다. 이자익 목사님은 교단의 총회장을 역임하고 지금의 대전신학대학교를 설립하여 초대학장이 되었습니다.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죠지 뮬러 목사도 그가 예수 믿기 전에는 16세에 절도죄로 감옥에 들어갔고 술, 여자, 노름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도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되고 1만 명이 넘는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무자비하게 노예를 잡아다가 팔아넘기던 존 뉴턴은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목사가 되고 그의 고백이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남겼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삶이 바뀐 것입니다. 가치관이 바뀐 것입니다. 오늘날도 삭개오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 삭개오처럼 되어야 합니다. 이전에는 세상의 명예와 재물과 권세가 더 좋았지만 주님을 만나 진리를 알고 영생을 알고 이제 무엇과도 주님과 바꾸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런 삭개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인자가 온 것을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죄인을 찾아오셨습니다.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죄인을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삭개오처럼 주님을 영접하시고 변화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간절히 찾고 만나려는 자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시고 사모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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